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화
뿌우우웅-!
배는 곧바로 출항할 수가 있었다.
원래는 절대 이렇게 되는 일은 아니었다.
절차라는 게 있었다.
특히 뭐가 있을지 모르는 외국선박이라면 더더욱 꼼꼼하게 점검하는 게 규칙이었다.
하지만 김요한이라는 이름이 베트남에서 발휘하는 힘이란 게 어마어마했다.
베트남 세관도 요한의 배라고 하니 송구스러워하면서 모든 절차를 생략하도록 해 주었다.
덕분에 항구에 정박한 지 4시간만에 출항할 수가 있었다.
촤아아악-!
거대한 화물선이 파도를 가르며 앞으로 나아갔다.
‘이렇게 큰 배를 타 보는 것도 처음이네.’
워낙 건조한 삶을 살았던 탓에 못 해 본 게 아주 많았다.
망망대해는 정말 조용했다.
육지 근처엔 그래도 갈매기라도 있었지만, 육지와 떨어지니 갈매기는커녕 지나가는 새 1마리 보기도 힘들었다.
하지만 그래도 요한은 좋았다.
쪼르르륵-!
선장이 제공해 준 음료수를 빨대로 쪽쪽 빨아 마시며 햇볕이 잘 드는 곳에 선베드를 깔고 누워 있으니 낙원이 따로 없었다.
‘오래 살라고 하면 지루하겠지만, 며칠 정도야 얼마든지.’
하루하루를 목숨을 걸며 생활하다 보니 이런 느긋한 생활이 무척이나 소중했다.
뭐, 그렇다고 아예 완전히 노는 건 절대 아니었다.
슥슥-.
선상은 정말 할 게 아무것도 없었다.
WIFI가 터지는 것도 아니기에 딱히 할 일도 없었다.
그렇기에 요한은 느긋하게 바다와 하늘을 보다가, 멍하니 있다가, 코딩 작업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헌터님, 어디 불편하시거나 필요하신 건 없습니까?”
가끔 부선장이 요한에게 다가와 안부를 묻기도 했다.
“네, 없어요.”
그저 조용히 혼자 있고 싶기에 금방 쫓겨났지만.
마음 놓고 느긋한 생활을 만끽하고 있었다.
쿠르르릉-!
‘응?’
그때였다.
예민한 감각에 진동이 잡혔다.
‘해저 지진인가. 감각이 예민하니까. 학창 시절에 지구과학 시간에 배운 해저 지진도 다 느껴 보네.’
여전히 느긋했다.
해저 지진이라면 어렵지 않게 배우는 것이었다.
해저 지진이 심하면 쓰나미가 된다곤 하지만, 바다 한가운데서는 잠잠하다고 했으니까.
문제는 이번 진동 자체는 절대 해저 지진이 아니었다.
파동이 지진일 수가 없었다.
‘어, 잠깐만.’
묘한 기운을 느낀 요한은 얼른 갑판으로 향했다.
그리고 끝으로 가 바다를 내려다보았다.
"......."
바다를 지그시 내려다보았다.
잠시 바다를 내려다보던 요한의 표정이 무너졌다.
“아 X 됐다.”
어지간하면 혼잣말은 잘 안 하는 요한마저 본능적으로 혼잣말로 욕이 튀어나왔다.
‘재수가 더럽게 없다지만, 이건 너무하잖아!!’
그의 소리 없는 비명과 동시에.
촤악-!
바닷속에서 거대한 오징어 다리 수십 개가 튀어 올랐다.
쿠구궁-!
수십 개의 오징어 다리는 화물선을 목표로 휘감기를 하고 있었다.
‘미친, 이거 완전히 영화에서 보던 크라켄이잖아!!’
그것도 포탈 밖인 일반 바다에서 등장한 거대 몬스터였다.
‘젠장, 다리만 있는데 정보 확인 되려나?’
일단 스마트폰으로 확인해 보았다.
# 바다의 제왕 크라켄종류: 보스 몬스터
위험도: A
설명: 바다에서 가장 흉포한 몬스터이자 주인. 에너지 소모가 적은 신체 구조 덕분에 평소엔 심해에서 조용히 잠을 청하지만, 배가 고프거나 화가 나면 해수면으로 나와서 보이는 모든 것을 공격한다.
강력한 보스 몬스터이다.
‘나와서 다행이긴 한데…….'
내용은 전혀 다행이 아니었다.
‘나와도 하필이면 보스 몬스터가…….'
마음의 준비도 전혀 안 되어 있는데다가 가장 심각한 건 전투 준비마저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싸울 수 없는 건 아니었지만, 환경도 최악이었다.
바다의 제왕을 바다 위에서 맞서 싸워야 한다니…….
최악 중의 최악이었다.
“허, 헌터님!!”
선장이 헐레벌떡 뛰어왔다.
“이, 이게 도대체!!”
“저도 잘 모르겠네요. 그래도 하나 확실한 건 있죠.”
“그, 그게……?!”
“죽기 싫으면 갑판 아래에서 잘숨어 있으세요.”
“히익!!”
요한의 말에 기겁한 선장은 다시 헐레벌떡 뛰어가기 시작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화물선이라 승선 인원이 매우 적다는 점이었다.
평소에도 이 커다란 배에 20~30명 정도만 승선하는데 급하게 출항한 배라 평소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10명만 탑승한 상태였다.
거기에다가 물건도 요한 개인이 획득한 금은보화가 전부였다.
‘아, 이건 다행인 게 아니지.’
식료품 같은 생필품이 아닌 건 다행이었지만, 그래도 요한에겐 최악이었다.
또 그나마 다행인 점은 이런 공격에 대항할 수 없는 일반인이 아니라 S급 헌터이자 현재 주가가 가장 높은 요한이 타고 있다는 것이었다.
‘근데, 이거 내가 이길 수 있으려나. 포세이돈 정도가 와야 하는 거 아니야?’
포세이돈은 그리스에 있는 4명의 S급 헌터 중 1명이며 삼지창을 주무기로 해서 물과 관련된 능력을 사용했다.
그리스?로마 신화의 이름을 따서 별명이 포세이돈으로 정해진 것이다.
쿠궁-!
잠시 딴생각을 했더니 크라켄의 공격이 더욱 심해졌다.
콰드득-!
단단한 강철로 된 배가 순식간에 찌그러지기 시작한 것이다.
과거와 비교해도 훨씬 발달한 합금 기술임에도 강력한 크라켄의 힘엔 얼마 버틸 수가 없었다.
‘마음에 안 들지만. 어쩔 수 없지. 이대로 도망칠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고 내 보물을 다 잃을 수도 없고. 나와라.’
시체 수납으로 넣어 두었던 언데드 군단을 꺼냈다.
딱딱-!
“으어어어.’
언제나 든든한 힘이었던 언데드군단의 등장.
하지만 여전히 답답했다.
‘젠장, 모르겠다. 일단 싸우고 보자!’
머리가 복잡할 때는 최대한 단순한 게 좋았다.
단순함의 끝은 역시 전투였다.
“류페이!”
“오오!”
“다 썰어 버려!”
“알았어!!”
파악-!
류페이가 먼저 크라켄의 다리를 향해서 달려갔다.
그리고 요한도 직접 전투를 지휘하기 시작했다.
“다리를 다 잘라. 무조건 다 잘라 버려!!”
바닷속에 있는 크라켄의 본체를 바로 노릴 방법은 없었다.
‘크라켄을 상대하려면 본체를 끌어내거나 다리를 다 잘라서 도망치게 유도하는 수밖에 없지.’
크라켄을 상대하는 방법이야 대충 숙지하곤 있었다.
다만 이 지식은 영화나 애니메이션 같은 곳에서 얻은 것에 불과했다.
문제는 그런 지식밖에 믿을 게 없다는 점이었다.
푹푹- 스걱-!
스켈레톤 워리어들은 각자의 무기를 가지고 어떻게든 크라켄의 다리를 자르려고 했다.
절대 쉽지 않았다.
다리 겉엔 미끄럽고 진득한 점액으로 뒤덮여 있어서 칼이나 철퇴가 잘 들지 않았다.
거기에다가 다리 1개, 1개가 어지간한 몬스터보다 강력했다.
쾅-!
다리를 휘두를 때마다 스켈레톤워리어 1기가 박살이 나고 빠르게 휘감아서 바다 밑으로 끌고 갔다.
‘젠장!’
벌써 10기가 넘는 언데드가 당했음에도 다리 한 개만 겨우 잘라 낸 상황이었다.
그것도 류페이가 초반에 휘두른 검에 잘린 게 전부였다.
‘끄응, 그나마 다행인 건 프링고 녀석들이 합류했다는 점이지.’
전투에 도움이 되는 것은 물론이고 죽으면 언데드로 일으킬 수 있는 재료이기도 했다.
일부러 죽이진 않겠지만, 비상식량 같은 개념이었다.
“구원자님을 돕자!!”
챙챙-!
프링고들도 검을 뽑아서 달려들었다.
하지만 영 효율이 높지 못했다.
프링고의 문제라기보다는 크라켄이 너무 강력했다.
‘이대로는 안 돼. 절대 안 돼. 무리야.'
이런 식의 소모전은 필패였다.
물론 당장 본 골렘을 소환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당장은 올바른 해결책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쾅-! 촤악-!
“젠장, 더럽게 미끌거리네!”
몇 번이고 검을 휘둘렀음에도 제대로 칼이 먹히지 않자 류페이가 뿔났다.
“에라이!”
척-!
그녀는 아예 크라켄의 다리에 찰싹 붙어서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어?!’
그런 류페이의 열정적인 모습에 뭔가 깨달음이 왔다.
‘저거다!!’
“언데드, 구울. 각자 하나씩 크라켄의 다리에 붙어. 무조건 매달려!!”
다급한 명령.
꿀꺽.
눈을 부릅뜨고 대기했다.
다다닥-!
자이언트 고릴라의 사체로 깨어난 구울 1기가 재빨리 크라켄의 다리 하나에 매달렸다.
‘시체 폭발!!’
쾅-!
고릴라 구울이 엄청난 폭발과 함께 크라켄의 다리를 그대로 잘라버리는 데 성공했다.
‘됐다!!’
이게 바로 언데드 식 자살 특공대였다.
‘아직은 시체의 여유분이 있지!’
시체 수집으로 얻은 시체를 다시 꺼낼 수 있었다.
“가, 가!”
쾅-!
100% 성공하는 건 아니었다.
다리가 재빨리 피하거나 그대로 쳐내서 바다로 빠트리면 시체 폭발스킬이 불가능했다.
그러나 언데드는 여전히 많이 남아 있었다.
일일이 검으로 끊는 건 어려울지 몰라도 단순히 매달리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시체 폭발!’
쾅-!
‘시체 폭발!’
쾅-!
훨씬 더 빠른 속도로 다리를 끊어 낼 수가 있었다.
“구오오오오!!”
‘드디어 본체가 나오는 건가?’
분노한 크라켄의 머리가 바다를 가르며 위로 솟아올랐다.
오징어 대가리처럼 생긴 크라켄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
물론 훨씬 더 징그럽고 역겹게 생겼다.
날카로운 이빨도 수백, 수천 개로 보이는 동그란 입도 위력적이었다.
“쿠오오오오오!!”
‘아이, X. 입 냄새 한번 고약하네.’
1,000년 묵은 하수도 냄새와 맞 먹었다.
강력한 크라켄의 본체가 나서서 위험할 수도 있겠지만, 본체가 나설 만큼 위급하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사무엘!!”
[주군의 뜻대로.]
스켈레톤 메이지들이 일렬로 쭉 섰다.
“전기 통구이로 만들어 버려. 오징어구이 땅긴다.”
[와라!]
파지지직- 쾅-!
사무엘의 주도하에 메이지 20기가 일제히 전기 마법을 사용했다.
“쿠오오오-!”
특히 소금물인 바다에서 사용된 전기 마법이라 훨씬 강력한 위력을 선보였다.
강력한 전기가 크라켄 전체를 태워 버릴 기세로 몰아쳤다.
쿠르릉-!
그러나 보스 몬스터는 보스 몬스터였다.
그대로 죽지 않고 다시금 다리 공격을 재개했다.
아예 배를 잡아당기면서 머리를 앞으로 쭉 내밀었다.
‘이때다!’
다리만 잘라선 크라켄을 죽일 수는 없었다.
머리를 파괴해야만 녀석을 완전히 죽일 수가 있었다.
일단은 기다렸다.
크라켄의 대가리가 좀 더 가까이 다가올 때까지.
‘좀 더, 좀 더, 좀 더!!’
계산만큼 가까워지자.
‘나와라. 본 골렘!!’
뼈 160개를 소모하여 2기의 본 골렘을 소환했다.
“저 대가리 잡아!”
쿠궁- 콰득!
기다린 것은 본 골렘의 팔 길이만큼 가까워지는 것이었다.
소환된 본 골렘은 요한의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크라켄의 양쪽을 잡아챘다.
“당겨!!”
“쿠오오오-!”
크라켄은 갑자기 혹 당겨지는 느낌에 당황했다.
요한은 이 기회를 놓칠 마음이 없었다.
“류페이, 엘라드!!”
“맡겨 줘!”
“명령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