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이 타이밍에 변화라고?’
딱히 나쁜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타이밍이 영 좋지 못했다.
특히 요한의 기분이 가라앉아 있다는 게 컸다.
‘쩝, 일단 확인이나 해보자. 무슨 변화라는 거야?’
자세한 정보라도 적혀 있었다면 이렇게 답답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변화가 있다는 메시지만 떠올랐을 뿐, 다른 내용은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분석 프로그램을 돌려 봐도 [변화 중……]이라는 메시지만 떠오를 뿐이었다.
‘거참…… 이번 전투에서 아직은 얻은 게 하나도 없어서 이것만큼은 좋아야 할 텐데…….'
시체는커녕 마석도 하나 얻지 못했다.
공허 병사 4마리를 잡느라고 사라진 언데드를 보충하기는커녕 돈도 못 벌었으니 변화에 걸어 보는 수밖에 없었다.
‘쩝, 이렇게 정확하지도 않은 일에 운을 맡기는 건 내 스타일이 아닌데.’
상황이 이러니 어쩔 수가 없었다.
***
공허 병사의 시체를 섭취한 언데드들은 그 이후로 무려 3시간이나 넘게 기절한 것처럼 누워 있었다.
그 후 다시 스마트폰이 울린 건 3시간 33분이 흐른 뒤였다.
띵-!
‘오, 드디어?’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3시간 33분을 피가 마르는 심정으로 기다렸던 요한은 얼른 스마트폰을 확인해 보았다.
[언데드의 변화가 끝이 났습니다.]
‘뭘까, 무슨 변화가 일어난 거지?’
대충은 추측이 가지만, 자세한건 제대로 확인해야만 알 수 있었다.
시이이익-!
‘응?’
죽은 듯이 누워 있던 류페이와 엘프 밴시의 주변에 거무튀튀한 잿빛의 기운이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저벅-!
동시에 하나, 둘 몸을 일으켰다.
‘오?’
변화를 끝낸 녀석들을 본 순간 요한의 기분은 순식간에 냉탕에서 열탕으로 바뀌었다.
심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거 생각보다 훨씬 대단한 거 아니야?’
기운을 느끼고 있는 것보단 스마트폰으로 확인하는 게 훨씬 정확했다.
[공허의 힘 일부가 언데드에 스며들었습니다.]
‘공허의 힘? 스며들었다고?’
요한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문구를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한 번 만에 잘 이해되질 않았기 때문이다.
‘설마, 시체를 먹은 행위가 이런 것을 뜻하는 거였어?’
물론 일반적인 일은 아니었다.
다행히 아직 메시지는 끝나지 않았다.
[세상을 이루는 3가지 힘 중의 하나가 공허의 힘입니다. 아주 소량의 힘이 스며들었지만, 그 소량만으로도 언데드를 변화시키기엔 충분합니다. 공허의 힘을 얻은 언데드는 상위 개체로 진화합니다.]
‘뭐, 상위 개체?!’
깜짝 놀란 요한.
아직도 메시지는 끝나지 않았다.
[공허의 힘 일부를 흡수하면서 죽음의 힘으로 연결된 술사에게도 영향을 끼칩니다. 스마트폰에 공허의 힘이 흘러 들어옴으로써 일부나마 분석을 할 수가 있었습니다. 이번에 진화한 언데드의 정보를 저장해 직접 컨트롤이 가능해지며 조금 더 정밀하게 코딩이 가능해졌습니다.]
‘와…… 대박!’
이건 정말 큰 변화였다.
거기에다가 요한에게 꼭 필요한 부분이기도 했다.
‘이게 이렇게 적용됐다고?’
변화라고 해도 솔직히 그렇게 막 대단한 변화를 기대했던 건 아니었다.
그저 조금 더 강해지는 정도로 끝날 줄 알았더니 1단계 진화를 해버리고 스킬이 아니라 특정 개체가 스마트폰과 연결이 된 것이다.
‘진화도 대단하긴 하지만, 이게 가장 크지.’
뼈 소모가 막심해서 그렇지 현재 그의 가장 강력한 언데드 소환 스킬은 본 골렘이었다.
본 골렘이 강한 이유는 본 골렘자체가 강력한 것도 없지는 않겠지만, 골렘이라는 한계를 코딩과 직접 컨트롤로 극복했기 때문이었다.
가장 훌륭한 선봉대 역할이 본 골렘이었다.
뼈 소모가 심하고 마나 소모가 심해서 계속 불러낸 채로 다닐 수 없다는 게 문제였지만.
‘본 골렘처럼 관리할 수 있는 언데드가 생겼다는 거지?’
이보다 더 흐뭇한 변화는 없었다.
철그덕.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건 류페이였다.
“오, 목이 붙었네?”
“뭐지?”
류페이는 의아한 표정이었다.
요한은 얼른 어플을 확인해 보았다.
# 데스나이트 - 류페이 종족: 언데드
소환자: 김요한 (네크로맨서)
소환 등급: ★★★★
코드 등급: F
보유 스킬: 데스 오러 Lv.1데스 블레이드 Lv.1콜 팬텀 스티드 Lv.1죽음의 군단 Lv.1
‘와우.’
요한이 드디어 등록된 류페의 상태창을 구경하는 동안.
류페이는 자신의 양손을 내려다 보았다.
생전의 기억도 이젠 별로 없는 그녀는 양손을 이렇게 내려다본 건 죽음을 맞이한 이후 처음이었다.
늘 한쪽 손엔 머리를 들고 다녔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젠 그럴 필요가 없었다.
덜렁거리던 목이 드디어 원위치에 딱 붙었기 때문이다.
“데스나이트가 된 걸 축하해, 류페이.”
“내가…… 데스나이트?”
“그래.”
“신기하군.”
잠시 양손을 내려다보던 류페이는 허리춤에 검이 있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듀라한일 때 사용하던 검보다 더 크고 묵직하며 은은한 기운까지 느껴졌다.
스릉-!
당연히 뽑아보았다.
검신은 새하얗지만, 주변에서 은은하게 올라오는 검은색 기운이 마음에 들었다.
‘이게 나의 새로운 검.’
후웅- 후웅-! 후웅-!
3번 정도 검을 휘둘러 본 후 양손으로 잡아보았다.
한 손으로만 검을 썼을 때와는 확실히 그 감각이 달랐다.
몸도 훨씬 더 가벼웠고 힘도 철철 넘쳤다.
'당장이라도 싸우고 싶다. 생명체에 붙은 생명의 불을 꺼 버리고 싶다!!'
물론 요한은 해당 사항 없었다.
그녀가 아무리 이성이 뚜렷한 언데드라고 해도 인간이 식욕과 성욕이 있듯이 살욕은 언데드의 기본적인 본능이자 욕구였다.
똑똑한 인간이라고 수면욕, 성욕, 식욕이 없는 건 아닌 것처럼.
후드득-!
그때 뒤에서 뭔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아, 그래. 류페이만 있는 게 아니었지!’
류페이의 변화에 신경이 집중돼서 그렇지 변화를 겪은 건 류페이 뿐만이 아니었다.
우우우-.
마치 귀신들이 합창하는 것 같은 소리가 울려 퍼졌다.
“엘라드?”
“이, 이게 어떻게?”
“아, 잠시만.”
# 스펙터 - 엘라드종족: 유령족 언데드
소환자: 김요한 (네크로맨서)
소환 등급: ★★★☆
코드 등급: F
보유 스킬:악령의 검 Lv.1 그림자 격노 Lv.1하이딩 Lv.1 악령 소환 Lv.1밴시에서 스펙터로 진화한 엘라드였다.
‘……얘도 개쩔잖아?!’
등급으로만 따지면 데스나이트보다 부족하긴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엘라드가 부족하다는 소리는 절대 아니었다.
류페이는 1기였지만, 엘라드를 포함한 15기의 스펙터가 탄생했다.
‘완전 대박이지.’
물론 이 녀석들은 좀 귀한 몸이었다.
데스나이트와 스펙터는 요한의 힘으론 아직 부를 수 없는 언데드였다.
특히 공허의 힘을 소량 흡수해서 어플과 연결된 존재들이라 더 귀했다.
‘막 쓰는 데 특화된 언데드인데.
이렇게 귀해서야, 쯧.'
다음엔 더 노력해서 스펙터와 데스나이트를 직접 부르겠다고 다짐하는 요한이었다.
***
강력한 언데드의 합류는 요한의 기분을 180도 바꾸어주었다.
마석과 공허 병사의 시체는 얻지 못했지만, 더 강력해진 언데드를 얻은 것이었으니까.
쿵쿵-!
덕분에 요한은 바빠졌다.
데스나이트와 스펙터로 진화한 류페이와 엘라드 덕분에 할 일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이 코드 등급 F. 내가 코딩을 잘하면 할수록 오르는 거겠지?’
현재 스마트폰으로 프로그램 특성을 사용해 류페이와 엘라드에 대한 코딩 계획을 짜고 있었다.
아쉬운 점은 있었다.
‘스카이 포탈 안이 아니라 바깥이었다면, 각성몽 안으로 들어가서 편하게 코딩했을 텐데. 여기선 잠을 잘 시간도 없으니.’
스마트폰은 화면이 작아서 정교한 코딩 작업을 하기엔 정말 불편했다.
집중도 해야 했기에 평소엔 잘 꺼내지 않는 본 골렘을 불러내 어깨에 걸터앉아서 작업에 집중했다.
일단은 아쉬운 대로 전체적인 틀만 잡아 놓는 중이었다.
미리 해 두면 나중에 각성몽에 들어가서 조금이라도 편할 수 있을 테니까.
“쳇, 재미없어.”
정작 루펜은 작은 물체에 신경만 쓰고 자신과 놀아주지 않는 요한이 원망스러웠지만.
철이 없는 행동이었지만, 다크엘프 나이론 어린 편인 루펜의 감정도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니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샤삭샤삭-!
“?!”
주변 숲에서 빠른 움직임이 감지되었다.
‘이 느낌은?’
꽤 익숙한 기척이었다.
“공격!!”
“더러운 언데드를 격멸하라!!”
파바박-!
사방에서 고함을 치며 적들이 등장했다.
“머, 멈춰!!”
루펜이 기겁하며 양팔을 벌리고 앞으로 나섰다.
필사적인 표정이었다.
우뚝.
“너, 넌?”
다행히도 루펜을 알아보는 이들이 있어서 부딪히기 직전에 멈출수가 있었다.
“뭐, 뭐야?”
“루펜이라고?”
“로드의 후손이 어째서?”
역시나 다크 엘프 전사들이었다.
자신들의 영역 안에서 언데드가 내뿜는 악취를 맡고 재빨리 제압하기 위해서 달려온 것이었다.
‘그렇다는 것은 공허 간수도 있다는 뜻이겠지. 역시 보스 몬스터는 접근하기도 어렵다니까.’
9마리나 잡아야 하는데 1마리 잡는 데 이렇게 오래 걸리니.
다크 엘프 전사들과 루펜이 회포를 푸는 동안 요한은 공허 간수와의 일전을 준비했다.
“하늘.”
[나 불렀어?]
“응, 부탁할 게 있어서.”
[뭐든지 부탁해.]
“그러니까……."
다른 이들이 듣지 못하도록 조용히 속닥였다.
[응, 응. 그렇게 하면 되는 거지?]
“그래, 부탁할게.”
[오케이.]
샤아아.
하늘은 사라지듯이 몸을 감추었다.
요한은 잠시 하늘이 사라진 곳을 바라보았다.
‘도대체 언제쯤이면 하늘의 잠재력이 폭발할까?’
처음 그녀를 얻었을 때만 해도 정말 기대가 컸다.
다른 영혼도 아니고 무려 흑암여제의 영혼이었으니까.
엘라드를 얻었을 때도 밴시인데도 그런 힘을 발휘할 정도였으니까.
더 격이 높은 영혼인 하늘이라면?
이런 기대가 하늘을 찔렀다.
하지만 그런 기대에도 불구하고 변하는 것은 별로 없었다.
하늘은 여전히 조금 더 강한 밴시일 뿐이었다.
딱히 실망스럽거나 하는 것은 아니었다.
현재 요한에겐 하늘 말고도 좋은 언데드가 많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흑암 여제의 영혼이 겨우 이 정도인가 싶은 감정은 있었다.
그저 아쉬울 따름이었다.
하지만 아직 100%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언젠가는 그 재능이 꽃피울 날이 있겠지.’
그저 오늘이 아닐 뿐이라고 생각하며 한시라도 그날이 빨리 오기를 기다리는 방법밖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