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
이 부분에 대해선 엘레노아는 단호했다.
“네, 아무리 예비대라고 해도 러셀 가문의 수호자예요. 아무나 뽑지 않으며 예비대의 실력도 만만치 않아요.”
“뭐, 그렇다면 다행이고.”
‘진심으로.’
예비대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는 정말 불안했다.
그래도 실력은 나쁘지 않다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스카이 포탈은 정말 예민한 곳이기 때문에 거슬리는 존재는 있으면 이쪽이 곤란했다.
‘러셀 길드라면 제일 좋겠지만, 어쩔 수가 없지.’
베트남의 다크 엘프 포탈 관리도 중요한 일이었으니까.
‘내가 좀 더 고생하는 수밖에.’
어차피 할 고생이었다.
조금 더 한다고 해서 딱히 나빠질 이유는 없었다.
“그럼 엘레노아 네가 예비대를 데리고 사흘 후 10시까지 스카이 포탈로 와. 제대로 준비해서.”
“네, 그런데 요한 씨는요?”
“할 일이 좀 있지. 오케이?”
“……네, 알겠어요.”
뭔가 찝찝한 느낌이었지만, 받아 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생각하기에도 예비대를 아무런 준비 없이 스카이 포탈로 데려가기엔 불안한 부분이 많았기 때문이다.
물론 말했다시피 예비대라고 해서 수준이 막 떨어지는 건 절대 아니었다.
그렇지만, 제일 중요한 실전 경험이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예비대는 말 그대로 예비 전력이었으니까.
그전까진 러셀 가문 전용 헌터훈련소에서 혹독한 훈련을 겪기 때문이었다.
예비대는 보통 각성한 지 얼마 안 된 초보 헌터와 은퇴한 헌터로 구성되어 있었다.
물론 둘 다 독립해서 활동하면 얼마든지 포탈에 들어가 사냥할 수 있는 자격이 있었다.
하지만 러셀 가문의 수호자는 그 이상을 원했고 철저한 검증과 준비끝에 러셀이란 이름으로 활동할 수가 있었다.
훈련소는 그 자격을 입증하는 곳이었다.
‘사흘, 사흘. 그 전에 확실히 준비시켜야 해.’
엘레노아는 의지를 다졌다.
***
요한은 여유가 생긴 사흘이란 시간 동안 누구보다 바쁘게 움직였다.
그가 본격적으로 사냥하기 전에 하는 연례행사와도 같은 일.
바로 던전 포탈을 돌면서 시체를 수집하는 행위였다.
네크로맨서에겐 사냥 전에 꼭 해야 하는 요식 행위였다.
적당한 수준의 던전 포탈을 찾아서 사흘 만에 모든 몬스터를 사냥하고 시체를 수집한 뒤에 언데드를 잔뜩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
두두두두-!
[옵니다!!]
요한은 별생각 없이 적당한 수준의 포탈을 잡았다.
여전히 그는 영어가 불가능했다.
하지만 직접적인 통역이 아니라, 단순히 읽고 전달받는 건 가능했다.
바로 영국인 영혼 덕분이었다.
네크로맨시의 레벨업으로 영혼류언데드를 부릴 수 있는 여유가 생기자 마법사 영혼 하나를 밴시로 만들었다.
그렇게 수준이 높지가 않아서 전투력은 많이 부족했다.
하지만 부족한 전투력과는 달리 매우 똑똑했다.
듣기론 옥스퍼드 수석 졸업자라고 했다.
그런 녀석을 옆에 비서 겸 보조로 두었더니 직접적인 통역이 아니라면, 혼자 영국 생활하는 데 전혀 지장이 없어졌다.
포탈 예약도 녀석의 도움으로 쉽게 할 수가 있었다.
그가 예약한 포탈은 난이도는 조금 있지만, 인기가 없어서 다행히 늦은 시간에도 비어 있었다.
바로 말 형태의 몬스터가 가득한 필드였다.
요한은 영국 밴시가 해석해 준 말을 듣고 가슴이 두근거렸다.
‘이제 진짜 내 개인용 자가용이 생길 수도 있겠다!!’
물론 진짜 자가용이 있긴 했다.
기계로 된 자가용은 여러모로 불편한 점도 많았고 활용도가 떨어졌다.
제일 중요한 게 전투와 일반 생활 겸용이 전혀 안 된다는 점이었다.
그러나 말로 된 자가용이 생기면 상황이 달라질 것이었다.
‘팬텀 스티드 같은 게 생기면, 전투 때도 쓸 수 있고. 평소에도 탈 수 있어.’
얼마나 편하겠는가.
물론 탑승감이라든가, 속도로만 따지면 기계 자동차가 훨씬 더 좋은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요한은 헌터였다.
특히 요즘같이 언제, 어디서 포탈이나 적이 나을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선 자동차보단 전용 탈것을 구하는 게 훨씬 더 안전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일반 말로 실험도 해보았다.
돈이 있는데 뭘 못 하겠는가?
제주도에서 고급 품종의 말을 공수해 미안하다고 한 다음에 목을 쳤다.
시체가 된 말을 언데드로 일으켜 보려고 했지만, 실패였다.
마나가 전혀 없는 일반 말이다보니 너무나도 허접했다.
구울로 일으켜도 제대로 걷지를 못했다.
또 가장 중요한 게 마나 소모가 너무 심했다.
자체 마나가 없는 녀석이다 보니 100% 요한의 마나로 유지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반적인 말 실험은 실패로 돌아갔다.
당연히 말 몬스터를 찾아보았지만, 한국이나 베트남엔 말 몬스터가 존재하지 않았다.
영국에도 당연히 없겠거니 하고 있었는데 의외로 쉽게 발견해 버린 것이다.
요한은 전율했고 얼른 예약해서 들어왔다.
기대를 잔뜩 안고 들어온 이곳 필드의 이름은 ‘드넓은 평야(Wideplains)’.
아주 심플한 이름이었다.
‘여기 달라고 해 볼까?’
조사 좀 해보니 이곳은 정말로 인기가 없는 필드라고 했다.
오죽하면 포탈 안정화 임무를 거의 협회가 전담하고 있을 정도로.
당연한 일이었다.
이곳은 이름 그대로 매우 넓~은 필드였다.
일반적인 공격대가 들어왔다간 자칫 종일 걷기만 할 수도 있었다.
그만큼 말 몬스터가 빠르고 자유롭게 이동했기 때문.
하지만 요한은 전혀 상관없었다.
쿵쿵-!
보폭이 넓은 본 골렘을 타고 이동하며 지치지 않는 언데드들은 24시간 뛰어다닐 수 있었기 때문이다.
또 하늘을 날아다니는 하늘이 몬스터를 관측 및 유인도 가능했다.
지금도 하늘이 하나의 말 무리를 공격해 어그로를 끌고 이쪽으로 몰아오는 중이었다.
“모두 전투 준비!!”
“그어어어!!”
딱딱-!!
“흐흐흐, 시시한 녀석들처럼 보이지만. 전투라면 언제든지 환영이지!!”
류페이는 그저 신이 난 상태였다.
검을 바로 쥐고 홀로 앞으로 나섰다.
파바박-!
요한도 굳이 말리지 않았다.
어차피 싸워서 시체로 만들면 될 녀석들이었다.
본 골렘의 어깨에서 관측한 녀석들의 외모는 확실히 일반적인 말은 아니었다.
‘하긴 저 녀석들은 말처럼 생기고 습성도 말과 비슷하지만, 비슷할 뿐. 말은 아니니까.’
말처럼 생겼다고 편의상 말이라고 부를 뿐, 몬스터는 결국 몬스터에 불과했다.
‘응, 저 녀석은?’
하늘이 몰고 오는 수십 마리의 말은 아까와는 또 달랐다.
얼른 스마트폰을 꺼내서 사진을 찍었다.
[블러드 트윈 헤드 호스]
종류: 일반 몬스터위험도: D+설명: 2개의 머리를 가지고 말처럼 생긴 몬스터. 24시간 피를 흘리며 그 피엔 독성이 있어서 상대방을 중독시킨다.
‘오?’
신기한 몬스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불합격이었다.
‘타기 적합한 체형은 아니야.’
다시 한번 더 말하지만, 말처럼 생겼다고 해도 말은 아니었다.
타기 적합한 녀석이 있고, 타기 적합하지 않은 녀석이 있었다.
요한이 찾는 건 타기 적합하면서 강력한 힘을 가진 말 몬스터였다.
‘언데드로 만들려면 강할수록 좋으니까. 보스 몬스터는 힘들더라도 유니크나 엘리트 또는 중간 보스면 딱 좋은데 말이야.’
그렇게 녀석들을 관찰하면서 코딩 작업도 하기 시작했다.
샥샥-!
손가락을 열심히 놀리면서 어떻게 하면 팬텀 스티드 같은 것을 만들 수 있을지 고민해 보았다.
‘역시 제일 좋은 건 스킬을 만드는 건데 말이야.’
아무리 프로그램 특성이 사기라도 스킬을 완전히 창조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코딩을 위해선 기본적인 코딩식이 필요했다.
C언어도 아니고 정체를 알 수 없는 문자를 자연스럽게 알게 되어 기존 정보를 수정할 뿐인 상황.
새로운 스킬을 창조하기엔 모르는 게 너무 많았다.
‘그렇다면 할 수 있는 건 수정정도인데…….'
어떤 스킬을 어떻게 수정해야 할지 고민이었다.
‘일단 만들 수 있는 건 팬텀 스티드 즉 유령마나 좀비 말, 구울 말, 본 호스 정도인데…….'
일단 좀비 말은 패스였다.
이동 수단으로 쓸 건데 흐느적거리는 좀비는 턱도 없는 일이었다.
고민, 고민 끝에 한 가지 결정을 내렸다.
‘유령마가 제일 좋겠다.’
기본적으로 유령은 물리력이 없었다.
일시적으로 물리력을 만들 수는 있었지만, 녀석들은 물질이 아니었다.
그러니 타고 다닐 정도로 물리력을 행사하는 건 거의 불가능했다.
‘하지만 꼼수를 사용한다면, 불가능할 이유는 전혀 없지.’
꼼수는 요한의 전공 분야나 마찬가지였다.
‘유령마에 물질로 된 장비를 입을 수 있게 코딩을 한다면 탑승할 수 있지 않을까.’
장비 코딩은 이미 많이 해보았다.
창조가 아니었기에 얼마든지 할 수가 있었다.
‘지금까진 굳이 유령 언데드의 장비를 코딩하진 않았어. 하지만, 안 될 이유는 없지. 물질 상태인 장비를 착용시킬 수만 있다면, 난 유령마 자체가 아니라 물질로 된장비에 탈 수도 있잖아?’
100%는 아닐지라도 도전해 볼가치는 충분했다.
코딩하는 김에 엘프 밴시 녀석들도 좀 코딩해 주고.
그동안 언데드 자체 코딩엔 너무 소홀한 부분이 없지 않아 있었다.
‘좋아, 결정했어. 유령마를 만들어서 장비 코딩 작업부터 해보자.
안 되면 구울 말 쪽으로 해보고.’
“흐아아압!”
콰르릉-!
“이히히히힝-!”
“꾸에에액!!”
데스나이트인 류페이의 죽음의 마나가 담긴 데스 블레이드 한 방에 거칠게 달려오던 블러드 트윈헤드 호스 무리가 앞발을 들며 괴로워했다.
맨 앞에 있던 8마리는 그대로 흔적도 없이 폭발하면서 사라졌다.
스마트폰만 보던 요한의 고개가 휙 올라왔다.
“야, 류페이. 내가 시체는 박살내지 말라고 했지!!”
“아, 아하하. 보, 보고 있었어?”
류페이는 머리를 긁으며 민망한 표정을 지었다.
“난 머리에도 눈이 있거든!!”
진짜로 머리에 눈이 있는 게 아니라, 시체에 민감한 체질이다 보니 느낌으로 알 수가 있었다.
주변에서 시체가 터지면 정체를 알 수 없는 묘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
“아, 죄송, 죄송. 다시는 안 그럼.”
“조심해!!”
“넵!”
류페이도 지은 죄가 있기에 평소와 달리 존댓말로 대답했다.
그녀도 잘 알고 있었다.
요한에게 시체가 얼마나 중요한 지 말이다.
그렇게 시체에 집착하는 데 모르면 좀비나 마찬가지였다.
참고로 류페이는 좀비를 좋아하지 않았, 아니 싫어했다.
같은 언데드인데 왜 싫어하냐고?
역으로 질문하고 싶다.
당신은 같은 인간을 전부 좋아하는가?
그렇다고 대답하면 할 말이 없지만, 같은 인간도 서로를 싫어하고 미워하기 일쑤였다.
데스나이트와 좀비는 같은 종족이지만, 종류가 확연히 달랐다.
류페이는 멍청하고 의지도 없으며 흐느적거리는 좀비가 딱 질색이었다.
같은 언데드만 아니었다면 목을 다 날려 버렸을 것이었다.
‘쳇.’
류페이는 혀를 차곤 이번엔 직접 검을 쥐고 뛰어들었다.
쿵쿵- 휘익!
몸을 높게 띄워서 혼란스러워하는 블러드 트윈 헤드 호스의 틈으로 내려왔다.
“이히히힝-!!”
적의 존재를 인식한 녀석들이 흥분해 날뛰기 시작했다.
“크흐흐, 다 죽여 주마.”
그녀의 검이 춤을 추기 시작했다.
촤악-!
동시에 2개의 목이 떨어졌다.
푸화아악-!
녀석들도 반격을 시작했다.
피를 뿜고 뒷발질을 하며 마구 공격을 퍼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