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척척척-!
질서 정연하게 움직이는 언데드군단.
숫자가 많이 줄어들어서 얼핏 보면 위용이 줄어든 것 같았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오히려 주변에서 뿜어져 나오는 오러가 장난이 아니었다.
“구어어 어.”
“으어어어.”
특히 좀비는 거의 1/10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아무래도 제일 약한 언데드다 보니 죽어 나가는 숫자는 많은데, 좋은 시체를 굳이 좀비로 만들 필요가 없으니 보충은 없었기 때문이다.
1/10이 남은 것도 지네들이 운이 좋아서 살아남은 거지 딱히 보충을 해 줘서 있는 게 아니었다.
참 대단한 생명력이었다.
“모두 긴장해. 특히 류페이 너.”
“에헤이, 걱정하지 말라니까?”
“에효.”
쿵쿵-!
요한이 뭐라고 하든 류페이는 자신만만한 표정이었다.
원래도 참 자신감이 넘치는 언데드였다.
그런 상황에서 공허 간수라는 엄청난 보스 몬스터를 개인 소유로 얻었으니 그 자신감이 하늘을 뚫고 올라가지 않는 게 이상했다.
“크크크, 뭐든지 걸리기만 해라. 다 죽여 주마.”
척척-!
"......."
류페이를 제외한 대부분의 언데드들은 조용히 움직였다.
마을과 가까워질수록 마을에서 느껴지는 묘한 기운이 점점 더 짙어지고 있었다.
기운이 짙어지자 기운의 정체를 알 수가 있었다.
‘이건 공허석에서 내뿜는 기운과 완전히 흡사하다.’
다른 마을에선 전혀 느끼지 못했던 기운이었다.
‘역시 다른 마을과는 그 격이 다르다, 이건가?’
공허의 기운이 진하게 느껴질수록 요한의 심장박동도 빨라지기 시작했다.
우웅-!
어느 정도 거리가 가까워지자 마을에서도 반응이 왔다.
하지만 공허 간수가 직접 나오지는 않았다.
‘들어오라는 건가?’
안개로 둘러싸인 마을.
‘그렇다는 건 녀석은 안개 속에서 가장 큰 힘을 발휘하는 녀석이겠네.’
이건 녀석의 안방으로 알아서 기어들어 가는 미친 짓이나 마찬가지였다.
분명히 미친 짓이었지만, 그렇다고 하지 않을 수는 더더욱 없었다.
아쉬운 쪽은 이쪽이기에 호랑이를 잡기 위해선 호랑이 굴에 들어가는 게 맞았다.
‘정말, 싫지만…… 장교 유령도 접근할 수 없을 정도니까.’
늘 철저한 준비와 올바른 정보를 중시하는 그의 성격상 뻔히 보이는 함정에 들어가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살면서 어떻게 매번 하고 싶은 일만 하겠는가.
그저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었다.
안개가 자욱하게 낀 엘프 마을로 진입했다.
샤악-!
마치, 어서 오라고 환영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척척-!
‘응, 왜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지?’
이곳 다크 엘프 마을엔 공허 간수만 사는 게 아니었다.
당연히 수많은 다크 엘프도 거주 중이었다.
특히 요한은 생명 반응에 민감한 편이었다.
아무래도 언데드를 다루다 보니 재료로 삼을 수 있는 생명체엔 민감하게 반응했다.
일종의 생명체 레이더인데 그 레이더에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다.
공허 간수쯤 되는 녀석이야, 기척을 숨기는 데 능숙하니 제외.
다크 엘프의 기운도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생명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해서 아예 없다곤 생각하지 않았다.
‘공허 간수가 그렇게 만만한 녀석은 아닐 거야.’
합리적 의심이었다.
‘공허 간수는 정말 예측할 수 없는 존재지. 없다고 느꼈다고 해서 없다고 생각하면 오산일 거야.’
워낙 의심이 많은 성격이다 보니, 일단 의심을 하고 그 의심의 이유를 만들어내는 편이었다.
그런 성격 때문에 사회생활에 적극적이진 않았지만, 그나마 모난 사회생활은 피할 수가 있었다.
그런 성격은 헌터 생활에서도 여과 없이 드러났다.
쿵쿵-!
“여기 묘하게 기분 나쁜 곳이군.”
류페이가 타고 있는 본 골렘.
처음에 탄생했을 때는 본 골렘이었지만, 요한은 녀석의 능력을 손 보면서 이름도 바꿔주었다.
덕분에 붙여진 녀석의 이름은 본 스파이더.
살아 있을 때나 언데드가 된 지금이나 거미와 흡사한 모습이었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었다.
‘살짝 도박 같긴 하지만, 저 녀석 코딩하는 데 시간을 다 투자했지.제발 그만큼 효율을 보여 줘야 할 텐데…….'
단순 스펙은 훌륭한 편이었다.
그러나 불안 요소가 없는 건 아니었다.
이런 식으로 언데드를 만든 것은 이번에 처음 겪어 보는 일이었다.
확인된 바가 없는 언데드다 보니 불안한 건 어찌 보면 당연했다.
‘그래도 무려 데스나이트의 스킬인데. 나쁘진 않겠지.’
얼마나 더 걸었을까.
샤악-!
드디어 요한의 감각에 무엇인가가 잡히기 시작했다.
휙-!
문제는 감각에 잡히는 것들이 매우 익숙하면서도 낯설기도 한 게 찝찝했다.
‘어, 설마?’
그의 불안감이 극에 달했다.
"......."
"......."
“젠장.”
고운 미간이 종잇장처럼 구겨졌다.
눈앞에 보인 몬스터를 보면 어쩔 수가 없는 일이었다.
‘공허 병사.’
그것도 무려 10마리나 되는 공허 병사였다.
‘뭐, 예상했더라도 어차피 만나야 하는 녀석들이긴 한데. 짜증 나네.’
공허 병사는 절대 쉬운 상대가 아니었다.
개개인의 무력은 공허 간수에 비할 바는 아니었지만, 충분히 강력했고 숫자가 많았다.
‘그나마 다행인 건 내가 처음 녀석들 4마리를 상대할 때보다는 월등히 강해졌다는 건데.’
공허 몬스터는 경험치가 정말 빵빵했다.
스카이 포탈 내에서 주는 경험도 훌륭해 그의 레벨은 이미 407이다.
스킬 레벨도 많이 올라가 있었다.
가장 고무적인 성장은 역시 류페이의 데스나이트 진화와 본 스파이더 그리고 엘프 스펙터의 존재였다.
데스나이트와 엘프 스펙터만으로 도전과는 차원이 다른 파워를 내는 요소였다.
‘뭐, 싸워보자. 까짓것, 죽기밖에 더하겠어?’
우드득.
몸을 쓰진 않지만, 손가락뼈를 풀면서 각오를 다졌다.
***
후드득-!
10마리의 공허 병사의 살점이 허공에서 흐트러졌다.
요한은 입만 쩍 벌린 채 멍하니 쳐다보았다.
‘이, 이거 실화야?’
그가 놀란 이유는 별거 없었다.
“으하하핫! 맛이 어떠냐 이것들아!”
바로 공허 병사 10마리를 류페이 혼자서 처리해버렸기 때문이다.
‘뭐야 이거…… 본 스파이더를 탔다고 이렇게까지?’
싸우는 게 처음도 아니었다.
공허 간수와 2번이나 싸워봤는데 아무래도 단체로 싸우니까 체감하는 정도가 다를 수밖에 없었다.
‘어쩐지 8, 9번째 공허 간수가 상대하기 편했지. 그게 상성이 문제가 아니라, 류페이가 엄청나게 강해진 거구나.’
혼자서 공허 병사 10마리를 상대하는 모습을 보곤 확신할 수가 있었다.
"......."
여전히 엘라드의 표정은 오묘했다.
놀란 것도 잠시.
“오, 류페이. 정말 많이 강해졌는데?”
일반적인 동료가 이 속도가 강해졌다면 순수한 마음으로 축하해 주기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류페이는 단순 동료가 아니었다.
그의 힘 그 자체인 언데드였다.
언데드가 강해졌다고 질투하는 네크로맨서는 있을 수 없었다.
“흐흐흐, 이제야 좀 알아주네. 어때, 마음에 들어?”
“완전 마음에 들어.”
“큭즉, 역시 뭐든지 강하고 봐야 해. 지금껏 안 알아주더니 이제야 좀 알아봐 주네.”
“뭐래, 나 원래부터 너 좋아했거든?”
물론 언데드로써.
“뭐, 그렇다고 쳐줄게.”
류페이가 성격이 좀 독특하고 개성적이긴 했지만, 언데드로써 네크로맨서에 대한 충성심이 낮은 건 절대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기사라는 특성상충성심이 깊은 편이었다.
“덕분에 전투가 좀 더 수월하겠어.”
“흐흐흐.”
영혼의 주인이자 계약자인 요한이 칭찬해주자 이빨을 훤히 보이며 웃어 보이는 류페이.
사실 그녀의 모습은 인간 기준으로 하면 판단하기 힘들었다.
왜냐하면, 기존 틀은 미녀였지만 얼굴에만 해도 일부분엔 살이 없어서 뼈가 훤히 보였다.
듀라한 출신이라 목엔 수술 자국같은 게 훤히 보였다.
갑옷을 입고 있어서 제대로 보이진 않았지만, 살점이 없는 부분이 많았다.
하지만 언데드치곤 미녀에 속하는 건 사실이었다.
‘아, 맞다. 이제 드디어!!’
첫 공허 병사를 사냥했을 때는 얻지 못했던 시체였다.
하지만 더는 시체를 먹겠다고 달려드는 언데드가 없는 탓에 마음놓고 시체를 회수할 수가 있었다.
“룰루~.”
콧노래가 자동으로 흘러나왔다.
그의 스킬론 쓰기 아까운 시체였지만, 급할 때는 구울로 불러내면 그만이었다.
시체 수집으로 얼른 챙겼다.
그리고 10마리 중의 하나에서 공허석 1개를 획득할 수가 있었다.
‘공허 병사에도 공허석이 나오네?'
얼른 품에 챙겼다.
마을로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공허 병사의 출현 빈도가 잦아졌다.
‘이거 바로 이쪽으로 왔으면 입구에서 죽었겠는데?’
10마리로 시작했던 공허 병사는 15마리, 20마리, 30마리까지 등장했다.
촤악-!
“으하하핫, 다 덤벼라. 다 죽여 주마!!”
그야말로 대학살극이었다.
챙- 스걱-!
물론 엘프 스펙터들의 활약도 뛰어나긴 했다.
훨씬 더 강력한 기운을 뿜어내며 검은 기운으로 전투를 치렀다.
다만, 워낙 류페이와 본 스파이더의 활약이 뛰어나다 보니 묻히는 감이 없지 않았다.
“하아아압!!”
쿵쿵쿵-!
본 스파이더를 탄 류페이가 공허병사 10마리를 향해서 쇄도했다.
공허 병사도 지지 않고 달려들었다.
본 스파이더도 단순 탑승용이 아니라 강력한 언데드로서 위용을 자랑했다.
촤악-!
생전에 사용했던 스킬인 웹 스프레드를 사용했다.
끈끈한 거미줄이 넓은 범위로 뿌려지자 3마리의 공허 병사가 그대로 거미줄에 갇히고 말았다.
‘그래, 저거. 특히 본 스파이더, 정말 사기급으로 강하지.’
워낙 원판이 좋다 보니 언데드도 강했다.
요한이 부르는 본 골렘처럼 뼈를 소모해 본 골렘 자체를 불러낸 게 아니라 무려 스카이 포탈 보스 몬스터인 공허 간수를 모델로 태어난 본 골렘이었으니까.
‘근데 거기서 1% 확률이 터질 줄이야. 진짜 대박이지.’
대박 중에서도 초대박이라고 해도 부족하지 않았다.
자신보다도 더 강한 본 스파이더를 타고 싸우니 류페이 앞에 놓인 공허 병사는 추풍낙엽처럼 쓰러질 수밖에 없었다.
‘덕분에 마지막 공허 간수 사냥이 생각보단 쉽겠어.’
그리고 마지막 마을에서 여기서 쓰긴 좀 아깝지만, 훌륭한 재료인 공허 병사의 시체도 충분히 얻었으니까.
전투 준비는 완벽했다.
‘지금까지 공허 간수가 안 보였다는 건. 아무래도 저쪽에 있다는 뜻이겠지?’
아무리 봐도 보스 몬스터가 있는 것 같은 분위기를 풀풀 풍기는 건축물이 마을 중심에 있었다.
나무를 집으로 삼는 엘프와 달리 다크 엘프는 확실한 건축술을 가지고 있었다.
드워프와 비교할 바는 아니었지만, 다크 엘프는 나름의 훌륭한 건축술을 보유했으니까.
마을 정중앙에는 목조 건물이 크게 우뚝 서 있었다.
“류페이 앞장서.”
“흐흐흐, 알았어.”
볼살이 있어야 하는 곳에 볼살대신 뼈가 훤히 보이는 류페이는 음흉하게 웃으며 본 스파이더를 타고 앞장서서 움직였다.
공허 병사와 그렇게 싸웠음에도 전투에 목마른 그녀였다.
목조 건물에 가까이 다가갔다.
우우응-!
‘드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