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시체를 되살리는 스킬인 리바이브.
“크으으으.”
되살아난 마법사의 눈이 형형하게 빛나고 있었다.
정밀 분석 프로그램으로 확인한 능력치는 그렇게 높지가 않았다.
꽤 신경 써서 일으키긴 했지만, 일으킨 시체 자체가 나약한 마법사였다.
일부 언데드 스킬을 제외하면 일으키는 시체의 질에 따라서 언데드의 강함이 결정되는 것이니 말이다.
그래도 소기의 성과는 이룰 수가 있었다.
첫 삽을 잘 떴으니 이제 리바이브 스킬을 사용할 수 있을 때마다 보관해 두었던 좋은 시체를 사용해 일으키면 되었다.
그러면 이제부턴 언데드의 질이 상상도 못 할 정도로 오를 수가 있었다.
‘흐흐흐, 조금만 기다려라.’
안 그래도 재수가 없어서 포탈을 자주 만나는데 질적 상승이 이루어진다면 무서울 게 없었다.
‘이제는 보스 몬스터 시체도 일으킬 수 있겠지?’
일단 보관해 두었던 보스 몬스터시체 1구를 꺼내서 확인해 보았다.
[오크 로드의 리바이브 레시피]
1. 상급 마석 5개.
2. 오크 대전사 머리 1두.
3. 리자드 창병 혓바닥 100개.
4. 라이어드의 뿔 200개.
5. 오크 로드의 어금니 5개.
‘……미친!!’
오크 로드를 일으킬 수 있는 레시피를 보곤 저절로 욕지거리가 튀어나왔다.
‘이 무슨 미친 레시피야?!’
2번 오크 대전사 머리 1두는 그렇다고 칠 수가 있었다.
아니, 3번인 리자드 창병 혓바닥 100개도 시간이 조금 걸리는 것뿐이지 문제는 없었다.
문제는 4번부터였다.
라이어드는 동남아시아의 우림던전 포탈에 가끔 나오는 유니크몬스터였다.
라이어드 뿔은 상당히 가치가 높은 부산물이었다.
고급 헌터 전용 장비를 만들 때 들어가고, 건강에도 좋아서 재벌들이 건강을 챙길 때 꼭 약에 첨가하기도 했다.
돈이 있어도 매물 자체가 없어서 구하기 힘든 재료였다.
‘와, 그런 뿔을 200개나 모으라고?'
직접 구하기엔 걸리는 시간이 부담스럽고, 그렇다고 구매하자니 물건도 별로 없었다.
하지만 그래도 라이어드란 몬스터가 그렇게 수준이 높지는 않았다.
문제는 마지막 5번 오크 로드의 어금니 5개였다.
‘오크 로드를 리바이브로 되살리려는데 오크 로드를 또 사냥해야 한다고?’
오크 로드는 오크 던전에 존재하지만, 문제는 고정 보스가 아니었다.
이 녀석도 일종의 유니크 보스로 보통 오크 던전의 보스 몬스터는 대전사였다.
약 10%의 확률로 오크 대전사대신 오크 로드가 보스로 존재했다.
또 오크 로드의 어금니는 개체당 1개만 존재했다.
한쪽은 부러져 있었기 때문이다.
즉, 단순히 산술적으로 계산하자면 오크 던전을 50번을 가야만이 오크 로드의 어금니 5개를 구할 수가 있었다.
오크 로드의 어금니 또한 부가 효과가 좋다는 소문 때문에 고급 아이템을 제작할 때 반드시 첨가하는 부산물 중의 하나였다.
‘일으켜야 할 몬스터의 수준이 올라가니까. 레시피의 수준도 올라 가네. 오크 로드 1마리가 이 정도인데. 더 수준 높은 보스 몬스터는 어떤 걸 요구하려나.’
상상만 해도 아찔했다.
‘이걸 어떻게 처리한담…….'
머리가 지끈거렸다.
물론 기본적인 부분은 러셀 매니지먼트에 부탁할 수가 있었다.
하지만 오크 로드의 어금니는 일정 수준을 만족해야 얻을 수 있는 부산물이었다.
일개 매니지먼트가 쉽게 구할 수 있는 아이템이 아니란 뜻이었다.
물론 러셀 가문이 운영하는 곳이라 평범한 곳은 아니지만, 그래 봤자 일반인 조직이었다.
F, E급 헌터도 있긴 했지만, 비전투 계열이라 그다지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음, 내 명령만 듣는 실력 좋은 공격대가 하나 있으면 좋긴 할 텐데.’
문제는 오크 로드를 공략할 정도로 실력 있는 애들을 휘하로 두기엔 쉽지가 않았다.
오크 던전을 쉽게 공략할 정도라면 대부분 길드 산하 공격대일 테니까.
또 공격대는 생각보다 포탈에 자주 들락거리지 않았다.
저 4, 5번 좀 구해 달라고 하면 몇 개월 혹은 1년이 넘게 걸릴 수도 있었다.
‘명령을 충실하게 수행하는 이들로만 이루어진 공격대가 필요하단 말이지. 그렇다고 언데드만 보낼 수도 없고…….'
실험 결과 언데드는 요한과 일정거리가 떨어지면 본능대로 움직였다.
스킬의 범위를 벗어났기에 버프도 받지 못하고 멍청한 야생 언데드가 되었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음, 잠시만. 나한텐 말 잘 듣는 잉여 인력이 있잖아.’
바로 뿔 달린 다크 엘프 프링고 일족 말이다.
녀석들은 요한을 구원자라 부르며 충성을 맹세했다.
그런 녀석들을 잘 다루면 굳이 직접 나서지 않아도 필요한 아이템을 구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물론 그에 합당한 보상은 내리겠지만 말이야.’
요한은 냉정하고 지독하게 이성적이며 이기적인 남자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불합리한 성격은 아니었다.
남에게 피해를 받는 것과 피해를 주는 것, 둘 다 싫어할 뿐이었다.
상벌도 확실한 편이었다.
‘좋아, 베트남에 돌아가면 녀석들에게 말해 봐야겠어.’
당장은 힘든 구석이 없지 않았다.
아무래도 다크 엘프다 보니 베트남 외에서 활동하기가 어려운 부분이 없지 않았기 때문이다.
타국으로선 몬스터가 들어오는 것이나 마찬가지일 수도 있을 테니까.
‘스카이 포탈이 하나둘씩 추가로 공략되면 이제 지구도 이종족과 인간이 어울리는 장소가 되지 않을까?’
어디까지나 상상일 뿐이지만.
“어이.”
“부르셨습니까.”
“너 생전의 기억 다 가지고 있냐?”
“일부는 가지고 있습니다.”
“네가 속한 조직에 대한 기억은?"
“있습니다.”
“오, 좋아.”
영혼을 고문해서 정보를 토해내게 만들긴 쉽지 않았다.
하지만 완벽하게 조련이 된 언데드라면 말이 달랐다.
기억만 하고 있다면, 명령 한 번이면 충분했다.
“네가 알고 있는 거 토씨 하나 빠트리지 말고 다 토해 내.”
“……명령대로.”
언데드 마법사는 기억하는 대로 자신이 몸을 담았던 조직에 대해서다 털어놓았다.
‘역시, 순수 마법사 조직이 있었어.’
의외로 언데드 마법사는 조직에 대해선 대부분을 기억하고 있었다.
기억이 없는 부분은 사적인 영역으로 생각되었다.
예를 들어서 가족이나 애인 같은 가정사를 기억하질 못했다.
‘나에겐 다행이지.’
덕분에 하늘에게 고문을 그만해도 된다는 명령을 내릴 수 있었다.
잘 짱 박아 뒀다가 나중에 마나 회복할 때나 쓰면 그만이었다.
조직의 명칭은 MUK로 M 자는 멀린을 뜻했다.
“그래서 MUK는 스코틀랜드 독립에 가장 걸림돌이 되는 러셀 가문을 무너뜨리고자 현 가주인 아널드가 가장 사랑하는 손녀인 엘레노아를 제거하려고 한 것입니다.”
“가소롭네.”
“그렇습니다.”
언데드 마법사는 기억만 가지고 있을 뿐, 현재는 뼛속까지 요한에게 충성하는 언데드일 뿐이었다.
“본부 위치는?”
“죄송합니다. 저도 본부가 어디 있는지는 알지 못합니다. MUK는 폐쇄적이고, 마법사들 사이에서도 그다지 신의가 없습니다. 정말 중요하고 높은 직책을 맡은 마법사가 아니고선 본부의 위치를 공개하지 않습니다.”
“쩝, 그건 아쉽네. 아, 그리고 마지막으로.”
“예.”
“MUK는 왜 굳이 목숨을 걸어가며 스코틀랜드를 독립시키려는 거야?”
“스코틀랜드 자치 정부는 반쯤 MUK의 하수인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영국의 간섭을 벗어나 독자적으로 세력을 일구어서 마법사만의 왕국을 건설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입니다.”
“시시하고, 유치하네.”
“그렇습니다.”
정말 시시했다.
잠시 들었던 흥미마저 빠르게 식을 정도로.
‘겨우 그런 이유로 전쟁을 한단 말이야?’
굳이 그러지 않아도 양지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며 지배력을 넓히면 얼마든지 제왕처럼 군림할 수가 있었다.
그런데도 욕심 때문에 죄 없는 이들이 피를 흘려야 했다.
‘원래는 그냥 두려고 했는데, 점점 이놈들이 도를 넘는단 말이지.’
아무리 귀차니즘이 심한 요한이라도 건드리는 녀석들마저 용서할 정도로 자비롭지는 않았다.
오히려 당한 만큼은 확실히 돌려주는 편이었다.
첫 번째야 어쩔지 몰라도 두 번째부터는 도저히 그냥 넘어갈 수는 없었다.
‘지금 당장은 힘들겠지만, 조금만 더 움직여 봐라. 제대로 박살을 내주마.’
일단은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
요한은 오늘도 온종일 엘레노아와 함께 런던 시내를 관광했다.
“으아, 맛있었다.”
“다행이에요. 맛있게 드셔서.”
“확실히 순수 영국 음식만 아니면 다 맛있어.”
“저도 벌써 한식이 그리울 정도예요.”
"큭큭."
영국인과 영국 음식 얘기를 하는 건 언제나 재밌었다.
‘아직도 근처에서 지켜보기만 하고 있네.’
마법사들은 여전히 멀찍이 떨어져서 요한의 신경만 툭툭 건드렸다.
의외로 참을성이 좋은 녀석들이라고 생각했다.
그때였다.
요란한 배기음과 함께 검은 SUV3대가 요한과 엘레노아 근처로 다가왔다.
문이 열리고 그곳에서 양복과 선글라스를 낀 남성 7명이 내렸다.
"MS 러셀, Mr 킴.”
"누구지?”
"SIS 소속 스미스입니다.”
자신을 소개한 건 7명 중에서 유일하게 탈모로 인해서 머리가 민둥산인 남자였다.
“총리께서 여러분을 뵙고자 합니다. 혹시 시간이 있으시면 함께 좀 가셨으면 좋겠습니다.”
“이거 상당히 예의가 없으신 분들이네.”
상대가 SIS이든, SAS이든 상관없었다.
사전 약속도 없이 대뜸 위압적으로 다가와 함께 가자니?
무슨 범죄자 체포하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기분이 상한 건 통역을 하는 엘레노아도 마찬가지였다.
“지금 러셀 가문과 한번 해보자는 의미야?”
“그, 그게.”
SIS 대원들은 날카로운 요한과 엘레노아의 반응에 살짝 당황했다.
그들은 이 정도로 높은 수준의 헌터를 상대하는 건 처음 해보는 일이었다.
보통 일반인을 상대하는 정보 조직이었으니까.
“SIS 본부가 어디든 날려 버리기 전에 닥치고 만나고 싶으면 직접 오든가. 사전에 연락을 넣어. 절차대로 하란 말이야. OK?”
툭툭.
요한은 SIS 요원의 어깨를 치곤 엘레노아와 그대로 지나쳤다.
사색이 된 요원은 다급한 표정으로 몸을 돌렸다.
“브, 블러디 캐슬 관련한 이야기입니다!”
막 지나치려던 요한과 엘레노아는 발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아……."
SIS 요원은 아차 싶었다.
사실 블러디 캐슬 건은 총리가 직접 말할 내용이었다.
어지간하면 그냥 조용히 데리고 오라는 지시만 받았던 요원이었다.
사실 SIS 요원도 블러디 캐슬이 뭔지 잘 몰랐다.
하지만 요한과 엘레노아가 워낙 싸늘하게 대한 탓에 당황해 아무렇게나 던진 것이었다.
“방금 블러디 캐슬이라고 했어?”
‘에라이, 모르겠다.’
이렇게 된 이상 이판사판이었다.
“예, 그렇습니다. 총리님께서 블러디 캐슬 건에 대해서 두 분께 할말이 있다고 했습니다.”
“안내하지.”
“타시죠.”
‘후우, 다행이군.’
지시받은 일 외의 말도 해 버리긴 했지만, 그래도 요한과 엘레노아를 데리고 오라는 지시는 실패하지 않았다.
‘역시 헌터는 상대하기 힘들다는 말이 맞았어.’
공권력도 함부로 할 수 없는 게 헌터였으니까.
요한과 엘레노아는 SUV를 타고 의회로 향했다.
간단한 신원 확인 과정을 거치고 의회 지하의 비밀 회의실에 도착할 수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