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영국은 화려한 겉모습과는 달리 내부부터 많이 썩은 상태였다.
헌터 선진국이긴 했지만, 뿌리 깊은 지역 갈등은 헌터 시대 이후에 쭉 이어져 왔다.
특히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의 갈등은 영국 연방이 생긴 이후 최악이었다.
특히 스코틀랜드를 거점으로 하는 마법사들이 독립운동의 중심이라고 할 수가 있었다.
그들의 목적은 영국 본토에 혼란을 일으켜 그사이에 독립해 잉글랜드의 간섭 없이 마법사 활동을 하는 것이었다.
때문에, 영국 본토에 큰 영향을 끼치는 명문 가문들과 마찰이 심한 편이었다.
“어떻게 하면 좋겠소?”
“이번 작전을 위해서 들인 돈만 얼만데!!”
“마석 소모도 장난이 아니올시다.”
“끄응.”
2개의 중요한 작전이 순식간에 실패했다.
많은 공을 들인 일이라 마법사조직 내부에서도 혼란스러웠다.
획기적인 반전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제게 한 가지 생각이 있습니다만.”
그때 구석에서 조용히 있던 마법사 1명이 입을 뗐다.
“오, 그게 무엇이오?”
“최근 러셀 가문의 브루마 러셀에게 제안을 들은 게 있습니다.”
“제안?”
“예, 엘레노아를 제거하는 데 협조하면 10억 파운드와 1만 개의 중급 마석. 그리고 스코틀랜드 내에 있는 자신의 땅을 주겠다고 했습니다.”
“호오?”
“하긴, 엘레노아 러셀의 급격한 인지도 상승으로 가장 고전하는 게 브루마 러셀이겠지요. 그 둘의 사이는 견원지간이라고 해도 부족하지 않으니까.”
“좋은 일 아니겠습니까. 눈에 거슬리는 인간 하나 제거하고, 막대한 재정적인 이득도 보고요.”
“하지만 그게 무조건 쉬운 일은 아닙니다. 이미 1번 실패하지 않았습니까. 그렇게 철저히 준비하고도 말입니다.”
“크흠, 그래도 이번엔 브루마 러셀의 협조도 구할 수 있으니 상황이 다릅니다. 아무런 정보도 없이 외부에서 일을 벌이는 것과 내부자의 도움이 있는 건 차원이 다릅니다.”
“하긴.”
다른 마법사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평범한 내부자도 아니고 서열이 낮다고 해도 엄연히 가주 후보자 중 1명인 브루마 러셀이었으니까.
마법사들은 그것을 바탕으로 본격적인 계획을 그려 가기 시작했다.
***
요한과 엘레노아는 블러디 캐슬문제를 어떻게 해야 할지 여전히 결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정확히는 엘레노아가 그녀답지 않게 명확하게 결정을 못 하고 있었다.
‘고민이 많을 수밖에 없겠지.’
여러모로 머리가 복잡할 게 분명 했으니까.
“어떻게 할래?”
“그냥 덮어요.”
“오, 그래도 돼?”
“네, 명확한 증거라도 있었으면 어떻게든 해보겠는데. 아무런 증거도 없는데 확실히 무언가를 하기엔 힘들 거 같네요.”
“뭐, 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알겠어.”
“이해해 주셔서 고마워요.”
“이해는 무슨. 애초에 덮자고 한건 난데, 뭐.”
“아뇨, 그래도요.”
“뭐, 그렇게 고마우면 레스토랑에서 밥이나 사.”
“성 투어는 안 하시고요?”
“……진심이야?”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엘레노아를 쳐다보았다.
이런 상황에서 성 투어를 계속하라니?
“아뇨, 그냥 해본 말이에요.”
“뭐야, 네가 농담도 다 하고.”
“제가 농담하면 안 되나요?”
갑분진, 갑자기 분위기가 진지해졌다.
나름대로 유머도 해보고 농담도시도해 본 그녀였지만, 평생을 딱딱하게 살았다.
유머란 게 그렇게 쉽게 될 리가 없었다.
“흠흠, 그건 아니지.”
나름대로 유머 있게 대화를 해보려던 요한은 민망함에 마른기침을 했다.
“이번에 런던에 미술랭 3스타 셰프의 레스토랑이 새로 오픈한다는데. 가보실래요?”
“오, 좋지.”
맛있는 음식이라면 얼마든지 환영이었다.
딱히 가리는 음식이 없기에 어느 나라에서든 잘 적응할 자신이 있었다.
미술랭 3스타 레스토랑에서 즐거운 식사를 마친 요한과 엘레노아.
아직 베트남에 할 일이 남아 있었지만, 그래도 급한 일은 다 처리했기에 잠시 영국에 남아서 요한과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굳이 안 그래도 되는데.”
“아뇨. 그럴 순 없죠. 제가 초대한 성 투어의 문제로 휴가를 망치셨는데요. 최소한의 도리는 하고 싶어요.”
“쩝, 알았어.”
이런 호의는 상당히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엘레노아의 의지가 단호하니 차마 강하게 말릴 수는 없었다.
요한도 그녀가 직접 가이드해 주면 편하고 좋으니 말이다.
‘음?’
며칠 후 여느 때와 같이 느긋한 하루를 맞이한 요한이었다.
런던의 5성급 호텔 중 하나인 호텔 러셀의 스위트룸에서 묵고 있었다.
맑은 정신으로 아침을 맞이하는데 주변에서 묘한 기운이 느껴졌다.
마나야 늘 느껴지는 것이었다.
헌터들은 세상 어디에나 있으니까.
하지만 지금 요한의 감각에 잡히는 기운은 조금 달랐다.
‘마법사들 그리고 분명히 몇 명은 나를 관찰하고 있어. 이번에도 엘레노아를 노리는 건가?’
이미 1번 노린 전적이 있었다.
2번, 3번 노린다고 해서 절대 이상하지 않았다.
엘레노아도 현재 같은 호텔에서 묵고 있었다.
방이 달랐기에 층도 달랐다.
대부분 마법사 기운이 엘레노아를 감시하는 중이었다.
‘무슨 꿍꿍이지?’
아무리 녀석들이라고 해도 도심에서 엘레노아를 공격하지는 못할 것이었다.
런던은 영국 최고의 헌터 밀집지역이었다.
만약에 이곳에서 소란을 피운다면 영국 헌터가 내린 비상 소집령에 헌터들이 벌 떼처럼 몰려들 것이었다.
생각과 개념이 있는 녀석들이라면 도심지에선 공격하지 않으리라.
"하지만, 그런 정상적인 생각을 하는 녀석들이라면 애초에 러셀 가문과 척을 지지도 않겠지.’
아직 하늘이 이번에 획득한 영혼에 대한 100% 정보를 알아내지 못했다.
순수 마법사라 그런지 정신력이 꽤 강했기 때문이다.
하늘이 고문을 가해도 쉽게 입을 열지 않았다.
벌건 대낮에 공간 이동 장치 스킬까지 사용해 가며 남의 성에 폭격을 가하려는 녀석들이 정상일 리가 없었다.
또 어떤 기상천외한 짓을 할지 장담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없는데.’
기운이 느껴지는 건 사실이나 워낙 조심하고 있는 녀석들이었다.
정확한 위치를 파악할 수가 없었다.
‘거참 조심스러운 녀석들이네. 난 이런 감각 별로 안 좋아하는데.’
감시를 당하는 것을 뻔히 알고도 처리할 수 없다는 사실이 요한의 기분을 상하게 했다.
‘두고 보자, 찾기만 하면 반드시 작살을 내주마.’
이렇게 매번 귀찮게 하는 녀석들은 뿌리까지 뽑아야 마음이 편했다.
‘차라리 러셀 가문을 노리지. 왜 엘레노아를 노려서 나를 귀찮게 하냐고.’
그럴 리는 없겠지만, 만약에 혹시나 엘레노아가 죽으면 요한은 다시 둥지를 찾아야 하는 어마어마하게 귀찮은 일을 해야 했다.
지금도 편하고 행복한데, 왜 굳이 귀찮은 일을 하겠는가?
그때였다.
띠리리리-!
요한의 스마트폰이 울렸다.
스마트폰을 산 지 시간이 꽤 지났음에도 아직도 벨 소리가 기본음이었다.
“네.”
[헌터님, 부탁하신 물건들을 모두 구했습니다. 어디로 가져갈까요?]
“오, 제 방으로 오세요.”
[예, 알겠습니다. 지금 호텔 1층로비이니 3분 안에 가도록 하겠습니다.]
“네.”
기쁜 표정으로 전화를 끊었다.
‘드디어!’
조금 늦은 감이 없지는 않았지만, 이곳은 대한민국이 아니었다.
‘공공기관이나 협회나 한국과 비교하면 느려 터진 곳이 유럽이니까.’
넓은 아량으로 이해해 주기로 했다.
잠시 후 띵 하는 소리와 함께 화물 전용 엘리베이터에서 커다란 박스를 든 인부들이 내렸다.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작업을 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헌터님께서 부탁하신 물건들입니다.”
“수고했어요. 여기 팁. 인부들이랑 맛있는 거라도 사드세요.”
품에서 지갑을 꺼내 100파운드지폐 10장을 건네주었다.
원래 영국의 지폐는 50파운드가 끝이었지만, 헌터 시대 이후 꾸준한 물가 상승으로 고액권이 필요해 100파운드를 만들었다.
“어이쿠 뭐 이런 걸다. 흐흐흐, 감사합니다.”
남자는 굳이 거절하지 않고 누런이를 드러내며 감사 인사를 몇 번이고 하고 스위트룸을 나갔다.
삐리릭-!
전자 도어락이 잠기고 혼자가 된 요한은 뿌듯한 표정으로 상자를 내려다보았다.
‘이제 진짜 제대로 할 수 있겠다!’
그가 하려는 것은 리바이브 스킬이었다.
필요한 물품은 아래와 같았다.
1. 하급 마석 10개.
2. 에보이트 나무뿌리 100개.
3. 홉 고블린의 어금니 30개.
4. 오크 방광 50개.
마석이야 요한이 넘치도록 있으니 제외하고.
2~4번 아이템을 단 1개도 빼놓지 않고 모두 구해서 가져왔다.
굳이 할 필요도 없었는데 2~3개의 여유분도 챙겼다.
‘어디 보자, 물건은 다 있으니까.
이렇게 하면 되려나?’
시체 수집으로 챙겼던 마법사의 시체를 꺼냈다.
털썩-!
며칠이나 시간이 지난 상태였다.
부패가 진행되고 있었다.
나쁜 부패가 아니었다.
일반적으로 내버려 뒀을 때는 말그대로 썩은 부패였지만, 시체 수집으로 넣어 둔 시체는 신선도를 유지하며 일종의 발효 과정을 겪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네크로맨서가 시체 마니아라고 해도 신선한 시체가 가장 훌륭한 재료인 것은 당연한 사실이었다.
‘흐흐흐 자, 그러면 어플을 작동시켜서 바로 작업을 시작해 볼까?’
“어이, 음악 좀 틀어.”
“예.”
샤악.
그림자 속에서 나타난 엘프 스펙터 엘라드가 모습을 드러내 DVD 재생기의 재생 버튼을 눌렀다.
♪♬♩~.
아름다운 클래식의 선율이 스위트룸 전체를 휘감았다.
‘음악 좋고, 기분 좋고.’
이때야말로 최고의 컨디션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인터넷 쇼핑에서 원하는 물건을 장바구니에 넣을 수 있듯이 리바이브 스킬을 사용했던 시체 또한 저장해 두었다.
저장해 둔 파일을 꺼내 작동시키자 다시금 재료를 넣으라고 메시지를 보냈다.
“엘라드.”
“예.”
요한은 굳이 직접 하지 않았다.
오히려 입으로 이리저리 명령만 내렸다.
그가 굳이 직접 움직일 이유가 없었다.
똑똑한 부하가 있는데 잡일까지 일일이 할 필요가 없었으니까.
“이 상자 속에 있는 것들을 다 이쪽으로 가져와서 시체 옆에 딱 붙여.”
“예."
찰칵.
다시 사진을 찍자 어플이 반응하기 시작했다.
로딩 화면이 마무리되자 시체 옆에 가져왔던 물건들을 흡수하기 시작했다.
지이잉-!
마나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오오!’
그런 절차가 끝나자 요동이 끝나고 모든 물건이 마법사의 시체에 흡수가 되었다.
시체는 여전히 반응이 없었다.
요한은 당황했다.
‘뭐야 실패인가. 딱히 실패한다는 말은 없었는데?’
실패할 확률이 있다면 물건을 또 시켜야 한다는 뜻이었으니까.
‘아, 이럴 줄 알았으면 2~3인분을 미리 시킬…….'
꿈틀.
‘어?’
막 후회하려던 차였다.
실패했다고 생각한 마법사의 시체가 꿈틀거리며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성공?!’
다행히 성공이었다.
리바이브 스킬이 사용된 마법사의 시체가 천천히 몸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후욱!”
녀석의 입에서 입김이 뿜어져 나왔다.
시체 특유의 한기가 흘러나오는 것이었다.
눈에서도 푸른 안광이 뿜어져 나왔다.
“위대하신 죽음의 군주, 네크로맨서님을 뵙습니다.”
“좋았어!”
대성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