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네크로맨서는 세계최강-176화 (176/250)

25화

[지금부터 잘 부탁드립니다. 나의 새로운 주인님.]

인어는 공손하게 앞으로 손을 모으고 허리를 굽혀서 인사했다.

누가 봐도 능숙한 메이드 느낌이었다.

‘음, 일단 이 녀석의 정보부터 확인해 봐야겠다.’

수에트는 워낙 격이 높은 생명체라 정밀 분석 프로그램을 돌리는 데 실패했다.

하지만 눈앞의 인어는 딱히 격이 높아 보이지 않았기에 마음 편하게 스킬을 사용해 보았다.

무명의 인어종족: 인어

소유자: 김요한

등급: ???

코드 등급: F 보유 스킬: 텔레파시 Lv.1???

???

???

설명: 한때는 바다의 주인이었던 인어 종족. 하지만, 어룡족의 성장으로 인어 종족은 이제 수정구슬에 봉인된 채 휴대용 통신 수단 취급을 받고 있다. 수정 구슬에 봉인된 인어들은 기억을 잃고 오직 주인을 섬길 뿐이었다. 소수의 인어 종족이 남아서 어떻게든 동족을 구하고자 노력하고 있지만, 강대한 어룡족의 상대가 아니었다.

‘이건 뭐야?’

분석 프로그램을 돌렸더니 몬스터가 아니라 소유물의 정보가 떴다.

덕분에 훨씬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게 되었다.

‘오, 이렇게 되면 녀석을 내가 코딩할 수 있게 되는 건가?’

이건 확실히 의외의 수확이라고 할 수가 있었다.

이미 1번 같은 헌터를 코딩해 준 적이 있었다.

언데드를 코딩했을 때도 효과가 좋았는데, 아무래도 시체를 코딩하는 것보다 산 생명체를 코딩하는 게 효과는 좋은 것 같았다.

‘뭐, 그렇다고 해서 내가 경쟁자들을 코딩해 줄 일은 없겠지만.’

코딩하는 것 자체도 비밀이었다.

만약에 타인을 코딩해서 강하게 만들 수 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 전 세계에서 귀찮게 굴 테니까.

‘내 평화로운 삶을 그렇게 망칠수는 없지.’

안 그래도 이상하게 주변에서 사건/사고가 많이 터지는 요한이었다.

잔뜩 기대했던 성 투어마저 갑자기 블러디 캐슬이 포탈화되는 바람에 계획에도 없던 사냥까지 해야 했었다.

몇 달은 그냥 마음먹고 푹 쉬려고 했던 상황에서.

‘안 그래도 휴식복이 없는데. 이런 것까지 시달리면 평생을 쉬지도 못하고 일하다가 늙어 죽을 거야.’

절대 그럴 순 없었다.

그는 프로그래머로 몇 년을 일하면서 바쁠 때는 하루에 2시간도 못 자고 야근에 특근까지 해 가며 격무에 시달린 적이 있었다.

그러면서도 추가 수당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하도 코피를 많이 흘려서 아예 출근하자마자 코를 휴지로 막고 시작해야 할 정도였다.

요한의 몸이 조금이라도 더 약했다면 아마 과로로 쓰러졌을 것이다.

그렇게 몸을 혹사해서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해도 성과는 대부분 상급자나 명문대 출신의 동기들이 가져갔다.

그때 요한은 제대로 깨달을 수가 있었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사회는 라인이구나.’

그때부터였다.

요한이 일 자체가 싫어진 게.

먹고살기 위해서 맡은 바 일은 최선을 다했지만, 회사에 대한 충성심이나 애사심은 사라져 버렸다.

그 이후 주변 사람들과 사이도 건조해졌다.

요한이 그들에 대한 미련을 끊어 버려서 참석하던 술자리나 식사 자리를 알아서 거부했으니까.

술은 집에서 TV로 예능이나 보며 마셨고, 식사는 저렴하게 도시락으로 대체했다.

한 달 생활하면 빠듯하던 그의 통장에 조금씩이지만, 돈이 모이기 시작했다.

진짜 뭐 같은 부장 성격 맞추는 것 빼곤 평온했던 회사 생활이었다.

물론, 다시 돌아가라고 하면 때려죽여도 안 하겠지만.

“반가워, 잘 지내보자. 음……

어이, 수에트. 이 녀석 이름 내가지어 줘도 돼?”

[당연하지, 원래 인어는 주인이 직접 이름을 짓는 게 전통이니까.]

“오케이. 이제부터 너의 이름은 오드리다.”

[오드리…… 좋은 이름인 거 같습니다. 이름을 지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순간 정보 창엔 무명의 인어에서, 오드리로 이름이 변경되었다.

‘저 물음표들은 내가 직접 코딩해야 하는 건가?’

능력이 봉인된 건지, 아니면 아직 없는 건지는 천천히 확인해 볼 일이었다.

“어쨌든, 이제 이 녀석으로 나와 연락할 수 있다, 이거지?”

[그래, 당장은 네가 필요 없겠지만. 필요해지면 그 녀석을 통해서 너에게 연락하겠다.]

“오케이, 알겠어.”

[크흐흐, 그러면 나는 바빠서 이만.]

촤아악-!

수에트는 자신의 말만 늘어놓더니 빠르게 헤엄쳐서 어디론가 향했다.

‘이거, 이거 왠지 스카이 포탈 공략의 길이 보이는데. 그런데, 이곳 세인트 포탈은 다크 엘프 포탈처럼 공허 간수 같은 존재가 없는 건가?’

어느 포탈이나 똑같은 상황일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공허 간수를 상대하면서 그들의 생리를 파악하자 한 가지 가설이 생겼다.

스카이 포탈이라는 게 어떤 차원 혹은 한 지역을 통째로 공허의 존재들이 차지하고 그것을 포탈화시킨 게 아닐까, 하는 가설 말이다.

다크 엘프들이 말했던 초월적 존재가 모든 사건의 핵심이고 말이다.

하지만 그런 가설이 2번째 포탈에서 깨지고 말았다.

이곳에선 아무리 봐도 공허 간수 같은 존재의 흔적을 찾을 수가 없었다.

즉, 이곳 세인트 포탈은 다크 엘프 포탈을 지켰던 공허의 존재가 없다는 소리였다.

‘이거, 점점 수렁에 빠지는 기분인데.’

그럴수록 포탈 장인의 증표가 꼭 필요했다.

‘그런데, 나는 포탈의 비밀을 왜 풀려는 걸까?’

문득 그런 의문이 들었다.

포탈은 인류를 위협하는 가장 위험한 존재가 맞았다.

조금이라도 포탈 공략을 게을리하면 포탈이 폭주해 주변으로 몬스터를 쏟아내기 때문.

하지만 필요악이기도 했다.

석유 시대가 끝난 지금, 인류를 지탱하는 에너지는 바로 마석이었다.

마석이 없으면 인류 문명은 300년 전으로 퇴보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 포탈 사태 초기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 중동이 초토화된 지금 마석이 없어진다면 인류는 에너지 부족으로 멸망할 수도 있었다.

‘아, 나는 포탈을 없애려는 게 아니라, 나를 귀찮게 하는 포탈의 정체를 밝히려는 것뿐이야. 특히 요즘 인스턴트 포탈 같은 것도 갑자기 증가하기 시작했으니까. 이대로 놔둔다면 에너지 부족이 아니라, 몬스터로 인해서 세계가 멸망할 수도 있으니까.’

세계는 요한의 집이기도 했지만, 여동생인 유나가 살아갈 터전이기도 했다.

‘그래, 그거면 충분한 거야. 다른 이유가 뭐가 중요하겠어.’

무뎌질 뻔했던 각오를 다시 새겼다.

***

“하늘.”

[평소대로 하면 되는 거지?]

“그래.”

[알았어, 가자.]

[넵!]

본격적으로 이곳 세인트 포탈 공략을 위해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지금까진 그저 일반적인 포탈을 사냥할 때처럼 일정한 루트를 정해서 무작정 사냥만 할 뿐이었다.

하지만 스카이 포탈은 그렇게 클리어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었다.

‘이곳은 정복한다는 생각으로 클리어해야 해. 안 그러면 끝없이 사냥만 반복할 테니까.’

특히 정보가 너무 없었다.

‘다크 엘프 포탈은 단순했어. 그저 공허 간수를 죽이면 되는 거였으니까. 하지만 이곳은?’

그래서 정보를 모으기 위해서 하늘을 푼 것이었다.

주변 지도를 작성하고 가 볼 수 있는 곳은 가 보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판단했다.

‘지금 당장 필요한 건 사냥이 아니라, 정보니까.’

“요한 씨.”

“아, 왜 레아.”

“조금 전에 만났던 그자는 누군가요. 평범한 몬스터는 아닌 것 같았는데.”

“크으, 역시 너도 눈치챘구나.

맞아, 정말 평범한 녀석은 아니더라고.”

"?"

엘레노아는 설명을 바라는 눈빛으로 요한을 바라보았다.

조금 전 대화는 요한과 수에트의 대화였기에 엘레노아는 요한이 말한 것밖엔 들을 수가 없었다.

엿듣는 취미도 없었기에 최대한 멀리 떨어져 있었다.

궁금한 건 나중에 물어보면 그만이었다.

요한은 엘레노아에게 수에트 관련 정보를 100%는 아니었지만, 어느 정도는 공유해 주었다.

그녀를 딱히 의심하는 건 아니었지만, 100% 전부 알려 주기엔 그의 성격이 썩 좋지를 못했다.

어느 정도는 보험을 들어 두는 편이었다.

“……그렇군요. 베트남 포탈과는 많이 다른 형태의 스카이 포탈이군요.”

“그래, 맞아. 그러니까, 이곳을 공략할 때도 별도의 방법이 필요하단 뜻이지.”

“무슨 뜻인지 알겠어요.”

엘레노아는 똑똑한 여자였다.

요한이 준 정보가 100%가 아닌 것도 눈치챌 수가 있었다.

그리고 그가 어떻게 이곳 세인트 포탈을 공략할지도 대충 알 것 같았다.

‘정복한다는 느낌으로 이곳을 천천히 파악하시려나 보네.’

그녀는 이 부분에서 딜레마에 빠졌다.

‘이 사실을 가문에게 알려야 할까?’

스카이 포탈 관련 정보는 특으로 분류되어 있었다.

어떻게든 먼저 스카이 포탈을 공략해 모든 것을 선점하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세계 최초의 스카이 포탈 공략은 이미 요한의 것이었지만, 영국최초의 스카이 포탈은 반드시 자신들이 얻기 위해서였다.

그들은 이미 요한이 스카이 포탈을 공략함으로써 막대한 이득을 보는 것을 지켜보았다.

아마 다크 엘프 포탈이 오픈되면 현재 경제가 어려운 베트남도 다시 일어서리라.

동남아 소국인 베트남도 그럴진대 영국은 오죽하겠는가?

협회, 정부 모두가 기대하고 있었다.

‘가문도 스카이 포탈 공략에 꽤 많은 지분을 가지고 있긴 해.’

물론 한국에서 활동하는 엘레노아는 제외였지만.

잠시 고민하던 엘레노아는 결정했다.

‘나중에 정보를 공유하더라도 요한 씨와 다닐 때만큼은 비밀로 해야겠지.’

적어도 그게 함께 다니는 동료 혹은 길드 마스터로서 팀장에게 보내는 예의라고 생각했다.

***

요한은 하늘이 실시간으로 보내주는 정보에 따라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지잉-!

미니맵 어플을 가동해 주변 지형을 확인해 보았다.

‘흠, 굉장히 복잡한 곳이 많은데.’

“하늘.”

[응?]

“주변에 몬스터로 보이는 것은?”

[몬스터는 모르겠고, 몬스터가 있을 거 같은 곳은 찾았어.]

“오, 어디?”

[이곳.]

지잉-!

그때 스마트폰이 진동했다.

화면을 확인해 보니 하늘이 만들어 준 미니맵 한쪽에 붉은빛이 들어와 있었다.

“여기에?”

[응, 거기에.]

"흠."

미니맵으로 확인해 보니 거대한 배들이 침몰해 있는 장소였다.

그리고 친절하게 미니맵엔 〈배무덤〉이라고 적혀 있었다.

“이거 네가 적은 거야?”

[히히, 내 작명 센스 어때?]

“뭐, 나쁘지 않네.”

‘좀 진부하지만.’

배 무덤이라는 표현은 다른 곳에서도 이미 많이 쓰인 단어였다.

안전한 선택이긴 했지만, 좋은 단어 선택은 아니었다.

‘뭐, 상관없나.’

어차피 그곳에서 뭘 하는지가 중요한 거지, 그곳이 어떤 이름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일단 처음은 여기다.”

[오케이!]

“모두 전진!!”

“캬아아악!!”

잔자클 구울이 가장 예민하게 반응했다.

언데드 군단은 빠르게 이동하며 하늘이 알려 준 배 무덤 근처에 도착할 수가 있었다.

“이곳이 배 무덤.”

진부한 네이밍 센스이긴 했지만, 그보다 더 어울리는 표현은 없을 것 같았다.

광활한 땅에 거대한 배들이 침몰해 있는 모습은 아무리 봐도 배무덤이라고밖에 표현할 방법이 없었다.

[어때, 생각보다 더 괜찮은 작명센스지?]

“그래, 뭐. 확실히 인정.”

[히히!]

요한은 이곳엔 과연 어떤 몬스터가 기다리고 있을지 걱정 반, 기대 반이었다.

36장. 이상한 땅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