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화
요한은 약속 장소에 먼저 도착해 벤치에 앉아서 눈을 감은 채 주변 소리를 들으며 엘레노아를 기다렸다.
딱히 엘레노아가 늦은 건 아니었다.
유니콘의 달리는 속도가 생각보다 훨씬 더 빠른 덕분에 그가 일찍 도착한 것뿐이었으니까.
뿌르르.
[시끄러운 인간들이다.]
푸르릉-!
유니콘은 주변을 둘러보며 콧김을 내뿜었다.
신수 주제에 하는 짓은 전형적인 말 그 자체였다.
“넌 아무 데나 똥이나 싸지 마.
과태료 나와. 한국이면 과태료 정도야 면제겠지만, 여긴 영국이니까.”
한국은 상급 헌터에 과태료 면제권이 있었다.
벌금이 아니라 과태료에 한해서였다.
사실 S급 헌터의 벌이 정도에 과태료를 다 내 봤자, 얼마 안 하는 편이지만 어쨌든 혜택은 혜택이었다.
[엑, 지금 뭐라는 건가. 나같이 위대하고 아름다운 신수에게 똥이라니, 똥이라니!!]
템테이션은 요한의 똥 발언에 기겁했다.
[불결하다. 어떻게 나에게 그런 말을!!]
“뭐, 그거 가지고 충격을 받고 그래.”
여전히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하며 대꾸했다.
길 한복판에서 무슨 짓이냐고 생각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아무런 의미가 없는 행동이 아니었다.
헌터는 정신력으로 하는 직업이었다.
등급이 높을수록 마나 덕분에 육체적으론 늘 완벽했다.
하지만 아무래도 피를 많이 보고 목숨을 건 전투를 반복하는 덕분에 정신적인 타격이 컸다.
이런 부분은 마나로 어떻게 할 수 없는 무형적인 분야였다.
물론 이런 것에 대해서 정부와 협회도 완벽하진 않지만, 어느 정도는 인지하고 있었다.
그래서 각 지역에 멘탈 케어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기관을 설치해 두었다.
헌터라면 누구나 무료로 이용할 수 있도록 말이다.
하지만 여전히 한국은 ‘정신’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는 곳을 꺼렸다.
덕분에 OECD에서도 이런 정신 건강을 관리받는 부분에서 대부분 꼴찌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도 OECD 기준 블랙 헌터가 매우 적은 국가 중의 하나였다.
이건 놀라운 사실이었다.
블랙 헌터는 대부분 과도한 사냥과 피, 정신적 충격으로 미쳐서 된다는 게 학계의 정설이기 때문이었다.
또 설사 관리를 꾸준히 받는다고 해도 사람에 따라서 블랙 헌터가 될 수도 있었다.
세계 과학계는 한국을 주목했다.
혹시라도 한국에 블랙 헌터 문제를 해결할 단서가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 때문이었다.
결론만 말하자면 그건 헛된 희망이었다.
한국도 비율만 적다 뿐이지 블랙헌터는 존재했다.
또 오랜 조사 끝에 세계 과학계에서 내린 결론은 한국인들은 헌터생활 자체를 게임처럼 즐기는 헌터비율이 높다는 것이었다.
게임처럼 생각해 즐기는 비율이 높다 보니 스트레스를 덜 받고, 정신적으로 학대가 적으니 블랙 헌터비율이 낮은 것이었다.
물론 이런 결과에 대해서도 갑론을박이 많았다.
적어도 과학계에선 100% 확실한 논리가 아니라면, 무적의 논리는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대한민국 DNA 우월론.
터가 좋다는 둥, 정부가 수치를 조작하고 있다는 음모론 등등.
다만, 게임 이론이 세계 과학계가 조사한 근거라 가장 그럴듯한 주장이라고 여겨지고 있을 뿐이었다.
헌터의 정신 학대를 가장 효율적으로 막는 방법이 바로 명상이었다.
눈을 감은 채로 무념무상에 접어들면 탈진한 정신도 빠르게 회복을 할 수가 있었다.
다만, 요한은 효율이 50%인 명상 중이었다.
주변에 시끄러운 소리와 템테이션과의 대화로 인해서 집중이 덜 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굳이 억지로 100% 효율을 사용하려고 무리하지 않았다.
쉴 때마다 멍을 때리며 명상을 취하기에 요한의 정신은 매우 건강한 편이었다.
1년에 한 번 정도는 병원에 내원해 건강 검진도 꾸준히 받았다.
누구보다 건강을 사랑하는 그가 몸을 아무 생각 없이 학대할 리가 없었다.
얼마나 명상에 빠져 있었을까.
저벅저벅-.
익숙한 발소리가 요한의 귀를 자극했다.
명상이 재밌는 점이 눈을 감은 채 주변의 소리에만 집중하고 있으면 감각이 매우 예민해진다는 것이었다.
어떤 헌터는 이런 것에 중독돼사냥할 때를 제외하면 명상만 하는 명상 중독자도 있을 정도였다.
감각이 예민해지는 경험은 매우 낯설면서도 자극적이었기 때문이다.
‘왔나 보네.’
스스륵 눈을 떴다.
그러자 그곳엔 엘레노아와 수호자들로 추정되는 이들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템테이션을 보고 있었다.
"......."
엘레노아도 크게 티는 내지 않았지만, 그녀와 함께 다니며 익숙해진 요한의 눈을 속일 수는 없었다.
‘유니콘이 그렇게 신기한가?’
정작 당사자는 별일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말이다.
“유, 유, 유니콘?!”
“분명히 미스터 킴은 네크로맨서라고 하지 않았어?”
“그러게, 어떻게 시, 신수를?”
영국식 영어는 억양이 강했다.
그리고 미국식 영어와는 다른 점도 어느 정도는 존재해 기본 교육만 받은 요한이 알아듣기엔 쉽지가 않았다.
요한이 공부에 열정이 많은 사람이었다면, 엘레노아와 친해진 이후로 계속 영어를 공부했을 것이다.
한창 열심히 공부할 나이에도 최소 점수 확보를 위한 영어 듣기와 프로그램 공부 말고는 담을 쌓았던 요한이 굳이 지금 와서 따로 공부할 리가 없었다.
옥스퍼드 출신 마법사 밴시가 있어서 소통에 어려움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요한 씨.”
“응, 왜?”
“이거 진짜 유니콘 맞죠?”
“그럼, 가짜 유니콘도 있어?”
비꼬는 게 아니라 진심으로 묻는 말이었다.
“아니, 그래도. 어떻게……?”
요한을 제외하고도 네크로맨서는 세계에 존재했고, 적지만 신수 소환사도 있었다.
노르웨이 국왕이자 헌터 협회장이며 S급 헌터인 하랄 10세가 바로 세계 최고의 신수 소환사였다.
그는 유니콘은 아니지만, 황금사자를 소환하는 최강급 헌터였다.
노르웨이는 폐쇄적인 정책으로 헌터 선진국은 아니었지만, 하랄 10세만큼은 S급 위의 S급으로 유명했다.
더 아이러니한 것은 하랄 10세는 원래 왕위 계승권자가 아니었다.
원래는 그의 사촌 형인 올라프 9세가 왕의 계승권 1위였다.
그래서 그는 부모님을 따라서 어렸을 때 영국으로 유학을 떠나 그곳에서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보냈다.
아주 어렸을 때 유학을 떠난 탓에 노르웨이어보단 영어가 더 유창했다.
그의 사촌 형인 올라프 9세는 노르웨이 역사상 최악의 사건으로 꼽히는 오슬로 폭주 때 국민을 지키다가 몬스터의 손에 죽임을 당했다.
A급 헌터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S급 헌터보다 더 열정적으로 몬스터와 싸우다 변을 당한 것이었다.
헌터인 왕족이 급사하는 일은 거의 없어서 살아 있을 때 왕위 계승권이 급하게 요동치는 건 드문 일이었다.
노르웨이 왕실은 올라프 9세가자녀도 없이 사망하자 다급하게 다음 왕위 계승권자였던 하랄 10세를 왕으로 앉혀야 했다.
그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하랄 10세는 이미 영국에서 유명한 S급 헌터였다.
특히 신수 마스터로 불리며 전 세계적인 활약을 하는 특급 헌터였기 때문이다.
어쨌든 실제로 존재하는 신수 소환사와 네크로맨서 때문에 둘이 얼마나 상극인지 상식적으로 잘 알려져 있었다.
신의 힘이라고도 불리는 신수들은 네크로맨서를 보기만 해도 찢어 죽이려고 했다.
어떤 사고 케이스는 한 C급 소환사의 신수가 지나가던 E급 네크로맨서를 보고 과도하게 흥분해 길거리에서 해당 네크로맨서를 찢어 죽여버리는 사고가 발생했다.
E급 네크로맨서는 헌터 시험도 통과 못 한 일반인이나 마찬가지였다.
특성만 네크로맨서지 스켈레톤으로 집에서 짐이나 옮기는 평범한 청년이었다.
유족들은 난리가 났고 해당 헌터에 300억이란 거금의 소송을 걸었다.
전국 언론에도 대서특필이 되었고 재판에도 패해서 300억을 고스란히 손해 배상금으로 물어 줘야 했다.
C급 헌터였으니 헌터인 그에겐 엄청난 거금이었다.
이런 사건 사고도 있을 정도인데 요한의 곁을 마치 경호하듯이 우뚝서 있는 신수 유니콘의 존재가 놀랍지 않으면 세상에 뭐가 놀랍겠는가?
“드넓은 평야에서 얻었어. 몇 대두드려 팼더니 날 따르겠다나 뭐라나?"
[끄응, 틀린 말은 아니지만, 언어 좀 순화해 주겠나, 주인?]
“시끄러워.”
[큼!]
언데드를 워낙 거칠게 다뤄서 그런지 템테이션을 대하는 자세도 거침이 없었다.
“말도 안 돼.”
“안 되긴. 너도 한번 해 봐. 얘괜찮은 자가용이거든.”
[내가 좀 괜찮은 편이지. 히힝!]
묘하게 이런 부분엔 둔감한 템테이션이었다.
엘레노아는 진심으로 놀란 표정이 되었다.
그녀도 영국의 유니콘 포획 작전에 대해서 대충은 알고 있었다.
그 작전에 러셀 가문의 수호자들도 일부 차출되었었으니까.
“소환한 게 아니라, 포획하셨다고요?”
“그렇다니까?”
"음."
엘레노아는 이 사실을 할아버지에게 보고해야 하나, 고민이 되었다.
보통 일이었다면 굳이 보고하지 않았을 것이다.
엄연히 러셀 길드의 일이었고 딱히 그녀는 가문에 충성심 따윈 없었으니까.
가문 사람들은 그저 가족일 뿐이었다.
그래서 가주 자체의 자리에도 별욕심이 없었다.
하지만 이번 일은 개인적으로 할아버지에게 알려야 하는 일이 아닌가, 싶었기 때문에 고민이 되었다.
신수를 스킬이 아니라, 일반 포획이라니.
입이 근질근질한 일이 아닐 수가 없었다.
그러다 문득 주변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아, 굳이 내가 보고할 필욘 없겠네.’
이미 카메라로 열심히 찍고 타자까지 치고 있었다.
SNS에 열심히 올리고 있다는 증거였다.
유니콘 때문에 천하의 러셀 가문의 등장에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고 있었다.
보통 러셀 가문의 사람이 뜨면 주변이 러셀 가문에 관련된 주제로 가득 차는 데 말이다.
‘내가 굳이 나서지 않아도 할아버지가 알겠네.’
러셀 가문은 SNS 팀이 따로 있을 정도로 SNS에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이었다.
의외로 SNS에서 좋은 정보를 많이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뭐 해, 안 가?”
이곳엔 유니콘을 구경하러 모인게 아니었다.
“아, 네. 가시죠.”
엘레노아는 여전히 얼떨떨했지만, 그래도 할 일을 미룰 만큼 책임감이 없는 사람이 아니었다.
다그닥-.
엘레노아가 앞장서고 요한이 그녀의 옆에서 움직였다.
유니콘도 요한을 따라서 움직였으니 주변의 카메라가 더욱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푸르릉-!
[인간들은 정말 알 수가 없다. 저 이상한 물체들, 매우 기분이 나쁘다.]
“익숙해져. 가는 곳마다 있을 테니까.”
[쳇. 알았다, 주인.]
***
요한과 엘레노아 일행이 스카이 포탈로 들어갔다.
그 직후 영국 인터넷은 난리가 났다.
[T위트] Andrew0303〈사진 첨부〉신수, 네크로맨서, 미스터 킹.
대, 대박! 킹이 데리고 있는 거 보임?
유니콘이야, 유니콘!
킹은 네크로맨서 아니었어?
어둠 계열 클래스인 네크로맨서가 빛의 계열 신수인 유니콘이라니!
이봐, 오해들 하지 말라고. 블랙유니콘은 털색이 검은색이라 오해들 많이 하는데. 어둠 계열이 아니야. 유니콘은 유니콘!
빛의 계열인 신수라고!!
네크로맨서가 신수라니 말도 안돼!!
팔로워 30만의 유명한 T위터가 글을 올리자 빠르게 리트윗이 되었다.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서 BBC 속보에도 올라갈 정도였다.
열정적인 영국인들은 축구와 헌터를 사랑했고 헌터 정보라면 미친듯이 빠져들었다.
[BBC 커뮤니티]
- 대박!
- 언빌리버블!
- 어떻게 저럴 수가 있지. 네크로맨서가 신수라니?!
이슈 폭탄은 이제 시작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