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화
하늘이 모든 캉구스를 파악한 건 아니었다.
그녀는 이 주변에 있는 캉구스만 조사했다.
애초에 그게 요한의 명령이었으니 말이다.
장교 출신 유령의 보고에 의하면 대충 이 근처에 있는 캉구스의 부락은 총 3개.
‘부락의 숫자는 적지만, 규모는 크다고 했지.’
장교 출신 유령의 개인적인 의견이었지만, 캉구스는 이 혹독한 땅에서 적응하기 위해서 부락 규모를 늘린 것 같다고 했다.
‘뭐, 그럴 수도 있겠지.’
그런 부분은 그의 전공이 아니었기에 그러려니 생각했다.
‘딱히 상관없지만.’
“정확하군.”
“어?”
그때 엘리니아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아, 그래. 이 녀석이 있었지!’
너무나도 당연한 사실을 잊고 있었다.
‘이 녀석은 상급 전사라고 했잖아. 당연히 캉구스와 전투 경험이 많을 거 아냐?’
그러다 문득 루펜에게까지 생각이 닿았다.
‘뭐야, 그 녀석. 이렇게 멀쩡하고 뛰어난 전사가 있었는데. 치매 걸린 노인을 소개해 준 거야?’
돌아가면 서울 구경 좀 시켜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왜 그러지?”
“엘리니아, 캉구스에 대해서 잘 알지?”
“당연한 걸 묻고 있군. 난 평생을 캉구스와의 전투에서 살아남았다. 그런 내가 녀석들에 대해서 모른다면 전사가 아니다.”
아무래도 다크 엘프 종족은 기록의 중요성을 잘 몰랐다.
지식이든 문화든 대부분 구전으로 전승되는 게 보통이었다.
그러다 보니 캉구스에 대한 지식은 전사들 사이에서만 돌 뿐이었다.
“좋아, 엘리니아. 캉구스에 대해서 아는 거 싹 다 털어놔.”
“어려울 건 없지.”
엘리니아의 입에서 그녀가 아는 캉구스에 대한 정보가 홍수처럼 쏟아졌다.
캉구스는 미지의 존재로 인해서 이 세계가 스카이 포탈로 변할 때 다크 엘프와 함께한 유일한 종족.
원래도 다크 엘프와 피의 라이벌이었다.
캉구스도 다크 엘프와 마찬가지로 미지의 존재에 충성하는 종족이었다.
다만, 다크 엘프는 강제적으로 충성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캉구스는 자발적으로 충성했다.
한마디로 악마에 영혼을 판 종족이란 뜻이었다.
‘아니라도 다 쓸어버리겠지만.’
그리고 엘리니아의 말에 따르면 원래 캉구스는 50~150마리 정도 소규모 부락을 이루는 종족이었다고 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생명체라곤 한정적인 이 척박한 땅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똘똘 뭉치면서 수백에서 천 마리가 넘게 부락을 이루었다고 했다.
“……여기까지가 내가 아는 전부다.”
“뭐, 많은 도움이 됐어. 일단 고맙다고 해 둘게.”
"흥."
여전히 까칠한 성격의 그녀였다.
요한도 까칠한 것으로 조금도 밀리지 않았지만.
“자, 그럼 본격적으로 움직여 보실까.”
“오오, 전투인가!!”
[살육이다, 살육!!]
역시 가장 크게 반응하는 것은 전투와 피에 환장한 류페이와 하늘이었다.
“가자.”
언데드 군단을 몰고 하늘이 본부락 한 곳을 향해서 거침없이 나아갔다.
척척척-!
단순히 숫자만 많은 어중이떠중이 언데드 무리가 절대 아니었다.
요한의 철저하고 세밀한 코딩 작업을 끝낸 언데드 군단이었다.
질서 정연하게 움직이며 주변엔.
휘잉-!
[꺄하하하!]
고스트 정찰병들이 혹시나 모를 적의 기습을 대비해 꼼꼼하게 정찰중이었다.
조금의 빈틈도 없는 엄청난 위용이었다.
아직 완성된 조직은 아니었다.
‘단순 좀비나 스켈레톤 워리어는 약해서 시체 소모가 많은 편이지.’
그래서 시체는 최대한 수집해도 늘 부족했다.
다른 스킬로 어느 정도 극복한 부분도 없지는 않았지만, 네크로맨서는 결국, 시체 위에서 최강을 논하는 클래스였다.
[삐이이익!!]
그때 동쪽에서 약속된 신호가 울렸다.
“오옷, 적인가!!”
“가 보자.”
[응!]
요한은 근처에 있던 트롤 구울 1기의 어깨에 올라타 빠르게 움직였다.
‘젠장!’
하지만 이건 탑승감은 최악이었다.
그는 진심으로 팬텀 스티드가 가지고 싶었다.
‘지금 당장은 만들 수가 없지만.’
야생 언데드를 얻거나 직접 만들어야 하는데 아직 그의 스킬은 부족한 부분이 많았다.
‘뭐, 그게 약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건 아니지만.’
쿵쿵쿵-!
탑승감 최악인 트롤 구울의 등에 매달려 빠르게 이동한 지 얼마 안돼, 진한 피 냄새가 났다.
[꺄하하하!]
특히 하늘의 목소리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쿵-!
“쿠왁!!”
현장에 도착하자 상황은 거의 다 끝난 상태였다.
캉구스라고 해서 쉽게 당한 건 아니었다.
후웅- 텅!
“오, 도끼질이 묵직한데?”
류페이를 향해서 묵빛의 양날 도끼를 힘차게 휘두른 캉구스.
정말 박력 넘치는 공격이었지만, 상대가 좋지 않았다.
류페이의 머리가 도끼를 그대로 맞았, 아니 막았다.
그녀의 머리는 유일한 약점이면서도 방패의 역할을 겸했다.
“킥킥, 이젠 내 차례다.”
휘익- 챙!
류페이의 롱소드가 빠르게 캉구스의 목을 향해서 쇄도했다.
전투의 프로인 캉구스는 어떻게든 몸을 비틀어서 공격을 피하려고 했다.
푸욱-!
“켁!”
하지만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찌르기 공격에 그대로 목을 관통당했다.
부들부들.
목이 뚫린 캉구스는 거칠게 몸을 떨다가 그대로 무릎을 꿇으며 쓰러졌다.
캉구스는 이 거친 환경에서도 끊임없이 성장하며 강해진 몬스터였다.
일반적인 공격이었다면, 목이 좀 꿰뚫린 것 가지고 바로 죽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류페이의 검엔 언데드 특유의 사특한 마나가 맺혀 있었다.
생명력이 강한 캉구스라고 해도 생명력 자체를 갉아먹는 죽음의 마나를, 그것도 목이 뚫린 채 버티기는 어려웠다.
“뭐야, 벌써 끝났어?”
요한은 바람 빠지는 목소리로 말했다.
전투 구경은 꽤 재밌는 일이었다.
‘뭐, 이렇게 빨리 끝나는 전투는 별로 재미없지만.’
샤악-!
그때 요한의 바로 옆에서 엘리니아가 모습을 드러냈다.
“아, 깜짝이야. 깜빡이 좀 넣고 다녀라, 쫌!!”
“뭔 소리냐, 그건.”
“하아, 아니다. 아니야.”
‘빌어먹을 암살자!’
아무래도 본신의 육체의 힘이 부족하다 보니 언데드의 보호를 받는 중에도 공격할 수 있는 암살자의 존재가 거슬릴 수밖에 없었다.
“이 녀석, 캉구스 내부에서 어떤 존재야?”
캉구스의 시체를 가리키며 물었다.
“송사리보다 못한 떨거지다. 전투 능력이 부족해서 전쟁이나 전투 보다는 단순 노동이나 정찰 같은 비교적 간단한 일에 투입되는 녀석들이지. 정찰도 정교한 임무보다는 그냥 딱 위치만 정해 두고 일정 시간 안에 돌아오지 않으면 그곳에 적이 있다는 용도로 쓰이지.”
“아, 그렇군.”
이 부분은 좀 놀라웠다.
‘겉으로만 보면 무식한 놈들인데 이런 머리까지 쓸 줄 알다니. 역시 스카이 포탈!’
일반적인 사냥터와는 그 격이 달랐다.
“어떻게 할 거냐?”
“응, 뭐가?”
“다른 녀석들에게 의뢰를 받았잖아.”
“아 참, 그랬지. 마석만 챙기는 게 습관이 돼서 깜빡하고 있었네.”
헌터가 된 이후 처음으로 공격대에 속해서 사냥한 이후론 단 한 번도 몬스터를 도축 작업을 하지 않았다.
도축해서 시체를 쓸 수 없을 정도로 훼손하는 것보단 수집하는 게 더 이득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단순히 돈이 아니라 일종의 퀘스트 같은 일이었다.
무시할 수가 없었다.
‘귀찮은데, 그리고 할 줄 모르는데.’
“내가 대신하지.”
“오, 그럼 나야 고맙지. 근데 공짜로?”
대가 없는 호의는 믿지 않았다.
“당연히 아니지.”
“그래, 그렇게 나와야지. 근데, 딱히 네가 나한테 원하는 게 있나?”
그게 의문이었다.
엘리니아는 다크 엘프, 요한은 네크로맨서.
서로 원하는 것, 가지고 있는 것의 공통분모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녀가 원하는 것을 추측조차 어려웠다.
“죽음.”
“뭐?”
“금단의 술법이라고 전해지는 네크로맨시에 관심이 있다.”
“뭐?”
2번째 당황.
‘아무리 다크 엘프라지만, 네크로맨시에 관심이 있다고?’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마냥 무시할 수는 없었다.
아니, 정확히는 무시하지 않는 게 맞았다.
‘복수만 끝나면 내 것이 되는 녀석이야. 알려 줘도 상관은 없겠지.’
“의외네.”
“뭐가 말이냐.”
“다크 엘프인 네가 죽음의 술법이라고 알려진 네크로맨시에 관심이 많다니.”
“……네가 알 바는 아니다. 어떻게 할 거지?”
“뭐, 어차피 복수만 끝나면 너는 내 것이야. 딱히 거절할 이유는 없겠지."
“고맙다.”
“고맙긴 무슨.”
거래는 체결되었다.
스륵.
엘리니아는 허리춤에서 단검을 꺼내 캉구스 시체를 도죽하기 시작했다.
가죽과 털, 꼭 필요한 뼈나 힘줄 같은 부위는 깔끔하게 떼어 내고 나머지 필요 없는 근육이나 내장은 파묻었다.
퍽-! 퍽-!
땅을 파는 등 단순 노동은 스켈레톤 워리어가 알아서 했다.
"......."
지금 상황에선 요한이 딱히 할 일도 없기에 그저 멍하니 그런 엘리니아와 스켈레톤 워리어를 바라볼 뿐이었다.
그러다 문득 1가지 생각이 들었다.
‘음, 이거 잘하면 언데드 군단만 데리고 건물 하나 올리겠는데?’
당장은 어려운 일이 분명했다.
하지만 요한에겐 만능 치트키인 코딩이 있었다.
‘건설 관련 지식과 행동 패턴을 코딩하면 나 혼자서 건물 하나 올릴 수 있지 않을까?’
비슷한 사례가 있긴 했다.
요한이나 특별한 특성이나 길드에서 전략적으로 키운 네크로맨서가 아닌 이상 대부분의 네크로맨서는 사냥에 부적합한 경우가 많았다.
네크로맨서는 확실히 강한 클래스지만, 초반 육성이 너~무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도 단순 노동엔 쓸 만하다 보니 단순 노동이 꼭 필요한 현장에 높은 연봉으로 채용이 되었다.
같은 등급의 헌터와 비교하면 한없이 적은 금액이지만, 일반인보다는 여유로운 생활이 가능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안전했다.
유명한 사례가 하나 있었는데, 한 C급 네크로맨서는 목돈으로 용병을 고용해 적당히 필드 던전을 돌면서 레벨을 올려서 성장하고 일정 수준이 넘어가자 적당한 곳에 취직해 자리를 잡았다.
건설 회사였는데, 1명이 무려 50명의 물량을 소화할 정도였다.
회사로선 적당한 연봉으로 많은 효율을 낼 수 있으니 이득이었다.
‘난 그 수준을 넘어서 나 혼자 건설 회사 그 자체가 되어 보는 거야.’
돈을 떠나서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골똘하게 하지?”
“아, 음. 아무것도 아니야. 다 했어?”
“다 했다.”
“오케이, 짐꾼은 물건을 챙기고 다시 출발하자.”
딱딱.
그렇게 간단한 일을 끝마치고 캉구스 부락으로 향했다.
중간에 정찰대가 발견되긴 했지만, 귀찮다는 이유로 무시해 버렸다.
‘어차피 부락에 가면 떼로 있을 텐데. 일일이 정찰대 따위에게 시간을 할애할 수는 없지.’
그런 이유였다.
정찰대를 무시하자 곧 거대한 목책으로 둘러싸인 캉구스의 부락에 도착할 수가 있었다.
둥-! 둥-! 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