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치이익-!
다른 뱀파이어들의 몸이 종이가 타 버리듯이 불타 사라진 것과 다르게 블러디 메리는 마치 쇠가 용광로에서 녹듯이 서서히 죽어 갔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저건?’
블러디 메리가 죽은 자리엔 피처럼 붉은 목걸이와 마찬가지로 붉은색의 마석이 떨어져 있었다.
‘마석이 맞긴 한 건가?’
느껴지는 기운은 마석이 맞긴 한 거 같은데 처음 보는 짙은 붉은색이니 살짝 의문이 들 수밖에 없었다.
그럴 땐 역시 스킬만큼 좋은 게 없었다.
[# 피의 마석종류: 마석설명: 피에 물든 마석]
‘이게 끝이라고?’
정말 심플한 설명이 아닐 수 없었다.
‘몰라, 협회에서 알아서 하겠지.’
이런 사소한 부분까지 일일이 알아내기엔 안 그래도 생각할 게 많은 요한에겐 무리였다.
‘피의 마석이라면 피의 마석이겠지, 뭐. 지금은 마석보단 이게 더 신경 쓰인단 말이지.’
마석은 결국 마석일 뿐.
빨갛다고 해서 딱히 특이할 게 없었다.
하지만 아이템이라면 말이 180도 달랐다.
‘보스 몬스터를 잡고 나온 아이템이야. 절대 평범한 놈이 아닐 거란 말이지.’
꿀꺽.
기대감에 정밀 분석 프로그램 스킬을 사용하려니 마른침이 꿀떡 넘어갔다.
스킬을 사용해 보았다.
[# 피로 하는 맹약의 목걸이 종류: 맹약의 인장마나 증폭: 0.01내구력: 22.00부가 효과: 혈액 순환 개선
(10.0), 피의 맹약(Lv.1)
등급: ★★★★설명: 블러디 메리가 악마에게 영혼과 100명의 처녀를 판 대가로 얻은 목걸이. 피의 맹약을 사용할 수 있다. 맹약의 목걸이를 착용하고 있으면 1% 확률로 피의 마석을 획득할 수 있다.
▶ 피의 맹약: 사용하는 존재에 따라서 효과가 다른 스킬. 현재 네크로맨서의 손에 들어가 있는 상태로 스킬 레벨 1당 피의 마석 1개를 소모하여 원하는 시체를 뱀파이어로 일으킬 수가 있다. (보스급 몬스터는 10% 확률로 일어나며, 실패할 경우 피의 마석만 소모되며 24시간 후에야 스킬을 다시 사용할 수 있다.)]
‘와우, 이런 식으로 스킬을 또 얻네.’
아이템을 착용하고 있을 때 한정스킬이었지만, 아이템만 착용하고 있으면 딱히 상관없었다.
휴대하기 어려운 아이템도 아니었고 화려하지만, 결국 목걸이일 뿐이었으니까.
‘쯧쯧, 블러디 메리 녀석. 영혼에 제물까지 사용해 얻은 아이템을 결국 나한테 뺏기는군.’
불쌍하기보다는 불행한 존재라고 생각했다.
하필이면 요한이 지나가는 길에 있는 바람에 사냥당한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하긴, 굳이 내가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사냥당했겠지만.’
그게 누가 됐든 말이다.
지잉-!!
‘음?’
그때 공간 전체가 떨리기 시작했다.
쿠르릉.
블러디 캐슬 전체가 떨리기 시작했다.
요한은 확실히 느낄 수가 있었다.
‘포탈이었던 공간 전체가 무너지기 시작하네.’
그 증거로 공간은 떨리고 있었지만, 그 어떤 물건들도 흔들리거나 떨어지지 않았다.
일반적인 지진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잠시 후 공간의 떨림이 멈추더니 녹아내리듯이 포탈의 기운이 사라졌다.
이제 이곳은 포탈 내부가 아니라 평범한 땅이 된 것이었다.
‘거참, 이제는 별별 이상한 포탈을 다 경험해보네.’
재수가 없는 것 같으면서도 그래도 그 속에서 기연과도 같은 힘을 얻으니, 그런 점에선 재수가 좋은 것 같기도 한 느낌이었다.
다만, 쉬고 싶을 때도 마음대로 쉬지 못하니 그게 정말 불만이었다.
‘하아, 이 일에 영국 정부나 협회가 개입되어 있다면 제대로 못 쉬잖아.’
거기에다가 사고였지만, 듀크와 운전기사가 죽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둘 다 러셀소속이라는 것이었다.
러셀 가문 사람이었으면 그쪽으로 통보를 해야겠지만, 러셀 매니지먼트는 엘레노아 소관이기에 부담이 적었다.
‘괜히 러셀 가문과 엮이면 피곤해.’
어지간하면 내부에서 끝내는 게 가장 좋았다.
다행히 스마트폰이 잘 터졌다.
곧바로 엘레노아에 연락했다.
[네, 요한 씨.]
국제 전화는 여전히 비쌌지만, S급 헌터인 요한에게 문제 될 건 아니었다.
“일이 꼬였어.”
[네, 무슨 일이요?]
러셀 가문에서 자랑하고 사랑하는 별장 투어인 성 투어에서 편하게 즐기고 놀고 있어야 할 요한의 입에서 일이 꼬였다는 말이 나오자 엘레노아는 의아했다.
“블러디 캐슬 알지?”
[네, 알아요. 듀크가 거기 데려갔나요? 거기 안 쓴 지 꽤 됐는데.]
“너도 알고 있었어?”
[네, 처음엔 자주 사용했었는데.
위치도 그다지 좋지 않고 왠지 좀 꺼려져서요. 가문에서도 관리 안한 지 좀 된 곳인데. 어째서 듀크가 거기로 데려간 거죠? 성 투어 코스엔 없을 텐데.]
“그럼 더 골치 아프네. 네가 말한 블러디 캐슬. 여기 포탈화 됐더라.”
[네?]
수화기 너머였지만, 당황하는 감정이 그대로 전해졌다.
“꽤 성가신 종류의 몬스터였어.
덕분에 듀크와 운전기사 둘 다 죽었어. 문제는 이 몬스터가 인간을 숙주로 몬스터로 변하게 하는 녀석인데. 꽤 많은 사람이 몬스터가 됐을 텐데도 뉴스를 타지 않았다는 거야. 이 사실이 외부에 알려지면 러셀 가문에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엄연히 이곳은 러셀 가문의 땅인데.”
[.......]
수화기 너머에선 아주 작은 숨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보스는 처리하셨나요?]
“그러니까 너랑 통화하고 있겠지.”
엘레노아도 이 문제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떻게 할래?”
[……일단 제가 그쪽으로 갈게요.]
“뭐, 그러든지.”
심각한 엘레노아와 달리 요한은 급할 게 없었다.
그는 그저 이곳을 우연히 지나다가 포탈에 휩쓸렸지만, 성공적으로 포탈을 클리어한 영웅일 뿐이었으니까.
이 사실이 알려지면 그는 다시 국제적인 명성을 얻을 것이었다.
대신 알든 모르든, 이 사실을 내버려 둔 영국 정부와 협회 그리고 러셀 가문은 비난 세례를 받을 것이었다.
“기다릴게.”
[네.]
뚝.
전화는 끊겼다.
요한은 성 지하실에서 벗어나 지상으로 올라왔다.
요한과 뱀파이어의 격렬한 전투로 인해서 엉망진창이 됐던 공간은 없었다.
먼지와 거미줄이 좀 쌓이긴 했지만, 고풍스러운 멋을 가진 곳만 남아 있었다.
창문도 큼직큼직한 것이 복도를 따라서 쭉 존재했기에 특별한 등이 없어도 환했다.
‘이제야 좀 제대로 된 성 투어 같네.'
하지만 청소를 하지 않은 지 오래돼 묵기에 적합하지는 않았다.
‘묵기엔 부적합하지만, 구경만 하면 되니까.’
어차피 곧 엘레노아가 넘어올 것이고 그때 돌아가면 그만이었다.
‘그냥 휴가를 포기해?’
굳이 영국에서 휴가를 보낼 필요는 없었다.
엘레노아의 초대로 인해서 온 것이지 베트남에서 쉬어도 되고, 한국에서 쉬어도 됐다.
‘그런데 어디를 가도 마음 편하게 쉬기 힘들 것 같단 말이야.’
정말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저벅저벅.
그래도 멀쩡해진 블러디 캐슬은 아름다운 곳이었다.
‘뭐, 그래도 괜찮긴 하네.’
이런 성 하나 있으면 참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참에 성 하나 살까?’
유럽에선 성을 사고파는 게 흔한 일이라고 했다.
정말 좋은 위치에 있는 성이 아니고는 가격도 저렴한 편이었다.
그런데도 성을 보유한 이들이 많지 않은 이유가 있었다.
유지비가 너~무 많이 든다는 것이었다.
차라리 그 돈으로 비싼 자리에 좋은 별장을 짓는 게 합리적이었다.
성은 관리도 어렵고 효율적인 위치도 아니었으니까.
감성 그 이하도, 이상도 아니었다.
엘레노아가 도착하려면 아무리 빨라도 12시간은 족히 걸릴 것이기에 여유롭게 성을 둘러보았다.
***
엘레노아가 도착한 것은 대략 14시간 정도가 흐른 늦은 밤이었다.
"요한 씨!"
“오, 일찍 도착했네?”
느긋한 자세로 엘레노아를 맞이해 주었다.
“괜찮으세요?”
“푸핫, 지금 스카이 포탈도 클리어한 나한테 일반 포탈 좀 클리어 했다고 걱정하는 거야?”
“……괜찮으신 거 같네요.”
걱정에 대한 대답이 성의가 없자 떨떠름하게 반응한 엘레노아.
그래도 요한에게 별일 없다는 것에 안도했다.
“정말 여기가 포탈 화가 됐었나요?"
“그렇다니까.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니 영국 정부나 협회가 몰랐다고 잡아떼면 방법이 없네. 증거가 있는 것도 아니고 말이야.”
경치는 참 좋지만 그게 끝인 블러디 캐슬이었다.
대충 훑어보니 더 볼 것도 없어서 잠시 묵을 곳을 스켈레톤 워리어를 시켜서 깔끔하게 청소했다.
그리고 보관해 두었던 쿠키와 차를 마시며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할지 고민을 해 보았다.
아까까진 떠오르지 않았던 것들이 조금씩 생각났다.
이번 일을 당사자들이 부정해 버리면 요한만 이상해진다는 것이었다.
보다시피 전투 흔적이 남은 것도 없었다.
그렇다고 시체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증거라곤 요한의 말과 마석 뿐이었는데 그런 증거는 설득력이 전혀 없었다.
“그래서 덮으려고.”
"네?"
“그렇잖아. 괜히 내가 나섰다가 나만 이상한 놈 되기는 싫거든. 어차피 이곳은 내 땅도 아니고. 영국이 내 조국도 아닌데 이상한 놈이 되어 가면서 나서고 싶진 않아.”
이곳에서 실종되어 블러드 하운드가 된 이들은 억울한 것이었다.
국가의 철저한 외면 속에서 고통을 받다가 소멸이 되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냉정하게 말해선 요한과 전혀 상관없었다.
상관없는 일에 굳이 머리 아프게 신경 쓰고 싶지가 않았다.
오지랖이 넓은 성격도 아니고, 남을 위해서 헌신하는 성격은 더더욱 아니었다.
그냥 조용히 덮고 넘어간다고 해서 손해 볼 건 전혀 없었다.
이번 일을 만든 나쁜 놈들이 벌을 받지 않고 흐지부지 넘어가는 건 좀 열 받긴 했다.
그래도 귀찮아지는 것보단 훨씬 더 나았다.
“뭐, 그래도 가문에 보고하겠다면 말리진 않을게. 대신 내 이름을빼.”
“그러면 사건의 개연성이 사라져요.”
“그러면 보고하지 마."
"......."
엘레노아도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질 않았다.
요한의 말대로 증거라도 있었다면 일이 쉬웠겠지만, 증거가 전혀 없는 일이었으니까.
“아, 이번 일이 러셀 가문 내에서 벌어진 일이 아니라면 조심해야 겠어.”
“네?”
“러셀 가문의 땅에 포탈이 생겼음에도 알려지지 않았다는 건 그만큼 비밀을 유지하는 힘이 있다는 뜻일 테니까. 또 사람이 그렇게 많이 실종됐는데 정부가 모른 척한 것도 그렇고 말이야.”
"......."
요한의 말대로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당장 해결할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후우.”
엘레노아의 입에서 깊은 한숨이 흘러나왔다.
***
엘레노아가 머리를 싸매며 고민하던 그때.
스코틀랜드의 은밀한 곳에서 마법사들이 회의를 벌이고 있었다.
“엘레노아 계집을 타격하러 갔던 타격대가 전멸했소.”
“블러디 캐슬에 설치했던 포탈이 해제되었소.”
"......도대체 누가?”
“러셀 가문의 짓이 아니겠소?”
“지금껏 모르다가 갑자기?”
"......."
정체를 알 수 없는 이들은 이번에 발생한 일들로 인해서 혼란에 휩싸였다.
너무 갑작스러운 사건들이 많아서 특히 더 그런 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