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네크로맨서는 세계최강-146화 (146/250)

20화

주륵-.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뭐야, 베트남에 있어야 할 놈이 왜 여깄어?’

오만함이 하늘을 찌르는 러셀 가문의 다섯 번째 가주 후보인 부르마 러셀은 평소처럼 굴 수가 없었다.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얼마든지 무시하고 모욕해 줬을 것이었다.

러셀 가문은 그럴 힘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상대가 너무 좋지 않았다.

‘요즘 가문 어르신들 사이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킴……!’

부르마에게 요한은 절대적인 적이었다.

최근 가주 후보자 순위에서 가장 급격한 성장을 보이는 엘레노아의 실질적인 배후였으니까.

“젠장!!”

부르마는 더는 참지 못하고 신경질을 내며 요한과 엘레노아 옆을 지나쳐 갔다.

가주인 아널드에게 중요하게 할말이 있었는데 대화를 시작하기도 전에 기분을 잡치고 말았다.

‘두고 보자, 언젠가는 이 치욕을 톡톡히 갚아 주겠다.’

사실 부르마는 가주 후보 순위에서 그렇게 높은 위치가 아니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가장 치명적인 것은 헌터 등급이 B급에 불과하다는 것이었다.

물론 일반적인 관점에서 보면 B급 헌터도 무척이나 높은 수준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하지만 러셀 가주가 되기엔 B급은 한참 부족했다.

그렇다고 가주가 아예 될 수 없는 건 아니었다.

가주란 자리는 무조건 강하다고 될 수 있는 자리는 아니었으니까.

그래서 필요한 게 우수한 성과였다.

가문의 발전을 위해서 등급의 차이를 뛰어넘는 성과.

다행히 부르마는 나쁜 성격과 달리 능력은 출중한 편이었다.

행정 능력이나 기획 능력은 인재가 많은 러셀 가문 내에서도 최상위 수준.

B급 헌터인 그가 가문을 위해서 할 수 있는 건 머리를 쓰는 것밖에는 없었다.

그러니 늘 무시하던 동양인이자 평민인 요한이었지만, S급을 이긴 S급 헌터에게 함부로 굴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짜증 나지만, 그들을 찾을 수밖에 없겠군.’

부르마의 음흉한 머리가 팽팽 돌아갔다.

***

성 투어 전에 요한은 그렇게 원하던 리버풀 FC의 홈구장인 안필드에 방문했다.

아직 경기가 시작하기 1시간 전 임에도 축구를 사랑하는 영국인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열띤 목소리로 응원가를 부르고 있었다.

“리버풀! 리버풀! 리버풀!!”

“와아아아!!”

그야말로 축구밖에 모르는 영국민다운 모습이었다.

“TV에서 봤지만, 정말 열정적이네.”

“네, 영국이니까요.”

다른 미사여구 따위는 필요 없었다.

영국인, 그거 하나로 충분한 축구에 대한 열정이었다.

‘어떻게 보면 H-1으로 인해서 예전만큼의 위용이 없는 스포츠인데도 종주국은 다르긴 다르구나.’

그랬다.

축구는 헌터 시대 이전만큼 압도적인 위용은 없었다.

어쩔 수 없는 것이 H-1은 축구와 달리 스포츠인이 아니라 헌터가 선수로 뛰면서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화려한 기술과 전략&전술로 적과 싸우는 원초적인 스포츠였다.

스포츠인이라고 해도 결국, 일반인이 공을 차는 것과는 볼거리 수준이 달랐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축구가 완전히 몰락한 건 절대 아니었다.

오히려 몰락한 건 비인기 스포츠 다수였다.

축구는 여전히 H-1을 제외하면 지구촌 최대의 스포츠 축제였으니까.

‘나도 축구 구단 하나 인수할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H-1도 좋지만, 축구 구단도 아날로그 감성으로 생각하면 좋은 취미라고 생각했다.

‘뭐, 급할 건 없으니까. 천천히 생각해 봐야지.’

요한이 있는 곳은 일반 관중석이 아니라, VIP석이었다.

요한만 해도 꽤 얼굴이 팔린 헌터인데 영국의 보물이라고도 칭해지는 엘레노아와 함께 있는데 일반석에서 관람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VIP석을 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러셀 가문이 영국내에서 할 수 없는 건 거의 없었다.

금방 VIP 티켓 2장을 구해 와느긋하게 경기를 관람할 수가 있었다.

VIP석이라고 해서 완전히 단절된 공간이 아니었다.

[어어, 저게 누군가요. 러셀 가문의 미스 러셀과 그녀의 파트너 킴이네요!]

카메라가 VIP석을 비추자 커다란 전광판에 나란히 앉아 있는 엘레노아와 요한의 모습이 떠올랐다.

“와아아아아!!”

“휘이이익!!”

리버풀 팬인 콥(리버풀 팬클럽이름)은 환호로 둘을 맞아 주었다.

그들이 엘레노아와 요한의 팬이고, 아니고는 중요하지 않았다.

자신들이 무엇보다 사랑하는 안필드에 유명인이 찾아온 것만으로도 환호를 보낼 이유는 충분했다.

[오, 저 유명한 분들이 리버풀에 직접 오시다니. 러셀 가문이 리버풀에 관심이 있는 걸까요?]

[하하, 글쎄요. 러셀 가문은 지금까진 H-1 구단만 가지고 있었죠.

미스 러셀만 해도 코리아에 소유한 구단이 1개, 직접 후원하는 구단이 1개가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러셀 가문이라면 돈도 많고 구단도 합리적으로 운영할 텐데. EPL 구단을 소유하면 무서운 팀으로 성장할 수도 있겠죠.]

[하하, 경쟁 구단이 생기는 건 두렵지만, 영국인으로서 그리고 EPL의 오랜 팬으로서 시장이 커지는 건 기꺼운 일이지요.]

삐익-!

[자, 경기 시작합니다.]

거칠고 화려한 축구 시합이 시작되었다.

경기 자체는 요한에게 흥미를 심어 줄 수는 없었다.

애초에 축구 자체를 즐기지 않았고 헌터로서 화려하고 박력 있는 수많은 전투를 겪은 그였다.

일반인들이 벌이는 스포츠가 재밌을 리가 없었다.

‘그래도 축구 자체가 가지는 매력은 마음에 드네.’

언젠가 기회가 되면 축구 구단 하나 인수해서 재미로 운영하고 싶어질 정도였다.

철렁-!

[고오오오오올!!]

[리버풀이 1:0으로 앞서갑니다!!]

“와아아아아!!”

지루한 공방전 끝에 드디어 홈팀인 리버풀이 골을 넣었다.

우우웅-!

팬들이 동시에 만들어 내는 환호엔 묘한 기운이 담겨 있었다.

‘마치 마나가 진동하는 것 같아. 겨우 일반인이 열정을 터트리는 것뿐인데도 대단하네.’

이게 바로 진정한 열정이라고 생각했다.

이날 리버풀은 경기 상대인 풀럼을 상대로 3:0으로 호쾌하게 승리를 가져갔다.

골이 들어갈 때마다 경기장이 떠나가라 환호성이 울려 퍼졌다.

생애 첫 직관에서 홈팀이 승리해서 기분이 좋았다.

비록 직접적인 이득이 전혀 없다고 해도 이런 짜릿한 경험 자체만으로도 나쁘지 않았다.

특히 요한은 어렸을 때부터 힘들게 생존만을 위해서 살아온 탓에 이런 경험 자체가 적은 편이었으니까.

그래서 그런지 새로운 경험이라는 것만으로도 돈과 시간을 투자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진짜 진지하게 구단 인수도 생각해 봐야겠는걸?’

다만 그렇다고 해도 H-1 만큼 신경을 써 줄 수는 없었다.

외국에 있는 것도 외국에 있는 거지만, 어쩐지 최근에 점점 더 바빠질 것 같은 안 좋은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특히 이 포탈 장인 증표라는 거, 정말 수상하단 말이야.’

주머니에 들어 있는 펜던트를 만졌다.

스카이 포탈을 클리어했을 때 받은 쓰임을 정확히 알 수 없는 물건.

절대 보통 물건이 아님을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요한 씨.”

모든 경기가 끝나고 나가야 하는데 멍을 때리는 요한을 엘레노아가 불렀다.

“아, 아니야. 가자. 이제 바로 성 투어인가?”

“네.”

“좋아, 기대되는걸.”

“실망하지 않으실 거예요.”

본격적으로 성 투어가 시작됐다.

***

엘레노아의 말대로 러셀 가문소유의 성은 정말 화려하고 멋있었다.

유럽 전통 방식으로 지어진 성은 한국에선 절대 만날 수 없는 멋과 운치가 넘쳤다.

“와, 대단하다.”

“그렇죠?”

“크으.”

특히 성의 맨 꼭대기 층에서 노을 지는 석양을 바라볼 때는 살아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황홀했다.

옆에는 최고의 미녀로 칭송받는 엘레노아까지 함께 있으니 더욱.

‘마치 신혼여행 온 기분이다.’

그런 기분은 그렇게 오래가지 못했다.

며칠 뒤 엘레노아가 베트남으로 급히 가 봐야 하는 일이 생겼기 때문이다.

“죄송해요. 일주일은 더 함께 있을 줄 알았는데.”

“아니, 죄송은 무슨. 일이 있으면 가야지.”

말은 그렇게 해도 살짝 아쉬운 그였다.

엘레노아와 이렇게 느긋하게 함께하는 시간이 정말 좋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가지 말아 달라고 하기엔 민망했다.

그런 성격도 아니었고 말이다.

“그래도 대신 안내해 줄 사람은 두고 갈게요.”

“뭐, 그래 주면 나야 고맙지.”

“그럼.”

가볍게 인사를 나누고 베트남으로 돌아갔다.

다시 혼자가 된 요한.

비록 안내를 맡은 사람이 남아 있긴 했지만, 마음을 준 상대가 아니기에 정말 공적인 가이드일 뿐이었다.

허전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서 혼자 성 주변 산책을 했다.

촤악-!

현재 그가 머무는 곳은 주변에 큰 강이 흘러서 정말 아름다운 경치를 자랑하는 곳이었다.

저벅저벅-.

아무 생각 없이 그저 아름다운 경치와 좋은 공기를 마시며 휴양하는 기분을 잔뜩 즐겼다.

그러다 문득 살짝 불안함이 생겼다.

‘불안해, 뭔가 계속 불안해. 마음이 편해야 하는데 왜 이러지?’

지금까지 온갖 불운은 다 겪어 본 그였다.

가는 곳마다 포탈이 열리고, 가는 곳마다 몬스터가 등장했다.

‘외국이라고 안 그럴 리는 없는데.’

벌써 며칠째 큰 재채기 소리조차 듣지 못한 조용한 나날이었다.

그동안 워낙 스펙터클한 사건의 연속이었다 보니 이젠 한가하면 불안했다.

짝짝-!

볼을 쳤다.

‘아냐, 아냐. 정신 차리자. 지금까진 정말 우연한 사고였어. 내가 언제까지 인류 영웅 흉내나 낼 필욘 없잖아.’

지금은 말 그대로 휴양을 즐기면 되었다.

하지만 야속한 운명은 그를 가만히 둘 마음이 전혀 없었다.

지잉-! 지잉-!

‘응, 뭐지?’

그의 예민한 감각에 마나 파동이 느껴졌다.

평소였다면 마나가 느껴지는 게 별로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분명히 법적으론 포탈 내부 외에서는 스킬을 사용하는 건 불법이었지만, 무단 횡단도 불법이라고 안 하는가.

안 보이는 곳에선 다들 스킬을 사용했다.

협회나 정부에서도 굳이 문제가 되는 상황만 아니라면 특별하게 단속을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180도 달랐다.

‘레아가 분명히 이 일대는 러셀가문의 땅이라고 했어. 외부인은 철저히 통제된다고.’

특히 헌터는 출입이 완전 금지라고 했다.

환경 관리를 위한 일반인도 매월 1일에만 출입할 수 있었다.

‘뭐야, 침입자인가?’

못 느꼈으면 몰라도 느껴 놓고 모른 척할 수는 없었다.

‘혹시라도 나를 노리는 놈들일수도 있으니까.’

“엘리니아.”

스윽-.

“불렀나.”

스카이 포탈을 클리어하고 난 뒤 엘리니아는 완벽하게 요한의 부하가 되었다.

반말은 여전했지만.

그러면서 틈틈이 네크로맨서에 대한 지식도 꾸준히 전수하였다.

‘사실 이런 건 네크로맨서 영감이 더 잘하는데.’

지금 가르치는 지식도 전부 네크로맨서 영감에게 나온 것들이었으니까.

“너도 느껴지지?”

“느꼈다.”

“가서 확인해 보자.”

“알겠다.”

샤악-!

요한도 재빨리 마나가 느껴진 곳으로 향했다.

곧바로 접근하지는 않았고 마나가 느껴진 곳이 훤히 보이는 멀리 떨어진 언덕 쪽으로 접근했다.

적당히 떨어진 곳에서 그들을 관찰할 생각이었다.

덜컹-!

‘응?’

요한의 눈에 한 무리가 잡혔다.

30장. 대 포탈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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