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화
웅장한 북소리가 주변을 가득 메웠다.
목책 내부는 소란스러웠다.
“쿠에에엑!!”
“쿠왁! 쿠왁!!”
“빨리빨리 움직여라. 쓸모없는 굼벵이들!!”
찰싹-!
“쿠아악!”
“궁수는 앞으로! 창병은 궁수를 뒤에서 엄호한다!”
척척척-!
지휘관의 채찍질에 캉구스 병사들은 각자의 위치를 찾아서 정렬했다.
"크르르."
애꾸눈의 지휘관은 목울대를 울렸다.
분명히 2족 보행을 하고 갑옷과 무기를 다루는 문명 종족으로 보이는 녀석들이었다.
하지만 녀석들의 풍습이나 문화를 보면 절대 문명 종족이 아니었다.
그들은 야만적이며 호전적이고 잔인했다.
쿠당탕탕-!
“크왁!”
워낙 좁은 지역에 많은 캉구스가 모여 있다 보니 실수도 종종 나왔다.
어린 창병 캉구스 1마리가 화살을 옮기다가 도끼에 걸려 넘어진 것이다.
“하찮은 벌레 같은 놈!”
촤악-!
지휘관은 채찍질도 하지 않았다.
그저 무기인 할버드로 어린 캉구스의 목을 찍어 버렸다.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목이 잘렸다.
“쿠엑!”
“크왁!”
피 냄새가 나자 캉구스들은 더욱 흥분했다.
“쿠오오오오!”
피 냄새에 취한 캉구스들은 각자의 무기를 들고 목책을 사수하기 위해서 움직였다.
그저 지휘관의 명령에 충성하는 훌륭한 전사들이었다.
“크르르."
지휘관은 날카로운 눈으로 다가오는 언데드 군단을 보았다.
“더러운 언데드 녀석들. 감히 이곳이 어디라고!!”
지휘관은 자신 있었다.
언데드 종족이 얼마나 고약한지는 그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곳은 그의 부락이었다.
전사도 충분하고 언데드의 약점인 불도 충분했다.
“흠……."
요한은 여전히 무신경한 표정으로 목책을 쳐다보았다.
확실히 튼튼해 보이긴 했다.
‘뭐, 그렇다고 해서 내가 공략하기 힘든 건 아니지.’
툭.
타고 있는 트롤 구울의 머리를 손바닥으로 1대 쳤다.
“우억.”
그러자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언데드 군단을 헤치고 맨 앞으로 나아간 요한.
그는 마검 요룬을 들었다.
‘본 골렘.’
구구구궁-!
막대한 시체 소모와 비교해서 뼈소모는 그렇게 큰 편이 아니었다.
쓰려면 얼마든지 쓸 수 있겠지만, 요한은 뼈 소모는 적당히 조절하는 편이었다.
그렇게 아껴 두었던 뼈를 400개나 소모하여 5기의 본 골렘을 소환했다.
쿵-!
“쿠, 쿠익?!”
“저건 또 뭐야?!”
캉구스 지휘관은 갑자기 등장한 거대한 언데드에 당황했다.
언데드 군단을 막아 줄 거로 기대했던 목책보다도 더 컸기 때문이다.
“크르르, 어차피 언데드에 불과하다. 가까이 오면 불화살을 쏴!”
“예!”
그렇게 이를 드러내며 경계심을 표출했다.
“자, 본 골렘. 네가 앞으로 가서 저 목책을 부숴.”
구우웅- 쿵!
본 골렘을 선두로 언데드 군단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쿵쿵거리며 본 골렘이 목책으로 다가갔다.
“쏴라!!”
캉구스 궁수들이 일제히 활시위를 놓으며 불화살을 쐈다.
팅팅텅텅.
“그륵?”
“그웩?”
‘멍청한 놈들. 그런 허접한 화살로 뼈 골렘에게 타격을 입힐 수 있을 거로 생각했어?’
본 골렘은 일반적인 언데드가 아니었다.
방어, 방어, 오로지 방어력만을 위해서 탄생한 거대 언데드였다.
본 골렘 자체의 방어력도 어마어마했지만, 요한이 더욱 방어력 부분을 코딩으로 손보면서 그야말로 걸어 다니는 공성 무기였다.
‘특히 이렇게 수비만 하는 녀석들 상대로 안성맞춤이지.’
화살을 버텨 내며 전진한 본 골렘.
덕분에 좀비와 구울의 타격이 현저히 줄었다.
“크르르, 제기랄!”
쾅-!
본 골렘이 목책을 두들기기 시작했다.
“구울들은 목책을 타고 올라!”
턱턱.
좀비와 스켈레톤 워리어는 무리겠지만, 스팩은 줄더라도 훨씬 더 육체의 움직임이 자유로운 구울은 목책을 타고 오를 수가 있었다.
타다닥.
가벼운 구울 몇 기가 재빨리 목책 위를 타고 올랐다.
“크악!!”
목책을 타고 오르는 데 성공한 구울은 곧바로 캉구스 무리에게 달려들었다.
“어딜!”
하지만 이미 대비하고 있던 캉구스 정예 병사라 할 수 있는 투사의 집중 공격에 그대로 목이 떨어졌다.
“킁, 더러운 언데드 따……."
콰앙-!
구울의 목을 벤 투사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목이 떨어진 구울 5기가 동시에 엄청난 폭발을 일으켰다.
“크아아아악!!”
피와 살 그리고 뼈가 사방으로 튀며 특히 날카로운 뼛조각이 주변에 있는 캉구스 병사들을 가차 없이 찢어 버렸다.
“무, 무슨?!”
캉구스 지휘관은 당황했다.
목책 한 부분을 지키던 캉구스무리가 한마디로 증발해 버린 것이었다.
“이제부터 시작이군.”
털썩.
요한은 트롤 구울의 등에 양반다리를 하고 앉았다.
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게임을 하는 자세를 취했다.
빠르게 어플에 접속하자 스마트폰의 화면이 바뀌면서 이 주변의 지도가 나타났다.
동시에 게임 U.I와 함께 본 골렘을 조종할 수 있는 형태가 되었다.
‘음, 확실히 본 골렘뿐만이 아니라 언데드 전부를 조종할 수 있게끔 만들어야겠어.’
그건 차후의 일이긴 했다.
샥샥.
요한의 손가락이 빠르게 움직이며 본 골렘 5기를 조종하기 시작했다.
단순한 조종이 아니었다.
필요할 때는 1인칭으로 바꿔서 정교하게 움직이게끔 했다.
‘이 부분은 이렇게 컨트롤하는 게 낫겠어.’
화면을 2개로 나눠서 2기의 골렘을 동시에 1인칭으로 조종했다.
쾅-~요한이 직접 조종하는 골렘 2기가 목책을 주먹으로 내려쳤다.
"......."
하지만 목책은 쓰러지지 않았다.
‘이야, 튼튼한걸?’
캉구스 주제에 건축 기술이 괜찮다고 생각했다.
‘얼마나 버틸지 모르겠지만 말이야.’
“마, 막아!!”
캉구스 지휘관은 발악하며 본 골렘을 막으려고 했다.
우르르르-!
캉구스들은 지휘관의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본 골렘이 있는 곳으로 모여들었다.
“젠장, 겨우 네크로맨서 한 놈에게 이게 무슨 꼴인지!!”
지휘관은 분통을 터트렸다.
“누가 1명이지?”
“뭐, 뭐……?!”
그때 갑자기 지휘관의 옆에서 섬뜩한 목소리가 들렸다.
“너, 너는……?!”
지휘관의 말은 이어질 수가 없었다.
스걱-!
암살자가 휘두른 휘어진 검에 그대로 목이 날아갔기 때문이다.
부락 하나를 책임지는 지휘관 캉구스의 최후치곤 허무했다.
“한심한 녀석. 목책 따위에 의존해 방심하다니.”
“쿠, 쿠엑?”
주변에 있던 캉구스 투사들은 잠시 이게 무슨 일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대, 대장!!”
“크아악, 녀석을 죽여라!!”
분노한 투사들은 앞뒤 가리지 않고 도끼를 휘둘렀다.
“쯧, 멍청한 놈들.”
샤악.
암살자 엘리니아는 그대로 자취를 감추었다.
“쿠엑?”
“어, 어디로 갔지?”
"......."
순식간에 지휘관을 잃은 캉구스는 난리가 났다.
콰직-!
목책도 뚫려 버렸다.
"큭큭큭, 다 쓸어버려라!”
[꺄하하하!]
목책이 무너지자 류페이가 가장 먼저 뛰어들었다.
그렇게 빈틈이 생기자 하늘에서 배회하던 유령 군단도 끊임없이 캉구스를 괴롭혔다.
“크왁!”
캉구스 투사 5마리가 동시에 류페이에게 달려들었다.
거대한 도끼 5개는 순식간에 류페이의 몸을 찢어 버릴 것 같았다.
쉬익- 쾅!!
그런데 어디선가 날아온 거대한 바위가 캉구스 투사 2마리를 그대로 떡으로 만들어 버렸다.
“아 좀. 왜 방해하는데!!”
류페이는 머리를 거칠게 흔들며 본 골렘을 향해서 항의했다.
정확히는 본 골렘을 조종하는 요한을 향한 항의였다.
"큭큭."
머리를 흔들며 항의하는 모습이 꽤 웃겼다.
“젠장, 내 팔자야. 뭐 해, 공격안 하고. 내가 갈까?!”
류페이는 머리끝까지 오른 짜증을 살아남은 3마리의 투사에게 풀었다.
“크, 크왁?!”
류페이의 활약은 거기에서 끝이 아니었다.
그야말로 목책 내부를 제집처럼 뛰어다니며 캉구스가 보이는 족족베고 또 베었다.
“으하하하핫!!”
퍽- 콰직!
“크웩!”
최대한 잔인하게 처형하듯이 캉구스를 죽이고 또 죽인 류페이는 온몸에 피 칠갑을 하면서 통쾌하게 웃었다.
“이제 좀 살아 있는 것 같네.”
[바보, 너 시체거든?]
“비유법 모르냐, 비유법!!”
[흥!]
하늘과 류페이는 서로를 라이벌로 생각하다 보니 간간이 말다툼을 나누었다.
“다 덤벼라. 냄새나는 캉구스들아!"
그날 캉구스 부락 하나가 전투 시작 3시간도 되지 않아 깔끔하게 전소되었다.
***
화르륵-!
살아남은 캉구스의 숫자는 0마리.
부락은 완전히 타고 잿더미만 남아 있었다.
벌컥벌컥.
“크아, 시원하다. 역시 전투가 끝난 다음에 마시는 얼음물이 최고지!”
요한은 마시는 것뿐이 아니라 머리 위로 뿌리기까지 했다.
그야말로 시원함의 극치였다.
서걱서걱-!
그와 반대로 엘리니아는 묵묵히 캉구스의 시체를 도축하는 중이었다.
척척.
그런 그녀의 주변엔 언제라도 일손을 도와줄 수 있도록 스켈레톤워리어가 대기 중이었다.
이 정도 일은 요한이 굳이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할 정도로 정교하게 코딩이 되어 있었다.
‘음?’
시원하게 목을 축인 요한의 눈에 나무 위에 느긋하게 자리 잡은 까마귀들이 들어왔다.
‘응, 그런데 스카이 포탈에 까마귀가 있었어?’
하지만 자세히 보니 완전한 까마귀는 아니었다.
거미처럼 눈이 여러 개인 특이종이었다.
‘잠깐만, 까마귀가 여러 마리가 있단 말이지…….'
갑자기 요한의 머리에서 좋은 아이디어가 샘솟았다.
‘키메라 제조술 스킬 배워 놓고 한 번도 안 썼는데. 저 녀석들을 조합해서 큰 까마귀 하나 만들어 볼까. 재밌을 것 같은데.’
비행 언데드가 꼭 필요한 건 아니었다.
이미 그에겐 유령 군단이라는 효율적인 비행 언데드가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거대 까마귀 언데드가 있어도 나쁠 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무엘.”
[부르셨습니까.]
“스켈레톤 메이지 싹 다 긁어다가 저 까마귀처럼 보이는 녀석들 좀 잡아 와. 죽여도 돼.”
[지시하신 대로 이행하겠습니다.]
늘 조용히 자기 할 일만 성실하게 하는 사무엘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위대하신 군주께서 까마귀 떼를 원하신다. 스켈레톤 메이지는 빙결마법을 사용하라.]
딱딱.
스켈레톤 메이지들은 정확하게 조준하여 얼음 화살을 쏘기 시작했다.
촤자자작-!
“까악! 까악!”
시체 냄새를 맡고 다가왔던 까마귀 떼들은 갑작스러운 공격에 당황했다.
파닥거리며 어떻게든 도망치려고 했지만, 워낙 갑작스러운 공격에 정확도까지 훌륭해 채 몇 마리도 망치지 못하고 싹 다 아래로 떨어져야 했다.
툭툭.
‘좋아, 좋아.’
마치 비처럼 쏟아지는 까마귀 떼의 시체에 요한은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시체를 보며 흐뭇해하다니 이건 누가 봐도 변태적으로 보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요한은 네크로맨서였다.
그가 좋아하는 막대한 돈과 보물보다 시체가 더 가치가 있었기 때문이다.
애초에 누군가에게 잘 보이기 위한 클래스가 아니기에.
오늘도 요한은 또 다른 언데드를 불러낼 생각에 기대에 찬 심장 소리를 즐길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