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간단하게 짐을 풀고 생각을 끝낸 요한은 곧바로 밖으로 나갔다.
스카이 포탈을 살펴보기 위해서였다.
그러면서도 감각은 여전히 활성화되어 있는 상황이었다.
‘MUK 녀석들. 여기까진 따라오지 않는 건가?’
아무래도 사람이 적은 곳은 걸릴 확률이 높아서 조심하는 듯했다.
‘쩝, 따라왔으면 잡을 수 있었을 텐데.’
아쉬운 마음이 컸다.
웅성웅성.
“어이, 거기 좀 더 움직여 봐. 왼쪽이 뒤틀렸잖아!!”
탕탕-!
스카이 포탈이 훤히 보이는 해변엔 헌터와 짐꾼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한때는 유명한 관광지였던 이곳은 이제 스카이 포탈 자체를 관리하는 마을이 되었다.
영국 정부는 특별 명령을 내려서 이곳에 거주하던 마을 사람들을 전부 다른 곳으로 이주시켰다.
다행히 세인트 아이브는 도시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할 정도로 적은 인구가 살고 있었다.
보통 스카이 포탈이 발생한 도시는 최소 20만 명 이상의 도시였다.
그러나 세인트 아이브는 1만 1천명 정도의 인구만 거주하고 있을 뿐이었다.
1만 1천 명 정도는 협회 자체 예산으로도 얼마든지 긴급 이주를 시행할 수가 있었다.
시민들을 이주시킨 협회는 협회자체 공격대와 명문 길드 공격대와 연합해 스카이 포탈을 공략하는 중이었다.
참고로 이곳 스카이 포탈의 이름은 세인트 포탈이었다.
촤아악-!
세인트 포탈의 특징이라면, 바닷가에 만들어진 포탈답게 파도를 타고 포탈로 출입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대신 포탈을 오갈 때마다 흠뻑 젖는다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다.
“으으, 정말 싫어!”
한 여성 헌터가 몸을 부르르 떨며 진저리를 쳤다.
포탈 입구의 물이 그냥 물도 아니고 점성이 있는 바닷물이다 보니 한 번 오갈 때마다 묘한 비린내가 풍겼기 때문이다.
“도대체 왜 이 포탈은 이따위인 거야.”
“그러게 말이야. 다른 포탈처럼 얌전하면 좀 좋아.”
“어우, 열 받아.”
여성 헌터로만 이루어진 공격대는 연신 투덜거렸다.
엘리자베스 길드 소속인 그녀들은 영국 정부도, 협회 소속도 아니었다.
그녀들은 영국 왕실의 엘리자베스 여왕의 직속 길드 소속 공격대였다.
영국 왕실 소속 공격대는 총 3개로(레드 로즈, 화이트 로즈, 블랙로즈) 일반적인 공격대 규모보단 좀 큰 편이었다.
3개인 이유는 3교대를 위해서였다.
일단 1개는 예비대로 휴식을 취하고, 나머지 1개는 여왕이나 왕족경호, 나머지 1개는 던전 사냥을 했다.
아무리 좋게 말해도 왕족을 지키는 일종의 명예직이었다.
연봉을 따로 받는다고 하지만, 그들은 B급 헌터.
연봉 정도야 사냥 몇 번 돌면 충분히 벌 수 있는 금액이었다.
하지만 엘리자베스 길드 대원들은 그 누구도 후회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다.
영국인으로서 여왕과 왕족을 지키는 것은 일생의 영광이었으니까.
"음."
팔짱을 낀 채로 고민하던 요한이 스마트폰을 꺼내 들어서 스카이 포탈을 찍었다.
사진을 사용해 정밀 분석 프로그램을 돌려 보았다.
그러면서 손가락으로 빠르게 타자를 치기 시작했다.
[안내인 씨, 스카이 포탈을 외부에서 분석 가능할까?]
음성 인식도 되기에 굳이 손으로 치지 않고 말로 해도 됐지만, 아무래도 주변에 누가 있으면 혼잣말하는 것 같아서 민망했다.
타자 치는 게 어려운 것도 아니고 민망할 바에야 그냥 손가락만 조금 고생하는 게 나았다.
[확인해 보겠습니다.]
스마트폰 화면 전체에서 로딩 화면이 나오며 가운데 ‘분석 중’이라는 메시지가 떠올랐다.
[분석이 끝났습니다.]
[오, 뭔데?]
[안타깝지만, 자세한 정보는 아무래도 외부에서 알 수가 없었습니다.]
[음, 그건 좀 아쉽네.]
[자세한 정보는 알 수 없었지만, 대략적인 정보는 파악할 수가 있었습니다.]
[오, 어떤 거?]
영국 협회는 심술인지 스카이 포탈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공유해 주지 않았다.
스카이 포탈 공략 의뢰는 정부가한 것이지 협회가 한 게 아니라는 게 이유였다.
같잖은 자존심이라고 생각했다.
‘병X들. 정보 싸움으로 날 이길수 있을 것 같아. 너희들에겐 절대 협조 없다.’
영국 헌터들은 몬스터 하나에 대한 정보를 얻으려고 해도 몸으로 부딪치고 조사해야 했다.
하지만 요한은 몬스터에 대한 정보 정도는 정밀 분석 프로그램의 사진 1방이면 깔끔하게 끝낼 수 있었다.
만약에 영국 협회가 협조적으로 나왔다면, 그에 대한 보답으로 그가 스카이 포탈을 공략하며 얻은 정보를 공유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협회는 정보 공유를 거부했다.
그런 생각 없는 행동이 나중에 어떻게 적용될지 모른 채로.
[일단 스카이 포탈의 지형은 바닷속입니다.]
[바닷속이라고?]
[다만, 숨을 쉴 수 있는 형태인데. 문제는 움직임이 느려진다는 점입니다.]
[아, 그와 비교해서 포탈 안에서 등장하는 몬스터들은 빠르겠지?]
[예, 그들은 해저가 삶의 터전이니까요.]
[역시.]
요한의 미간이 한껏 찌푸려졌다.
‘바닷속이라…….'
숨을 쉴 수는 있는 특이한 형태이긴 했지만, 아무래도 걱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강한 언데드야 알아서 적응하겠지만, 약한 좀비 같은 경우엔 잘적응하려나?’
아무래도 그 부분은 우려됐다.
직접 테스트해 보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당장은 스카이 포탈로 향하지 않았다.
‘아직 휴가 안 끝났어.’
성 투어는 포기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휴가를 포기한건 아니었다.
‘런던도 휴가를 즐기기 훌륭한 동네니까.’
대도시였지만, 서울처럼 마천루의 도시가 아니었다.
유럽 특유의 감성이 살아 있는 곳이라 휴식하기 너무 좋은 동네였다.
‘아쉬운 점이라면, 영국은 베트남처럼 약소국이 아니라 뜯어낼 게 별로 없다는 거지만.’
애초에 영국이 요한에게 스카이 포탈 공략을 의뢰한 것도 급해서가 아니었다.
공략 자체의 진도는 지지부진했지만, 헌터 선진국답게 훌륭하게 제어하고 있었다.
주기적으로 발생하는 스카이 웨이브도 사전에 감지하여 큰 피해 없이 막아 내었다.
영국 정부가 요한에게 공략 의뢰를 한 이유는 다크 엘프 포탈처럼 새로운 무역로를 개척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세인트 포탈 자체에 위협을 느끼고 있진 않았다.
“여기 바다 예쁘네.”
“네, 영국인에겐 여긴 훌륭한 휴양지 중 하나니까요. 스카이 포탈이 나오기 전엔 바닷가를 따라서 귀여운 상점이 많았어요.”
“뭐, 즐길 게 줄어든 건 아쉽긴 하네. 그래도 일단 런던으로 돌아가자.”
“네, 어차피 오늘은 대충 분위기만 파악하려고 온 거니까요.”
“드라이브도 하고 좋지.”
그냥 던진 말이었지만, 엘레노아의 표정이 묘했다.
“가요.”
“그래.”
정말 잠깐 구경만 하러 온 것이기에 금방 런던으로 돌아갔다.
"......."
런던으로 향하는 차 안.
딱히 오가는 말은 없었다.
엘레노아는 원래 말이 잘 없는 편이었고 요한은 말을 걸면 말이 많은 편이었지만, 굳이 말을 걸지 않으면 말이 없는 편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둘이 어색한 사이는 아었다.
말이 없어도 어색하지 않은 사이가 있는데 요한과 엘레노아가 바로 그런 관계였다.
지잉-!
“!!”
콰앙-!
그런 평화는 오래가지 못했다.
기운을 느낀 그 순간에 차가 폭발했기 때문이다.
아무런 대비가 되지 않은 갑작스러운 폭발.
파박-!
“괜찮으십니까?”
“끄응, 난 괜찮아.”
타이밍 좋게 엘라드와 엘리니아가 요한을 구해 주었다.
그림자에 숨어서 요한과 늘 함께 하기에 빠르게 대처할 수가 있었다.
"......."
엘레노아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알렌이 죽었어.”
엘레노아의 운전기사가 죽었다.
언제 요한과 만난 적이 있는 그 기사는 아니었다.
아무리 엘레노아가 고귀한 핏줄이라고 해도 계속 운전기사를 헌터로 쓸 수가 있을 리가 없었다.
오히려 낭비였다.
참고로 엘레노아는 여러 명의 운전기사를 데리고 있으며 대부분이 일반인이었다.
오늘 함께한 남성 운전기사는 알렌이란 이름으로 30대의 평범한 가장이었다.
엘레노아가 영국에 있을 때 데리고 다니는 운전기사로 평소엔 딴일을 했다.
이 폭발로 인해서 한 무고한 가정이 남편과 아버지를 잃어버렸다.
으득-!
얌전한 엘레노아마저 이를 갈 정도로 분노했다.
“쳇, 실패했군.”
“미꾸라지 같은 놈. 그걸 피하다니.”
“너희들은?”
폭발 이후 모습을 드러낸 건 MUK 조직원들이었다.
‘허 참, 이렇게 뒤통수를 칠 줄이야.’
런던에서만 감시하는 줄 알았다.
세인트 아이브에 없다고 안심하고 있던 차에 이런 기습적인 공격을 하다니.
‘이건 인정할 수밖에 없겠어.’
확실히 괜찮은 기습이었다.
물론 엘레노아가 진짜로 분노한 것만 빼면 말이다.
“너희들 절대 용서 못 해.”
“아직 안 끝났다. 이제 시작일 뿐이다.”
삑-! 콰가가강-!
다시 한번 더 폭발이 발생했다.
땅속에서부터 강력한 폭발이 일어나 요한과 엘레노아를 덮쳤다.
이번에도 둘은 폭발을 버텨 냈다.
“죽어라!!”
“엘레로타!!”
“두렌 피오라!”
콰가강-!
마치 예상한 듯이 마법사들의 지팡이가 빠르게 움직이며 무차별적으로 폭격을 날리기 시작했다.
꼭 전쟁이라도 벌어진 것처럼 사방이 진동했다.
파악-!
엘레노아는 엄청난 폭발에도 불구하고 마나로 몸을 보호한 채 밖으로 뛰쳐나갔다.
“막아!!”
“엘레노움, 엑스펙토!!”
상대방을 속박하는 마법이 사용되었다.
촤악-!
빛나는 밧줄이 엘레노아의 몸을 휘감았다.
“됐다!”
마법을 성공시킨 마법사가 환호를 내질렀다.
하지만 환호는 그렇게 오래가지 못했다.
파직-!
“허억!”
엘레노아가 몸에 힘을 주자 속박마법이 너무 쉽게 파훼됐기 때문이다.
아무리 힘의 차이가 있다고 해도 이건 좀 심했다.
그러나 엘레노아의 스킬 구성을 아는 사람이라면 쉽게 이해했을 것이다.
그녀가 가진 패시브 스킬 중의 하나가 바로 [마법 무력화]였다.
이 스킬 덕분에 엘레노아는 마법을 주력으로 사용하는 몬스터나 헌터에 거의 무적에 가까운 위력을 발휘했다.
하지만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자신의 스킬과 스탯은 본인만 아는 게 관례였다.
엘레노아는 가족에게도 세부 사항을 알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한은 알고 있었다.
정밀 분석 프로그램으로 몰래 돌려 보았기 때문.
굳이 아는 척은 하지 않았다.
남을 몰래 촬영하는 건 나쁜 행동이었기 때문이다.
딱히 나쁜 의도가 아니라도 말이다.
순수 마법사의 마법이라고 해도 스킬의 영향을 벗어날 수는 없었다.
엘레노아는 은색의 검을 뽑았다.
“마, 막아!!”
콰가강-!
다시 폭발이 발생했다.
엄청난 폭발에도 엘레노아가 마음껏 뛰어다닐 수 있는 것도 다 마법 무력화 스킬 덕분이었다.
여전히 본 월을 쳐 놓고 버티는 것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었다.
‘아오, 시끄러워:폭발의 영향은 받지 않았지만, 귀는 이명이 날 정도로 띵했다.
그만큼 폭발이 엄청났다는 방증이었다.
‘레아, 잘한다.’
그래도 이젠 자신을 괴롭히던 MUK 녀석들을 혼내 줄 수 있겠다는 생각에 시원한 마음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