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사실 프링고들은 지금까지 딱히할 일이 없었다.
다크 엘프 포탈이 활성화될 때 가이드 역할을 부여받긴 했지만, 모든 프링고가 나설 이유는 없었다.
그리고 또 다른 종족을 위해서 일을 하는 게 마음에 들지도 않았다.
구원자의 신성한 명령이기에 따르긴 하겠지만, 젊고 혈기가 넘치는 젊은 프링고들은 뭔가 좀 혁신적이고 모험적인 일을 하고 싶었다.
물론 나이가 있는 프링고도 마찬가지였지만, 그나마 그들은 참을성이 좋은 편이었다.
외적이든 내적이든 불만이 켜켜이 쌓여 가던 와중에 요한이 특별임무를 내렸다.
답답하던 프링고들에겐 구원의 손길이나 마찬가지였다.
장로는 종이를 펼쳐서 안의 내용을 읽어 보았다.
“흠, 이것들을 구해 오면 되는 겁니까?”
“맞아, 마음 같아선 내가 직접 구하러 다니는 게 가장 좋겠지만, 여유가 없어서 말이야.”
“구원자께서 시키시는 것이라면이 하찮은 목숨을 걸고서라도 해내겠습니다.”
“목숨은 무슨, 안 그래도 돼. 시킬 일도 많은데 죽으면 어쩌라고?”
“아, 아니, 그게……."
나름대로 호기롭게 외친 것이었는데 핀잔이 돌아오자 장로는 당황했다.
요한은 장로에게 다가가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그리고 걱정하지 마. 죽더라도 어떻게든 시체는 회수해서 내가 되살려 줄 테니까.”
“아, 예……."
요한의 품에 한 번 들어오면 그가 원하거나 소멸이 되지 않는 이상 절대 벗어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너희를 책임질 사람도 데리고 왔어.”
“그게 무슨?”
“어이, 팔머.”
“불렀어?”
의외로 팔머는 한국어가 되었다.
K-POP 팬이기도 했고 현재 여자 친구가 한국인이라고 했다.
여자 친구가 영어가 능숙해 굳이 한국어를 배울 필요는 없었지만, 여자 친구를 더 이해하고 문화적으로도 친해지기 위해서 한국어를 익혔다고 했다.
덕분에 요한은 팔머를 다루는 게 편했다.
존댓말은 익히지 않아서 반말이 튀어나왔는데 딱히 상관은 없었다.
‘외국인인데, 뭐.’
한국인이 그랬다면 죽빵이 날아갔겠지만.
“네가 지금부터 이 프링고 일족의 책임자야.”
“헐, 왜?”
빠직-!
딱히 악의가 없는 건 알고 있었지만, 순진무구한 표정으로 반말을 내뱉는 걸 듣고 있으니 살짝 열이 뻗쳤다.
‘참자, 참아......'
영어로 대화하면 전혀 그렇지 않은 팔머였는데, 이상하게 한국어로 말을 하면 뭔가 사람이 가벼워 보였다.
“다크 엘프는 인간이 아니니까.
저들이 다른 나라 가서 사냥하며 내가 필요한 물건을 챙기려면 인솔자가 꼭 필요해. 그게 네가 됐으면 해.”
“음, 알았다. 어차피 킴을 따르려고 온 거다. 명령을 따르겠다.”
“좋아, 그 전에.”
턱-!
요한은 어깨동무하고 입을 귓가로 가져갔다.
“존댓말은 좀 배우자?”
살벌한 경고.
“아, 알았다. 열심히 배우겠다.”
팔머는 살기 위해서라도 꼭 존댓말부터 배워야겠다고 생각했다.
“지금부턴 날 따라다니지 말고.
프링고들과 친해져.”
“알았다. 시킨 대로 잘하겠다.”
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여자 친구와 말을 높일 일이 없어서 존댓말을 배우지 않은 대가였다.
“그래, 그래. 장로, 이 녀석은 지금부터 프링고 일족의 증명서 같은 존재야.”
“증명서 말입니까?”
“그래, 아무래도 프링고 일족으로서 인간 세계에 적응하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테니까. 이 녀석이 신분을 증명해 주면서 같이 다닐 테니까. 지금부터 함께하라고.”
“누구 명령인데 거절하겠습니까.
그저 명령하신 대로 따를 뿐입니다.”
“좋아, 좋아.”
이렇게 말을 잘 들으니 흐뭇할 따름이었다.
“아 참, 팔머.”
“왜, 왜. 무슨 일이야?”
이젠 이름만 불러도 음찔하는 팔머였다.
“자식, 쫄기는. 필요한 게 있으면 그때그때 스마트폰으로 리스트 보내 줄 테니까. 프링고 잘 다독거려서 일 진행해. 알았지?”
“아, 알았다.. Okay.”
“그래, 수고해라.”
“가, 가나?”
“간다.”
“자, 잘 가라. Bye.”
“그래, 바이다.”
리바이브 스킬 레시피 문제를 정리한 요한은 다크 엘프 포탈 내부에도 들어가 간단하게 상황을 파악해 두었다.
다행히 다크 엘프 포탈은 생각보다 훨씬 더 빠르게 회복되고 있었다.
공허 간수들이 사라지고 다크 엘프 포탈은 생명력을 되찾으며 캉구스 말고도 다양한 몬스터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곳곳이 또 다른 사냥터혹은 던전으로 변하며 훨씬 더 위험해지기도 했다.
그래도 다크 엘프들의 표정은 좋았다.
완전한 구원은 아니었지만, 오로지 혼돈과 어둠뿐이었던 세상에 빛이 내린 것이었으니까.
“다시 한 번 더 고마워.”
“그만 좀 해라, 닳겠다.”
“하지만, 고마운 걸 어떻게 해.”
“네이, 네이.”
루펜은 요한이 다크 엘프 포탈에 머무는 동안 그의 옆에 딱 붙어 있으면서 조잘거리기 바빴다.
다크 엘프 포탈엔 엘레노아와 함께 들어오지 않았다.
그녀는 현재 러셀 길드 일로 할 일이 매우 많았기 때문이다.
요한과 함께하느라 처리하지 못한 서류 작업이 가득했다.
밀린 서류 작업만 해도 며칠은 꼬박 사무실에서 일만 해야 했다.
모든 일을 남에게 맡긴다면 금방 처리할 수 있는 일이긴 했다.
하지만 엘레노아는 책임감 강한 리더였다.
아무리 부릴 수 있는 사람이 많아도 리더가 해야 하는 일은 꼭 직접 하는 편이었다.
남에게 맡겨 놓고 일이 잘못되면 책임을 묻는 짓은 하지 않았다.
“어머, 인간이다.”
“진짜네, 네크로맨서 인간이잖아.”
“꺄아, 인간!!”
“여길 봐 줘!!”
다크 엘프 여성들은 요한을 보자 눈에서 하트가 뿅뿅 하고 뿜어져 나왔다.
“뭐야, 쟤들 왜 저래?”
요한은 여성 다크 엘프들의 모습을 보곤 의아해 루펜에게 물었다.
“뭐긴, 이게 다 요한이 강한 덕분이잖아.”
“뭔 소리야?”
진심으로 뭔 소리를 하는지 이해하질 못했다.
강한 것과 저렇게 소리를 빽빽지르며 손을 흔드는 것과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물론 요한도 눈치가 있는데 떠오르는 게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곧 고개를 저었다.
‘다크 엘프처럼 아름다운 종족이 나를 좋아해? 에이, 그럴 리가 없잖아.’
루펜이 특별히 더 잘생기긴 했지만, 남성 다크 엘프들도 정말 속이 뒤틀리게 잘생겼다.
다크 엘프 포탈에 자주 오지 않는 이유도 은연중에 녀석들에게 심한 열등의식을 느낀다는 점도 없지 않아 있었다.
가까이하기엔 너무 잘생겨서 오징어가 되는 기분이었기 때문이다.
요한이 딱히 못생긴 편은 아니었지만, 다크 엘프와 붙어 있으면 스스로가 사람인가 싶을 정도로 자괴감이 들었으니까.
그런 남성 다크 엘프들이 주변에 있는데 굳이 인간인 자신을 좋아한다?
지나가는 개가 웃을 일이었다.
하지만 가끔은 지나가는 개도 웃을 일이 생기는 법이었다.
“나랑 결혼해 줘!”
“결혼은 이르더라도 나랑 사귀어 줘!”
“꺄아아!”
‘이거 실화?’
이번엔 요한도 여성 다크 엘프의 목소리를 똑똑히 들었다.
꿀꺽.
그의 목울대가 침으로 울컥했다.
그도 남자였다.
엘레노아를 은연중에 마음에 두고 있었지만, 아직 명확하지 않았다.
이성으로 좋아하는 건지, 아니면 연예인을 좋아하듯이 아름다운 그녀를 동경하는 것인지.
마음이 확실하지 않다 보니 여성 다크 엘프만 봐도 젊은 그의 심장이 두근거렸다.
“가볼래?”
“그, 그래도 되려나?”
“킥킥, 안 될 게 뭐 있어. 좋아, 이렇게 된 거 오늘 내가 쟤들과 미팅 쏜다.”
“미, 미팅? 다크 엘프 세계에도 그런 게 있어?”
“뭐야, 왜 우리 종족 무시해. 우리가 무슨 원시인이야?”
“아니 그건 아니지만.”
천하의 요한도 마음이 마구 흔들릴 때가 있었다.
“자, 자, 가자. 우리 마을 대표미녀들을 소개해 줄게.”
“흠흠, 그, 그럼 조금만 해 볼까?”
“킥킥, 얼마든지 즐겨. 어렵게 생각할 게 뭐 있어. 우리 다크 엘프모두 요한 너를 좋아하는걸?”
“그래?”
“그래!”
“그럼 조금만 실례할게.”
“실례 아니라니까!”
턱.
루펜은 요한의 손을 잡고 어디론가 끌고 가 주었다.
그날 요한은 태어나 처음으로 제대로 논다는 게 어떤 것인지 맘껏 경험했다.
***
다음 날 다크 엘프 포탈에서 일정을 마무리한 요한은 혼자 한국으로 향했다.
엘레노아는 할 일이 많아서 한국행은 함께할 수가 없었다.
조금 아쉽긴 했지만, 어젯밤의 여운이 남아 있는 요한은 한국에 도착할 때까지 얼굴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헌터님, 김포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나도 알아.”
자리에서 일어난 요한이 하품하며 VIP 라운지를 벗어나려던 차였다.
지잉-!
자동문이 열리고 공항 로비가 보였다.
“어, 어. 나왔다!!”
차차차차차착-!
“와아아아!!”
공항 로비엔 기자들과 사람들로 쫙 깔려 있었다.
‘뭐야, 이 사람들이 왜 나를 기다려?’
이런 대우에 하도 익숙해지다 보니 사람들이 있다는 게 문제가 아니라, 왜 있냐는 게 문제였다.
뭐만 하면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게 하루 이틀도 아니고, 딱히 대단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흐음, 뭐지?’
아무리 생각해도 기자들이 동원될 만큼의 어그로를 끈 적이 없었다.
“김요한 헌터님, 영국의 스카이 포탈 공략 의뢰를 받은 게 사실입니까?”
“듣기론 막대한 보상을 약속받았다고 하는데, 정확한 규모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영국으로 귀화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혹시 제의 받은 게 있는 겁니까?”
“영국 귀화라, 그런 제의를 받은 적은 없지만. 기자님한테 그 소리 들으니 관심은 가는데요. 이참에 확 귀화나 해 버릴까?”
“그, 그런……."
찌릿-! 찌리릿-!
사방에서 찢어 죽일 거 같은 눈빛이 쏘아졌다.
“흠흠 아니. 전 그냥……."
멍멍이 소리를 질문이라고 한 기자는 결국, 뒤로 물러나야 했다.
시대가 변해도 기자의 펜대는 여전히 날카로웠다.
여전히 스마트폰은 인류의 최대 파트너였고 사람들은 24시간 인터넷에 빠져 살았다.
스마트폰이 나왔던 초기엔 그래도 기성세대는 스마트폰에 익숙하지 않았다.
전화나 메신저로 대화를 나누는 용도론 사용해도 스마트폰을 전문적으로 이용하는 데는 익숙하지 않았기 때문.
그러나 시대가 변하고 세월이 흐르면서 태어날 때부터 스마트폰과 함께한 세대가 1세부터 100세까지 가득했다.
누구나 스마트폰을 이용해 인터넷 세계를 헤엄쳤다.
덕분에 인터넷 뉴스를 작성하는 기자들의 힘은 나날이 강해졌다.
어중간한 헌터도 기자들을 적으로 돌리긴 부담스러울 정도였다.
하지만 요한 같은 S급 헌터는 오히려 반대였다.
일개 기자가 S급 헌터에게 찍힌다?
다시는 관련 기사를 쓸 수 없게 되는 것은 물론이고, 혹시라도 복수를 당할까 봐 상부에서 해고하기도 했다.
특히 요한은 차원이 다른 존재였다.
다른 S급 헌터처럼 길드를 소유하지 않았음에도 대한민국은 물론이고 국제적인 위용과 영향력이 어마어마했다.
일개 기자나 언론사가 감히 감당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특히 무서운 건 요한이 대한민국에 기반이 딱히 없다는 점이었다.
한국인으로 이루어진 길드?
없었다.
혈연으로 이루어진 재벌?
없었다.
가족?
동생 1명이 있지만, 미국에서 공부하고 있었다.
뭐가 아쉬워서 한국에 남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