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둘의 눈빛이 허공에서 강하게 충돌했다.
묘한 기류가 형성되었다.
자칫 잘못하면 S급 헌터 2명이 전투를 벌이는 상황이 연출될 수도 있었다.
이미 호텔 테러로 인해서 아비규환이 된 주변이었다.
거기에다가 탈 S급이라고 평가되는 매직 마스터와 네크로맨서의 충돌이라면 런던 전체가 파괴될 수도 있었다.
“요한 씨, 그만 해요.”
다행스럽게도 완전히 튀기기 전에 엘레노아가 타이밍 좋게 껴들었다.
덕분에 폭발하듯이 몰아치던 마나가 진정될 수가 있었다.
“기분 나쁜 녀석.”
“운이 좋군.”
그렇다고 둘이 완전히 진정한 것은 아니었다.
마치 한 여자를 두고 두 남자가 경쟁하는 것 같은 모습은 주변이 아수라장인데도 퍽 나쁘지 않은 그림이었다.
‘짜증 나네.’
정작 요한의 생각은 조금 달랐지만.
‘잘생겼다고 뻐기는 거야, 뭐야?’
가장 기분 나쁜 점은 역시 이런 부분이었다.
분명히 나이 차이가 10살 이상났다.
이쪽이 훨씬 더 젊고 싱싱해야 하는데, 어쩐지 비교하면 10살 넘게 차이 나는 아저씨한테 밀리는 느낌이었다.
‘잘생긴 것들은 다 죽어야 해.’
어쩐지 술이 참 고픈 날이었다.
“요한 씨, 가요. 상대할 가치도 없는 놈이에요.”
“쯧, 알았어. 네가 그러니 가야지, 뭐.”
당사자가 괜찮다는데 냉정하게 따지면 제삼자인 요한이 녀석과 대립할 명분이 없었다.
그가 막가파식 헌터였다면 명분이고 뭐고 그냥 들이댈 텐데 요한은 어디까지나 상식적인 사람이었다.
이유 없이 타인과 다투지 않았다.
떠나가는 엘레노아의 뒤에다 대고 제임스는 말했다.
“레아, 나와 결혼하면 너는 무조건 러셀 가문의 가주가 될 수 있어. 그리고 우리 둘의 결합은 세계 최고의 가문이 탄생하는 것과 마찬가지지. 제대로 잘 생각해 보라고.
그딴 동양인과 매직 마스터이자 포터 가문의 수장인 나와는 비교도 할 수 없다는 것 말이야. 후후.”
“저 이씨……!”
평소 같았으면 영어로 말해서 못알아들었을 터였다.
하지만 여전히 통역 마법을 사용하고 있었기에 100% 리얼하게 알아들을 수가 있었다.
뭐라고 더 욕을 하려고 했지만, 엘레노아의 만류로 꾹 참아야 했다.
“후우, 레아. 그런데 어머님은 괜찮으셔?”
“아, 네. 강하신 분이라 테러범죽이겠다고 난리를 치셔서 제가 억지로 집에 돌려보냈어요.”
“아…… 헌터셔?”
“네, A급 헌터에요.”
“혹시나 해서 물어보는 건데. 아버지도 헌터셔?”
“아, 그건 아니에요.”
“아니야?”
“네.”
“신기하네. 아무리 재벌이라도 일반인과 S급이 아닌 헌터와 결혼하는 건 그리 흔한 일이 아닌데.”
“아버지가 어머니의 싸우는 모습에 반해서 거의 3개월을 쫓아다녔다고 하더라고요.”
“아…… 그, 그래?”
“네.”
조금 황당한 러브스토리였다.
천하의 러셀이 S급도 아니고 A급 헌터의 뒤를 졸졸 따라다닌다는 상상을 하니 개그가 따로 없었다.
하지만 비하인드 스토리는 이게 끝이 아니었다.
“너무 졸졸 쫓아다니다 보니 어머니가 나중엔 너무 귀찮아서 아버지를 두들겨 팼다고 하더라고요.”
“뭐?!”
아무리 A급 헌터라고 하지만, 일반 귀족도 아니고 세계급 가문인 러셀 가문의 직계를 패다니.
‘엘레노아의 어머니는 젊었을 때부터 장난이 아니었네.’
첫인상부터 괄괄한 느낌을 주더니 인상과 행동이 일치하는 여인이었다.
“아 참.”
“응?”
“테러 배후 누군지 아셨죠. 그거 때문에 늦게 오신 거 같던데.”
“아, 음……."
요한은 잠시 망설였다.
배후는 확실했지만, 상대가 엘레노아와 같은 러셀 가문이라는 게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엘레노아와 브루마 러셀 그 자식이랑 사이는 좋지 않아 보였지만, 그래도 사람 일은 모르는 일인데…….'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이 당연한 말이 왜 존재하겠는가?
망설여지는 건 당연했다.
“왜 그러세요?”
엘레노아는 그의 눈빛과 표정으로 요한의 생각을 대충 파악할 수가 있었다.
자신 때문에 말하는 것을 망설이고 있다고.
“음…… 뭐, 이렇게 된 이상 말을 안 할 수는 없었겠지. 이번 테러의 배후는 브루마 러셀이야.”
삽시간에 엘레노아의 표정이 무너졌다.
까득-!
전혀 그녀답지 않은 이 갈기까지 등장했다.
그나마 어렸을 때부터 감정을 드러내지 않아서 다행이지 만약에 조금이라도 감정을 드러내는 성격이었다면, 온갖 욕지거리를 내뱉을 것이었다.
“브루마 러셀……!”
진정으로 폭주하기 직전이었다.
***
엘레노아는 곧바로 브루마 러셀에게 찾아가려고 했다.
찾아가서 전부 다 작살 내놓으려고 했다.
하지만 요한이 말렸다.
“왜 그러세요. 이 미친X이 무슨 짓을 했는데.”
“워, 워. 진정해. 나도 마음 같아선 녀석을 당장이라도 족치고 싶은데. 지금 녀석을 족치면 죄 없는 놈 하나 잡는 거나 마찬가지잖아.”
“증거가 없어서 그래요?”
“아니, 아니. 증거는 중요하지 않아. 녀석은 무조건 당해. S급도 아니잖아. 우린 S급이 2명이니까, 녀석이 아무리 애를 써 봐도 당할 수 밖에 없겠지. 내가 원하는 건 그냥 당하는 게 아니야.”
“그냥 당하는 게 아니라고요?”
엘레노아는 요한이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이해하지 못했다.
“해치우더라도 완벽하게 완전한 파멸을 원해. 어차피 죽이진 못할 거 아니야?”
“……네.”
영국엔 사형 제도가 없어진 지 꽤 오래되었다.
또 아무리 죽을죄를 저질렀다고 해도 러셀 가문의 핏줄을 죽게 내버려 둘 리가 없었다.
요한과 엘레노아가 녀석을 단죄한다고 해도 제대로 된 증거 없인 녀석이 동정받을 명분이 생기기 마련이었다.
“그런 일말의 동정의 여지도 없이 확실한 파멸. 러셀이란 성을 잃게 되는 일 정도는 벌어져야 진정한 단죄이자 복수라고 할 수가 있겠지.”
“알겠어요. 이번엔 요한 씨의 의견을 따를게요.”
“고마워.”
실제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요한 같은 사람이 더 무서웠다.
화가 난다고 그 자리에서 화를 내는 사람은 다혈질로 보일 수 있겠지만, 양은 냄비처럼 빠르게 식기도 했다.
하지만 화를 낼 타이밍을 꾹 눌러 참고 제대로 된 복수를 할 타이밍을 잡는 사람은 정말 위험했다.
아주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복수하는 거라 준비 자체가 불가능했다.
“일단 사건 정리하고. 스카이 포탈 처리부터 하자.”
“네, 알겠어요.”
***
이번 런던 러셀 호텔 테러 사건은 전 세계에서 주목하는 사건이 되었다.
시대가 변하고 흐르면서 헌터와 마석이 사회의 중심이 되었다.
석유 시대는 끝이 나고 석유로 막대한 부를 이루었던 중동의 바람도 끝이 났다.
미국을 포함한 메이저 석유 회사는 도산했고, 선진국들은 더는 중동에 군사를 파견하지 않았다.
UN은 여전히 남아 있었지만, 헌터가 없는 UN은 전혀 힘이 없었다.
서방 세계의 관심이 멀어지자 테러 단체는 굳이 서양을 공격할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요즘엔 미국같이 선진국은 옛날처럼 테러 좀 당했다고 전쟁을 일으키지 않았다.
이젠 전쟁 대신에 무시무시한 능력을 갖춘 정예 헌터를 해당 국가에 투입했다.
그래서 테러와 조금이라도 관련있는 테러 단체는 모조리 학살했다.
보통 테러가 여론을 일으키기 위해서 벌였던 행동이었는데, 이 정체를 알 수 없는 헌터는 민간인이나 일반인은 전혀 알 수 없을 만큼 은밀하게 임무를 수행했다.
실제로 이라크의 알람투카라는 테러 조직은 순수하게 인도적 차원에 배치된 UN의 미국인 10명을 폭탄 테러로 사살했다.
분노한 미국은 이름조차 알 수 없는 비밀 헌터를 파견했다.
개인인지, 팀인지조차 알 수 없는 이들은 작전 개시 2주 만에 알랍투카는 물론이고 은밀히 알람투카를 지원하던 이라크 군부의 고위직마저 전부 암살하는 혁혁한 전과를 세웠다.
군부로선 날벼락을 맞은 셈이었다.
미국에 강하게 항의했다.
하지만 돌아온 건 싸늘한 비웃음뿐이었다.
‘우리가 했다는 증거가 있나?’
'.......'
당연히 없었다.
있을 리가 없었다.
섀도 솔져라고도 불리는 이 학살자들은 절대 증거를 남기지 않았으니까.
예전이었다면, 그래도 중동 국가와의 관계를 생각해서 어느 정도 미국이 양보를 해 주었을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중동과 관계를 전혀 생각할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어디까지나 시비를 건 건 테러 단체였고, 그 테러 단체를 군부에서 암암리에 지원하고 있었다.
만약에 미국이 중동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의지만 있었다면, 군부 전체가 무너질 수도 있었다.
미국의 협박에 군부는 입을 다물고 있어야 했다는 일화는 이젠 매우 유명해 일반인도 알고 있었다.
이런 일화가 있긴 했지만, 중동의 테러 단체가 서방 세계를 테러하는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에 런던에서 가장 큰 호텔 중 하나인 러셀 호텔에서 테러가 발생했으니 난리가 날 수밖에 없었다.
테러 자체로도 문제였지만, 그 대상이 러셀 가문이 직접 운영하는 호텔이라는 게 더 이슈였다.
[국제 커뮤니티 I]
- 와, 테러 단체가 어딘지 몰라도 이제 X 됐다. 러셀 가문을 건드렸네.
- 어떻게 건드릴 곳이 없어서 러셀을 건드렸냐.
- 미국보단 나은 상대이긴 한데.
가문으로 따지면 러셀이 최악이지. ㅋㅋ.
- 맞음, 그래도 다른 가문과 달리 러셀 가문은 보유한 헌터가 많은 가문이잖아. 보통 해당 국가의 헌터 협회와 협의를 거치는 것과 달리 공격당하면 바로 수호자들을 투입해 버리잖아.
- 어떨 때는 직계가 바로 가더라.
- 역시 러셀 가문 클래스.
- 하긴, S급은 드물어도 A급은 널린 게 러셀이니까.
수호자는 러셀 가문이 직접 운용하는 헌터를 지칭하는 단어였다.
그들은 이름에 걸맞게 러셀 가문을 지키는 것을 최우선으로 하는 조직이었다.
사람들은 러셀 가문이 곧바로 범인을 색출해 그곳을 쑥대밭으로 만들 것을 기대했다.
하지만 의외로 러셀 가문은 조용했다.
조용히 호텔 사고 뒤처리만 할 뿐이었다.
그 시각, 요한은 엘레노아와 함께 스카이 포탈을 향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러셀 길드는 무리지?”
“네, 베트남 일이 좀 많아져서요.
아무래도 러셀 길드 말고 수호자들을 좀 써야 할 것 같아요.”
“아, 그 러셀 가문 직속 헌터 부대?”
“네.”
“뭐, 나야 딱히 상관은 없지만.”
“최대한 방해는 안 되게 할게요.”
“괜찮다니까.”
누가 따라오든 딱히 상관은 없었다.
어차피 쪽수 채우기밖에 더 되겠는가?
‘느긋하게 싸울 거면 딱히 필욘없지만, 스카이 포탈은 느긋하게 할 수는 없단 말이지. 어떤 적이 있을 줄 알고.’
조심 또 조심밖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뭐, 러셀 가문의 수호자들 정도면 나쁘지는 않겠지.’
그렇게 기대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기대는 며칠 후 와르르 무너졌다.
“……죄송해요. 쓸 만한 녀석들은 전부 다른 가족들에게 배속이 됐어요. 제가 데려올 수 있는 이들은 예비대나 아직 수련생이 전부라……."
정말 말 그대로 다들 늙거나 너무 어렸다.
“싸울…… 수는 있는 거지?”
그게 제일 중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