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화
기계 골렘들은 끊임없이 등장해 요한을 괴롭혔다.
아니, 정확히는 귀찮게 굴었다.
그렇다고 해서 요한이 진짜로 귀찮아지는 건 아니었지만.
싸우는 건 결국, 류페이와 언데드 군단이었으니까.
쾅-!
“흥, 이딴 고철 덩어리가 날 막으려면 수만 년은 이르지!”
류페이는 온몸에 기름을 잔뜩 뒤집어쓴 상태였다.
평소엔 피로 범벅되었던 것과는 달리 기름을 뒤집어쓰니 퍽 불쌍해 보이기까지 했다.
실제론 살벌한 상태인데도 말이다.
요한은 아무 방향이나 막 움직이는 게 아니었다.
엔진이 어딨는지는 여전히 오리무중이었다.
하지만 마나가 가장 진하게 느껴지는 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이런 거대한 요새를 움직일 정도로 강력한 엔진이라면 보통 마나와는 격 혹은 질이 다른 마나를 뿜어낼 게 분명해.’
물론 요새도 생각 혹은 생존 본능이라는 게 있으면 무작정 마나를 사방으로 뿜어 대진 않을 것이다.
[흠, 이쪽입니다.]
하지만 요한에겐 전문가라고 할 수 있는 리치 사무엘이 함께하고 있었다.
녀석은 추적 스킬로 파동이 특별한 마나만 골라서 찾는 게 가능했다.
시간이 좀 걸리고 수시로 파동이 변해서 까다롭긴 했지만, 그래도 조금씩 엔진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구웅-쾅!
“콜록, 콜록!”
엔진에 점점 가까워지자 요새 내부는 먼지로 가득했다.
특히 기계 골렘들이 움직일 때마다 책에서만 보던 미세먼지들이 피어올랐다.
‘와, 옛날 대한민국은 중국 때문에 미세먼지 농도가 최악이라고 했던데, 잠깐 맡는 것도 이렇게 고통스러운데 조상들은 어떻게 버텼데. 나 같으면 바로 중국이랑 전쟁할 듯.'
지금이야 석유 대신 마석이 메인 에너지원이 되면서 환경 파괴는 막을 수가 있었다.
여전히 중동이나 베네수엘라 같은 나라는 석유를 사용하고 있었다.
석유와 마석을 혼용하고 있었다.
베네수엘라는 경제가 폭망한 이후 여전히 빈국이라, 마석을 수출하기 위해서 석유로 마석을 일부 대체한 것이었다.
석유가 넘치는 중동 국가도 석유 가격이 하락한 이후 무너지는 경제를 조금이라도 더 지탱하기 위해서 석유로 마석 역할 일부를 대체하고 마석을 수출해 수익을 만들었다.
하지만 석유를 사용하는 국가는 일부에 불과해 환경 오염을 일으킬 정도는 아니었다.
무분별한 화석연료의 사용이 문제지, 일부 국가의 비행은 자연이 가진 고유의 회복력으로도 충분히 감당할 수가 있었다.
그래서 국제 사회에선 일부 여전히 석유를 사용하는 국가를 문제 삼지는 않았다.
요한은 현재 과거 무분별한 화석 연료의 사용으로 환경 오염이 심했을 때의 불편함을 느끼는 중이었다.
‘정말 불쾌해.’
만약에 지금 이대로의 몸으로 과거로 간다면 못 버틸 것 같았다.
‘잠깐만, 그러고 보면 옛날엔 인류가 환경 오염과 싸웠으면 지금은 몬스터와 싸우는 셈이네. 옛날이나 지금이나 인류의 존폐를 위협하는 건 똑같고.’
뭔가 아이러니한 느낌이었다.
세상은 많이 변했지만, 세상이 돌아가는 원리는 변하지 않았다.
***
얼마나 더 파고들었을까.
기계 골렘은 더욱 많이 등장했지만, 오히려 요한은 점점 더 지루해졌다.
“하암, 심심해.”
콰가강-!
소리는 더 격렬해졌고 주변으로 퍼져 나가는 마나는 더욱 강렬해졌다.
하지만 소리의 중심에 있는 요한은 오히려 지루해졌다.
‘생각보다 더 약해. 갑자기 나타난 포탈이라 긴장했는데, 내 수준은 아니야.’
덕분에 시체를 일으킬 수 없는 상황에도 언데드 군단의 기세는 점점 상승했다.
쾅-!
“쿵!”
류페이가 지금까지 등장했던 그 어떤 기계 골렘보다도 큰 녀석을 마무리 지었다.
귀찮긴 했지만, 류페이의 상대는 아니었다.
그리고 그때 사무엘이 반응했다.
녀석의 푸른 안광이 빛나며 아래를 가리켰다.
[바로 이 밑입니다.]
“응, 이 밑이라고?”
요한은 두리번거리며 내려갈 수 있는 길이 있나 한번 확인해 보았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내려갈 길은 보이지 않았다.
‘뭐, 없으면 만들어야지.’
“류페이.”
“엉?”
“본 스파이더를 불러서 여기.”
쿵쿵.
발을 굴러서 정확한 지점을 2번 두드렸다.
“부숴.”
“오케이. 나와라, 나의 애마.”
구웅-!
“케케케케케!”
류페이의 부름에 끔찍한 외형의 본 스파이더가 등장했다.
녀석은 곧바로 뾰족한 팔을 사용해 마나를 끝에 모은 다음에 요한이 발로 두드린 곳을 강하게 내려쳤다.
쾅-!!
엄청난 폭음과 함께 땅이 그대로 내려앉았다.
“엘라드.”
“제 어깨를 잡으십시오.”
땅이 무너져 내리는 상황에서도 요한은 침착하게 그녀의 어깨를 이용해 균형을 잡을 수가 있었다.
척-!
부드럽게 떨어질 수가 있었다.
칙칙칙칙-! 부르릉-!
‘오?’
사무엘이 아래라고 가르쳐 준 곳은 그야말로 거대하고 정교한 기계 공장이었다.
수많은 톱니바퀴와 스팀 그리고 기계 팔들이 빠르게 움직이며 엔진을 가동하고 있었다.
‘여기 엔진을 지키는 수문장 몬스터는 없는 건가?’
나오려면 지금 나와야 했다.
왜냐면, 요한은 엔진의 가장 핵심 부품 앞에 떡하니 서 있었기 때문이다.
거대하고 정교한 기계 공정이었지만, 단점은 명확했다.
정교한 공정이다 보니 중요한 부품이 하나라도 파괴되면 이 모든 게 멈춘다는 것이었다.
가장 약한 티쓰 스킬 한 방으로 이곳을 마비시킬 수가 있었다.
그런데도 수문장 몬스터가 나오지 않는 것을 보면 이 요새 자체가 보스 몬스터라지만, 의외로 공략하기가 쉬운 몬스터였다.
‘생각보다 훨씬 더 시시하네.’
김이 다 빠질 정도였다.
마석 좀 많이 건진 것 말고는 이득이 없었다.
딱히 의미도 없는 이득이었다.
‘심하게 비약하면, 지금 나한텐 마석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돌멩이라고 해도 무방하니까.’
팔면 돈이 되고 세계를 지탱하는 에너지원이 될 수 있는 것.
어차피 요한이 아니더라도 매일 수억 톤의 마석이 지구를 위해서 마나를 뿜어내는 중이었다.
그렇다고 요한이 획득한 마석이 획기적으로 압도적인 양도 아니었다.
그냥 솔로 플레이로 얻은 것치곤 대단한 양에 불과했다.
‘허 참, 조금 어이가 없네. 시간 낭비한 게 더 짜증이 날 정도야.’
짧게 편집해서 이 정도지, 사실 요한은 지금 이곳에서 이틀을 쉬지도 못하고 돌아다녔다.
기계 골렘은 위협적이지 않았지만, 숫자가 많았고, 요새 내부가 미치도록 복잡했다.
마치 미로를 연상하게 할 정도였다.
지체된 시간에 비해서 남는 건 별로 없었다.
어차피 돈이야 지금부터 썩어 넘칠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그에겐 돈보단 시간이 더 소중했다.
‘음, 이거 뭐지?’
그의 눈에 다른 것들과는 색상이 완전히 다른 붉은색 레버가 보였다.
[OFF 스위치]
‘오프 스위치? 요새를 끄는 것 같은 건가?’
굳이 파괴하지 않고도 끌 수 있다는 것은 클리어를 의미하는 것일까?
요한은 잠시 고민을 해보았다.
어찌 보면 이것도 시간 낭비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런 건 시간 낭비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중요한 판단을 내릴 때는 얼마든지 신중해질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선택 하나가 시간을 엄청나게 절약할 수도 있으니까. 이런 건 신중해야지.’
일단 요한은 레버을 잡아 보았다.
그때였다.
띵-!
‘응?’
스마트폰이 울렸다.
[천공의 방어 요새의 생살여탈권을 차지했습니다. 천공의 방어 요새가 새로운 주인을 모시길 원합니다. 수락할 경우 천공의 방어 요새의 소유권을 가지게 됩니다. 천공 의 방어 요새는 유지 비용이 많이 드는 기계 생명체입니다. 그리고 워낙 거대한 탓에 포탈을 오갈 수도 없어서 사냥에 활용도 불가능합니다. 유지 비용도 하루에 중급 마석 1,000개를 소모하여야 합니다. 정말 소유하시겠습니까?]
‘이건 또 뭐야, 소유권?’
다시 한번 더 스마트폰에 떠오른 메시지를 꼼꼼하게 읽어 보았다.
이런 데 투자하는 시간은 전혀 아깝지 않았다.
4번, 5번 계속해서 읽어 보았다.
‘음.......'
팔짱을 낀 채로 고민에 휩싸였다.
이걸 도대체 어떻게 판단해야 할 지 모를 정도였다.
고려해야 할 게 1, 2개가 아니었다.
일단 포탈을 오갈 수 없다는 점이 가장 컸다.
어차피 이걸로 세계 정부와 전쟁할 것도 아니고 포탈을 오갈 수 없다면 큰 가치가 없다는 점.
두 번째로 중급 마석을 1,000개, 그것도 하루 단위로 소모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하급 마석이면 모를까, 중급 마석은 정말 비싸고 가치가 높았다.
일반적인 에너지를 생산할 때는 하급 마석을 사용하지만, 중급 마석부터는 아이템을 제작한다든가 하는 특별한 상황에서 사용될 정도였다.
단가도 몇 배나 차이가 났다.
1달이면 무려 3만 개의 마석을 써야 했다.
그렇게 30분이 넘게 제자리에서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요한.
‘음, 정했어! 예스, 소유할게!”
띵-!
[천공의 방어 요새를 성공적으로 소유하였습니다. 지금부터 천공의 방어 요새는 플레이어의 지시를 따릅니다. 천공의 방어 요새를 감싸고 있던 포탈이 사라집니다. 비행선과 기계 골렘 또한 플레이어의 소유가 됩니다.]
“와우.”
그야말로 엄청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마석이야 스크롤 판매 대금으로 받으라고 하면 쉽게 구할 수 있겠지.’
국제 공용 화폐는 이제 달러가 아니었다.
대포탈 시대를 겪으면서 미국은 동맹국도 내버려 두고 철저하게 보신주의 정책을 고수했다.
덕분에 자국 피해는 비교적 덜 받아서 쉽게 재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국제 경찰을 자처했던 미국에 대한 국제 신뢰도는 하락했고 새로운 공용 화폐를 찾았는데, 그게 바로 마석 보증 수표, 줄여서 MGC 단위라고 불렀다.
이제 가장 중요한 환율은 1MGC에 대응하는 수치였다.
단, MGC 단위는 조금 큰 편이라서 일반인이나 서민은 융통하기 힘든 화폐였다.
국제 거래나 길드 간의 거래에 흔히 사용되었다.
요한은 그걸 받으면 충분히 요새의 먹이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딱히 틀린 말도 아니었다.
전용기에서도 수시로 보고가 들어왔는데, 판매 추이가 무서울 정도라고 했다.
오버겠지만, 전 세계의 화폐를 깡그리 모으는 게 아닐까, 걱정이 될 정도라고 했다.
‘이거 어떻게 보면 K&S를 설립한 게 다행이네.’
만약에 그게 아니었다면, 굳이 요새를 소유하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은 돈이 많아서 어디에다가 써야 할지 고민일 정도였다.
비록 사냥에는 쓸 수 없는 깡통 요새였지만, 전 세계에 유일한 것으로 날아다니는 집으로 써도 될 정도였다.
그때였다.
윙윙-!
“반갑습니다, 새로운 마스터시여.”
드르륵-!
한쪽에서 구식 로봇 1대가 다리 대신 존재하는 바퀴를 끌고 요한에게 다가왔다.
요한은 굳이 녀석을 경계하지 않았다.
이미 이곳은 요한의 것이었으니 적대할 기계 골렘은 없었기 때문이다.
녀석은 요한을 보고 깍듯하게 예의를 차렸다.
“넌 뭐야?”
“저는 이곳 엔진룸을 관리하는 MAK-001이라고 합니다. 편하게 마크라 불러 주십시오.”
기계 종족 특유의 울리는 소리가 특징인 녀석이었다.
“궁금한 거 있으면 너한테 물어 보면 돼?”
“그렇습니다. 저는 오직 마스터를 위해서 일합니다.”
“호오, 괜찮은데?”
이러면 이곳에 투자한 시간이 전혀 아깝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