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
해저인들도 엘레노아를 무슨 해괴한 생물 쳐다보듯이 보았다.
무슨…. 1명이 이렇게 많은 무기를 가지고 있단 말인가?
정작 당사자인 엘레노아는 아무렇지 않은 모습이었다.
“왜 그렇게 보세요?”
그녀는 요한이 빤히 바라보자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아, 아무것도 아니야. 무기가 좀 많네?”
“아, 네. 어렸을 때부터 철저하게 대비해야 한다고 배웠거든요. 무기는 언제 어떻게 파괴되거나 손실될지 모르니 철저히 준비해야 한다고 말이죠.”
“아하, 그러면 막 무기는 파트너다. 절대 손에서 놓으면 안 된다고 안 배워?”
“네, 물론이죠. 우리 러셀 가문이 돈이 부족한 것도 아니고 무기 1개에 연연할 이유는 전혀 없거든요.
저를 가르쳐 주신 선생님은 그런 말은 가난한 자들이나 하는 거라고 하셨어요. 아무리 무기가 중요해도버릴 땐 버려야 한다고 하셨거든요.
아무리 좋은 무기라도 결국 도구에 불과하다고요.”
“괜찮은 선생이었네. 실용적이고.”
“네."
살짝 소란이 있었지만, 큰 문제없이 통과할 수가 있었다.
“아 참, 그런데 여기는 뭐라고 불러?”
“뭐라고 부르긴, 당연히 시청이지. 우리 해저 도시를 총괄하는 시장님과 원로이신 장로님이 계신 곳이니까.”
“아, 그렇군.”
‘뭐야, 특별한 단어는 아니네. 아니면, 자동으로 통역이 돼서 그렇게 들리는 걸 수도 있지만.’
그래도 익숙한 단어라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입구를 지나쳐 계단을 타고 3층까지 올라갔다.
문어 경비병은 한쪽 문을 두드렸다.
퉁퉁-.
“장로님, 외부인을 데리고 왔습니다.”
“오, 들어와.”
“넵!”
끼익-!
문이 열리고 요한과 엘레노아는 방 안으로 들어갔다.
“어서들 오게, 이곳 해저 도시에 이방인이 온 것은 1,800년 만이군.”
방 안에는 다리가 생긴 2족 보행의 상어 모습을 한 존재가 서 있었다.
녀석은 기다란 턱수염이 특징이었는데, 딱 봐도 오랜 세월을 보낸 것 같은 외형이었다.
‘확실히 나이는 늘어 보이는데, 풍기는 기운이 장난이 아니네.’
단순히 풍기는 기운만으로 따지면 보스급 몬스터와 비슷했다.
‘해저 도시를 적으로 돌리면 이런 녀석이랑 싸워야 하는 건가.’
안 그래도 싸울 상대도 많고, 적도 많은데 굳이 적을 하나 더 늘리고 싶지 않았다.
“호오, 너는 죽음의 기운이 느껴지는군. 인간 중에서 이런 기운을 풍기는 건 네크로맨서 뿐인데.”
“맞아, 나 네크로맨서야.”
“그렇군, 역시나. 예언이 맞았어.”
“엉?”
뜬금없이 예언이라니.
이거 뭔가 대화의 흐름이 이상해지는 것 같았다.
‘아 제발 좀. 예언이니 용사니 같은 소리 좀 하지 말라고 귀찮아!!’
여타 게임이나 소설 같은 데 보면 예언 속의 용사니 인물이니 해서 주인공이 개같이 구르면서도 끝까지 책임감을 놓지 않은 호구가 많지 않던가.
요한은 절대 그런 배알도 없는 바보가 되고 싶지 않았다.
보상이 정말 확실하면 생각해 볼가치는 있으나 아무리 보상이 확실해도 일정 수준 이상의 귀찮음은 사절이었다.
때문에, 마음 같아선 당장 저 상어 대가리의 입을 막고 싶었다.
“그런데 이름은?”
“아, 이런. 오랜만에 외부인이 방문해 예의를 까먹고 있었군. 내 이름은 샤클러스라고 하지.”
“나는 김요한, 이쪽은 내 동료인 엘레노아. 그리고 이쪽은 내 언데드인 하늘.”
끄덕.
엘레노아는 가볍게 묵례를 하는 것으로 대신했다.
[하이!]
하늘은 성격에 어울리게 상쾌하게 인사했다.
“허허허, 분위기가 좋은 팀원이군.”
‘좋았어, 자연스레 예언 얘기는 넘어갔네.’
막 안심하던 차였다.
“흠, 예언 얘기도 있고 하니 여러분들의 도시 체류를 허락하지.”
“아……"
원하던 일이긴 했다.
‘젠장!’
하지만 요한은 전혀 기쁘지가 않았다.
그저 이곳을 중간 기지로 삼고 싶었을 뿐이었다.
예언이고 용사고 나발이고 다 필요 없었다.
‘난 그냥 맘 편하게 돈 벌고 싶은 것뿐이라고!!’
이상 현상과 묘하게 엮일 뿐이지 그는 세계를 위해서 포탈을 공략한다는 사명감 따위는 없었다.
그나마 있는 건 네크로맨서로서 발전이나 좋은 시체 수집 정도?
그건 네크로맨서로서의 본능과 취미 비슷한 것이었다.
헌터 덕후 출신인 그가 헌터가 되었다고 덕후력이 어디 가는 건 아니었으니까.
덕후력을 발휘할 목표가 명확해진 것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은근히 마치 소설 속 주인공인 것처럼 의무나 책임을 떠안겨 주는 건 딱 질색이었다.
‘난 그냥 나와 유나를 위해서만 헌터 생활하고 싶다고!!’
엘레노아도 있었지만, 그녀의 앞 가림은 그가 없어도 충분히 할 수 있었으니까.
그래서 샤클러스의 ‘예언’이라는 말이 무척이나 거슬렸다.
“고, 고맙군.”
정작 입에서 나온 말은 전형적으로 가식적인 감사 인사였다.
‘하, 이놈의 사회생활 병.’
아무리 상급 헌터가 되었다고 해도 회사원일 때의 습관을 버리려면 시간이 더 필요해 보였다.
‘그래, 일단 이곳을 벗어나자.’
괜히 쓸데없는 일에 휘말리지 않으려면 그게 정답이었다.
“흠흠, 귀하의 배려에 감사하지.
일단 우린 위에 일행이 있어서 말이야. 출구를 알려 줄 수 있을까?”
“흐흐, 그건 어렵지 않지. 하지만 그 전에 부탁할 일이 있는데, 관심 있나?”
‘역시!’
다크 엘프 포탈 때도 그랬다.
그곳에 살던 주민들은 기회가 되니까 요한에게 뭔가를 잔뜩 부탁했다.
당시엔 그들이 가진 아이템들이 상당히 탐이 나 일일이 다 들어주었다.
그가 현재 착용하고 있는 마나 회복을 증가시켜 주는 목걸이가 그때 얻은 것 중 하나였다.
당장 필요한 것도 없는데 굳이 무리해 가며 퀘스트를 수행하고 싶지 않았다.
‘팔아서 돈은 되겠지만, 내가 지금 돈이 필요한 건 아니니까.’
돈이 너무 많으니 오히려 이젠 돈에 무덤덤해졌다.
재벌이나 부자들이 왜 그렇게 돈에 집착하는지 잘 이해가 되질 않았다.
‘끄응, 어떻게 하지?’
그렇다고 무작정 거부하자니 사이가 안 좋아질 것 같았다.
이곳을 중간 기지로 활용하기 위해선 원만한 관계를 갖추는 게 중요했다.
‘후우, 어쩔 수 없지.’
정말 싫지만, 관계를 위해서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그래도 한 번 정도는 튕겨 주는 게 몸값을 올려 주는 포인트 아니겠는가.
“적절한 보상만 주어진다면, 딱히 못 할 건 없는데. 다만, 이곳에 우리 못지않은 강자들이 우글거리는데, 왜 굳이 우리한테 의뢰하는 이유가 뭐야?”
그건 확실히 궁금했다.
지하 도시라 해도 스카이 포탈 내부의 도시인지라 강력한 마나를 보유한 이들이 꽤 많이 느껴졌다.
물론 S급 헌터인 엘레노아나 요한과 동등한 수준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앞에 있는 샤클러스 정도면 모를까.
그런데 굳이 믿을 수 없는 외부인에게 중요한 의뢰를 맡긴다는 게 잘 이해가 되질 않았다.
“뭐, 간단해. 시민들이 딱히 하고 싶어 하지 않아서 말이야. 뭐, 외부인에게 의뢰하려면 돈은 많이 깨지겠지만, 우리가 돈이 없는 것도 아니고.”
"아......."
단 1의 의문도 갖지 않을 정도로 쿨한 대답이었다.
‘하긴, 위험한 일은 하기 싫은 게 만국 공통이지.’
덕분에 외주로 먹고사는 사람들이 많은 것 아니겠는가.
‘후우, 어쩔 수 없지.’
별로 내키진 않았지만, 친목을 쌓으려면 어쩔 수가 없었다.
“내 언데드들 대부분이 밖에 있어. 의뢰를 수행하려면 걔들을 데리고 와야 해. 의뢰를 받을 테니까, 출구부터 좀 알려 줘.”
“흐흐흐, 알겠다. 후회하진 않을 것이다.”
“그래.”
여전히 뚱한 표정인 요한이었다.
정작 엘레노아는 요한의 태도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요한 씨.”
“응, 왜?”
“뭐가 그렇게 마음에 안 들어요?”
“뭐가?”
“스카이 포탈의 주민이 주는 의뢰잖아요. 기회가 될 수도 있는데 반응이 별로시잖아요.”
“아, 그게.”
요한은 차마 귀찮아서라는 말이 쉽게 나오지 않았다.
딱히 그녀에게 잘 보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막상 목구멍에서 튀어나온 건 딴소리였다.
“100% 신뢰할 수가 없어서 말이야.”
“아……."
임기응변식 대답이었음에도 엘레노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첫 말이 어려워서 그렇지, 나온 말을 합리화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여기가 게임 속이라면, 저들이 내는 의뢰를 굳이 의심할 필요 없겠지. NPC나 퀘스트는 플레이어를 위한 것이니까. 하지만 여긴 게임처럼 느껴질지라도 현실 세계잖아.
저들은 NPC도 아니고, 우리를 도울 퀘스트를 굳이 내주지 않아도 돼.”
“함정일 수도 있다는 건가요?”
“뭐, 굳이 함정이 아니더라도 중요한 정보를 뺀 의뢰라면 위험할 수도 있으니까.”
“맞아요, 제가 그걸 잠시 잊고 있었네요.”
“뭐, 그럴 수도 있지. 스카이 포탈 내에서 몬스터가 주는 의뢰니까.
흥분하는 것도 당연해. 나야 다크엘프 포탈에서 경험이 있으니까 놀라지 않는 거지. 오히려 너무 멀쩡하면 이상하지.”
요한의 위로에도 엘레노아는 침울했다.
너무 성급하게 군 것이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확실히 나답지 않았어.’
철저하게 감정을 컨트롤 하게끔 교육받은 그녀였지만, 스카이 포탈 내에서 퀘스트에 혹할 수밖에 없었다.
요한은 이미 멍청한 짓을 한 번 했기에 반복하지 않은 것이었지만, 그녀는 잘 몰랐다.
그저 자신의 부족함이 부끄러울 따름이었다.
“일단 의뢰부터 받아 보자고.”
“네, 요한 씨.”
자괴감에 빠져 있을 여유가 없었다.
“샤클러스, 의뢰가 뭐야?”
“시원시원하군. 좋아, 꽤 힘든 의뢰가 될 텐데 이렇게 시원하게 받겠다고 하니 나도 질 수는 없지.
최근 우리에겐 고민거리가 하나 생겼어……."
샤클러스의 말은 길었지만, 요약하면 아주 간단했다.
어디로 유입됐는지 몰라도 거대한 해저 몬스터 1마리가 근처에 자리를 잡았다는 것.
그곳은 필수적이진 않더라도 해저 도시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자원이 있는 곳.
하지만 워낙 강력해 보이는 녀석이라 퇴치하려고 드는 존재가 없음.
강제로라도 보내야 하나 고민하던 차에 요한이 등장한 것이었다.
별로 듣고 싶진 않았지만, 예언에 죽음을 몰고 다니는 자가 도시를 구할 것이라고 했다나.
‘아, 쫌! 죽음을 몰고 다니는 자가 왜 네크로맨서로 해석되는 건……! 하아, 그래. 네크로맨서로 해석이 되겠지. 정작 나는 싫지만!!'
하지만 운명이라는 것은 본인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작용하기 마련이었다.
띵-!
[퀘스트가 정식으로 등록되었습니다.]
‘하아.’
이젠 정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생겼다.
***
성격은 무척이나 좋아 보이지만, 그래도 해저 도시를 책임지는 장로 답게 샤클러스는 요한이 완전히 의뢰를 받고 나서야 출구를 알려 주었다.
그리고 뭔가 하나를 건넸다.
“이건?”
요한은 새하얀 명패를 내려다보았다.
“그건 우리 해저인들의 신분 증명패 같은 것이다. 정식 증명패는 아니고 임시지만, 외부인이 가지기엔 귀한 물건이지. 이제부터 그것만 제시하면 해저 도시를 마음껏 드나들 수 있을 것이다.”
“뭐, 주겠다니까 고맙게 받을게.”
“큭큭, 성격 정말 시원시원한 게 마음에 드는군.”
“뭐, 공짜를 마다하는 성격은 아니라서 말이야.”
"큭큭큭."
생각보다 일이 많아지긴 했지만, 그래도 목표했던 해저 도시와 우호 관계를 쌓은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