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됐다.’
물론 조금 전에도 엘라드가 녀석의 가슴을 베었지만 별 소용은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까와는 사정이 매우 달랐다.
저주에 걸리지 않은 몬스터와 저주에 걸린 몬스터는 아예 다른 상태라고 해도 틀리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요한은 아쉬움이 많았다.
‘쩝, 저주 스킬이 좀 더 많았으면 좋으련만.’
지금의 저주 스킬도 나쁘진 않았지만, 마나 소모가 많았고 위력도 단일 개체 위주였다.
광범위하고 좀 더 처절한 저주스킬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스킬이란 게 그렇게 쉽게 만들어지는 게 아니니까.’
어쩔 수 없는 아쉬움이었다.
지금은 전투에 집중할 때였다.
“크에에엑!”
‘드디어!’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고 전투를 하던 공허 병사가 처음으로 소리를 내었다.
치이익-!
그리고 베어진 상처가 열로 지져지는 소리가 났다.
연기도 피어올랐고 공허 병사의 전투력도 크게 떨어졌다.
저주 스킬의 여파였다.
“덮쳐.”
이때만큼 좋은 기회가 없었다.
명령이 떨어지자 언데드 군단은 앞뒤를 가리지 않고 달려들었다.
“캬아아악!!”
“으억! 으억!!”
쾅쾅-!
공허 병사는 상처를 부여잡고 어떻게든 상황을 벗어나 보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언데드의 집요함은 상상 그 이상이었다.
콰드득-! 우드득-!
손이 없으면 발로, 발이 없으면 이빨로 물어뜯으며 공허 병사를 절대 놓아주지 않았다.
“크에에엑!!”
공허 병사는 더는 버티지 못하고 비명을 지르며 그대로 언데드 떼에 파묻히고 말았다.
‘드디어 1마리 처리했군.’
아직 3마리가 남았지만, 그쪽도 상황이 영 좋은 건 아니었다.
‘죽은 녀석을 어떻게 이용한다.’
막 고민하던 차였다.
“비켜, 이 냄새 나는 잡종들아!!”
퍽-!
그때 언데드 무리에서 꽤 큰 목소리가 튀어나오며 작은 소란이 벌어졌다.
공허 병사를 처리하는 데 가장 큰 공을 세운 류페이였다.
‘뭐지?’
그녀가 이렇게 나설 이유는 없었다.
그런데도 굳이 다른 언데드를 힘으로 밀치고 때리면서 공허 병사가 쓰러진 곳까지 걸어갔다.
처음 보는 모습에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콰득- 콰드득-!
이미 숨이 끊어진 공허 병사의 몸을 구울 몇 기가 여전히 뜯고 있었다.
“비키라고 했지!!”
촤악-!
‘쟤 뭐야?!’
이번엔 류페이의 행동이 과했다.
공허 병사의 몸을 뜯고 있던 구울 3기의 목을 한 번에 쳐낸 것이다.
“야, 인……!!”
‘마’까지 말이 나와야 했지만, 중간에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구울의 목을 벤 류페이가 그대로 무릎을 꿇더니 편하지도 않은 머리로 공허 병사의 시체를 뜯어먹기 시작한 것이다.
‘뭐야 저거?’
물론 그녀도 1기의 당당한 언데드였다.
문제는 지금까지 단 1번도 류페이가 시체를 뜯어먹은 적이 없다는 점이었다.
행위 자체는 이해할 수 있겠지만, 매우 갑작스러운 행동이었다.
콰드득-! 콰드득-!
가장 먹음직스러운 먹잇감을 혼자 독식하고 있었다.
“크르르."
“그억! 그억!”
주변 좀비와 구울은 이상한 소리를 내면서 항의 비슷한 것을 하는 듯했다.
하지만 차마 3m 내론 접근하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주변에서 안타까운 소리만 낼 뿐이었다.
‘젠장, 넌 조금 이따가 보자.’
당장이라도 화를 내고 싶었지만, 상황이 매우 급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1마리의 공허 병사를 처리한 건 성공적이지만, 아직도 3마리의 공허 병사가 남아 있었다.
동료가 죽어서인지 아니면 위기감을 느껴서인지 나머지 3마리가 폭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녀석들은 드디어 상황 파악이 끝났는지 언데드 군단을 직접 노리지 않았다.
파악-!
‘쳇, 드디어 눈치를 챈 건가?’
보통 지능이 낮은 몬스터를 상대할 때 특히 편한 점은 그들은 술사란 개념이 별로 없었다.
네크로맨서를 상대로 언데드만 주야장천 깨부순다?
힘의 차이가 압도적이지 않고서는 절대 이길 수가 없었다.
오히려 힘이 비슷하거나 낮으면 죽이는 언데드 숫자보다 늘어나는 언데드 숫자가 훨씬 많아졌다.
지능이 높은 몬스터부터는 생각이라는 게 가능해 술사인 요한을 노려야 이길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공허 병사도 마찬가지.
그들은 언데드가 아니라 요한을 직접 노리기 시작했다.
‘뭐, 그렇다고 해서 판이 달라지는 건 아니지만.’
후웅-!
마검 요룬을 옆으로 든 요한의 입꼬리는 올라가 있었다.
공허 병사가 직접 노리는 방향을 잡았다고 해도 딱히 상관없었다.
‘내가 그런 걸 미리 준비하지 않았을까?’
그는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인 RTS를 좋아했다.
한때는 그런 RTS 게임을 만드는 게 꿈이기도 했다.
하지만 망한 장르라는 한계로 인해서 제작에 실패했고, 피지컬이 구려서 게이머로써도 성공하지 못했다.
다만, 꾸준한 중수 유저로는 명성을 가지고 있었다.
부족한 피지컬을 전략&전술로 커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는 피지컬의 한계 때문에 그냥저냥 유명한 중수 유저였지만, 그의 천재적인 전략&전술 역량은 네크로맨서로썬 빛을 발했다.
‘술사를 직접 노리겠다면. 내가 순수 미끼가 되어서 적을 철저하게 함정으로 빠트려야지.'
솔직히 이건 전략&전술이라고 하기에도 민망했다.
흔히 전략&전술의 천재가 가지는 이미지는 온갖 기발한 전략&전술을 많이 아는 것으로 착각할 때가 있었다.
절대 아니었다.
전략&전술의 천재는 많이 아는 게 아니라 아는 게 적더라도 꼭 필요할 때 완벽하게 적용을 하는가가 중요했다.
그것을 갖추고 난 다음에야 다양한 전략&전술을 논하는 게 맞았다.
그런 요한과 네크로맨서라는 클래스는 찰떡궁합이었다.
‘본 월!!’
쿠르릉-!
저주 스킬보단 마나 소모가 훨씬 적은 게 본 아이덴티티류 스킬들이었다.
뼈 스킬만큼은 마음껏 사용할 수가 있었다.
거대한 뼈의 장벽이 생겨나며 공허 병사의 진입을 막았다.
‘이렇게 하면 녀석은 내가 확실히 놈을 경계한다고 생각하겠지?’
파박-!
예상대로 3마리의 공허 병사는 빠르게 벽을 우회하며 요한을 노리려고 했다.
정작 본인들이 토끼몰이를 당한다는 것을 모른 채로.
본 월을 빙 돌아서 넘은 공허 병사 3마리는 곧바로 요한을 공격하려고 했다.
샤악-!
"!!"
하지만 요한의 주변에서 엘프 밴시와 엘리니아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야말로 A급 암살자라고 불러도 될 정도로 은신에 뛰어난 이들.
갑자기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
단순히 그게 끝이 아니었다.
[꺄아아아악!!]
"……!!”
밴시들도 나서서 음파 공격을 쏟아부었다.
공허 병사 3마리가 따로따로 있을 때는 이런 식으로 전력을 뭉치는 게 쉽지 않았다.
공허 병사가 워낙 강했으니까.
하지만 이렇게 3마리가 한곳에 있으면 전력을 하나로 모으기가 쉬웠다.
강력한 공허 병사라도 밴시 여러 기가 한 번에 몰아치는 음파 공격에 아무렇지 않을 수는 없었다.
‘자, 그러면 여기서 다시 한번 더 저주 풀 세트다. 약화, 출혈, 시야 차단!’
저주 3종 세트를 3마리 모두한테 걸었다.
“엘리니아, 엘라드!”
파박-!
그 틈을 절대 놓치지 않았다.
엘리니아와 엘프 밴시들이 동시에 공허 병사를 향해서 쇄도했다.
공허 병사는 각자의 무기로 어떻게든 방어를 해보려고 사력을 다했다.
챙챙-!
특히 엘리니아와 엘라드의 활약이 돋보였다.
‘확실히 엘라드 녀석. 일반적인다크 엘프 수준이 아니야. 저런 녀석이 왜 나한테 그렇게 쉽게 죽었지?’
이해가 잘 안 되었다.
가까이 다가올 때까지 기척을 눈치채지 못했던 엘리니아와 비교해도 전혀 떨어지지 않았다.
그러니 더더욱 의아할 따름이었다.
촤악-! 촤악-!
엘프 밴시와 엘리니아가 휘두르는 쌍검에 공허 병사 3마리는 처절하게 난도질당했다.
“카륵!”
공허 병사는 막기도 하고 버티기도 해보았지만, 저주로 인해서 체력이 쭉쭉 떨어지더니 사무엘의 강력한 공격 마법을 맞고는 그대로 쓰러졌다.
‘이겼다!, 확실히 크게 막 위협적이진 않았지만, 생각보다는 어려운 전투였다.
‘자, 이제 녀석들의 시체를 이용해…….'
챙그랑-! 콰직-! 콰드득-!
“야, 인마. 야!!”
갑작스러운 사태에 깜짝 놀란 요한의 목소리가 크게 올라갔다.
네크로맨서가 전투에서 승리 후 가질 수 있는 가장 훌륭한 보상은 시체였다.
막 네크로맨서가 됐을 때는 그에 대한 실감이 없었기에 돈이 되는 마석이 더 좋았다.
물론 지금도 돈이 되는 마석이 좋긴 했다.
그러나 마석 VS 시체를 놓고 굳이 선택하라면 시체를 선택할 것이었다.
그런 귀한 시체, 그것도 3구나되는 처음 획득하는 공허 병사의 시체를 엘프 밴시 15기가 동시에 뜯어먹기 시작한 것이다.
“야, 이 XXXX들아. 뭐 하는 짓이야!!”
요한이 폭발하는 건 당연했다.
얼굴이 시뻘게진 상태로 달려들어서 온몸으로 뜯어말려 보았지만, 속수무책이었다.
“야 이, 좀 그만 먹어!!”
꽈악-!
엘프 밴시는 타고난 전사였고 요한은 몸치 네크로맨서였다.
그래도 스탯으로 강해진 힘도 있기에 일반인보다는 훨씬 더 강한 그의 완력에도 불구하고 꿈적도 하지 않았다.
“야!!”
나중엔 워리어까지 가세시켜 떼어 내어 보려고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엘리니아만 인상을 찌푸린 채로 몸을 돌렸다.
다른 언데드가 이런 모습을 보였으면 이러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한때는 같은 다크 엘프였던 엘라드와 엘프 밴시였다.
그런 그들이 이성도 차리지 못하고 시체를 뜯어먹는 모습이 무척이나 경박해 보였기 때문이다.
‘지저분한 것들.’
도저히 보고 있을 수 없어서 사라지듯이 몸을 숨겼다.
“……하아.”
땅이 꺼지듯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눈 앞에 펼쳐진 참혹한 사건 현장에 망연자실한 느낌이었다.
‘뼈까지 다 씹어 드셨네요. 이 빌어먹을 엘프 밴시들아!!’
당장이라도 소리치고 윽박지르고 때리고 싶었다.
"......."
그러나 이 참혹한 짓을 벌인 범인들은 기절한 건지, 잠을 자는 건지 먹던 그대로 눈을 감고 굳어 있었다.
돌아보니 첫 번째 범인인 류페이도 코까지 골면서 잠을 자고 있었다.
‘근데 언데드가 코까지 고는 거, 실화야?’
그것도 기도도 없는 듀라한이 그러고 있으니 코미디도 이런 코미디가 없었다.
스윽-.
요한은 엘프 밴시들이 먹다 버린 뼛조각을 들고 나라 잃은 백성의 표정을 지었다.
‘미치겠네, 진짜.’
성질 같아선 다 때려 부수고 싶었다.
하지만 류페이, 엘프 밴시 둘 다 귀한 언데드 부하였다.
“아오!!”
혼자 속을 끓일 수밖에 없었다.
띵-!
'어?'
그런데 그때, 요한의 품에 있던 스마트폰의 알람이 울렸다.
‘뭐지, 이 타이밍에 왜?’
전혀 울릴 타이밍이 아니라서 더 당황스러웠다.
‘뭐, 확인해 보면 알겠지.’
지문으로 본인 확인을 하고 화면이 열리니 확실히 메시지 하나가와 있었다.
[듀라한, 엘프 밴시가 변화를 일으킵니다.]
‘저, 저, 저기요?’
정말 뜬금없는 메시지에 요한의 생각이 복잡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