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화
퍽- 콰직-!
“크에에에엑!!”
마지막 남은 잔자클 1마리의 가슴에 류페이의 검이 자비 없이 파고들자 몸이 사정없이 뒤틀렸다.
무지막지한 고통에 비명을 지르다가 생명력을 전부 잃고 스스록무너졌다.
‘윽, 생선 비린내.’
잔자클은 죽을 때 몸에서 녹색 가스를 내뿜었다.
그 가스는 시체보다 더한 악취를 풍겼다.
이젠 썩은 시체에도 익숙한 요한도 코를 막게 할 정도로 지독했다.
“크흐흐, 역시 스카이 포탈에서 나오는 몬스터만이 나를 만족스럽게 하는군.”
전투에 만족스러웠던 류페이가 작게 웃었다.
검에 묻은 피를 털고 더는 관심이 없다는 표정으로 물러났다.
‘흐흐흐, 새로운 종류의 시체라니. 이 녀석들을 어떻게 요리한담?’
요리를 만드는 셰프는 식자재에 환장하고 네크로맨서인 요한은 시체에 환장했으니까.
한창 요한이 새롭게 얻은 잔자클시체에 환장하고 있을 때, 엘레노아는 살아남은 영국인 공격대로 향했다.
"......."
목숨을 겨우 건진 영국인 공격대 대원들은 멍하니 입을 벌리고 있는 상태였다.
그들은 길드 소속은 아니었지만, 공격대 랭킹을 체크할 때마다 매년최상위권을 유지하던 나름 정예 공격대였다.
S급 헌터는 없었지만, A급 헌터만 10명인 그들은 마음만 먹으면 S급 헌터 1명과 싸워서 이길 자신도 있었다.
물론 실제로 대련조차 한 적은 없었다.
S급 헌터가 굳이 A급 헌터의 호승심이나 사람들의 호기심을 해결하는 존재는 아니었으니까.
그래서 늘 인터넷 네티즌이나 호사가들의 좋은 안줏거리가 되었다.
A+급이라고도 불리는 그들이 제대로 힘을 합치면 S급 1명을 이길 수 있을지, 없을지를 말이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그들의 제대로 된 착각에 불과했다.
A급과 S급의 차이는 단순히 양으로 채울 수 있는 간격이 아니었다.
스킬과 스탯 그리고 내뿜는 카리스마의 차이까지.
하늘과 땅의 차이라고 해도 절대 부족하지 않았다.
A급이 S급을 이길 수 있다, 없다를 논하는 것은 아마추어 복서가 프로 복서를 상대로 이렇게, 요렇게 하면 이길 수 있다고 하는 것과 같은 소리였다.
그들은 이번에 제대로 느낄 수가 있었다.
‘저게 S급의 위용.’
‘대, 대단해.’
당연히도 그들은 요한에 대해서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아니, 모를 리가 없었다.
명문 길드 소속도 아닌 그들이길드의 갑질에 시달릴 게 뻔히 보임에도 스카이 포탈에 들어온 이유였다.
스카이 포탈 클리어에 일조해 그들이 동경하는 요한의 발자취를 뒤따라가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멍하니 있던 그들은 자신들을 향해 다가오는 존재를 보고 2차로 깜짝 놀랐다.
“에, 엘레노아 님이다!”
“어, 어떻게?”
“아, 같이 들어오셨구나!!”
요한이 러셀 길드 소속인 것도 유명한 사실이었다.
하지만 요한은 정규직이라고 보기 모호할 정도로 별도로 활동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딱히 길드를 만들기 귀찮은 요한이 온갖 혜택을 받으며 러셀 길드소속으로 활동 중이라고.
생각보다 엘레노아와 요한의 사이는 좋은 편이 아니라고.
때문에, 세계 각국의 중요 길드가 요한을 노리고 있다고.
‘다 거짓말이었어. 그렇지 않고서 미스터 킹과 엘레노아가 함께 이곳에 올 리가 없잖아.’
영국을 제외한 모든 국가에선 요한과 러셀 가문의 결합을 매우 경계하고 있었다.
공식적으로 S급끼리 싸운 기록은 요한이 기록한 게 유일했다.
물론 비공식적으론 싸워서 누가 이겼다니 졌다니 하는 사실은 꽤 많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러나 하나같이 증거 영상도 증명도 할 수 없고, 주장하는 사람마다 내용이 조금씩 달랐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본인들이 인정하질 않았다.
하지만 요한이 한 대결은 생방송으로 진행했으며 녹화 영상도 매우 많이 남아 있었다.
해당 결투로 패배한 사쿠라 길드는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대외 활동은 모두 금한 채로 조용히 사냥에 몰두하고 있었다.
“당신들은 ACE 공격대?”
“아, 미스 러셀. 반갑습니다.
ACE 공격대의 대장 잭슨 팔머입니다.”
“반가워, 팔머 경.”
여전히 유럽은 중세 유럽 문화를 동경하고 있었다.
귀족 문화가 아직도 남아 있을 정도였는데 유명한 공격대의 대장은 경이라는 칭호를 붙여서 상대방을 존중해 주었다.
하지만 이 ‘경’의 칭호는 공격대 대장이라고 해서 무조건 받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막공은 당연히 안 됐고 정공도 일정 명성을 얻어야만 ‘경’이라는 칭호가 붙을 수 있었다.
딱히 이렇다 할 기준이 있는 건 아니었다.
그냥 주변 사람들이 인정할 정도가 되면 알아서 ‘경’이라는 호칭이 서서히 붙기 시작하며, 그로 인해서 ‘경’이라는 호칭이 정착되는 구조였다.
“저희를 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어떻게 보면 인사치레일 수도 있었다.
이런 대화의 흐름은 공식과도 같은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잭슨은 몰라도 엘레노아는 그에게 원하는 게 명확했다.
“간단해, 나에게 정보를 줘.”
“정……보 말입니까?”
“응, 나는 이곳에 대해 아무런 정보를 얻지 못했거든. 그래서 너희가 얻은 정보와 방금 그 인어들을 상대하기 직전까지의 상황 설명을 좀 해 줬으면 좋겠어.”
“뭐, 그런 것 정도야 어렵지 않지요.”
잭슨은 쿨하게 대답했다.
목숨을 구해 줬는데 그 정도는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더 원하는 게 없냐는 질문도 했다.
“더 원하는 건 없어. 우리가 원하는 건 정보뿐이니까.”
“알겠습니다. 일단 어이, 그거 가져와 봐.”
“뭐 말입니까?”
“그 협회 놈들이 스카이 포탈에 관해서 설명할 때 나눠 줬던 프린트물.”
“아, 네!”
부하 1명이 재빨리 가방에서 A4서류철 하나를 꺼내서 잭슨에게 넘겨주었다.
잭슨은 그걸 엘레노아에 넘겼다.
부하가 바로 엘레노아에 줬어도 됐겠지만, 잭슨은 0.1초라도 엘레노아의 눈도장을 받고 싶다는 욕심으로 직접 넘겨준 것이었다.
차락-!
서류철을 건네받은 엘레노아는 재빨리 페이지를 넘겨서 내용을 확인해 보았다.
"음음."
그녀는 헌터가 아니었으면 CEO가 됐어도 충분할 만큼 서류 업무에 능숙했다.
지금도 러셀 길드의 서류 업무는 가능하면 직접 챙기는 편이었다.
그녀의 천부적인 재능 덕분에 러셀 길드는 현재 그 어느 때보다 재정이 튼튼한 상태였다.
촤락-! 촤락-!
빠르게 서류를 살핀 엘레노아는 곧바로 누군가를 불렀다.
“엘라드 씨.”
샤아악-!
엘레노아가 부르기 무섭게 그림자에서 검은 연기가 뿜어져 나오더니 그곳에서 파란 피부의 엘프 1명이 나타났다.
“흐억!”
“어헉!”
조금도 기운을 느끼지 못했던 상황에서 누군가 튀어나오자 특별히 예민한 헌터들의 반응이 강했다.
이게 얼마나 두려운 일인지 알기 때문이었다.
자고 있다가 목이 날아가도 자신이 죽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는 것은 공포 그 자체였다.
“불렀나, 인간.”
입에서 한기가 불어닥칠 것 같은 싸늘함이었다.
엘라드는 요한의 명령으로 엘레노아에도 협조적인 태도를 보이곤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엘프가 아닌 엄연한 언데드인 스펙터.
아무리 주인이 명령한 일이라도 차가운 태도는 당연한 일이었다.
“이걸 요한 씨에게 가져다줘. 필요한 거야.”
“알겠다.”
마음에 안 들어도 네크로맨서의 명령은 절대적.
엘라드는 별말 없이 서류철을 받아들고 다시 사라졌다.
요한에게 필요한 물건이라고 했으니 아마 목숨 걸고 전해 줄 것이었다.
‘이상한 언데드.’
엘레노아가 생각하는 요한의 언데드는 다 이상했다.
요한과 만난 이후로 그녀는 네크로맨서 클래스에 대해서 좀 더 심도 있게 접근해 보았다.
영국, 한국 가리지 않고 네크로맨서를 영입했다.
헌터로 활용하지 않더라도 네크로맨서에 대한 연구를 위해서였다.
엄청난 자금이 사용됐지만, 그녀가 통장에 보유한 돈에 비하면 우스운 금액이었다.
러셀 가문은 상속세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내야 하는 상속세는 쿨하게 내고 자녀들에게 돈을 증여했다.
그게 아니더라도 엘레노아의 명의로 운영되는 회사에서 매년 막대한 자금이 쏟아져 나왔다.
네크로맨서를 연구하는 것은 길드 차원의 일이었기에 회사 자금으로 충분히 충당할 수가 있었다.
그런 노력 끝에 내린 결론은 단하나였다.
〈네크로맨서가 특별한 게 아니라, 김요한 헌터가 특별한 것이다.〉막대한 자금을 쏟아부은 결과가 이것이니 연구에 임했던 학자들은 크게 실망했다.
하지만 엘레노아는 상관없었다.
‘어느 정도 예상했던 일이야.’
네크로맨서란 클래스가 대단했다면, 이미 예전에 요한 같은 괴물이 등장했어야 했다.
‘하지만 네크로맨서로 괴물 자리에 오른 건 요한 씨가 최초지.’
다만, 확실히 하고 싶었다.
연구 결과 엘레노아는 더욱 요한이 소중해졌다.
모든 전력을 다해서 요한을 백업하기로 한 것이다.
“이, 이게 도대체 무슨?”
ACE 공격대 대장인 잭슨은 어안이 벙벙했다.
“바, 방금 그 녀석은?”
“언데드야.”
"......."
잭슨은 물론 주변 헌터들도 듣기는 했지만, 믿기지는 않았다.
“겨우 언데드 1마리가 우리보다 세다고요?”
“마, 말도 안 됩니다.”
흔히 네크로맨서가 약한 이유가 네크로맨서는 소환수라고 할 수 있는 언데드가 질보단 양이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양이 많아도 강력한 헌터 1명이 언데드를 무시하고 네크로맨서를 노리면 자체 스킬이 별로 없는 네크로맨서는 그대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방금 본 언데드가 그런 기본적인 상식을 뒤집어 버렸다.
‘아무리 S급 네크로맨서라고 해도 너무하잖아!!’
지금은 멘붕을 할 타이밍이 아니었음에도 멘붕이 찾아왔다.
***
털썩-! 딱딱-!
스켈레톤 워리어가 주변을 돌면서 잔자클의 시체를 모두 챙겨 와한곳에 몰아넣었다.
보기만 해도 뿌듯한 느낌이었다.
평소라면 시체 수집으로 보관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최초의 잔자클 사냥으로 녀석을 언데드로 만들었을 때 어떤 느낌인지 파악해 둘 필요가 있었다.
‘일단 하나부터, 라이즈 구울!’
잔자클 1마리를 구울로 만들어보았다.
“크아아악!!”
구울로 되살아난 잔자클은 특유의 소리를 내질렀다.
‘오, 언데드로 되살아난 녀석이 박력이 넘치네?’
마음에 들었다.
스마트폰을 들어서 녀석의 스펙을 확인해 보았다.
새로운 언데드를 만들어 내면 기본적인 스펙을 확인하고 코딩을 할 수 있는 부분은 해 두었다.
물론 더 자세한 코딩은 각성몽안에서나 편하게 할 수 있었지만.
임시방편으로 짧게 코딩 작업은 스마트폰으로도 가능했다.
샥샥-!
그의 손가락이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스마트폰이 불편한 점이 바로 이것이었다.
컴퓨터처럼 타자나 마우스로 하거나, 각성몽처럼 손과 팔 전체를 이용하는 게 아니라, 좁은 화면 안에서 손가락으로만 해야 했으니까.
코딩 작업은 꽤 복잡하고 손이 많이 갔다.
그러니 스마트폰으로 하는 데는 명확한 한계가 있었다.
일반 컴퓨터 코딩이라면 또 모를까, 요한이 하는 것은 이상한 문자로 가득한 각성몽 세계의 코딩이었으니 더더욱 어려운 편이었다.
‘음…… 어?’
스윽-! 스윽-!
잔자클의 능력치를 보던 요한은 어느 한 부분에서 눈이 부릅떠졌다.
‘얘 뭐야, 왜 이런 게 있는 거지?’
그의 손가락이 더욱 바빠졌다.
‘와, 스카이 포탈이라고 이렇게 해 주는 건가. 미쳤네, 미쳤어.’
속으로 연신 감탄을 아끼질 않았다.
35장. 바닷속 탐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