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어디서 뭘 훔친 건 아니겠지?’
S급 헌터는 강력 범죄가 아닌 이상 과태료 처분으로 끝나는 편이었다.
범죄의 정도에 따라서 중한 경우 과태료가 엄청나긴 하지만, 범죄를 돈으로 때운다고 일반인들은 불만이 많았다.
하지만 정부나 협회로서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S급 헌터를 감옥에 보낼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는가?
아니, 애초에 어떤 S급 헌터가 감옥에 가란다고 순순히 가겠는가?
아직 헌터와 관련된 법률이 제대로 정립되지 않았던 시절.
한 S급 헌터가 꽤 큰 범죄를 저지른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엔 헌터 법률이 없던 때라 일반인과 똑같이 사건을 수사하고 재판을 진행했다.
결국, 유죄가 되었고 징역 13년에 처했다.
그날 밤, 교도소로 이감되기 몇 시간 전 유죄를 받은 S급 헌터는 구치소를 탈출했고 중국으로 밀항을 해 버렸다.
화교 출신이었던 그 S급 헌터는 중국으로 귀화를 해 버린 것이었다.
당연히 정부는 난리가 났다.
형량을 13년 내리긴 했지만, 적당히 때를 봐서 보석이나 특별 사면으로 풀어 주려고 했었다.
S급 헌터는 지금 시대에 꼭 필요한 존재였으니까.
하지만 S급 헌터는 그 몇 년도 참을 수가 없었다.
안 그래도 최근 중국에서 화교란 이유로 귀화를 종용하던 중이었다.
당을 위해서 5년만 일하면 당원자격을 주고 길드도 설립해 주겠다는 유혹을 버티던 중이었다.
화교 출신이지만, 모든 가족이 한국에 있었고 대한민국을 사랑했으니까.
하지만 그 살인 사건이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
그가 일반인일 때 딸이 1명 있었는데, 젊었을 때 사고를 쳐서 애엄마가 애를 버리고 도망쳐 혼자 최선을 다해서 키운 딸이었다.
다행히 안정적인 직업이 있어서 큰 흠 없이 잘 키우고 있었다.
하지만 어느 날 어떤 놈의 방화로 인해서 딸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 방화 사건은 꽤 전국적으로 큰 이슈가 되었고 전 국민의 분노를 자아냈다.
딸이 죽은 사건이기에 그도 눈물을 흘리며 사건에 대해서 집중하고 있었는데, 결론은 절망적이었다.
술을 과하게 마셨고, 기억에 없다는 점, 그리고 우울증을 앓는 등의 정신 병력이 있다는 점, 반성한다는 점, 위자료를 공탁했다는 점이 참작되어 징역 3년이 떨어진 것이었다.
그날 그의 모든 게 사라졌다.
감정을 잃고 기계적으로 살던 그는 S급 헌터가 되었고 조금씩 삶이 나아지던 중, 술집에서 그 살인자를 보았다.
살인자는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
부글부글 끓는 속을 겨우 참으며 술을 마시던 중 살인자는 술에 취해서 막 떠들었는데, 딱 1마디가 겨우 참고 있던 그를 미치게 했다.
“캬하, 킥킥. 야야, 내가 몇 년 전에 저질렀던 사건 기억나냐. 그때 중딩 하나도 죽었던데. 사진으로 보니까 몸매 죽이더라. 어차피 죽을 거였으면 나한테 좀 대 주고 죽지. 킥킥.”
쾅-!!
결국, 폭발했다.
“꺄아아악!!”
“테, 테러?!”
술집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고 주변에 있던 사람들도 혼비백산 도망치기 시작했다.
“커, 커컥
“너 이 개X끼. 그 더러운 입을 놀려?”
“사, 살려……."
꽈악-!
“꺼어억!!”
“감히 네놈 따위가 나한테 살려 달라고 해? 좋아 살려 주지, 방금 네놈의 그 더러운 입에 담은 죄 없는 여자아이를 살려 내면 말이야.”
“끄으윽-!!”
살인마는 조금 전까지 이유를 알수 없는 공포에 빠졌다면, 그의 말에 아연실색했다.
이제야 생각난 것이다.
분위기와 머리 스타일이 달라져 알아보지 못했는데, 재판할 때 딸을 살려내라고 울부짖던 그 남자였다.
그날 결국, 살인마는 고통 속에 죽어 갔다.
목숨도 그가 끊지 않았다.
사지가 뜯겨 나가고 이빨과 혀가 뽑히는 과정에서 쇼크사로 사망한 것이었다.
사법 기관은 이런 식의 잔인하고, 복수에 의한 살인을 철저히 취급하는 편이었다.
아무리 이유가 있다고 해도.
그런 상황에서 13년 형은 매우 약한 편이었다.
그나마 여론은 살인마에게 딸을 잃은 아빠의 복수라며 지지해 줘서 낮은 형량에 대한 비난은 없었다.
하지만 결국, S급 헌터는 대한민국에 대한 애정을 끊었고 중국으로 귀화를 해 버린 것이었다.
대한민국 사회의 큰 충격이었다.
그 사건 이후 헌터 법률이 제정되었고 S급 헌터는 테러나 내란 정도의 범죄가 아니라면, 징역을 살지 않게 되었다.
***
‘잠깐만, 네크로맨서 영감이 범죄를 저질렀다고 해도 내가 소환자인건 아무도 모르잖아?’
세상에 네크로맨서가 그만 있는 것도 아니고 유령만 보면 요한을 떠올릴까?
[흘흘흘, 무슨 생각하는지 훤히 보인다네.]
“뭐?”
[이건 자네가 나한테 배정해 준 예산을 사용해 직접 만든 스크롤일세. 스크롤을 훔치거나 돈을 훔쳐서 만든 게 아니라.]
“뭐, 뭐?!”
스크롤을 만들었다는 영감의 말에 요한은 기겁했다.
구하기도 힘들어 더럽게 비싼 물건을 만들었다니?
‘이게 말이 되는 건가?’
순간 의문이 들었다.
상식적이지 않은 말이다 보니 진짜인지도 헷갈렸다.
“뭐야. 그 거짓말, 진짜야?”
[흘흘흘, 거짓말이라니. 곧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이 노인이 거짓말해서 뭐 하겠는가.]
“곧 죽긴, 개뿔. 내가 소멸하지 않는 이상 영원히 사는 주제에.”
[흘흘흘.]
딱히 틀린 말은 없었기에 네크로맨서 영감은 얕게 웃을 뿐이었다.
“아차! 정말로 스크롤을 만들 수 있게 된 거야?”
[그렇다네.]
“후아, 대단한데?”
[원래는 언데드를 봉인할 스크롤을 만들려고 했네.]
“언데드?”
[그래, 어떤 강력한 언데드라도 스크롤 1장이면 봉인해 데리고 다닐 수 있게끔.]
‘주머니 괴물이냐…….'
주머니 공을 던져서 잡을 수 있는 걔들이 떠올랐다.
‘워우, 만약에 그걸 만들었으면 대박이긴 했겠네.’
언데드 몬스터만 나오는 던전을 돌면서 보스 몬스터만 골라서 파밍만 했어도 사기가 될 뻔했다.
비록 원하던 목표는 이루지 못했지만, 스킬 스크롤 제작 자체도 매우 뛰어난 업적이었다.
‘이거 팔면 나 진짜 재벌 되는 각인가?’
지금의 요한은 고액 연봉자지 재벌이라고 보기엔 힘들었다.
"하지만 이 스크롤을 전문적으로 만들어서 팔기 시작하면 다르겠지?’
이건 좀 고민해 봐야 할 것 같았다.
대량 생산이 가능한지도 자세히 살펴봐야 했다.
“어쨌든 수고했어. 이제 이 시체를 가지고 리치에 관해서 연구해 보라고.”
[오오, 이젠 자유 연구 허용하는 건가?]
“그래, 그동안 수고 많았으니까.”
[흘흘흘, 고맙네.]
네크로맨서 영감은 이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노예처럼 부려 먹더라도 육체만 얻을 수 있다면 이것보다 더한 짓도 할 수가 있었다.
류페이처럼 격이 높은 영혼이라면 몇 가지 조건만 맞으면 육체를 가질 수가 있었다.
고위 언데드이면서 영혼의 격 자체가 워낙 높았으니까.
하지만 네크로맨서 영감처럼 생전에 별 볼 일 없던 존재라면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육체를 얻는 게 불가능했다.
소환자의 도움이 없으면 더더욱.
리치를 만드는 방법밖엔 답이 없었다.
“뭐, 그 전에 스킬 스크롤에 대해서 좀 들어 볼까?”
[흘흘흘, 얼마든지 해 주겠네.]
그날 밤새도록 스킬 스크롤에 대한 이야기꽃을 피운 둘이었다.
***
결론부터 말하자면 충분히 양산가능성이 있어 보였다.
특히 요한이 눈여겨본 것은 낮은 등급의 스킬 스크롤이었다.
“그러니까, 스킬 수준이 낮을수록 제작이 쉽다는 거지?”
[당연한 거 아니겠나. 수준이 낮은 스킬은 구동하기가 쉽다는 뜻이니까. 그 구동 식을 스크롤에 접목하는 게 어려울 리가 없지.]
“좋아.”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문제는 이걸 다 나 혼자할 수는 없다는 거네.]
“뭐, 그건 당연하지. 그래서 내가 잡아 온 마법사 영혼을 몇 개 좀 풀려고.”
[오, 그거 좋은 생각이구먼. 흘흘흘.]
몇 번 고문에 실패한 영혼이 아직 남아 있었다.
꽤 많이 남아 있었는데, 딱히 쓸 곳이 없어서 고이 간직만 하고 있었다.
아예 언데드로 만들어서 네크로맨서 영감에 붙여 주면 자유 연구로 바쁠 그도 숨 좀 돌릴 수 있으리라.
“아, 그리고 중요한 잡일이 아니라면. 러셀 매니지먼트에 인원 좀 보충해 달라고 해야겠다.”
[하긴, 그렇지. 나는 결국, 언데드에 불과하지. 스킬 스크롤을 전문적으로 판매하려면 전문적인 인원이 필요할 걸세.]
“나도 알아.”
스마트폰으로 누군가에게 연락을 취했다.
[네, 헌터님.]
“어, 나야. 부탁 좀 할 게 있어서.”
[뭐든 말만 하십시오. 제가 명색이 헌터님 담당인데. 지금까지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월급 받는 게 죄송했는데. 제발 일좀 주십시오.]
“하핫!”
제임스의 말이 퍽 재밌었다.
그는 야심이 큰 인물이었다.
할 일 없이 고액 연봉을 챙겨 가는 것은 누구나 꿈꾸는 아름다운 삶이었다.
하지만 오히려 제임스는 그런 삶이 싫었다.
좀 더 적극적으로 보람된 생활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좀 더 높은 위치로 올라가고 싶은 게 제임스의 욕심이었다.
“이번에 회사 하나를 설립하려고.”
[회사 말씀이신가요?]
스마트폰 너머에서 의아한 목소리가 들렸다.
“응, 괜찮은 사업 아이템이 있어서 말이야. 내가 알아보긴 귀찮아서.”
[예, 알겠습니다. 그러면 간단한 절차는 제가 알아서 하고 법무사를 따로 알아보겠습니다.]
“카햐, 역시 일 처리 빠삭하다니까. 좋아.”
[감사합니다.]
원래는 한국에 오래 있을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사업 아이템도 생겼기에 조금 더 일정을 늘렸다.
일정이 급하게 변경되었지만, 그 누구도 요한에게 뭐라고 할 사람은 없었다.
애초에 계획대로 움직인 것도 아니고.
법인 설립 과정은 일반인이면 조금 걸리는 편이었다.
여러 절차가 섞여 있기 때문.
하지만 헌터, 그것도 S급 헌터가 법인 설립을 신청했다면 속전속결이었다.
굳이 시간을 끌 이유가 없었다.
돈이 없을 리가 없는 헌터였으니까.
“반갑습니다. 김요한 헌터님. 저는 법무사 최호용입니다.”
“네, 반가워요.”
간단하게 악수를 하였다.
회의는 곧바로 진행되었고 법무사는 법인 설립 이야기를 해주었다.
“뭐, 내가 할 건 없네요.”
“예, 물론입니다. 자본금이 많은 헌터를 위해서 정부에선 다양한 혜택을 두고 있습니다. 특히 등급이 높을수록 더 확실하니까요.”
“음. 아, 제가 뭘 팔지 말했었나요?"
이건 은근히 일부러 물어보는 셈이었다.
말 안 한 건 요한이 더 잘 알고 있었으니까.
심술궂은 마음도 없지 않았다.
악질적이지는 않더라도 상대방을 괴롭히는 재미가 괜찮았다.
“음, 글쎄요. 제가 감히 어떻게 김요한 헌터님의 생각을 읽겠습니다. 많이 부족하니 가르침 부탁드립니다.”
“하하하!”
참 재밌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생각한 아이템은요……."
꿀꺽-.
최 법무사는 마른침을 삼켰다.
지금까지 헌터 관련 일 말곤 어떤 것도 하지 않던 요한이었다.
결코, 심심한 이유 따위로 법인 설립을 생각할 리가 없을 거로 확신했기 때문이다.
“스킬 스크롤을 제작 및 판매를 하려고 해요.”
“예?”
“예?”
최 법무사는 물론이고 옆에서 조용히 있던 제임스마저 깜짝 놀라 되물었다.
‘스킬 스크롤?’
‘그게 뭐였지?’
헌터와 관련된 일을 하는 그들이 스킬 스크롤을 모를 리가 없었다.
그래서 더 멍청한 소리가 입에서 나온 것이다.
“저, 헌터님. 스킬 스크롤이 제가 아는 그 스킬 스크롤이 맞습니까?”
피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