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
"......."
루펜과의 대화로 더는 싸울 필요가 없는 다크 엘프 전사들과 요한이었다.
하지만 분위기는 썩 좋지 못했다.
바로 새로 합류한 다크 엘프 전사들과 프링고 사이에 흐르는 어색한 기류 때문이었다.
슥슥.
정작 모든 일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요한은 별로 관심이 없었다.
하늘에게 맡겨둔 일이 끝날 때까지 잠시 여유가 생겨서 본 골렘의 어깨 위에서 스마트폰으로 코딩 작업에 몰두하고 있었다.
마치 남 일이라는 듯한 태도였다.
엄밀히 따지면 남 일이 맞기는 했지만.
“더러운 배신자들을 여기서 보다니.”
“흥, 위선자들 따위가.”
프링고들은 처음엔 다크 엘프에게 죄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용서를 구하고 반성하며 종족을 위해서 솔선수범하면 언젠간 자신들을 받아 줄 거로 생각했었다.
그래서 미지의 존재가 벌인 실험에서도 겨우 함께 살아남은 일족전사들을 절반 가까이 잃으면서까지 다크 엘프를 위해서 봉사한 그들에게 날아온 것은 차가운 배신이었다.
덕분에 안 그래도 그 수가 많이 준 일족은 캉구스의 각종 고문으로 인해서 절반 이하로 줄어버렸다.
보통 인류가 근친상간의 위험 없이 종족을 유지하고 번식을 하기 위해선 500~1,000명 이상이 필요하다고 했다.
하지만 프링고는 남녀 다 합쳐도 300명이 넘지 않았다.
몇 세대만 거치면 어쩔 수 없이 유전적 근친이 생길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100%는 아니지만, 자칫 잘못하면 몇 세대도 버티지 못하고 멸족 할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프링고들은 분노했고 다크 엘프를 철천지원수라고 생각했다.
철저하게 미워했고 증오했다.
절대 메울 수 없는 감정의 골이 그들을 철저하게 가르고 있었다.
누구 한쪽이 나쁘다고 할 수가 없었다.
미지의 존재가 정신을 지배할 당시엔 프링고가 다크 엘프 탄압의 선두였으니까.
프링고는 원래 다크 엘프 중에서도 가장 피가 진한 엘리트 일족이 그만큼 프라이드도 강했는데 그들이 순수히 요한을 모시기로 한 이유도 다크 엘프와 연관이 있었다.
딱 봐도 다른 차원에서 넘어왔고 강해 보이는 요한을 주인으로 모시면서 스카이 포탈에서 벗어나고 싶었기 때문이다.
아니, 정확히는 조금이라도 더 빨리 다크 엘프와 몸이든, 마음이든 떨어지고 싶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프링고는 다크 엘프라는 이름을 버리고 요한의 충실한 일족으로 살아갈 예정이었다.
“그, 그만해. 지금은 각자의 사정 보다는 다크 엘프의 해방이 더 중요하잖아!”
루펜은 중간에서 중재하느라 땀을 뻘뻘 흘려야 했다.
“최근에 다른 지역이 꽤 시끄럽다는 소문이 들리더라니. 다 저 네크로맨서 때문이었나 보군.”
“맞아. 나와 계약을 했어. 우리 종족의 해방을 도와 달라고.”
“계약이라면 주기로 한 보상도 있겠군.”
“응, 맞아.”
보상에 대해선 딱히 묻지 않았다.
“루펜.”
“으, 응?”
“다 끝났어?”
대충, 하던 작업이 끝난 요한은 물어보았다.
“으, 응. 끝났어. 이젠 공허 간수얘기 들으면 돼.”
“그건 나도 같이 들어야지. 야, 나 내려줘.”
퍽퍽-!
굳이 때리지 않아도 되었지만, 워낙 육중하고 둔한 녀석이라 이렇게라도 해야 명령한 느낌이 났다.
본 골렘은 요한을 유리잔이라도 되는 것처럼 조심스럽게 땅에 내려놓아 주었다.
“그래서, 너희들 마을에 있는 공허 간수는 어떤 녀석인데?”
전에 상대했던 녀석과 똑같을 수도 있겠지만, 요한은 그 부분은 완전히 배제했다.
"......."
다크 엘프 전사는 잠시 묘한 눈빛으로 요한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힐끔, 루펜을 내려다보았다.
“괜찮아. 아는 것 다 말해줘. 공허 간수에 저항할 수 없는 우리가 믿을 수 있는 유일한 존재잖아.”
“알겠다.”
여전히 마음에 들지 않는 표정이었지만, 루펜의 말대로 다른 방법이 없었다.
이곳 포탈에 있는 종족 모두는 공허 간수에 감히 저항할 수 없도록 조치가 되어 있었다.
물론 요한이 강한 S급 헌터인 것은 사실이나 1:1에서 질정도면 무적은 아니란 뜻이었다.
엘리트 종족인 다크 엘프 전체가 공허 간수한테 힘이 부족해서 당하고 있는 게 아니었다.
“우리 마을을 지배하는 공허 간수는……."
다크 엘프 전사의 말을 요약하면 크게 5가지였다.
1. 다른 공허 간수와 달리 크기가 작아서 신장은 2m 정도로 작음.
2. 2족 보행으로 팔과 다리가 유달리 길고 두꺼움.
3. 전투 방식은 온몸을 무기처럼
사용해 싸우며 피부를 다양한 방식으로 변형해 싸움.
4. 피부는 신체라기보다는 무기 같은 것. 녀석의 생명은 핵에 있으며 신체 어딘가에 꼭꼭 숨겨져 있음. 그것을 파괴해야만 죽일 수 있음.
5. 지능이 높아서 언어를 사용하며 전투 센스도 뛰어남.
‘슬라임 계열 몬스터인가?’
일반적인 슬라임이 아니라 특수슬라임 같은 이미지였다.
‘미지의 존재인가 뭔가 하는 녀석이 슬라임을 키워서 만든 것일수도.’
자세한 건 직접 봐야 알 수 있겠지만.
“여기까지다.”
“수고했어. 마을은 여기서 별로 안 멀지?”
“나무를 타고 가면 3시간이면 도착한다.”
“아, 네.”
'......아오, 이 비문명권. 진짜 답답하네.’
다크 엘프는 인간처럼 거리를 표시하는 명확한 단위가 없다 보니 이런 식으로 길이를 표현했다.
비슷한 예로 조선 시대의 ‘보’ 개념과 비슷했다.
보란 보통 장년 남성의 발걸음을 기준으로 했을 때의 길이 단위였다.
1보=6척=181.80cm=1.82m.
다크 엘프의 거리 기준은 나무를 타고 평범하게 이동했을 때의 시간이었다.
휘잉-!
[요한. 다녀왔어!]
“오, 어서 와라.”
그때 요한의 답답함을 해결해 줄 구세주가 타이밍 맞게 등장했다.
“내가 시킨 일은?”
[내가 누군데. 다 했지!!]
“좋아, 어딨어?”
[요기.]
휘잉-!
바람이 불더니 전에도 본 적이 있는 그 군인 유령이 모습을 드러냈다.
[충성!]
“나, 네놈 상사 아니다. 나한테 인사하지 마라. 군인 같잖아!!”
[아, 예. 그러면 정보를…….]
“잠깐.”
[예?]
“굳이 정보를 줄 필욘 없어.”
[예?]
“가만히 있어 봐.”
[아, 예.]
이미 하늘의 목소리가 들렸을 때부터 준비해 두었던 스마트폰을 꺼내서 미니맵 어플을 작동시켰다.
그리고 틈틈이 작업해 두었던 기능인 카메라 기능을 켰다.
그러자 카메라가 켜졌고 얼른 군인 유령을 찰칵, 하고 찍었다.
[.......]
군인 유령은 살짝 어이없다는 표정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요한은 코로 허멍까지 하면서 찍은 사진을 미니맵어플과 연동시켰다.
띵-!
[미니맵 업데이트가 완료되었습니다.]
‘크으, 그렇지!!’
요한은 정말 말 그대로 틈이 날 때마다 다양한 어플을 구상하거나 기존의 어플들을 수정 및 새로운 기능을 추가했다.
특히 미니맵 어플에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이었다.
지금까진 요한이 직접 밟은 땅만 안개가 걷히면서 정보를 얻을 수가 있었다.
그건 너무 비효율적인 일이었다.
그래서 고안해 낸 것이 유령의 정보를 QR코드 인식하듯이 찍어서 어플에 적용하는 방식이었다.
일반 어플은 절대 할 수 없지만, 특성에 의해서 마나의 작용으로 요한의 힘에 도움이 되는 어플은 달랐다.
카메라로 군인 유령을 찍은 것은 단순히 사진이 아니라 순간적으로 녀석을 스캔한 것이었다.
녀석이 듣고 보고 입력한 정보를 순식간에 스마트폰으로 업데이트했다.
그 정보를 토대로 미니맵이 밝혀지며 안개가 걷혔다.
그러면서 요한이 알지 못했던 곳의 지형을 파악할 수가 있었다.
군인 유령이 파악한 정보도 기록되어 있었다.
‘와, 이거 진짜 편하고 좋다.’
편하려고 만든 기능이었지만, 실제로 써 보니 생각보다 훨씬 더 좋았다.
슥슥-.
정보를 얻었으니 열람할 차례였다.
하늘은 요한이 시킨 대로 다크엘프 마을로 확인되는 곳을 조용히 정찰하고 돌아왔다.
[후우, 십 년 감수했다니까. 그 새까만 녀석이랑 눈을 마주쳤을 때는 정말…….]
‘아무래도 공허 간수 얘기하는 것 같네.’
하늘에서 조용히 관측하는 유령인 하늘을 볼 정도라면 공허 간수쯤은 돼야 했다.
그것도 정확히 눈이 맞았다고 하니 다크 엘프는 무리였다.
‘이렇게 돼 있단 말이지. 흠, 그런데 이번엔 다크 엘프들이 거슬리네.’
첫 번째 공허 간수는 지능이 높지 않은 괴물이었다.
그래서 사냥하기 전에 다크 엘프들을 대피시킬 수가 있었다.
'하지만 지능이 높다고 하니, 그 작전을 쓰는 순간 눈치를 챌 거야.’
애초에 공허 간수의 명령을 어길 수가 없는 상태가 다크 엘프였다.
“어이, 루펜!”
“응, 왜?”
“아무래도 내 손으로 다크 엘프 좀 죽여야겠는데?”
“뭐, 왜?!”
기겁하는 건 당연했다.
종족을 좀 구해 달라고 의뢰했더니 죽이겠다고 나오니 말이다.
“이번 공허 간수는 지능이 높다며?”
“응, 그랬지.”
“그러면 첫 공허 간수 때 사용했던 마을을 비우는 작전이 통할 리가 없잖아.”
“아……."
루펜은 아차 싶었다.
그도 잘 알고 있었다.
다크 엘프는 공허 간수의 명령을 어길 수가 없다는 것을.
그래서 첫 번째 공허 간수를 사냥할 때도 혹시라도 명령을 내릴까봐 멀찍이 떨어져 있었다.
“그, 그러면 어떻게 하지?”
당황한 루펜과 달리 요한은 뚱하게 대답했다.
“어떻게 하긴, 내 손에 좀 죽어줘야지. 안 그래도 엘프 밴시가 추가로 필요했는데 잘됐지.”
“뭐, 뭐라고?!”
동족을 죽이겠다는 말을 너무 쉽게 하는 요한의 태도에 루펜은 잔뜩 뿔이 났다.
“그러면 뭘, 어떻게 할까. 다크엘프가 공격해도 그냥 얻어맞고만 있을까?”
“……그, 그건 아니지만.”
“너 인마, 태도 똑바로 해. 이 사정 봐주고, 저 사정 봐주면 네가 원하는 다크 엘프 해방은 100년이 지나도 힘들어.”
“알아. 아는데……."
그래도 다크 엘프를 다스리는 로드의 후손이었다.
차마 죽여도 된다고 말하기가 쉽지 않았다.
“에휴, 내가 왜 너랑 다투고 있냐. 그냥 내 식대로 하면 될걸.”
공허 간수의 명령을 받는 다크엘프의 합류는 적의 전력 강화일수도 있지만, 반대로 요한의 시체를 획득할 기회의 증가이기도 했다.
“자, 잠깐만!”
“뭐, 왜 또?”
“나, 나한테 한 번만 기회를 줘.”
“무슨 기회?”
“내가 책임지고 마을의 동족들을 대피시켜 볼게.”
“굳이 안 그래도 되는데……."
말투는 마치 내가 다 알아서 할 테니까 너는 뒤에서 안전하게 쉬어 같았다.
“아, 아니야. 내, 내가 꼭 하고 싶어서 그래!”
루펜은 다급했다.
말투와 달리 요한과 꽤 오래 지내며 그의 성격을 파악한 루펜은 알고 있었다.
‘요한은 절대 그렇게 친절하고 배려심 있는 녀석이 아니야. 저 눈빛, 시체를 원하는 탐욕스러운 눈빛!! 동족의 시체를 갈구하고 있는 게 분명해!!’
그러니 더욱 간절할 수밖에 없었다.
모든 동족을 구할 수 없다는 것 정도는 어린 다크 엘프인 루펜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구할 수 있는 동족은 반드시 구하고 싶었다.
‘시도도 안 해보고 포기할 수는 없어.’
굳건한 의지의 루펜은 기죽지 않고 요한과 눈을 마주쳤다.
“쯧, 몇 시간 안 줄 거야. 나 바쁜 거 알지?”
“알아, 걱정하지 마. 최대한 빨리 해볼게!”
“흠.”
요한은 마땅찮은 표정을 지으며 허락할 수밖에 없었다.
27장. 공허의 언데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