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결론부터 말하자면 루펜의 작전은 완전히 실패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공허 간수가 요한의 기척을 멀리서 눈치채고 다크 엘프를 이끌고 먼저 공격해 왔기 때문이다.
‘하긴,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다고 해도 이렇게 많은 숫자의 언데드가 진을 치고 있는데. 한 세계를 지배하는 괴물이 눈치채지 못할 리가 없지.’
평소보다도 훨씬 많은 언데드 무리였기에 계산 착오라고 해도 딱히할 말이 없었다.
하지만 요한은 딱히 상관없었다.
‘어차피 싸우려고 했는데. 기다리지 않아도 되니 편하지.’
루펜이 하려는 일을 기다릴 필요가 없으니 이득이라고 하면 이득이었다.
[클클클.]
츄릅-!
녀석은 나무 위에서 웃으며 요한을 내려다보았다.
동시에 길고 굵은 혀가 입술을 핥았다.
마치 먹이를 노리는 맹수의 모습이었다.
[언데드는 별로 맛이 없는데. 아쉽지만, 네놈을 먹어 치우는 것으로 만족해야겠군.]
격이 높은 몬스터답게 성대가 아니라, 텔레파시로 언어를 전달하는 공허 간수였다.
‘저게 미쳤나.’
예상 밖의 등장이긴 했지만, 크게 당황한 건 아니었다.
그런데도 공허 간수는 이미 다 이겼다는 태도였다.
[클클클.]
스릉.
공허 간수의 손끝에서 까만 손톱이 자라났다.
요한의 편에 선 다크 엘프들은 몸을 숨겼다.
괜히 눈에 띄었다간 거부할 수 없는 명령을 받아야 할 테니까.
다행히 미리 눈치를 챈 덕분에 공허 간수가 도착하기 전에 몸을 피할 수가 있었다.
[물 흐리는 몇 마리 쥐새끼가 느껴지긴 하지만. 네놈을 처리한 다음에 먹어 치우면 되겠지. 클클클.]
공허 간수는 이미 다크 엘프 배신자를 느낀 다음이었지만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어차피 다크 엘프나 캉구스나 명령을 들어야 하는 하찮은 종족에 불과했다.
오랜만에 방문한 먹음직스러운 침입자를 제거하고 처리해도 절대 늦지 않을 것이었다.
요한이 이끄는 언데드 군단이 소란스러워졌다.
저벅.
“요한, 저 녀석을 해치우면 돼?”
그중에서 선두는 역시 언데드 군단의 돌격대장이자 이번에 데스나이트로 진화한 류페이였다.
온몸에서 넘치는 죽음의 기운이 안 그래도 호전적인 류페이의 감각을 자극하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더 빨리, 피를 보고 싶었다.
생명체를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싶었다.
주인인 네크로맨서만 빼고 모든 생명체를 다 격멸하고 싶었다.
“제가 나서겠습니다. 나서게 해주십시오.”
호전성 하면 새로운 다크호스 엘라드를 빼놓고 얘기할 수가 없었다.
특히 스펙터로 진화한 지금 그녀의 기세는 하늘을 뚫고 올라갈 정도였다.
정작 이들을 지휘하는 요한은 어이가 없었다.
“저기요. 모두 힘을 합쳐도 이기기 힘든 상대가 공허 간수거든요.
혼자 나대지 말고 협조 좀 합시다.
네?”
상대는 이곳 스카이 포탈의 보스몬스터 공허 간수였다.
아무리 진화를 한 언데드라고 하더라도 1:1에서 게임이 될 리가 없었다.
그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요한이기에 자기를 내보내 달라는 둘의 태도에 어이가 없을 뿐이었다.
“쳇.”
"......주군의 명령대로.”
둘은 정말 마음대로 날뛰고 싶었지만, 거부할 수 없는 주인의 명령이기에 어쩔 수 없이 한발 물러날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여기서 물러난다고 해서 싸우지 않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클클, 시간은 그만 끌도록 하지.
죽여라.]
“예!”
파바박-!
요한에게 언데드 군단이 있다면, 공허 간수에겐 그가 지배하는 마을의 다크 엘프 전사 부대가 있었다.
공허 간수의 명령을 절대 거부할 수 없는 다크 엘프 전사들이 명령이 떨어지자 숨어 있던 나무에서 뛰어내렸다.
곧바로 요한을 향해 쇄도해 나갔다.
'.......'
세뇌된 다크 엘프 전사를 보는 요한의 눈빛은 이보다 더 싸늘할 수가 없었다.
사냥감을 바라보는 포식자의 눈.
대적자나 경쟁자를 보는 눈이 아니라 그저 어떻게 죽일까, 어떻게 쓸 수 있을까 같은 종류의 눈이었다.
[다크 프로즌!!]
명령이 떨어지기도 전에 사무엘이 알아서 나섰다.
그가 이끄는 스켈레톤 메이지들이 동시에 촘촘한 화망을 구성하여 빠르게 떨어지는 다크 엘프 전사를 요격하기 시작한 것이다.
[데스 에로우!!]
[미천한 파동!!]
사무엘의 능숙한 지휘에 부족한 능력이지만, 톡톡히 활약하는 스켈레톤 메이지 부대였다.
“컥!! ”
“크헉!!”
위에서 아래로 뛰어내리는 방식의 공격은 위력은 좋은 편이었다.
순식간에 적의 틈에 섞이면서 기습적으로 공격을 하게 되면 순간적으로 파괴력을 극대화시킬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이 전략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사무엘이 하듯이 미리 촘촘한 화망으로 떨어져 내리는 중간에 공격을 해버리면 날개가 있지 않은 이상 공중에선 자유롭게 움직일 수가 없었다.
콰앙-!
몇 명의 다크 엘프 전사는 공중에서 그대로 잿가루가 되기도 했다.
“야야!!”
당연히 요한의 분노에 찬 호통이 떨어졌다.
움찔-!
사무엘을 포함한 스켈레톤 메이지들은 몸을 움츠릴 수밖에 없었다.
공포를 모르는 언데드들이었지만, 주인인 네크로맨서는 그야말로 두려움의 대상이었으니까.
“내가 시체까지 없애는 스킬 사용 자제하라고 했잖아!!”
[……죄송합니다.]
딱딱.
사무엘과 스켈레톤 메이지는 시무룩하게 사과했다.
그들도 잘 알고 있었다.
요한이 시체에 얼마나 집착하는지.
사무엘도 네크로맨서 출신 리치였기에 모를 리가 없었다.
그러니 명령을 떠나서 마음을 잘 알기에 실수에 대한 것을 스스로 반성했다.
“똑바로 해!”
[예…….]
전투는 계속되었다.
콰가가강 파앙-!
전투 중에서 가장 치열한 곳은 역시 공허 간수가 있는 장소였다.
[클클클, 좀 더 발악해 보아라.
슬슬 지루해지려고 하는구나.]
츄릅-.
긴 헛바닥이 다시 한번 입술을 훑고 지나갔다.
“……약삭빠르긴.”
주륵.
네크로맨서가 된 이후 처음으로 요한은 몬스터에 직접적인 상처를 입었다.
그의 가슴엔 큰 상처가 났고 피가 조금씩 흐르고 있었다.
따끔-!
손가락으로 살짝만 만져도 따끔거리고 쓰라렸다.
다행히 얕게 베인 상처라 생명엔 지장이 없었다.
피만 조금 요란하게 흐를 뿐이었다.
공허 간수는 정말 대놓고 요한만 집요하게 노리고 있었다.
[어차피 언데드야 네놈이 죽으면 사라질 하찮은 것들이지. 하찮은 것들과는 눈도 마주치지 않아야 하는 법이다.]
휙-!
기습적으로 스켈레톤 워리어 1기가 공허 간수의 뒤를 노렸다.
꽤 기습적인 일격이라고 할 수가 있었다.
하지만 딱 1방, 커다란 손을 한번 휘두르는 것만으로도 요한의 철저한 코딩으로 어지간한 헌터와 1:1로 싸워도 밀리지 않는 워리어가 그대로 산산조각이 났다.
가공할 정도의 위력이었다.
‘워리어는 미끼 수준도 안 된다는 건가.’
첫 번째로 상대했던 공허 간수는 강력했지만, 지능이 낮아서 상대하기가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두 번째 공허 간수는 네크로맨서를 어떻게 상대해야 하는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뭐, 그렇다고 질 마음이 있는 건 아니지만.’
그저 좀 더 까다롭다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었다.
파악-!
공허 간수가 다시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본 월!’
구궁-!
뼈로 된 벽이 솟아올랐다.
쾅-!
[성가시군.]
공허 간수는 뼈로 된 벽을 뚫으려고 했지만, 단단한 벽은 1번에 뚫리지 않았다.
이 덕분에 요한이 저 재빠른 공허 간수의 기습적인 공격에 버틸수가 있었다.
콰강-!
그러나 강력한 공허 간수의 완력을 2번이나 버틸 수는 없었다.
본 월이 깨지고 곧장 요한을 노리려고 했다.
후웅- 퍽!
“크엑!”
이미 준비하고 있던 본 골렘의 주먹에 그대로 적중당해 멀리 튕겨 나갔다.
멀리 날아간 공허 간수가 땅에 부딪히자 달걀이 깨지듯이 팍! 하고 퍼졌다.
꿈틀꿈틀.
액체처럼 퍼졌던 것들이 알아서 움직이며 원상태로 돌아왔다.
‘아오. 뭐, 저런 게 다 있어?’
스마트폰을 양손으로 잡은 요한은 미간을 한껏 찌푸린 채 공허 간수를 쳐다보았다.
화면으로 봤을 때는 이보다 더 정확할 수 없을 정도로 정통으로 맞추었다.
그런데도 공허 간수는 멀쩡하게 몸이 복구되었다.
‘쯧, 핵을 찾을 여유도 없고. 싸우면서 핵의 위치를 파악하고 파괴해야 하는 거네.’
정말 힘든 일이 아닐 수가 없었다.
하지만 해야 하는 일이기도 했다.
“크에에에엑!!”
[하찮은 것들이 감히!!]
공허 간수는 분노의 포효를 내질렸다.
금방 복구를 하기는 했지만, 하찮은 생명체에게 공격당했다는 사실이 짜증 났기 때문이다.
***
전투는 격렬했다.
끊임없이 재생하는 공허 간수의 공격에 요한은 어떻게든 녀석의 핵을 찾아 부수려고 했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워낙 빠르고 파괴적인 데다가 변화무쌍한 신체를 이용한 전투 방식은 지금껏 상대했던 그 어떤 몬스터와도 그 궤를 달리했다.
그러나 시간이 점점 지날수록 유리해지는 건 녀석이 아니었다.
[명령을!!]
사무엘을 필두로 한 일반 언데드무리와 다크 엘프 전사들이 벌인 혈투.
그 혈투의 현장에서 패배한 다크엘프 전사들이 하나, 둘 밴시로 깨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꺄아아아악!!”
검은 기운을 뿜으며 강력한 위력을 자랑하는 엘프 밴시.
마치 물 흐르듯이 허공을 움직이며 죽음의 기운으로 적을 공격할 수도 있는 녀석들이었다.
그런 강력한 언데드가 매시간 추가되고 있었다.
[……실수했군.]
공허 간수는 뒤늦게 자신의 실책을 깨달았다.
하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이미 요한이 거느릴 수 있는 엘프 밴시의 최대치를 다 채웠기 때문이다.
슥슥-아직 전투는 한창 진행 중이었고, 요한의 손가락은 스마트폰 위에서 현란하게 움직였다.
구웅- 쾅!
사방에서 옥죄어 오는 언데드들은 아무리 죽여도, 죽여도 끝이 없었다.
[클클클.]
공허 간수는 웃었지만, 절대 여유의 웃음이 아니었다.
끊임없이 몰려드는 언데드에 점점 파묻히는 웃음소리였다.
‘아직 핵은 어딨는지 모르겠지만.’
촤악-!
“크이이익!!”
점점 녀석의 상처가 많아지고 있었다.
‘뭐, 굳이 알 필요는 없지. 온몸을 난자하다 보면 어디 1곳은 걸릴 테니까.’
그게 더 네크로맨서에 어울리는 승리라고 할 수가 있었다.
[클클, 난 이대로 쓰러지지만, 네놈은 절대 공허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할 것이다.]
“아, 네. 패배자는 잘 가시고요.
다시는 보지 맙시다?”
[클클클!!]
콰앙-!
마지막으로 본 골렘이 녀석의 몸전체를 짓밟았다.
푸시시식-!
그러자 매캐한 연기와 함께 악취가 사방으로 풍겼다.
“읍, 이건 또 뭐야?”
얼른 팔로 코와 입을 막았다.
시체와 함께하는 요한도 버티기 힘든 악취였다.
‘공허 이름이 붙어 있는 놈들은 왜 매번 이따위인지!’
그래도 어쨌든 2번째 공허 간수를 사냥하는 데 성공했다.
띵-!
거기에다가 스위트하게 스마트폰엔 레벨이 올랐다는 메시지도 와주었다.
승리와 함께 오르는 레벨은 늘 행복을 선사해 주었다.
‘자, 그러면 이번 공허 간수의 시체에선 뭐를 얻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