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왜애애앵-!
러셀 호텔은 지금 비상사태였다.
콰르릉-!
“꺄악!”
“어머, 어머!”
런던 시내 중심에 우뚝 서 있는 호텔에서 굉음이 일어나며 한쪽이 무너지고 있었다.
그야말로 인세에 강림한 지옥이었다.
촤아악-!
“어이, 거기 제대로 진압해!”
“여긴, A-6. 화력이 너무 세다.
4층에서 시작한 불이 6층까지 옮겨 붙었다. 현재 장비론 도저히 불을 끌 수가 없다. 다시 한번 더 알린다. 이번에 발생한 불은 보통 불이 아니라 마나 폭탄으로 발생한 불이라 쉽게 꺼지지 않는다. 어서 지원을 바란다.”
치익-!
[조금만 기다려 현재 런던 북부에서도 화재가 발생해 인원 장비가 그곳으로 향했다. 당장 지원은 힘들다.]
“젠장, 거긴 미미한 화재잖아!!”
쾅-!
런던 소방 대장은 무전기를 거칠게 던졌다.
한국에선 소방 장비 부족으로 절대 이럴 순 없겠지만, 이곳에만 여분의 무전기가 몇 대 더 있었다.
이런 사소한 파손은 굳이 파손등록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무전기쯤이야 그냥 요청만 하면 얼마든지 지원받을 수 있을 테니까.
콰르릉-!
열심히 물을 때려 박고 있었지만, 도저히 꺼질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오히려 한쪽이 붕괴하며 자칫 건물 전체가 한쪽으로 무너질 상황이었다.
“제기랄, 서쪽 지역 대피는 어느 정도 진행됐어?!”
“그, 그게. 대, 대피는 진행 중입니다만. 시간이 너무 부족합니다.”
“뭐, 어쩌라고!!”
인원, 장비는 물론이고 시간까지 부족했다.
이대론 역대급 재난 사태를 갱신할 뿐이었다.
챙그랑-!
“12층 생존자 3명 구출했습니다!!”
그나마 주변에 있던 헌터들의 활약 덕분에 인명 피해는 첫 폭발 이후 발생하지 않았다는 게 위로 아닌 위로가 되었다.
‘제발, 제발!!’
건물이 무너질 수밖에 없다면, 어떻게든 인명 피해는 막아야 했다.
사방이 관광지라 어디로 무너뜨리더라도 큰 피해가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
그르르릉-!
“거, 건물이!!”
더는 버틸 수 없었는지 건물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으아아악!!”
몇 명의 소방관이 비명을 질렀다.
그런데 그때였다.
지잉-!
“어, 어?!”
“거, 건물이 복구되고 있어!!”
“불도 꺼지는 중이야!!”
“기, 기적이다!!”
“아니야, 저길 봐!”
얼굴이 새까맣게 그을린 소방관 1명이 한쪽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매, 매직 마스터?!”
“제임스 포터!!”
흔히 TV에서 볼 수 있는 전형적인 마법사 복장의 남성 1명이 공중에 뜬 채로 천천히 호텔 건물로 접근하고 있었다.
그의 양손엔 은은한 푸른빛이 돌고 있었으며 러셀 호텔에도 그 빛이 나는 중이었다.
빛에 휩싸인 호텔이 서서히 복구되며 모든 것을 잡아먹을 것 같았던 불길도 서서히 잡히고 있었다.
“와아아아!!”
무려 3시간이 넘는 목숨을 건 사투에도 불이 잡히기는커녕 오히려 더 미친 듯이 타오르던 불길이었다.
철저히 장비를 착용하고도 제대로 접근할 수 없었던 불길이 1명의 등장으로 꺼지기 시작한 것이다.
소방관들은 장비를 벗고 미친 듯이 환호성을 내질렀다.
그들의 눈앞에서 기적이 펼쳐진 것이었다.
털썩.
공중에서 움직이던 매직 마스터가 땅으로 내려왔다.
“매직 마스터님!!”
우르르-!
소방관들은 물론이고 근처를 통제하던 경찰관들도 다가왔다.
“이곳 책임자입니까?”
“아, 예. 제가 런던 소방 대장입니다.”
“반갑군요. 불은 꼈고 건물 붕괴도 막았으니 나머지를 부탁드려도 될까요?”
“아, 예. 물론입니다. 잠시였지만, 함께해서 영광이었습니다.”
“영광은 무슨.”
매직 마스터는 부드럽게 미소를 지었다.
그는 40대라곤 믿기 힘들 미남이었는데, 자연스러운 2:8 가르마가 매력적인 꽃중년 그 자체였다.
어지간한 영화배우보다도 훨씬 잘생겼다.
전형적인 영국 신사 같은 이미지이기도 했다.
타악-!
그때 매직 마스터의 옆으로 여성 1명이 나타났다.
“……아저씨가 여긴 무슨 일이야?”
바로 엘레노아 러셀, 러셀 가문의 막내 손녀딸이었다.
“오오, 레아. 오랜만이구나. 그동안 잘 지냈니?”
“러셀이라고 부르라고 했지. 난 당신에게 이름을 허락한 적이 없어."
부드러운 제임스의 태도와는 달리 엘레노아의 태도는 냉랭했다.
요한과 함께 있을 때는 이젠 거의 볼 수 없는 얼음 여왕다운 모습의 재림이었다.
“후후, 역시 레아 너는 정말 화를 낼 때가 가장 섹시하다니까.”
“변태 X끼.”
“큭큭, 너의 그 거친 입도 참 좋아하지.”
"......."
엘레노아는 이미 알고 있었다.
제임스 포터는 도저히 구원 자체가 불가능한 미친 변태 영감이라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대할 때마다 불결하고 짜증이 났다.
대놓고 혐오스럽다는 눈빛을 보내 봐도 소용이 없었다.
“이제 좀 그만 튕기고 청혼받아 줄 때 안 됐나?”
“닥X.”
분명히 거절 의사를 밝혔음에도 청혼을 끝없이 했다.
어떻게 보면 러셀 가문에 대한 도전이라고 해도 부족함이 없었다.
싫다고 명시했음에도 계속 들이대는 행위는 민폐고 범죄에 가까웠으니까.
하지만 상대가 나빠도 너무 나빴다.
매직 마스터 제임스 포터.
영국의 공식 랭킹 1위 헌터이자 S급 헌터, S급 위의 S급 헌터라는 말이 최초로 등장하게 만든 헌터.
피닉스 길드 마스터.
거기에다가 제일 중요한 이력이 바로 포터 가문의 가주라는 점이었다.
영국엔 대표적인 3개의 가문이 존재했다.
러셀은 당연했고 스펜서 가문과 바로 포터 가문.
헌터 시대 이후 반짝 성장한 러셀 가문과 달리 포터 가문과 스펜서 가문은 전통적인 귀족 가문이었다.
특히 포터 가문은 제임스 포터가 S급 헌터가 된 이후로 영국 내 한정으론 최강 취급을 받고 있었다.
그만큼 제임스 포터를 마스터로한 피닉스 길드의 영향력이 어마어마했다.
길드에 가입한 인원만 일반인 포함 5만 명이 넘을 정도로 막대한 규모였다.
최근 조용한 스펜서 가문을 제외하면 영국 내에서 가장 격렬하게 부딪히는 2개의 가문은 경쟁도 하지만, 혼인 관계로 엮이는 사이이기도 했다.
가주인 제임스 포터가 아직 미혼이었다.
장로들은 40살이 넘은 제임스 포터가 하루라도 빨리 결혼을 했으면 하는 눈치였지만, 엘레노아에 푹빠져 있는 제임스 포터는 결혼하려는 마음이 없어 보였다.
엘레노아가 제임스의 마음을 받아 준다면 모를까, 혐오할 정도였으니 포터 가문의 장로들은 속이 터질 지경이었다.
타악-!
“레아, 대충 마무리된 거야?”
그때 모든 볼일은 끝마친 요한이 모습을 드러냈다.
악령은 시체 수납으로 넣어 두었다.
“아, 요한 씨.”
엘레노아의 태도는 갑자기 180도 달라졌다.
그 찬 바람이 쌩쌩 부는 얼음 여왕은 사라지고 그저 말수가 적을 뿐인 엘레노아가 되어 있었다.
“어떻게 된 거예요?”
엘레노아의 물음에 요한은 주변을 살짝 훑어보았다.
듣는 귀가 너무 많았다.
“……자세한 건 나중에 알려 줄게.”
“네, 그만큼 심각해요?”
“응, 좀 예민한 부분이 있어서.”
“네, 그래도 무사해서 다행이에요."
“다행은 무슨, 그깟 놈들 이긴게 뭐 대수라고.”
“그래도요.”
특히 요즘 엘레노아는 요한을 걱정하는 게 거의 취미처럼 굳어 가고 있었다.
하도 주변에 사고가 잦다 보니 걱정이 안 될 수가 없었다.
꿈틀.
조용히 옆에 있던 매직 마스터의미간이 꿈틀거렸다.
“이런, 이런. 처음 보는 동양인인데. 자네는 누군가?”
“Who are you? 나 말하는 거야?”
“후우, 요한 씨. 이 사람은 매직마스터 제임스 포터예요.”
“아……! 내가 왜 못 알아봤지?”
사진으론 수십 번도 더 본 얼굴이었다.
그런데도 실제 얼굴을 못 알아본 것이다.
실례되는 행동이었지만, 요한은 제임스의 얼굴을 빤히 보더니 고개를 돌려서 엘레노아를 보았다.
“포샵 엄청 심하네.”
“……쓸데없는 허세가 심한 인간이라서 그래요.”
“쯧쯧, 나이도 적지 않은데 유치하게 무슨 짓이래.”
“그러게나 말이에요.”
영어 못하는 요한이 중간에 껴있으니 원활한 의사소통이 어려웠다.
보통의 상황이었다면, 불편한 관계가 형성되었을 것이었다.
하지만 상대는 영국 최고의 헌터제임스 포터였다.
“Translate (통역).”
제임스가 마법을 사용하자 그의 목에서 빛이 났다가 사라졌다.
“아아, 들립니까?”
“어, 어?”
요한은 분명히 영어만 사용하던 상대가 능숙한 한국어를 구사하자 꽤 놀란 눈치였다.
‘저게 진짜 마법?’
매직 마스터가 다양한 마법을 사용하는 건 유명한 사실이었다.
‘와, 진짜 단순한 스킬이 아니라 다양한 마법을 익힐 수 있다는 게 거짓말이 아니었구나.’
통역 마법은 S급 헌터의 스킬론썩 어울리지 않았다.
아무리 봐도 익힌 마법이라고 보는 게 맞았다.
“이제 좀 대화가 되겠군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그쪽 이름은 모르겠지만, 내 피앙세와는 친하게 지내시는 거 같군요.”
“피앙세?”
요한은 잠시 제임스의 말을 이해 하지 못했다.
“제임스 포터, 헛소리할 거면 당장 꺼져!!”
엘레노아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 어떤 때보다 더 진심으로 화를 내고 있었다.
‘피앙세? 그게 무슨 뜻이었지?’
헌터, 프로그래머 분이를 제외하면 썩 뛰어난 지적 능력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그렇다고 무식하지는 않았기에 조금 뒤늦게 단어가 생각이 났다.
“레아, 너 약혼했어?”
“아니요!!”
엘레노아는 필사적으로 부정했다.
그녀답지 않은 적극적인 감정 표현이었다.
"......."
제임스 포터의 표정도 좋지 못했다.
무슨 심정인지 안 그래도 잔뜩 화가 난 엘레노아를 더 건드렸다.
“왜 그래, 피앙세. 우리 약혼한 사이잖……."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엘레노아의 검이 뽑혀 나왔다.
스앙-!
그녀의 장기 중의 하나인 진동검이었다.
“으헛!”
제임스 포터도 깜짝 놀라 공중으로 몸을 피했다.
지금까지 아무리 그녀를 놀리거나 괴롭히더라도 검을 뽑았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닥X라고 했지!!”
하지만 지금은 화가 나도 단단히나 있었다.
“이봐, 진짜 베일 뻔했잖아.”
“베었어야 했어.”
느끼한 말투를 기본 장착한 제임스 포터였지만, 목이 달아날 뻔한 상황에까지 느끼할 수는 없었다.
“너무하잖아?”
“뭐야, 레아. 저 녀석이 너 귀찮게 해?”
“네?”
무슨 사이인지 정확히 알 수 없는 상황에선 중간에 끼는 걸 참고 있었던 요한이었다.
하지만 이번 행동으로 파악할 수 있었다.
이들의 관계는 남자 쪽의 일방통행이란 걸.
엘레노아는 요한에게도 꽤 중요한 사람이었다.
무려 길드 마스터이니까.
“어이, 느끼한 아저씨. 레아가 싫다잖아. 왜 이렇게 추잡하게 굴어.”
“뭐라고?”
안 그래도 제임스 포터는 요한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여전히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그가 등장하고 엘레노아의 태도가 너무 눈에 띄게 부드러워졌기 때문이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함께했던 자신에게는 단 한 번도 보여 준 적이 없는 모습이었다.
“그래, 재밌군.”
털썩.
제임스 포터는 다시 땅에 내려왔다.
33장. 매직 마스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