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요한의 갑작스러운 방문에 헌터협회는 뒤집혔다.
“뭐, 뭐라고. 김요한 헌터가 밖에?”
“예, 예. 방문 목적은 스킬 스크롤을 구경하러 왔다고 합니다.”
“그게 끝?”
“아, 예. 진짜 의도인지는 정확하지 않지만, 그게 끝이랍니다.”
“끄응, 정말 알 수 없는 인간이군. 뭐, 정말 그게 끝이라면 다른 짓을 티 나게 하지 않겠지. 어차피 막을 명분도 없고 말이야. 그냥 통과시켜. 내가 내려갈 테니까.”
“예, 알겠습니다.”
명분을 말하긴 했지만, 사실 요한이 대놓고 테러를 하러 온다는 티를 내지 않는 이상 협회에선 그를 막을 권리는 없었다.
요한이 최근 한국에서보다 외국에서 더 활동을 많이 해 섭섭한 면이 많았지만, 협회가 딱히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국제법상 해당 국가는 헌터의 외부 활동을 강제할 수 없다는 조항이 있었으니까.
중국이나 러시아처럼 한국 정부가 막 나가는 것도 아니고.
그 어떤 국가보다도 G3인 것을 자랑스러워하는 한국이 무리해서 국제법을 어길 리가 없었다.
섭섭해도 에둘러 표현하는 방법밖에는 없었다.
“아이고, 김요한 헌터님. 이런 곳 까진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그런 섭섭함과 달리 요한을 맞이 하러 온 국장의 얼굴엔 영업 미소가 한껏 담겨 있었다.
아무리 섭섭해도 감히 대한민국최고 중 하나를 논하는 요한을 상대로 어찌 웃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는 협회에서도 굉장히 높은 자리에 있는 간부였지만, 그래 봤자 월급쟁이였다.
협회장과도 단독으로 독대를 할 수 있는 권력자 앞에선 일개 직원에 불과했다.
“연락도 없이 죄송합니다.”
“아이고, 연락이라니요. 김요한 헌터님이 협회에 오시겠다는 데 연락이 뭐가 필요하겠습니까. 언제라도 원하실 때 방문해 주십시오. 협회의 문은 언제라도 헌터님께 활짝열려 있습니다.”
“하하, 그런가요?”
“그럼요, 그럼요. 여부가 있겠습니까.”
피식-.
‘이 아저씨도 재밌네.’
국장은 요한의 아버지뻘까지는 아니었고 삼촌뻘 되는 살이 푸짐한 중년이었다.
그의 태도는 눈빛으로 훤히 보였다.
감정 과잉.
척 봐도 과하게 아부하는 게 보였다.
하지만 굳이 뭐라고 하지 않았다.
회사 생활을 꽤 오랫동안 했던 그는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이게 바로 월급쟁이의 기본 소양이지.’
오히려 일을 참 잘한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내가 S급 헌터지만, 그래도 조카뻘 되는 사람에게 이러기가 절대 쉽지 않지.’
하지만 감정 과잉이 느껴질지언정 딱히 거부감이나 불쾌함은 느껴지지 않았다.
왜 없겠는가?
그저 단련된 사회생활의 기질로 아주 잘 감추는 것일 뿐이었다.
요한은 이런 사람을 싫어하지 않았다.
“제가 스크롤 전시장은 가본 적이 없어서 그런데, 안내 좀 해 주시겠어요?”
“아이고, 그럼요. 오히려 제가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이쪽으로 오시죠."
“네.”
국장의 안내에 따라서 요한은 스크롤 전시장에 들어갈 수가 있었다.
“오?”
“큼큼, 제 입으로 말씀드리긴 뭐 하지만, 저희 대한민국 협회가 가장 질 좋은 스크롤을 많이 모았습니다. 한반도에서 발생하는 포탈엔 질 좋은 스크롤이 많이 나온다고 하지요. 덕분에 세계 각국에서 어떻게든 저희 포탈로 사냥하러 오려고 줄을 섭니다.”
“오, 그래요?”
“예, 그럼요.”
국장은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또 은근히 한국 포탈을 어필하면서 해외가 아니라, 한국에서 활동좀 해 달라는 뉘앙스도 풍겼다.
그러나 요한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애초에 전시관에 들어선 순간부터 관심을 껐다는 게 더 올바른 표현이었다.
“이거 사진 좀 찍어 가도 되죠?”
“그럼요.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이건 특혜가 아니라 진짜였다.
사진 좀 찍어 간다고 큰일 나는 것도 아니고 홍보용으로 전시해 놓은 것이었다.
어쩌다 보니 스킬 스크롤을 많이 보유한 협회가 힘이 센 협회라는 암묵적인 규칙 때문이었다.
요한은 덕분에 별다른 노력을 하지도 않고 다양한 스킬 스크롤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가 있었다.
‘정밀 분석 프로그램에 대한 스킬을 모른 덕분에 별다른 협상 없이도 좋은 사진 많이 찍을 수 있었네.’
역시 남의 정보는 많이 알수록 좋고, 나의 정보는 많이 숨길수록 좋은 것이었다.
‘좋아, 좋아.’
전시관에 있던 모든 스크롤을 찍은 요한은 기분이 좋아서 국장과 간단하게 식사도 해주었다.
처음 본 사이였지만, 국장이 워낙 말솜씨가 좋아서 분위기는 그렇게 어색하지 않았다.
***
협회에서 돌아온 요한은 연구실로 와 본격적으로 정밀 분석 프로그램을 돌려 보았다.
결과를 본 요한은 다른 의미에서 깜짝 놀랐다.
“뭐야, 겨우 이런 거로 스크롤이 만들어져? 기껏해야 재료비에 한 500만 원 정도밖에 안 들어가겠는 데?”
[흘흘흘, 뭐, 스킬로 보면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 스킬이 없다면 재료를 알아도 만들 수가 없다네. 그러니 그 스킬이 대단한 거지.]
"와우."
정말 별다른 재료가 들어가지 않았다.
물론 일반인 기준으로 보면 겨우 스크롤 쪼가리 만드는 데 몇백만 원이 들어간다면 말도 안 된다고 할 수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스크롤을 사용할 건 헌터였다.
스킬 스크롤은 잘만 사용하면 여벌의 목숨이라고도 불릴 정도로 대단한 아이템이었다.
얼마를 쓰든 반드시 얻어야 하는 아이템이었다.
오죽하면 한 하급 헌터가 스크롤을 1개 우연히 획득했는데, 주변에서 수십, 수백억 원을 주겠다고 팔라고 해도 안 팔겠는가.
하급 헌터라 돈의 유혹이 강할 텐데도 목숨을 위해서 본인이 소유한 것이었다.
그만큼 스크롤은 중요한 아이템이었다.
그런 스크롤을 만드는 데 500? 절대 많은 액수가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너무 저렴해서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요한이 먼저 파악한 스크롤은 중급 스크롤 정도로 꽤 좋은 스크롤에 속했다.
하급 스크롤로 간다면 좀 더 저렴해지리라.
“미친, 하급 스크롤엔 30으로 만들 수 있는 것도 있네. 와, 이거 진짜 많이 남겨 먹는장사겠는데?”
[흘흘흘, 장사가 잘되면 나도 좀 챙겨 주게나.]
“뭐, 그거야 어렵지 않지만.”
정말, 이 정도로 남겨 먹을 수 있는데 못 챙겨 줄 것도 없었다.
“바로 시작하자. 아, 일단 매니지먼트에 전화 좀 하고.”
[흘흘흘, 천천히 하게나. 급할 건 전혀 없다네.]
요한은 곧바로 제임스에게 연락해 스크롤을 만드는 데 필요한 재료들을 읊어 주면서 최대한 빨리 구할 수 있는 것부터 먼저 구해서 연구실로 가져오라고 했다.
[양은 얼마나?]
“무제한.”
[아, 예. 알겠습니다. 최대한 빨리 구해 보겠습니다.]
“수고.”
[넵, 쉬십시오!]
요한의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제임스는 매니지먼트의 인원을 총동원했다.
“러셀 길드에 연락해. 남는 인원좀 있으면 빼 달라고. 알바도 총동원해서 이 목록에 있는 물건 싹쓸이해 와.”
“예, 알겠습니다!”
러셀 매니지먼트가 총동원되었다.
엄청난 인원과 자금을 사용하며 요한이 요청한 물건들을 빠르게 사들였다.
웃돈까지 얹는 것도 아끼지 않았다.
어차피 영수증으로 처리해서 요한에게 보고하면 알아서 비용으로 처리해 주었기 때문이다.
‘뭐, 그 일도 내가 하지만. 절차란 건 있어야 하니까.’
요한의 자금 관리도 제임스가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문제를 일으킨 적이 없어 요한이 제임스를 신뢰하고 있었다.
제임스도 그런 신뢰를 저버릴 마음은 전혀 없었다.
‘큰돈이긴 하지만, 괜히 건드렸다가 죽지도 살지도 못하게 될 바에야 어떻게든 헌터님의 신뢰를 얻어서 마음 편하게 부귀영화를 누리겠어.’
그는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편이었다.
***
첫 번째 물건이 연구실로 도착한 건 5시간이 지난 후였다.
의자에 앉아서 올튜브를 보던 요한은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배달된 물건들을 확인해 보았다.
“여기 사인 좀.”
샤샥-!
“감사합니다!”
배달 업자가 돌아가고 요한은 스켈레톤 워리어를 시켜서 물건을 가지고 들어왔다.
센스가 좋은 제임스가 물품 리스트도 적어 두고 상자별로 인식표를 붙여 두어서 물건을 구분하기는 쉬웠다.
‘크으, 이래서 내가 제임스를 좋아할 수밖에 없다니까. 헌터였다면, 내 전용 부관으로 데리고 다녔을 텐데. 아쉬워.’
S급 헌터가 된 이후로 사냥을 제외한 모든 일은 대리인이 해주었다.
처음엔 잘 몰랐는데, 몇 번 겪어보니 유능한 대리인과 아닌 대리인의 차이가 무척이나 크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유능한 대리인인 제임스가 마음에 들었다.
또 큰일을 하고 있지만, 분에 넘치는 욕심을 부리지 않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러셀 매니지먼트 직원이라는 게 좀 아쉽지.’
엄밀히 따지고 들면 그는 엘레노아의 사람이었다.
딱히 불만은 없었지만, 아쉬운건 어쩔 수가 없었다.
“영감, 뭐 해. 여기 있는 것들 정리해서 스크롤 만들어야지.”
[……알겠다.]
‘어쩐지, 귀찮아하는 것 같은 건 착각일까?’
그러든가 말든가, 스크롤 제작은 곧바로 시작되었다.
딱히 어렵지 않았기에 나중엔 요한 혼자서도 꽤 많은 스크롤을 제작할 수가 있었다.
일단 5가지의 스크롤을 제작해 두었다.
〈블링크 스크롤〉〈파워 베리어 스크롤〉〈고성능 점프 스크롤〉〈중급 회복 스크롤〉〈섬광 폭탄 스크롤〉
“캬하.”
스크롤을 보고 있자니 밥을 안 먹어도 배가 부른 것 같았다.
후르릅-!
물론 컵라면을 먹고 있기에 그렇게 느끼는 것일 수도 있었지만.
“이거 진짜 맛있네?”
[……살아 있다는 건 정말 아름다운 일이지.]
“뭐라고, 영감?”
[아무것도 아니네.]
"싱겁긴.”
재미없는 농담을 나누며 요한은 스크롤을 특수 케이스에 잘 보관해 두었다.
스크롤은 엄청난 가치를 가진 물건이기에 이 정도 보안은 필수였다.
“자, 그러면 2차전을 뛰어 볼까?”
〈러셀 호텔 VIP 전용 홀〉
국제적인 명성을 가진 러셀 가문은 거대한 호텔 프랜차이즈를 소유하고 있었다.
업계에선 최상위권은 아니었지만, 막대한 자본금으로 조금씩 업계 순위를 올리는 중이었다.
어떤 국제 프랜차이즈를 하더라도 G3인 미국, 중국, 한국에 지점을 두지 않을 수는 없었다.
다른 시장은 몰라도 G3 시장은 황금 성역이라고 불릴 정도로 어마어마했으니까.
웅성웅성.
VIP만 이용할 수 있는 전용 홀이 기자들로 가득 차 있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지?”
“그 도도한 김요한 헌터가 오히려 기자 회견에 참석해 달라는 공문이라니?”
“늘 우리가 요청했는데 말이야.”
“음, 스카이 포탈 관련해서 여론 전을 펼치려는 게 아닐까?”
“오, 그럴 수도 있겠는데?”
“영국 스카이 포탈은 아직 멀쩡하잖아. 그런데 동시에 2개를 해결하겠다고?”
“말도 안 돼.”
“그러면, 이 뜬금없는 타이밍에 열애설이나 공개할 건 아닐 거 아니야."
“그렇긴 하지.”
“아, 몰라 몰라. 난 일단 그쪽으로 미리 스케치 기사 작성해 놔야 겠다.”
“나도.”
“나도, 나도.”
특종은 보도의 신속성이 가장 중요했다.
그래서 중요한 기자 회견을 할 때 정보력이 좋은 기자는 미리 스케치 기사를 적어 두는 편이었다.
그리고 기자 회견을 진행하는 동안 디테일을 살렸다.
[아아, 김요한 헌터님 나오십니다.]
차차차차착-!
38장. 스킬 스크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