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화
녀석은 기본 형태는 2족 보행에 꽤 큰 체구를 가졌으며 피부는 비늘로 덮여 있었다.
귀는 큰 지느러미가 나 있었으며 머리에도 뿔과 비슷한 지느러미가 자라나 있었다.
엉덩이엔 꼬리도 있었는데, 앙증맞은 꼬리가 아니라 한 대 맞으면 온몸이 부서질 것 같은 박력 넘치는 꼬리였다.
꿀꺽-!
마른침을 삼키며 요한은 템테이션을 타고 무지막지한 존재의 앞으로 다가갔다.
[너는 뭐냐, 잔자클의 하수인이냐?]
"음......."
‘뭐라고 해야 하지?’
앞으로 다가가긴 했지만, 막상 입을 열려니 할 말이 궁했다.
‘나는 인간이라고 소개할 수도 없잖아?’
“끄응.”
왠지 굉장히 쪽팔린 느낌이었다.
요한을 묘한 눈길로 보던 존재의 입이 다시 열렸다.
[그런데 이상하군, 저 녀석들은 잔자클의 기운을 가지고 있지만, 잔자클이 아니야. 그리고 너에게 이어져 있다. 마치 주종의 맹약을 맺은 것처럼. 하지만 또 주종의 맹약은 아니야.]
다행히 요한이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상대는 느껴지는 기운만으로 대충 파악하고 있었다.
[이 기운은 그래, 언제 한 번 느껴 본 적이 있지. 인간, 인간이군. 조금 지저분한 기운이 함께 느껴지긴 하지만, 인간이야. 맞지?]
‘뭐야, 인간에 대해서 알고 있었네?’
“그래, 맞아. 나는 죽음의 기운을 다루는 네크로맨서 김요한이다.”
다행히 녀석은 영어가 아니라, 텔레파시로 대화를 하는 형태라 언어의 장벽에 막히지 않을 수가 있었다.
[아아, 이제 알겠군. 죽음의 기운을 다룬다니, 저 잔자클들은 이미 죽은 녀석들이군?]
“맞아.”
[큭큭큭, 빌어먹을 잔자클 놈들을 죽인 후에도 괴롭히다니 마음에 드는데?]
난폭하고 강대한 기운이 순식간에 수그러들었다.
의외로 녀석은 말이 잘 통하는 상대인 둣싶었다.
[더러운 잔자클과 적대하는 녀석이라면 얼마든지 환영이다. 반갑군, 내 이름은 수에트. 자랑스러운 어룡족의 왕자다.]
녀석이 먼저 손을 내밀었다.
‘이거 악수를 청하는 거 맞지?’
분명히 그런 제스처이긴 했지만, 종족이 다르다 보니 살짝 망설여졌다.
‘뭐, 어때.’
그냥 쿨하게 요한도 템테이션을 이끌고 다가가 손을 내밀어서 악수하였다.
수에트는 키가 3m는 되기에 템테이션을 타고 있어야 눈높이가 맞았다.
‘그런데 이거 갑자기 분위기가 묘하게 흘러가는데?’
강대한 기운이 몰려왔을 때 거의 100% 확률로 싸울 거로 생각했다.
그런 예상과는 다르게 뭔가 분위기가 우호적으로 변하는 것 같았다.
‘설마, 이거 잔자클 구울의 나비효과 같은 건가?’
수에트는 아예 땅으로 내려와 잔자클 구울 바로 앞으로 다가가 손가락으로 턱을 받치고 빤히 쳐다보았다.
표정이나 태도는 아무리 잘 봐줘도 양아치였지만, 몸에서 압도적인 기운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이거 만약에 녀석과 싸우더라도 쉽지 않은 싸움이 되겠어.’
상황이 묘하게 우호적으로 흘러간다지만, 요한은 절대 방심은 하지 않았다.
애초에 같은 헌터도 쉽게 믿지 않는 그였다.
그런 성격을 가진 그가 호의를 보였다고 해서 몬스터를 믿겠는가?
어림도 없는 소리였다.
전투가 벌어지지 않는 이유는 녀석과 싸우는 게 부담스러웠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그의 머리는 복잡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어룡족이라 어룡족……. 언데드로 만들면 괜찮을 거 같은데. 종족자체가 뛰어나다면 괜찮겠어.’
새로운 종족을 만나면 늘 언데드를 떠올렸다.
‘끄응, 그런데 저 녀석 때문에 힘들 수도 있겠어.’
일단 최대한 정보를 모아야 할 때였다.
“이봐, 네가 어룡족의 수에트인건 알겠는데. 너, 뭐 하는 녀석이야?”
상대가 강하든 뭐든, 요한의 태도는 그다지 공손해지지 않았다.
정작 수에트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반갑군, 아까도 말했다시피 난 왕자다.]
“그건 아까 들어서 알고 있어.”
요한의 비꼬는 수준의 말투에도 전혀 개의치 않아 했다.
‘배알이 없는 건지, 아니면 그만큼 쿨한 건지.’
그래도 대충 성격 하나는 파악할 수가 있었다.
[처음엔 나의 영역에 들어온 겁없는 녀석이 누군지 낯짝을 보고 죽이려고 했는데. 마음에 들었다.]
“뭔 소리야?”
[내가 너에게 의뢰를 하나 하고 싶다.]
“의뢰?”
그때였다.
띵-!
[스카이 포탈 고유의 영역 퀘스트가 활성화됐습니다.]
‘뭐, 뭐?!’
이건 다크 엘프 포탈에서도 경험해 본 적이 있던 그 퀘스트였다.
그 퀘스트 덕분에 죽음의 소생스킬도 얻을 수 있었으니까.
‘그런데 어떻게 들어오자마자 이런 퀘스트가 나한테 생겼대. 아니, 영국인들도 이 비슷한 퀘스트 하고 있으려나?’
정보를 전혀 공유하지 않으니 알 수가 없었다.
‘뭐, 나도 딱히 정보 공유 안 하면 그만이니까. 내가 제일 빠르면 대박인데.’
그렇게 되면 영국은 정말 큰 실수를 한 셈이었다.
[퀘스트 내용은 수에트의 입에서 먼저 나와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의뢰 내용을 좀 알 수 있을까?”
[뭐, 어렵지 않지. 나의 왕위 쟁탈전을 도와줬으면 한다.]
“왕위 쟁탈전?”
[그래, 우리 어룡족은 전통적으로 가장 강한 전사만이 살아남아서 왕이 될 수 있지. 강함을 증명하는 방법은 자유다. 즉, 내가 너를 고용해서 내 형제를 죽여도 된다는 거지.]
“즉, 나를 고용해서 형제를 공격하는 도구로 삼겠다?”
[문제 있나?]
정말 뻔뻔한 태도가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요한은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문제없지. 그 의뢰, 받아들이겠다."
[크하핫, 잘 생각했다!]
보상을 굳이 물어보지 않았다.
‘이런 성격을 가진 녀석은 알아서 퍼 주는 스타일이니까.’
오히려 일일이 따지면 더 피곤해지는 스타일이었다.
‘그리고 어차피 자체 퀘스트 보상도 충분히 기대되니까.’
스마트폰으로 퀘스트 내용을 확인해 보았다.
퀘스트 〈어룡족 왕위 쟁탈전〉내용: 어룡족의 왕자 수에트의 정식 의뢰. 수에트가 왕위에 오르면 퀘스트 완료보상:
1. 포탈 장인 2번째 증표
2. 2차 직업
3. 경험치북
가장 원하던 스킬은 없었다.
하지만 3가지의 보상 모두 요한의 입을 떡하니 찢어 놓을 만큼 어마어마했다.
‘자, 잠깐만 2차 직업이라고?’
이건 상상도 못 했던 보상이었다.
‘설마, 전직이라는 개념도 있었던 거야?’
물론 과학계도 어느 정도 생각하던 부분이었다.
물론 명확한 증거는 없었고 추측일 뿐이었지만.
하지만 어떤 과학자도 2차 직업에 대한 아무런 정보를 찾을 수가 없었다.
당연했다.
선례가 전혀 없었으니까.
하지만 그에 대한 정보가 드디어 요한의 손에 들어온 것이었다.
‘문제는 이 2차 직업 보상이 어룡족 왕위 쟁탈전 퀘스트에만 달린 걸까. 아니면, 이곳에서 받을 수 있는 모든 퀘스트에 달린 걸까?’
그 부분도 알아볼 만한 가치가 있었다.
“그래서, 난 지금부터 뭘 하면 돼?”
[뭐, 지금 당장 할 일은 없다.]
“뭐?”
어이가 없었다.
의뢰해 놓고 당장은 할 일이 없다니?
이 뭐, 애들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하지만 수에트는 진지했다.
[아직 나와 형제들은 본격적으로 대립하기도 전이지. 나는 미래를 준비하는 것뿐이니까.]
“흠. 뭐,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난 그러면 사냥이나 할 건데.”
[오, 사냥이라. 그거 흥미롭군.]
“아 참, 그런데 말이야.”
[뭐지?]
“우리 연락은 어떻게 해?”
[아, 그렇군. 너는 인간이니 그게 없겠지.]
“그거라니?”
‘어룡족 전용 스마트폰 같은 게 있는 건가?’
있으면 재밌겠다고 생각은 했다.
새로운 문물이고 신기한 물건이니까.
하지만 수에트가 꺼낸 것은 생각과는 많이 다른 것이었다.
[어딨더라…….]
‘뭐야 저거?’
피부가 비늘로 덮여 있을 뿐 옷같은 건 전혀 입고 있지 않았다.
하지만 수에트는 몸에서 뭔가를 찾고 있었다.
‘저 비늘이 옷이었어?!’
[오, 여깄군.]
요한이 놀라든 말든 전혀 상관하지 않던 수에트는 품에서 뭔가를 꺼냈다.
‘수정 구슬?’
한 손에 쏙 들어오는 크기의 수정 구슬이었다.
[나와라.]
그러면서 수정 구슬을 앞으로 던졌다.
콰직-!
얼마나 약한 것인지 가볍게 던진 것에 불과함에도 수정 구슬은 산산조각이 났다.
‘뭐지, 저게 통신 수단 아니었나?’
예를 들어서 흔히 판타지 소설에서 묘사되는 마법 구슬 같은 것 말이다.
마나를 부여하면 상대편과 화상 통화를 나눌 수 있는 그런 마법아이템으로 생각했다.
‘포탈 안에서 통신 수단이 생기면 대박이긴 한데.’
기존엔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포탈 안에서는 전자 기기 사용이 거의 불가능했다.
무슨 이유에선지 전자 기기를 가지고 오면 그대로 파괴되거나 고장이 나 버렸기 때문이다.
물론 부분적으론 사용할 수가 있었다.
마석으로 만들어진 특수 케이스를 끼우면 고장 나거나 파괴되지 않았다.
기지국이 없기에 기본적으로 통화와 데이터 사용은 불가능했다.
또 무전기에 케이스를 끼우면 전파마저 차단돼 연락이 안 되었다.
많은 과학자가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자 지금까지 끝없이 노력하고 연구했다.
아직은 아무도 통신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했다.
‘저게 통신구인가 뭔가 하는 거였으면 꽤 괜찮은 가격에 팔아먹을 수 있었을 텐데.’
특히 이곳에서 비싸더라도 구할 수만 있었다면, 하나를 구해서 팔면 엄청난 거금을 벌 수도 있었을 것이다.
치이익-!
깨진 수정 구슬에서 연기가 나더니 그곳에서 여성 인어 1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저건 또 뭐야. 수정 구슬에서 인어가 왜 나와?’
그리고 한 가지 더.
‘인어는 왜 꺼내는데?’
수정 구슬에서 생명체인 인어가 나오는 것도 이상한데, 그걸 왜 갑자기 꺼내는 것인지도 의문이었다.
[음. 아, 그래. 인간들의 용어로 따지면 선수금. 이 녀석을 선수금으로 너에게 주겠다. 어이, 인사해라. 너의 새로운 주인이다.]
인상을 찌푸리며 짜증 가득한 말투에도 인어는 눈을 내리깔고 부드럽게 인사했다.
[반갑습니다, 새로운 주인님.]
“인어를 나한테? 왜?”
인어의 인사를 살포시 무시하고수에트를 보았다.
[조금 전에 말하지 않았나. 연락어떻게 할 거냐고.]
“그래, 그랬지.”
[이 녀석으로 연락할 거다.]
“뭐?”
[흐흐흐, 놀라기는. 우리 어룡족은 인어를 노예로 삼아서 이들이 가진 텔레파시 능력으로 연락을 주고받는다.]
수에트의 말에 요한은 문득 떠오르는 게 하나 있었다.
“아……! 혹시, 잔자클이 동료를 부르는 것과 비슷한 능력이야?”
[오, 인간 주제에 제법 똑똑하군. 그래, 맞아. 더러운 잔자클이나 인어나 모습은 달라도 근본은 같은 종족이니 말이야.]
“그래?”
흥미로웠다.
‘이게 생명체 버전의 스마트폰……이라고 하기엔 그렇고, 휴대폰인가?’
아무리 봐도 인어에게 인터넷검색 기능은 없을 거 같으니 말이다.
스마트폰이 개발된 지 한참이나 지났고 2G 폰은 박물관에나 존재하는 유물 비슷하게 바뀌었지만, 아직도 2G 감성이라며 폴더폰이나 슬라이드폰 같은 휴대폰을 사용하는 덕후들이 종종 있었다.
헌터인 휴대폰 수집가들은 그런 휴대폰을 거금을 주고 모으기도 했다.
‘참, 할 짓도 없지.’
요한은 우스울 따름이었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