18화
그렇다고 해서 요한이 전 세계와 전쟁을 하고 싶다는 말이 아니었다.
그저 평화롭게 지낼 수 있는 안전장치로만 존재해도 충분했다.
‘천공의 방어 요새만 있다면, 어떤 나라도 나를 귀찮게 하지는 않을 테니까.’
설사 그게 G3에 속하는 중국, 한국, 미국이라 하더라도.
‘그저 이 빌어먹을 포탈과 질긴 악연을 해결하는 데 집중할 수 있다는 거겠지.’
현재 요한은 방어 요새를 타고 미국으로 향하는 중이었다.
다행히 소음은 그렇게 강하지 않았다.
요새는 비전투 상황에선 소음을 최소화하는 게 가능했기 때문이다.
소음 문제는 해결하더라도 불편한 점이 1, 2개가 아니었다.
‘제대로 된 공간이 하나도 없어.’
빈방은 많았다.
하지만 대부분 잡동사니가 조금씩 들어 있는 비효율의 극치였다.
‘여길 내 별장으로 쓰려면 청소 좀 제대로 해야겠는데.’
청소 같은 집안일이라면 요한이 바로 전문가였다.
여동생과 단둘이 살면서 집안일 같은 건 그가 전담했으니까.
지금이야 사람을 쓰는 덕분에 그가 직접 할 일은 없었다.
뭐, 사람이 없다고 해도 그의 손에 물을 묻힐 일은 없었다.
그의 스켈레톤은 기본적으로 집 안일 같은 잡일이 가능하도록 코딩 되었으니까.
당장은 장비가 부족해서 할 수는 없었다.
그의 짐꾼 스켈레톤이 다양한 물건을 가지고는 다녔지만, 청소 도구까지 가지고 다니는 건 아니었다.
그리고 청소 도구가 있다고 해도 무리였다.
‘빈 곳을 채울 가구도 다수 필요하니까.’
그런 점에서 미국행은 좋은 기회였다.
미국엔 이런 일을 도와줄 기업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의 전용기도 미국에서 정식으로 발주한 물건이었다.
중국과 한국이 미국을 많이 따라 잡긴 했지만, 이런 분아는 여전히 미국이 최고였다.
특히 한국은 여전히 전용기 시장에선 활약하는 기업이 없을 정도로 열악했다.
기술 발전으로 전투기는 자체 생산이 가능해졌지만, 항공기나 로켓 분야에선 발전이 더딘 편.
물론 그의 요새가 항공기는 아니었다.
하지만 어차피 자체 설비를 점검 받을 필요가 없었다.
그저 실내 디자인만 건드릴 생각이기에 미국의 전문가라면 충분히 그를 도와줄 것이었다.
‘어차피 돈이야 달라는 만큼 줄 거니까.’
스팀펑크 마니아들이 미친 듯이 달려들겠지만, 요한은 그들에게 맡길 이유는 없었다.
‘녀석들이라면 진짜 내부까지 스팀펑크로 해 버릴 거야.’
굳이 그렇게까진 필요가 없었다.
요한은 스팀펑크 마니아도 아니었고, 그런 감성보다는 철저하게 첨단 기술과 안락함으로 채울 예정이었다.
‘워낙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나에겐 집이나 전용기보다 이게 더 훌륭한 안식처가 될 테니까.’
요새는 크고 방대했다.
미국으로 향하는 길에 꽤 많이 구경했음에도 마크의 말론 아직 1/5도 제대로 보지 못했다고 했다.
신기한 점은 요한이 돌아다니면서 기계 골렘을 1기도 보지 못했다.
마크가 말하길 기계 골렘은 외부의 공격이 있을 때만 움직인다고 했다.
기계 골렘을 다루는 데 마나가 많이 소모돼 상시 유지할 수는 없다고.
요한은 충분히 이해했다.
‘그런 무식한 것들을 다루는 데 적은 마나가 들면 사기지.’
현재 그도 마나를 보충해 주는 영혼 흡수 스킬 덕분에 엄청난 언데드 군단을 유지할 수 있었다.
만약에 영혼 흡수 스킬이 없었다면, 그의 언데드 군단은 지금 위용의 1/3도 안 됐을 것이었다.
삐빙-!
“마스터, 지시하신 위치에 도착하였습니다.”
방어 요새는 덩치는 어마어마했지만, 비행선을 내부로 불러들인 다음에 내는 속도는 절대 느리지 않았다.
방어, 공격도 불가능하지만, 속도에만 집중하면 충분히 이동용으로 쓸 만했다.
방어 요새가 미국 상공을 날고 있었다.
“와, 저것 봐!”
"Wow, 저게 그 유명한 천공의 방어 요새!”
“대단해, 완전히 멋있어. 핫하잖아!!”
“저기 한 번 타 봤으면 소원이 없겠네.”
“브라보!!”
휘익-!
방어 요새가 꽤 높은 곳에서 비행 중이었지만, 현재 하늘은 맑은 데다 워낙 기체 자체가 컸다.
좀 높은 곳에 있다고 눈에 띄지 않을 리가 없었다.
미국인들은 거대한 기체를 바라 보며 감탄을 아끼지 않았다.
“대, 댓츠 크레이지!!”
“언빌리버블!!”
특히 스팀펑크 마니아들은 눈에서 하트가 뿜어져 나왔다.
한 번이라도 올라탈 수만 있다면, 영혼이라도 팔 기세였다.
하지만 그들은 요한의 근처도 갈 수 없는 사람들.
그저 소망으로 끝날 수밖에 없었다.
목적지는 서부가 아니라 동부의 뉴욕이었기에 그대로 북아메리카 중심을 뚫고 지나갔다.
미국 역사상 이런 일은 없었다.
군부는 분통을 터트렸지만, 자기들이 어쩌겠는가?
아무리 미국이 최강 국가라고 해도 이제 세계의 경찰 타이틀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G3 중에 한국과 중국이 연합해도 미국에 큰 위협이 되는 현재.
함부로 국제 규약을 어길 수는 없었다.
국제 규약이란 S급 헌터는 어떤 방식이든 어떤 국가에 방문할 때 해당 국가의 방해를 받지 않을 수 있다는 규약이었다.
오직 S급만 해당하는 규약이라 OECD 회원국들은 별다른 반발 없이 통과될 수가 있었다.
어차피 출국, 입국 절차란 게 있어서 함부로 굴고 싶어도 이런 식은 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전용기도 없이 이런 식으로 타국의 헌터가 출입하는 게 처음이다 보니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국제 규약으로 어떻게 할 수는 없었다.
***
뉴욕 공항에 내린 요한은 이곳에서도 꽤 유명세를 치러야 했다.
하지만 이번엔 기자 회견 같은 특별한 일은 하지 않았다.
어차피 귀찮은 일은 하와이에서 끝냈다.
여기서 굳이 더 언론에 뉴스거리를 주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미, 미스터 킴!!”
“이, 인터뷰 조금만!!”
기자들은 다급하게 외쳐 보았지만, 요한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미국 현지 러셀 매니지먼트에서 보내 준 경호원을 대동해 공항을 빠져나갔다.
그는 곧바로 대학교에서 열심히 공부 중인 유나를 찾아갔다.
“오빠!!”
정말 오랜만에 만난 남매는 서로 껴안으며 반가움을 표시했다.
일반적인 남매라면 이런 사이는 확실히 이상한 게 맞았다.
보통 남매라면 서로 물어뜯어도 모자랄 테니까.
하지만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일찍 철이 든 요한은, 유나에 대해 부모님 못지않은 무거운 책임감을 느꼈다.
소중한 동생과 사이좋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공부 잘하고 있어?”
“응, 오빠 덕분에 원하던 법 공부를 실컷 하고 있어. 정말 고마워.”
“고맙긴, 나중에라도 다른 일을 하고 싶으면 괜한 고민하지 말고 바로 얘기해. 이 오빠가 여동생 하나 평생 못 먹여 살릴까.”
“히히, 알았어. 그래도 여전히 난 판사가 되고 싶은걸.”
“뭐, 판사도 멋진 직업이지. 돈 많은 판사가 무서울 게 뭐가 있겠어.”
판사는 사법 현장의 신이라고 해도 부족함이 없었다.
가장 문제는 빡빡한 일정과 적은 봉급.
분명히 명예도 있고 권력도 있는 데, 월급은 하는 일의 양에 비해서 적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
때문에, 많은 판사가 이 돈의 유혹에 빠져들기 쉬웠다.
수많은 갑부가 판사와 친인척으로 엮이길 원했다.
판사를 가족으로 둔다는 건 철옹성과도 같은 사법 기관에 엄청난 아군이 생기는 것과 마찬가지였으니까.
인간인 이상 이 유혹을 쉽게 이길 수가 없었다.
그래서 수많은 판사가 비리 판사가 되는 것이고 카르텔이 형성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유나는 그럴 걱정이 전혀 없었다.
누가 감히 돈놀이로 요한을 이긴 단 말인가?
‘일단 판사가 되어도 헌터 경호원을 붙여야겠어. 지금은 F급 2명이 붙어 있지만, 최대 D급 경호원을 알아봐야지.’
다른 사람이 보면 F급 경호 자체도 과할 정도였다.
하지만 요한은 절대 과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더 해 주고 싶은 마음을 겨우 참고 있었다.
‘너무 한꺼번에 해 주면 유나가 부담스러워할 테니까.’
부담스러워하지 않아도 되는데 착한 동생은 오빠에게 폐를 끼치는 것을 싫어했다.
언젠가 자기도 돈을 벌어서 이 빚을 꼭 갚아 주겠다고도 할 정도였다.
‘판사 월급 얼마나 된다고.’
얼마가 됐든 일반인 봉급으론 무리였다.
요한은 오랜만에 만난 유나와 정말 실컷 시간을 보냈다.
데이트도 하고 관광도 함께하고, 다니는 대학교도 견학하고…….
잠시 유나와 떨어져 있는 사이.
“아이고, 이런 거액을.”
대학교 이사장은 현재 요한 앞에서 허리가 부러질 듯이 굽실거리고 있었다.
요한이 대학교에 거액의 기부금을 주겠다고 말하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이사장님, 제 동생이 여기 다니는 건 아시죠?”
“아이고, 그럼요. 여부가 있겠습니까. 미스터 킴의 동생은 제가 책임지고 지켜보겠습니다. 그리고 굳이 이러시지 않아도 미스 킴은 매우 훌륭한 학생입니다. 이런 학생만 있으면 제가 걱정이 없을 정도입니다. 하하하!”
“그래요?”
“그럼요. 제가 다른 건 몰라도 누굴 빈말로 칭찬하지는 않습니다.”
“그렇군요.”
이사장의 말을 100% 신뢰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굳이 동생을 칭찬해 준다는 데 삐뜰어지게 볼 필요가 없었다.
요한은 흐뭇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띵-!
“허, 헉! 이, 이렇게 바로 배, 백 억을 쏴 주시다니.”
“뭘 겨우 100억 가지고. 좋은 데 써 주세요.”
“여, 여부가 있겠습니까.”
이사장의 머릿속엔 얼마 전에 예산 문제로 건설을 포기한 신관 건물이 떠올랐다.
굳이 이 100억으로 짓지 않아도 되었다.
100억은 정말 필요한 데 사용하고, 그렇게 아낀 돈으로 빌딩을 지으면 그만이었다.
‘후후, 이번 이사회에서 할 말이 생기겠군.’
이사장은 유나가 그저 고마울 따름이었다.
‘히터 교수에게 미스 킴을 좀 더 철저하게 관리하라고 지시해야겠어.’
요한이 친 약발이 제대로 먹혀들고 있었다.
***
요한은 미국에서 거의 일주일을 유나와 함께 있으며 즐겁게 지냈다.
영국 일도 급하긴 했지만, 이렇게 한가한 시간을 보내자 영국으로 돌아가는 게 살짝 망설여졌다.
‘내가 왜 굳이 스카이 포탈을 맡겠다고 했을까?’
급 후회가 되었다.
‘포탈 장인의 증표 없어도 잘만 살 텐데?’
귀찮은 일은 딱 질색인 그였건만, 무슨 귀신에 씌었는지 그런 말 같지도 않은 의뢰를 받아들였는지.......
마음 같아선 지금 당장이라도 의뢰를 취소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끄응, 그럴 수는 없지.’
신뢰 문제도 있었지만, 스카이 포탈 내부에서 받은 별도의 의뢰도 걸렸기 때문이다.
‘일단 그러면 영국까지만 하자. 영국 스카이 포탈만 정리하고 요새 안에서 실컷 노는 거야. 그러면 건드리는 사람도 없겠지?’
날씨 좋은 나라 근처에 주차해놓고 그곳에서 보급을 받으며 그야말로 한량처럼 지내는 것.
이것이야말로 신의 놀이터 아니겠는가?
‘흐흐흐, 생각만 해도 너무 좋네.’
어서 빨리 그러고 싶었다.
유나와 미국에서 시간을 보내는 동안 미국 정부와 협회에서 몇 번이나 한 번 보자고 연락이 왔었다.
하지만 요한은 냉정하게 거절했다.
‘나한테 또 무슨 헛소리를 하려고.’
이젠 다 지겨웠다.
어서 모든 걸 끝내고 한량처럼 지내고 싶었기에 쳐냈다.
‘분명히 스카이 포탈 공략 관련해서 할 말이 있을 거야.’
미국은 땅이 넓어서 스카이 포탈을 2개나 보유한 국가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