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다낭 시장의 극진한 대접을 받으며 잠깐의 여유를 가진 요한.
마냥 쉬고 있을 시간 따위는 없었다.
애초에 스카이 포탈에서 할 일도 내버려 두고 도로 밖으로 나온 것이었다.
‘후아, 할 일은 많은데 대신해 줄 사람은 없고. 몸은 하나니 나만 죽어 나가는구나.’
이런 삶을 꿈꾼 것은 아니었다.
거액의 연봉을 받으며 호화롭고 여유로운 삶.
그게 요한이 진정으로 원하던 삶의 모습이었다.
‘그런데 정작 최강이란 타이틀에 도전할 수 있는 자리에 올라왔는데.
여유는 정말 가끔 즐길 수 있는 사치가 되어 버렸어.’
물론 그가 성실한 타입인 것은 사실이었다.
회사 다닐 때도 누구보다 야근을 많이 하며 절대로 일에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노력했다.
문제라면 IT 쪽이 성실하다고 문제가 다 해결되는 게 아니란 점이었지만.
정말 하루 24시간이 부족할 정도로 바쁜 나날이었다.
“자, 모두 각오 단단히 하시고.
첫 스카이 포탈 진입이니 긴장도 좀 하시고.”
“후아!”
“후우!”
엘레노아를 따라온 러셀 길드원들은 가슴에 손을 얹고 심호흡을 했다.
그들은 러셀 길드의 정예 대원들이었다.
처음엔 전부 데리고 오려고 했지만, 스카이 포탈이란 곳이 절대 만만치 않다는 이야기를 듣고 정예만 골라서 선발했다.
인원이 많다고 다 좋은 게 아니었다.
자칫 동료의 발목을 붙잡을 수도 있었다.
그래서 고르고 고른 정예 헌터 딱 100명이 스카이 포탈 원정에 동원되었다.
다만, 총 100명은 아니었다.
덜덜덜.
“지, 진짜로 이게 스카이 포탈이라고?”
“마, 말은 들었지만. 떠, 떨린다.”
요한과 달리 공격대나 길드 사냥엔 짐꾼 회사가 필수였다.
러셀 길드와 전속 계약을 맺은 짐꾼 회사인 러셀 서포트 컴퍼니의 인력과 장비가 총동원되었다.
짐꾼까지 포함하면 300명이 넘었다.
‘불안하지만, 길드원이니 믿어야지, 뭐. 레아도 있으니까.’
S급 헌터가 리더로 있으니 믿음직스러웠다.
“갑시다.”
지잉-!
전원 스카이 포탈의 입구로 들어갔다.
“스읍, 하.”
딱 일주일 만에 돌아온 스카이 포탈이었다.
그런데도 호흡기로 느껴지는 낯선 공기는 정말 오랜만에 온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때였다.
“요하아아안!!”
누군가 요한의 이름을 크게 불렀다.
“뭐, 뭐야?!”
안 그래도 긴장으로 바짝 굳어 있던 러셀 길드원들이었다.
갑자기 큰 소리가 나자 깜짝 놀랐다.
그나마 요한의 이름을 불렀다는 것에서 몬스터가 아니라고 생각해 놀란 정도가 덜했다.
“크흠.”
요한은 목소리만 듣고도 누군지 바로 알 수가 있었다.
살짝 민망하다는 표정으로 맞이 했다.
“루펜.”
“어디 갔었던 거야!!”
잘생긴 다크 엘프 소년은 거의 울먹이는 표정으로 요한을 올려다보았다.
“큼큼, 볼일이 있어서 잠깐 나갔다 왔어.”
“너무해!!”
“꺄악, 어쩜. 너무 귀엽다!!”
러셀 길드 소속 여성들은 루펜의 압도적인 귀여움에 넋이 나갔다.
다크 엘프 여성만 예쁜 게 아니라, 남성은 그 자체가 조각이고 꽃미남이었다.
현재 한국의 여성 커뮤니티에선 남성 다크 엘프의 사진 열풍이 불고 있었다.
아무래도 남성보다는 헌터에 관심이 적은 게 여성이었다.
헌터 세계란 게 때리고 부수고 죽이고 찢고 징그러운 몬스터가 많이 나오다 보니 어쩔 수가 없었다.
하지만 다크 엘프는 달랐다.
워낙 잘생긴 다크 엘프가 많고 섹시한 구릿빛 피부는 뭇 여성들의 영혼을 흔들어 놓을 정도였다.
벌써 다크 엘프 팬클럽이 생기고 일주일 만에 회원 10만을 넘겼다.
방송계는 어떻게든 1명이라도 출현시켜 보려고 혈안이 되어 있었다.
정작 본인들은 주인으로 삼은 요한을 따라서 베트남에 와 있었지만.
“……우리는 여기가 싫어.”
“맞아, 며칠 안 지냈지만. 지구라는 바깥세상이 훨씬 더 좋아.”
“나도 그렇게 생각해.”
웅성웅성.
마음에 상처가 많은 프링고들의 의견이었다.
비록 고향이지만, 자신들을 버린다크 엘프를 증오했다.
지금이야 요한과 다크 엘프가 동맹이기에 꾹 참을 따름이었다.
“천한 것들.”
엘리니아는 그런 프링고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요한, 요한. 일단 마을로 가자.
거기서 마저 얘기하자.”
“그래, 그러는 게 좋겠다.”
“고고!”
처음 봤을 때의 그 까칠한 소년은 어디 가고 그저 해맑은 소년만이 남아 있었다.
처음 들렀던 다크 엘프 마을에 도착했다.
“……구원자님, 저희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대기하고 있겠습니다.”
“뭐, 그러든가.”
“감사합니다.”
요한은 억지로 프링고와 다크 엘프를 화해시킬 마음이 없었다.
오히려 화해시킬 마음과 이유 자체가 없었다.
‘프링고가 끝까지 내 노예로 있으려면 다크 엘프와 사이가 나빠야지.’
괜히 쓸데없이 나섰다가 화해해 버리고 더는 안 모시겠다고 하면?
요한만 낙동강 오리 알 신세가 되는 것이었다.
살아 있는 부하는 곧 예비 시체이기도 했다.
많이 데리고 있을수록 유리하단 뜻이었다.
“좀 늦었네?”
다크 엘프들은 요한을 보곤 아는 척을 해 왔다.
“어, 잠깐 바람만 좀 쐬고 왔어.”
뻔뻔한 요한은 별일 아니란 듯이 대답했다.
그런 요한과 달리 러셀 길드 쪽은 난리가 났다.
“와, 와. 대, 대박!”
“다, 다크 엘프, 존예!!”
“꺄악, 진짜 잘생겼다!!”
“다크 엘프 미남을 실물로 영접할 줄이야. 대박!!”
“꺄아아악!!”
사진으로만 봤던 다크 엘프를 실물로 보자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뭐야, 저 인간들은?”
“우리랑 해보자는 거야?”
“우리가 동물이야?!”
정작 인간들의 태도에 다크 엘프들이 뿔이 났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타인이 동물원 원숭이를 구경하듯이 자신들을 보는 건 싫어하기 마련이었다.
특히 자긍심이 강한 다크 엘프는 그런 성향이 뚜렷한 편이었다.
하지만 요한이라는 존재 때문에 함부로 움직일 수가 없었다.
“아 참, 그래. 너희들이 의뢰한 것들 가져왔어.”
“오오!!”
“다들 이쪽으로 모여!!”
우르르르-!
“줄 서, 줄!”
요한은 허공에서 언데드를 불러내 꿍쳐 두었던 캉구스 부속물들을 챙겼다.
순식간에 100명의 의뢰를 깰 수가 있었다.
1. 다크 엘프 100명의 의뢰를 수행할 것. (완료)
2. 다크 엘프 마을 10곳을 해방할 것. (1/10)
3. 새로운 언데드 종류 1개를 추가로 만들어 낼 것. (완료)
다행히 2번 퀘스트 조건인 10곳 중에서 1곳이 퀘스트 받기 전에 해방한 곳임을 인정해 주었다.
‘좋아, 이제 다크 엘프 마을 9곳만 해방하면 새로운 스킬을 얻을 수 있겠어.’
벌써 기대가 되었다.
9곳이라곤 하지만, 공허 간수 9마리를 상대해야 한단 소리였다.
절대 쉬울 리가 없었다.
“레아.”
“네, 요한 씨.”
엘레노아가 처음으로 요한에게 마음을 열고 접근한 이후 둘은 급격하게 친해졌다.
사랑이란 감정에 낯선 둘이지만, 친구로서 호감을 느끼고 적극적으로 다가간 요한의 태도가 엘레노아의 보이지 않은 벽을 허물기 시작한 것이다.
다만, 아직까진 친구 수준이었다.
“이거.”
요한은 종이 1장을 건넸다.
“이건?”
“일단 내가 아는 부분까지만이지만, 주변 지형과 대략적인 캉구스의 위치가 표시된 지도야.”
“……고마워요.”
엘레노아는 감동한 표정이었다.
“고맙긴 무슨. 같은 길드원끼리 이런 정보는 공유해야지.”
“그래도……."
요한과 친해진 이후 엘레노아는 부쩍 감정 표현이 많아졌다.
이런 점으로 보아 지금까진 감정 표현을 안 한 게 아니라 못 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녀의 카리스마가 떨어진 건 아니었다.
“조심해. 나보다 더 뛰어난 S급 헌터지만, 스카이 포탈엔 어떤 몬스터가 숨어 있는지 알 수 없잖아.”
“네, 그럴게요.”
감정 표현은 풍부해졌지만, 특유의 시크함은 그대로였다.
어렸을 때부터 유나와 단둘이 건조한 삶을 살았던 터라 인간관계는 협소한 편이었다.
또 여동생을 부모님 대신해서 키우다 보니 한 가지 습관이 생겼다.
“내가 사냥한 캉구스는 말이야.”
주절주절~ 잔소리~ 잔소리~
“알겠지? 아 참, 그리고 이렇게 사냥할 때는……."
조금 친해졌다 싶으면 걱정되는 마음에 잔소리를 많이 하는 것이었다.
“네, 네, 알겠어요.”
보통은 이 잔소리를 매우 싫어했다.
그의 별로 없는 지인 중 하나인 미연도 개인적으로 요한을 참 좋아 했지만, 잔소리만큼은 학을 떼었다.
하지만 엘레노아는 듣기 싫을 수도 있는 잔소리를 처음부터 끝까지 경청했다.
학구열에 불타는 학생의 눈을 하며 한마디도 놓치지 않았다.
“조심해야 해.”
“명심할게요.”
“좋아.”
잔소리도 경청하니 평소와 비교해서 훨씬 짧아졌다.
“좋아, 난 지금부터 내가 할 일을 하러 갈 테니까. 너는 캉구스 사냥 좀 시작해 줘.”
“네, 맡겨 주세요.”
“내 친구 레아. 정말 든든하다.”
“……네.”
분명히 좋은 말이건만, 듣는 엘레노아는 뭔가 불편했다.
***
요한은 시작부터 언데드 군단을 일으켰다.
시체 수집으로 모았던 시체를 다 불러내 최대치까지 언데드 군단을 불렸다.
척-!
류페이가 한쪽 무릎을 꿇었다.
그녀는 한없이 가벼운 성격이었지만, 할 때는 확실히 하는 편이었다.
“위대하신 죽음의 군주시여, 전투 준비를 모두 끝마쳤습니다.”
“좋아, 지금부터 공허 간수를 사냥하러 간다. 내 앞의 적을 모조리 말살시키러 가자!!”
“구오오오-!!”
딱딱-! 쿵쿵-!
좀비와 구울이 괴성을 지르고 스켈레톤들은 턱뼈를 두드리거나 각자의 무기를 두드리며 호응했다.
“진군하라!!”
“진군하라!!”
척척-!
‘이때는 묵직한 북소리가 나야 제대로 멋있는데.’
언데드 군단이라고는 하지만, 정식 군대는 아니니 그런 게 있을 리가 없었다.
북을 만들어서 칠 수는 있겠지만, 그냥 단순히 쇼일 뿐이었다.
북소리 같은 신호 체계가 없어도 스마트폰 어플로 얼마든지 편하게 컨트롤할 수가 있었다.
굳이 귀찮게 북을 칠 필요가 없었다.
엄청난 언데드 군단이 거침없이 앞으로 나아갔다.
‘음, 첫 번째 마을은 루펜 덕분에 공허 간수 하고만 싸웠는데. 두 번째 마을은 어렵겠지.’
듣기론 다크 엘프들은 미지의 존재가 남긴 공허 간수의 명령을 듣는다고 했다.
저번처럼 루펜이 나서지 않는다면 싸움을 피할 방법이 없었다.
‘그렇게 다 싸우면 다크 엘프 숫자가 확 줄겠는데. 뭐, 나랑은 상관없겠지만.’
다크 엘프의 숫자는 그리 중요한 게 아니었다.
“요하아아안!!”
“엥?!”
그런데 갑자기 루펜이 뛰어왔다.
“아, 왜 또 나를 두고 가는데!!”
뾰로통한 표정의 루펜이 앙탈을 부렸다.
퍽 어울리는 모습이었지만, 같은 남자인 요한이 보기엔 지저분한 표정일 뿐이었다.
“……정신없이 인간들과 놀았던게 누구였더라?”
“흠흠, 어쨌든 같이 가. 쓸데없는 다크 엘프의 희생은 줄이고 싶거든.”
“그러든지.”
공허 간수 사냥은 지금부터가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