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화
늘 시크하고 조용하며 별다른 감정을 드러내지 않던 그녀가 손가락질까지 하며 당황스러워했다.
“뭐야, 아는 사이야?”
그러거나 말거나 요한은 할 일에만 집중했다.
덜컹-!
스켈레톤 워리어 1기가 금화가 가득 들어 있는 상자 하나를 떨어트릴 뻔했다.
“야야, 조심해. 보석이 하나라도 깨지면 너희들 대가리가 깨질 줄 알아!”
불호령이 떨어지는 건 당연했다.
금화 하나하나가 소중한 그의 재산이었다.
‘이거 다 팔면 금값 떨어지는 거 아니야?’
워낙 많은 양의 금이라 그런 생각이 들었다.
‘창고에 보관해 두고 천천히 팔아야겠다.’
급할 것도 없는데 한꺼번에 풀어서 시장을 교란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
요한이 딴생각하는 중에도 엘리니아와 쁠 달린 다크 엘프 무리의 신경전은 계속되었다.
“프링고…… 종족의 배신자들.
아직도 뻔뻔하게 살아 있군.”
“흥, 위선자와 나눌 대화 따위는 없다.”
누가 봐도 복잡한 관계로 엮여 있는 것 같았다.
정작 그 중심에 있는 요한은 그저 금과 보석을 보며 눈을 반짝였지만.
‘일단 퀘스트보다는 이것들을 가지고 나가는 게 먼저야.’
퀘스트나 스킬이나 이대로 두어도 딱히 사라지는 게 아니었다.
무한대로 둘 수는 없겠지만, 일단 얻은 금은보화를 처리하는 게 먼저였다.
“밖에 다녀와야겠다.”
“......!!”
작게 중얼거린 말이었다.
그 말에 프링고의 장로가 반응했다.
“구, 구원자시여. 저, 저희를 데려가 주시옵소서!”
그는 얼른 요한에게 다가가 무릎을 꿇고 빌었다.
“뭐?”
그런 늙은 다크 엘프의 말에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네가? 왜?”
신뢰할 수 없는 존재와의 동행은 그저 짐일 뿐이었다.
인력이라면 충분해 그들이 굳이 필요가 없었다.
“부, 부탁드립니다. 시키는 것이라면 뭐든지 하겠습니다. 노예가 되라면 되겠습니다!”
"......."
절박한 것은 장로뿐만이 아니었다.
모든 프링고가 동의한다는 표정이었다.
“흠……."
처음엔 거절하려던 요한이었지만, 이런 분위기라면 이야기가 조금 달랐다.
‘알아서 나의 노예가 되어 주겠다는데 굳이 거절할 필요는 없겠지?’
언데드는 훌륭한 인력이긴 했다.
하지만 마나로 운용되고 언데드라는 혐오스러운 종족의 한계가 있었다.
‘그런 부분을 다크 엘프가 맡아 준다면, 나야 편하지. 이 늙은 장로는 저택의 집사 정도로 활용하면 되겠고.’
그렇게 머릿속에서 계산이 끝났다.
마지막 확인 단계만 남아 있었다.
“정말 나에게 충성 맹세할 자신 있냐?”
“물론입니다. 이곳에서 벗어나게만 해 주신다면, 무엇이든지 시키는 대로 하겠습니다.”
“좋아.”
“그, 그럼!”
“일단은 너희들을 믿어 보지.”
“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구원자시여!”
‘역시 예언의 말이 맞았어!’
장로는 속으로 기뻐했다.
과거 미지의 존재가 세계를 침략했을 당시.
그들이라고 명예가 없었겠는가?
평범한 다크 엘프였고, 끝까지 싸우려고 했다.
하지만 신을 모시는 그들에게 신탁 하나가 내려왔다.
[먼 미래, 너희들을 구원할 구원자가 나타날 것이다. 비록 어둠을 몰고 다니지만, 구원의 영혼을 타고난 존재이니 그를 따라가라. 그러면 영원히 너희는 번영할 것이다.
지금은 몸을 사리고 때를 기다려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 일족은 전부 사라질 것이다.]
‘아아……!!’
당시 신탁을 들은 다크 엘프는 눈물을 흘려야 했다.
다크 엘프 신관이었던 그는 미래를 보는 능력도 있었다.
모든 미래를 보는 게 아니라, 부분적이고 제한적인 미래를 가끔 보는 정도였다.
문제는 이번에 신탁을 통해서 본 미래는 일족에겐 너무 가혹한 미래였기 때문이다.
결국, 엘프의 신을 믿던 일족은 배신자가 되었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고통과 슬픔을 겪었고 같은 다크 엘프에서 마저 버림을 받아 다크 엘프라는 이름까지 버리고 프링고라는 새로운 이름을 사용했다.
하지만 그들은 굳이 그것을 거부하지 않았다.
‘신께서 말한 구원을 받는 길이다. 어떤 시련도 이겨 내리라.’
오로지 구원이라는 것만 바라고 달려온 길이었다.
그 끝이 보이려고 하고 있었다.
‘거참, 구원이라니. 말도 안 되는 걸 계속 들어야 하나.’
그저 다크 엘프라는 괜찮은 노예가 들어와 기쁜 요한이었기에 프링고들의 과한 반응이 부담스러울 뿐이었다.
‘뭐, 상관없나.’
"......."
다만, 엘리니아는 조금 불편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굳이 입을 열어서 직접 표현하지는 않았다.
“난 일단 바깥세상으로 가야 할 것 같은데. 따라올래?”
엘리니아에게 물었다.
“……이번 일을 포기한 건 아니겠지?”
“그럴 리가. 그저 바깥세상에 볼 일이 있어서 돌아가는 것뿐이니까.
곧 돌아올 거야.”
“그렇다면 같이 가겠다. 다만, 그대가 이번 일을 포기했다고 확신하면 그대의 곁을 떠나겠다.”
“얼마든지, 원하시는 대로.”
"......."
정말 포기한 게 아니었기에 상관없는 조건이었다.
“자자, 그러면 일단 나가자고. 각자 따로 챙겨야 할 짐은 없겠지?”
“예, 구원자님!”
“오케이, 가자고.”
***
스카이 포탈은 클리어하지 않더라도 자유롭게 오갈 수가 있었다.
지잉-!
포탈이 반응하면서 요한을 포함한 언데드 군단과 다크 엘프를 토해냈다.
그야말로 압도적인 숫자가 아닐 수 없었다.
‘엄청 오랜만에 오는 것 같네.’
‘엄청’까지는 아니더라도 오랜만은 맞았다.
“오오, 이곳이 구원자님의 세계!”
“오오!”
“녹색과 푸른색으로 가득한 세계!!”
오버스러운 반응이었다.
“음?”
샥-!
그때 엘리니아가 미간을 찌푸리더니 사라졌다.
사라진 지 5초 만에 다시 모습을 드러냈는데 혼자가 아니었다.
“커헉!”
그녀의 손엔 카메라를 든 베트남인 1명이 들려 있었다.
키는 크지만 호리호리한 체격의 엘리니아였지만, 뛰어난 전사답게 인간 성인 남성 1명쯤은 거뜬히 한손으로 들 수가 있었다.
털썩-!
곧바로 땅에 패대기쳤지만.
“으헉!”
“넌 뭐냐?”
“히익!”
요한의 차가운 목소리에 베트남남성은 기겁했다.
“저, 저, 저는 펴, 평범한 기, 기자 이, 입니다!”
의외로 베트남인이면서 한국어에 능했다.
“분명히 여기는 출입 금지일 텐데?”
바나산은 관광지가 아니라 엄연히 개인 소유의 땅이었다.
주인의 허락도 없이 침범하는 건 불법이었다.
“배짱은 좋네, S급 헌터의 개인 땅에 불법으로 침입하다니 말이야.”
“히익! 죄, 죄송합니다. 용, 용서해 주십시오!”
“용서, 용서라……."
“제, 제발!”
기자를 바라보는 요한의 입가엔 비릿한 미소가 지어졌다.
“뭐, 나는 자비로운 사람이니 용서해 주지.”
“가, 감사합니……."
“단, 시킨 일을 잘했을 때 말이지만 말이야.”
“예?”
기자의 얼굴엔 의아함이 떠올랐다.
“끄응, 으으으……!”
베트남 기자의 온몸에선 땀이 뻘뻘 흐르고 있었다.
그의 등엔 금화가 잔뜩 들어 있는 배낭이 들려 있었다.
50kg 정도 나가는 무거운 배낭을 들고 산에서 내려가는 건 잘 훈련된 군인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일반인이고 기자인 그가 숨넘어가기 직전인 건 당연했다.
“어이, 퍼지면 용서받을 수 없다고?”
요한은 옆에서 그런 기자를 정신적으로 괴롭혔다.
“퍼, 퍼지지 아, 않을 거, 겁니다!!”
끄으응-!
그야말로 온몸에서 비명을 지르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비, 빌어먹을 몸뚱이야. 제발 버텨 줘!!’
장난스러운 요한과 달리 기자는 살기 위해서 필사적이었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왜애애앵-!
다낭 시에선 몬스터로 추정되는 무리가 다가오자 담당자가 확인도 하지 않고 비상 사이렌을 울려 버렸다.
“꺄아아악!!”
“모, 몬스터!!”
갑작스러운 사이렌에 다낭 전체가 난리가 났다.
그동안 요한의 빛나는 활약으로 스카이 포탈에선 단 한 마리의 몬스터도 나오지 않았으니까.
다낭 주변엔 스카이 포탈을 제외하곤 포탈도 없어서 헌터가 없는 도시였다.
몬스터 습격 한 번에 모든 게 사라질 수도 있었다.
하지만 불행 중 다행히도 사이렌은 담당자의 실수였다.
그가 본 몬스터 군단은 요한이 이끄는 언데드 군단과 프링고 일족이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담당자는 그날 저녁에 바로 해고되었다.
그는 나름대로 할 일을 했다고 생각했지만, 그 실수로 벌어진 혼란으로 인해서 사망자 2명, 부상자 83명이 나오는 사고가 발생했다.
고의는 아니었지만, 어쨌든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사이렌을 울렸기에 그 책임으로 공무원에서 해고된 것이다.
요한과는 아무 관련 없는 일이었다.
“이, 이게 도대체 무슨……."
다낭 시장은 입을 쩍 벌리고 눈만 깜빡거렸다.
엄청난 군단의 위용은 감히 그가 감당할 수 없는 종류의 것이었기 때문이다.
“오, 시장님. 아직도 계시네요.
잘 지내셨어요?”
“아, 흠흠. 김요한 헌터님 덕분입니다.”
“큭즉, 제 덕분은 무슨. 다 시장님이 잘하셔서 그렇죠, 뭐.”
“가, 감사합니다.”
대답하면서도 눈은 언데드 군단과 피부가 까닿고 귀가 뾰족하며 이마엔 작은 뿔 2개가 자라나 있는 존재가 들고 있는 상자들로 향했다.
그는 본능적으로 저것들이 스카이 포탈 안에서 획득한 것임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감히 물을 수는 없었다.
괜히 심기를 건드렸다가 뿔따구라도 나면 좋을 게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아 참, 저 한국에 좀 다녀올 테니까. 그렇게 아세요.”
“하, 한국에 말입니까. 예, 아, 알겠습니다. 총리님께 보고하겠습니다.”
“그러시던가요.”
딱히 누구에게 허락 맡고 다녀올 필욘 없었다.
금은보화는 만국 공통.
베트남에서 처리해도 나쁘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한국인이었다.
‘들어가는 김에 한국에서 볼일도 좀 봐야지.’
일단 배부터 알아보았다.
그가 이번에 얻은 금은보화는 비행기로 옮길 수 없는 막대한 양이었다.
일부는 시체 수납으로 언데드와 함께 보관할 수 있겠지만, 양이 너무 많아서 다 그렇게 할 수는 없었다.
그 외의 양은 배를 이용해서 옮길 수밖에 없었다.
띠리리링-!
[네, 요한 씨.]
엘레노아의 꾀꼬리 같은 목소리가 반겨 주었다.
이럴 때 믿을 수 있는 건 역시 매니지먼트뿐이었다.
대충 요약해서 스카이 포탈에서 얻은 금은보화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이렇게 돼서 화물선이 좀 필요한데. 가능할까요?”
[당연하죠. 최근 영국과 한국의 교류가 활발해져서 러셀그룹의 지부도 한국에 설치됐어요. 당연히 무역 회사도 있죠. 지금 바로 베트남에 배를 보낼게요.]
“오, 고마워요.”
[고맙긴요. 오히려 제가 더 감사해요.]
단순 운영비로 얘기하면 요한의 존재는 길드 운영비의 적자였다.
연봉 4,000억을 매년 지급하면서 얻을 수 있는 이득은 마석 대리 처분 수수료밖에 없으니까.
그러나 큰 그림을 보면 절대 손해가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큰 흑자라고 해도 틀리지 않았다.
25장. 크라켄의 여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