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예상했던 반응이라 더 재밌었다.
‘진짜 난 변탠가. 왜 이렇게 남이 놀라는 모습이 좋지?’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이 변태같이 느껴졌다.
그래도 당장 그만둘 수는 없었다.
이상하다는 것은 알지만, 그렇다고 그만둘 마음은 없었다.
빡빡한 삶에서 느낄 수 있는 몇 없는 재미지 않는가.
어떻게 보면 그가 회사 생활을 하면서 겪었던 온갖 부조리함과 멸시를 보상받는 느낌으로 하는 것일수도 있었다.
“네, 맞아요. 법무사님이 아시는 그 스크롤을 제작해서 판매할 겁니다.”
“그, 그런……."
최 법무사는 물론이고 옆에 있던 제임스마저 할 말을 잃었다.
연예인도 케어하긴 하지만, 그래도 러셀 매니지먼트는 헌터 특화업체였다.
최근엔 요한이 소속된 매니지먼트라고 해서 인기 연예인 다수가 소속되길 원하기도 했다.
러셀 길드 산하 업체긴 했지만, 그들도 기업.
돈이 될 것 같은 연예인은 받아 들였다.
그렇다고 해서 헌터 전문이라는 정체성이 흔들릴 일은 없었다.
아무리 연예인이 돈이 된다고 해도 헌터보단 아니었기 때문이다.
헌터 전담인 제임스는 어지간한 헌터보다도 헌터 업계에 빠삭했다.
덕분에 스킬 스크롤이 얼마나 대단하고 가치가 있는 물건인지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오히려 너무 잘 알고 있어서 사고 회로가 정지된 상태였다.
‘스킬 스크롤을 제작해서 판다고?’
지금도 오래된 유적지나 신전 혹은 마법을 사용하는 몬스터가 우글거리는 던전에 가야만 극악의 확률로 획득할 수 있는 초희귀 아이템이었다.
돈이 있어도 구하기 어려운 것을 만들어서 판다면 돈을 갈퀴로 쓸어 담을 수 있으리라.
독점에, 수요는 그 어떤 물건보다 확실한 편이었으니까.
꿀꺽-!
최 법무사는 훤히 보이는 핑크빛 미래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대, 대박이다. 이건 꼭 잡아야 해.’
법무사로서든 최호용이란 개인으로든 이번 프로젝트에 참가하는 것만으로도 영광이었다.
“저, 저에게 이번 일을 맡겨만 주신다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뭐, 어차피 맡기려고 부른 건데 안 될 건 없죠.”
벌떡-!
“아, 감사합니다!!”
소파에서 얼른 일어나 허리를 100도 이상으로 접으며 인사했다.
“하하.”
그 모습이 퍽 웃긴 요한이었다.
***
최 법무사와 제임스는 힘을 합쳐서 얼른 법인 설립을 서둘렀다.
당연하지만 비상장 주식회사로 지분 100%를 모두 요한이 가지는 것이었다.
‘어차피 내 돈도 많은데 굳이 왜 나눠 먹겠어?’
어차피 자본금은 차고 넘쳐났다.
그것 좀 가져다 쓴다고 그의 재산에는 흠집 하나 나지 않았다.
오히려 지금까진 너무 쓰는 게 없었다.
‘있는 사람은 좀 써야지. 어차피 곧 있으면 다시 스카이 포탈로 돌아가서 한참을 사냥에 전념해야 하는데. 좀 써야겠다.’
그렇다고 부동산이나 그런 부분엔 투자할 마음이 없었다.
건물주라는 게 목돈을 들여서 안정적인 수입을 내는 수단이었다.
요한은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다.
사냥 자체가 막대한 수입원인데 굳이 건물을 사서 뭐 하겠는가?
그냥 즐기는 데만 사용해도 충분했다.
“제임스.”
“예, 헌터님.”
“그리고 전문 CEO도 좀 알아봐.”
“아,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그런데……."
“왜?”
“CEO의 국적은 한국인으로 합니까?”
“뭔 상관이야. 국적, 성별, 나이 상관하지 말고 능력 있는 사람으로 뽑아. 능력과 인성만 되어 있으면 되니까.”
“아, 예. 알겠습니다. 곧바로 찾아보겠습니다.”
“그래.”
본격적으로 간단한 절차는 이미 끝이 났다.
다만, 지금까진 서류 적인 부분이 끝났을 뿐이고 이젠 본격적으로 외형을 만들 때가 온 것이다.
제임스는 요한이 건넨 한도 없는 카드와 거금이 들어 있는 통장으로 외형을 만들기 시작했다.
“절대 그럴 수 없습니다. 이곳은 제가 피땀을 흘리고 젊음을 바친 곳입니다. 돈 몇 푼에 절대 넘길수 없습니다.”
강남의 한 빌딩.
제임스는 그곳에 멋들어진 고급 양복을 입고 수행원도 3명이나 대동한 채 방문한 상태였다.
노른자위 중에서도 황금 노른자 위 땅으로 유명한 빌딩이었다.
이미 여러 기업에서 판매 제의를 했지만, 단호하게 거절했다.
이곳의 시가는 4조 1천억 원.
그야말로 미친 가격이라고 할 수가 있었다.
그나마 이 가격도 정부에서 부동산 가격을 잡겠다고 규제를 강하게 한 덕분에 내려간 액수였다.
헌터 시대 이전에 대한민국에서 가장 비싸게 팔린 건물이 1조 2천억 정도였으니까.
물가는 오르고 화폐 가치는 떨어진 시대에 10배도 오르지 않은 거라면 괜찮은 가격이었다.
하지만 건물주는 절대 팔 생각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제임스는 여유 만만의 태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지금 시가 2배가 넘는 10조를 드리겠습니다.”
엄청난 가격 베팅.
“……그, 그래도 팔 수는 없습니다.”
건물주는 거절하면서도 식은땀이 흘렀다.
피와 땀 그리고 젊음을 투자해 올린 빌딩이었지만, 그도 인간인데 10조가 넘는 돈은 큰 유혹이었다.
그래도 온 힘을 다해서 타오르는 욕망을 가라앉히며 거절할 수가 있었다.
“흠, 곤란하군요. 김요한 헌터님의 지시를 어길 수도 없고 말이죠.”
“바, 방금 김요한 헌터님이라고 하셨습니까?”
“아, 예. 이번에 김요한 헌터님께서 법인을 하나 설립하시는데. 그곳 본사를 이곳으로 할까 했거든요.
아, 물론 용산에 따로 단지를 조성하시기도 하겠지만, 강남에도 건물 하나 있으면 좋겠다 싶어서요. 현재 한국에서 이 빌딩이 가장 비싸다고 하니 최고 헌터이신 요한님께 잘 어울릴 것 같아서요. 뭐, 10조에 팔기 싫으시다니 어쩔 수 없죠. 저도 솔직히 너무 비싼 금액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럼.”
제임스는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
“자, 잠시만요.”
“무슨 할 말이라도?”
“10조, 10조에 팔겠습니다.”
“예, 방금까지는 안 팔겠다고?”
제임스는 의아한 눈빛을 던졌다.
왜 갑자기 마음이 바뀌었냐는 힐난도 들어 있었다.
“아, 아무리 제가 이 빌딩이 소중하다고 해도 어떻게 대한민국 최고의 헌터와 척을 지겠습니까. 가격을 후려치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더 쳐준다는데 팔겠습니다.”
실제 헌터의 위상이라고 할까, 악명이 이 정도였다.
일반인이라면 누구나 헌터와 척을 지고 싶지 않아 했다.
특히 상급 헌터로 갈수록 그 현상이 심했다.
건물주는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S급 위의 S급이라 불리는 김요한 헌터야. 만약에 내가 이걸 거절하면 어떤 불이익을 받을지 몰라.’
그는 이 바닥에서 유명한 용이었다.
개천 출신의 용.
그러다 보니 주변엔 졸부 친구들도 꽤 많은 편이었다.
처음엔 꽤 많았던 졸부 친구들도 지금은 1/3 정도가 망하고 없었다.
망한 1/3 중 1/2 정도가 헌터한테 괜히 개겼다가 피를 본 케이스였다.
졸부랍시고 어깨에 힘 바짝 넣고 다니다가 헌터한테 잘못 걸려서 영혼까지 털린 것이었다.
다행인 점은 죽지는 않았다.
대부분 감옥에 가 있거나 졸딱망해서 노숙자 혹은 반 지하에서 생활 중이었다.
그는 절대로 그런 꼴이 되고 싶지 않았다.
그는 부동산 부자였지만, 권력이나 인맥은 거의 없었다.
헌터와 트러블이 생기면 이길 자신이 없었다.
“뭐, 그러시다면야.”
‘훗, 역시.’
모든 것이 다 제임스의 계획대로였다.
이곳에 오기 전 건물주에 관한 신상은 전부 파악해 둔 상태였다.
건물주 주변에서 벌어진 일들도 다 조사가 끝이 났었고 약점을 이용해 어렵지 않게 건물을 팔 것을 유도했다.
‘10조라는 거액이 아니었으면 더 힘들었겠지.’
10조는 갑부인 요한에게도 절대 적은 금액이 아니었다.
그가 엄청난 수익을 벌어들이는 것은 사실이었지만, 마석만 판매해 사냥하는 양에 비해선 금액이 적은 편이었다.
그래도 워낙 오래, 많은 사냥이 가능해 어지간한 S급 헌터보단 많은 돈을 벌어들였다.
거기에다가 솔로다 보니 번 액수를 홀로 독식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건물을 사는 데 10조를 썼다는 보고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스킬 스크롤 판매만 가능해지면, 10조 정도야 금방이지.’
비록 그가 운영하거나 관리하는 건 아니었지만, 기대되었다.
‘스크롤 판매가 어떤 돌풍을 가져올 것인가.’
그저 옆에서 지켜만 보는 것도 영광스러운 일이었다.
빌딩을 구매하는 데 성공한 제임스는 곧바로 입주 회사를 다 쫓아냈다.
처음엔 반발이 심했지만, 김요한이라는 말 한마디와 간단한 보상금은 그들의 입을 틀어막아 주었다.
입주 회사까지 다 쫓아낸 제임스는 곧바로 업체를 불러서 실내를 싹 바꾸어 놓았다.
거대한 빌딩을 당장 전부 쓸 이유는 없었지만, 언젠가 그 어떤 기업보다 훌륭해질 회사였다.
이 정도 준비는 전혀 부족하지 않았다.
***
이미 기술은 거의 다 나와 있었다.
네크로맨서 영감을 보조할 인력만 보충되면 얼마든지 양산할 수가 있었다.
‘아, 당분간은 나도 도와줄까?’
아무래도 그래야 할 것 같았다.
요한은 곧바로 네크로맨서 영감을 찾아갔다.
“어이, 영감.”
[흘흘, 왜 그러나?]
“그 제작법 나한테 바로 알려 줘. 안정적으로 대량 생산이 될 때까지는 내가 도와줄게.”
[오호, 그러면 나야 고맙지. 자네 정도의 실력자라면 10명분은 능히 해낼 테니까 말이야.]
“그래, 그러니까 어서 알려 줘.”
[흘흘, 알겠네. 잘 받게나.]
띵-!
[언데드 네크로맨서 유령이 스킬을 전수하고자 합니다. 받아들이시겠습니까?]
스마트폰 화면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당연히 YES지.’
화면의 YES 버튼을 꾹 눌렀다.
그러자 스킬이 추가됐다는 메시지가 뒤따라 떠올랐다.
‘오케이.’
곧바로 스킬 내용을 확인해 보았다.
[마법 아이템 제작 Lv.1]
스킬 설명: 마법사들은 자신들의 마법을 담을 수 있는 아이템 제작을 꿈꿔 왔다. 이 스킬이 바로 그 결과물. 수많은 마법사는 각자의 개성에 맞게 마법 아이템을 제작했지만, 워낙 소중한 비법이라 전수를 잘 하지 않아서 실전된 기술이 훨씬 많은 편이다.
▶ 스크롤 제작: 특정 스킬을 스크롤로 제작할 수 있는 스킬. 레벨에 따라서 만들 수 있는 스킬 수준이 달라진다.
※ 레시피는 별도.
‘크으, 좋아.’
“영감.”
[?]
“스크롤 제작 레시피는 따로 연구한 거야?”
[흘흘, 내가 따로 연구한 것도 있긴 하지만, 그 수가 그렇게 많지는 않다네. 하지만, 내가 알기론 자네에게 레시피를 알아낼 방법이 있는 거로 아네만?]
“큭큭, 역시 영감은 눈치가 참 빨라서 상대하기가 편해.”
그에겐 사기급 스킬인 정밀 분석프로그램이 있었다.
[흘흘흘.]
둘은 서로 마주 보며 마치 악당처럼 웃음을 흘렸다.
요한은 곧바로 협회로 향했다.
“어, 어?”
협회 정문을 지키고 있던 가드는 평소처럼 신원을 확인하러 갔다가기겁했다.
“기, 김요한 헌터님?!”
“안녕하세요. 방문하려는 데 따로 절차가 필요하나요?”
“아, 아닙니다. 위에 연락할 테니 조,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별다른 절차는 괜찮습니다.”
“아, 그러면 저야 좋죠.”
씨익-!
새하얀 이빨을 보이며 웃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