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화
‘보스 몬스터의 영혼, 그것도 페가수스의 영혼이라. 역시 신수 출신 몬스터라서 뭐가 다르단 건가?’
그렇게밖에 설명이 되질 않았다.
요한으로서도 나쁘지 않은 전개였다.
아니, 오히려 좋은 전개라고 해야 맞았다.
무려 보스 몬스터의 영혼이었다.
언데드로 일으킬 수 있을지는 직접 확인해 봐야겠지만, 그럴 수만 있다면 또 다른 차원의 언데드를 일으킬 수 있을 테니까.
일단 페가수스의 영혼은 별다른 반응은 없었다.
멍하니 제자리에서 평온하게 풀을 뜯는 제스처만 반복해서 취하고 있었다.
마치 평범한 1마리의 말이 된 것 같은 모습이었다.
‘그럴 리가 없는데. 영혼이 됐다고 해서 평범한 영혼일 리가.’
아무리 영혼이 육체를 잃어버린 상태라고 해도 생전에 뭔가 있는 존재였다면 영혼에도 격이라는 게 매겨지기 마련이었다.
분명히 그럴진대 눈앞에 존재하는 페가수스의 영혼은 날개만 있다 뿐이지 평범한 말이었다.
‘이 녀석을 밴시로 만들 수 있을까?'
아니면 영혼의 격 덕분에 밴시로 불러도 스펙터로 알아서 진화할 가능성도 있었다.
두근두근-.
마구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페가수스의 영혼 앞에서 손을 내밀었다.
[히힝.]
페가수스는 요한이 다가오자 평범한 말 소리를 낼 뿐이었다.
‘콜 밴시.’
휘잉-!
요한의 손끝에서 뿜어져 나온 마나가 페가수스의 영혼을 감쌌다.
페가수스의 영혼은 묘한 눈길로 요한을 바라보았다.
그러든가 말든가 마나는 페가수스의 영혼을 감쌌고 밴시로 만드는 작업을 했다.
[이히히히힝!!]
페가수스는 포효했다.
띵-!
역시 스마트폰이 울렸다.
‘그래, 역시 영혼의 격이 다르니까. 밴시가 아니라 스펙터로 진화해야지.'
당연히 그럴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간단하게 정보는 봐야 했기에 스마트폰을 켜 보았다.
하지만 생각과 달리 페가수스의 영혼은 다른 언데드가 되어 있었다.
[페가수스 영혼이 스스로 언데드를 깨우칩니다.]
‘뭐, 스스로?!’
이건 확실히 놀라운 사실이었다.
‘그러면 스펙터가 아니란 소린가?’
[페가수스의 영혼이 깨우친 언데드는 유령마, 팬텀 스티드입니다.]
'오!'
앞서 요한은 유니콘으로 팬텀 스피드 비슷한 것을 만들어 보려고 했다.
유령 언데드로 일으키면 생전의 모습은 어느 정도 유지하고 있으니까.
갑옷을 입혀서 물리력을 주어서 타고 다닌다는 게 계획이었다.
그런데 그런 계획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페가수스의 영혼이 스스로 유령마로 깨어났다.
[이히히히힝!!]
새하얗던 페가수스는 사라지고 마치 모든 것을 흡수하는 검은색의 짙은 그림자로 구성되었을 것 같은, 날개가 달린 말 1마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눈은 새빨갛고 이빨이 새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팬텀 스티드 주변엔 연기가 피어 오르듯이 검은색 기운이 몽글몽글올라가고 있었다.
‘최고다.’
정밀 분석 프로그램으로 살펴봐도 유니콘보다 기본 스펙이 더 높았다.
언데드로 태어나며 스펙 감소가 어느 정도 있었지만, 보스 몬스터다 보니 기본 스펙이 대단했기 때문이다.
[호오, 주인. 페가수스 녀석을 유령마로 만든 것인가?]
“흠흠, 그래. 맞아.”
[대단하군, 이렇게 진한 죽음의 기운을 뿜어내는 팬텀 스피드는 처음 본다.]
“다른 팬텀 스티드를 본 적이 있다는 소리야?”
[당연하다. 나는 이 지옥에 들어오기 전부터 셀 수 없이 오랜 세월을 살아왔다. 그 과정에서 주인 같은 죽음의 마나를 품고 있는 자도 수없이 봐 왔다. 나는 차원을 넘나드는 신성한 신수 유니콘이기 때문이지.]
“대단한데?”
푸르릉-!
요한의 칭찬에 유니콘은 금방 콧대가 높아졌다.
[내가 좀 대단하지!]
제자리 투레질까지 하며 으쓱한 마음을 표현했다.
그 모습이 말 주제에 퍽 귀엽다고 생각했다.
페가수스를 잡은 것으로 던전 포탈 사냥은 끝이 났다고 할 수 있었다.
처음엔 그저 부족한 시체나 얻고자 했던 던전 레이드였다.
그런데 어느새 언데드가 아닌 순수 생명체인 유니콘을 자가용으로 얻었고, 벼르고 벼르던 팬텀 스티드도 얼떨결에 획득할 수가 있었다.
정말 아무 생각 없던 사냥이 갑자기 보물을 찾은 레이드가 되었다.
이보다 더 뿌듯할 수 있을까?
드넓은 평이를 빠져나왔을 때는 약속했던 사흘이 되기 직전이었다.
‘내가 그렇게 열심히 사냥했나?’
실제 전투 시간은 그렇게 길지가 않았다.
포탈 특성 때문에 시간 자체가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그래도 시체는 충분히 챙겼다.
이동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긴 했지만, 다행히 드넓은 평야의 말몬스터들이 대량으로 무리를 많이 짓고 다닌 덕분이었다.
많이 잡을 땐 사냥 한 번에 약 100마리 정도를 잡으니 부족한 시체는 금방 채워졌다.
사흘이 되기엔 살짝 여유가 있으니 목욕하고 잠깐 눈은 붙일 수 있을 정도였다.
“하암.”
‘졸리네., 사흘을 한숨도 자지 않고 내리 사냥만 했다.
마나가 소모됐다 충전되는 과정이 꽤 피곤한 일이었기에 빨리 1시간이라도 자고 싶었다.
***
요한은 세인트 아이브 근처의 작은 호텔에서 짧은 휴식을 즐겼다.
운이 좋게도 이곳엔 한국식 찜질방이 있었고 그곳에서 편하게 몸도 지지고 한숨 잘 수가 있었다.
적당히 쉬다가 시간이 되자 스카이 포탈이 있는 세인트 아이브로 향했다.
다그닥다그닥-!
차 1대 없는 국도를 유니콘이 빠른 속도로 달렸다.
이 근처는 스카이 포탈로 인해서 민간인 출입이 금지되었기에 도로가 한산했다.
스카이 포탈과 떨어져 있는 마을이나 도시도 혹시나 해서 불안한 마음에 꽤 많은 사람이 떠난 상황이었다.
다들 가족이나 친척 아니면 친구가 있는 다른 도시로 간 것이다.
반쯤은 유령 마을이 된 그곳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은 마을에서 태어나 평생을 이곳에서 산 어르신들이나 딱히 갈 곳이 없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요한이 머물렀던 호텔도 손님이라곤 그 1명뿐이었다.
덕분에 운치 좋던 호텔을 독식한 기분을 마음껏 느낄 수가 있었다.
“자자, 더 빨리!!”
[땅에선 이게 최고 속력이다, 주인.]
휘이잉-!
세찬 바람이 요한의 안면을 강타했다.
“안내인 씨, 지금 속도가 얼마나 돼?”
[예, 지금 속도는 시속 133.7km입니다.]
“워후.”
스포츠카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주인, 답답하다. 하늘에서 뛰면 최고 속력이 이보다 2배는 빠르다.
근데 어째서 하늘이 아니라 땅으로 가야 하는 건가?]
“시끄러워. 괜히 하늘로 갔다간 쓸데없이 주목만 받는다고. 괜히 영국 정부 놈들 주목받고 싶지 않아.”
[뭐, 그런 거라면 이해하겠다. 예전에도 이 땅의 인간들이 나 하나 잡겠다고 떼로 몰려왔던 적이 있었다.]
“진짜냐?”
[그렇다.]
“흐음.”
그러면 더더욱 눈에 띄지 않게 할 필요성이 있었다.
‘내가 영국 놈들에게 템테이션을 뺏길 이유는 없겠지만, 귀찮게 구는 것조차 귀찮아.’
마음 같아선 아예 모른 척 살고 싶었다.
하지만 사회는 혼자 사는 곳이 아니니 기본적인 교류가 필요할 수 밖에 없었다.
요한은 그것을 최소화하고 싶을 뿐이었다.
‘뭐, 스카이 포탈 공략 의뢰를 받은 순간부터 아예 교류를 안 할 수 없게 됐지만.’
어지간하면 이런 식으로 엮이고 싶지 않았지만, 스카이 포탈이 주는 유혹이 만만치 않았다.
얼마나 더 열심히 달렸을까, 세인트 아이브가 보이는 곳에 도착하자 유니콘을 진정시켰다.
“여기서부턴 천천히 가자.”
[알았다, 주인.]
싸웠던 몬스터라고 생각하기 힘들 정도로 고분고분한 템테이션이었다.
요한이 스카이 포탈이 훤히 보이는 해변에 접근하자 주변을 맴돌던 짐꾼들과 헌터들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왜냐하면, 이 근처에 대형 동물이라곤 템테이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웅성웅성.
“저것 봐, 유니콘이야.”
“신수잖아. 잠깐만 저 헌터, 요한 킴이잖아?”
“킹?!”
“그래, 킹!”
이번 MUK 습격 사건까지 해서 요한은 영국 내에서도 매우 유명한 헌터였다.
하지만 동서양의 차이 때문에 모든 사람이 한 번에 그를 알아보는 건 아니었다.
그래도 누군가 1명이 요한을 지목하며 떠들자 그제야 요한을 알아보고 소란을 피우기 시작했다.
그의 별명인 킹이 가장 많이 언급되었다.
“잠시만, 킹은 네크로맨서잖아?”
“그런데, 그게 왜?”
뭘 새삼스럽게 언급하냐는 눈빛이었다.
“신수와 네크로맨서는 상극이야.
빛과 어둠이라고. 그런데 어떻게 신수인 유니콘이 킹과 함께 있는 거야?”
“어, 어. 그러게?”
사실 영국 정부가 유니콘을 포획하려고 했지만, 유니콘이 아예 없는 소환수가 아니었다.
신수를 다루는 헌터 중에서 가끔 유니콘을 다룰 수 있는 헌터가 있었다.
영국에도 약 3명 정도의 헌터가 유니콘을 다루는 게 가능했다.
하지만 영국 정부가 굳이 드넓은 평야에서 유니콘을 포획하고자 했던 것은 마나로 불러드리고 마나를 더 바칠 수 없으면 돌아가는 소환수가 아니라, 식량 문제만 해결하면 얼마든지 누구라도 사용할 수 있는 테이밍 몬스터로 활용하기 위해서였다.
신수를 테이밍해서 쓸 수 있다니, 이보다 더 괜찮은 게 있을까?
아, 물론 존재했다.
요한은 그런 신수를 아무런 제약없이 굴복시켰으니까.
현재 SS급 등급을 추가하자는 게 본회의만 통과하면 되었다.
국제 헌터 회의에서 통과 직전인 SS급의 추가 문제로 각국은 머리가 복잡했다.
안 그래도 S급 헌터를 온갖 혜택을 부여하며 붙잡아 둔 상황이었다.
그런데 만약에 그런 S급 헌터 중에서 SS급이 나오면 또 어떤 혜택을 줘야 할지 고민이 되었기 때문.
아무리 S급 헌터에 대해 대우와 혜택이 최고라고 해도 SS급 헌터가 탄생하면 당사자 입장으로선 뭔가라도 다르길 원하기 마련이었다.
그게 사람의 본성이라고 해도 딱히 할 말이 없었다.
처음엔 소수의 호기심과 의문이었다.
그러나 이곳에 존재하는 헌터와 일반인 전부가 전문가이자 프로였다.
짐꾼으로 근무하며 몬스터와 헌터를 수없이 봐 온 이들.
알음알음 퍼져 나가기 시작한 궁금증은 독한 전염병이 되어서 사람들을 괴롭혔다.
“네크로맨서인 킹이 신수인 유니콘을 다뤄.”
“포탈에 들어가기 전인데도 저렇게 데리고 있는 것으로 보아서 소환수는 아니야.”
“아니, 애초에 네크로맨서가 신수를 소환하는 것 자체가 말이 돼?”
“어떻게 된 거지?”
“되니까, 데리고 있는 거겠지.”
대부분은 순수한 호기심이었다.
하지만 얼굴이 창백해진 몇 명이 있었다.
‘저, 저, 저, 저건?!’
‘브, 블랙 유니콘?!’
바로 영국 헌터 협회에서 관리자로 파견 나온 특수 요원 겸 헌터였다.
우연히도 그들은 코드네임 블랙유니콘 포획 작전에 참여했던 헌터였다.
정말 개고생만 하다가 실패한 기억으로 가득한 작전이었다.
그들은 테이머가 아니었고 정찰임무가 주였기에 블랙 유니콘을 만난 적이 몇 번 있었다.
사진도 찍고 분석가에게 정보를 넘기는 역할도 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한눈에 알아볼 수가 있었다.
“마, 맞지?”
“99.99% 맞아. 내가 헛것을 보고 있을 확률이 0.01%라고 계산한다면!”
즉, 100%라는 뜻이었다.
그들은 식은땀을 흘리면서도 조용히 스마트폰을 들고 뒤쪽으로 사라졌다.
‘뭐라는 거야, 알아먹을 수가 있어야지.’
요한은 주변 영국인들의 솰라솰라 거리는 소리로 귀가 간지러울 지경이었다.
34장. 영국의 스카이 포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