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
공허 간수는 둔해 보이는 외견과는 달리 상당히 빠르고 강력했다.
후웅-!
달려드는 엘프 밴시를 향해서 육중한 통나무를 힘차게 휘둘렀다.
“흡!!”
퍼버벅-!
“와씨, 진짜 빠르네.”
15기의 엘프 밴시 중 5기는 겨우 피했지만, 10기의 엘프 밴시는 통나무에 직격당해 그대로 옆으로 날아가 다른 나무에 처참하게 박혔다.
나무에 처박힌 엘프 밴시의 사지가 그대로 뒤틀렸다.
꿈틀-.
요한의 미간이 요동치며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어떤 경우든 언데드가 당하는 장면은 불쾌했기 때문이다.
‘시체도 부족하고 말이야.’
스킬로 어느 정도는 극복했지만, 근본적인 대책은 될 수가 없었다.
네크로맨서는 시체가 없으면 한계가 명확한 클래스이니 말이다.
다만, S급 헌터인 그답게 말 그대로 어느 정도는 극복했지만 말이다.
그래도 이렇게 강력한 단일 몬스터와 싸우는 건 위험 부담이 클 수밖에 없었다.
“류페이.”
“왜?”
“녀석의 공격은 빠르지만, 육중해. 그러니까 최대한 넓게 퍼져서 사방에서 공격해.”
“알았어.”
요한은 이번 전투는 평소처럼 뒤에서 느긋하게 싸워선 답이 없다고 생각했다.
‘네크로맨서의 단점이 강력한 단일 개체에 의외로 약하단 말이지.’
아무래도 화끈하게 날릴 수 있는 강력한 한 방의 부재가 컸기 때문이다.
저벅저벅-.
그래서 이번엔 요한도 직접 움직였다.
마검 요룬을 꺼내서 천천히 공허 간수의 앞으로 다가갔다.
“거치적거리지나 말라고.”
파악-!
류페이가 땅을 박차고 앞으로 튀어 나갔다.
‘티쓰!’
파바바박-!
수십 개의 날카로운 송곳니가 허공에서 형성되며 공허 간수를 향해서 날아갔다.
“구어어어!!”
파앙-!
"!!"
녀석은 괴성을 질러 송곳니를 충격파로 튕겨 내었다.
‘이거 장난 아닌데?’
하지만 이건 그저 전초전일 뿐이었다.
“자, 총공격!!”
딱딱-!
요한이 만들어 준 아주 잠깐의 틈을 이용해 류페이는 녀석의 아래로 파고드는 데 성공했다.
“사무엘, 공허 간수의 움직임을 막아.”
[예.]
스와아악.
사무엘의 양손에서 연기가 뿜어져 나왔고 스켈레톤 메이지 부대의 손에선 검은 사슬이 튀어나왔다.
촤르르륵- 콰득!
“그륵?”
굵고 단단한 사슬 수십 개가 동시에 공허 간수를 묶자 그 거대한 공허 간수도 쉽게 움직일 수가 없었다.
“쳐!!”
류페이는 이 틈을 놓치지 않았다.
후웅- 콰직!
“크어어!!”
온 힘을 다해서 공허 간수의 다리를 검으로 후려친 것이다.
류페이가 덩치는 작아도 절대 힘이 약한 언데드가 아니었다.
거기에다가 동시에 스켈레톤 메이지 부대가 사슬을 잡아당기자 그대로 앞으로 넘어졌다.
“올라타!!”
류페이의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스켈레톤 워리어 부대는 물론이고 구울, 좀비까지 모조리 쓰러진 공허 간수 위에 올라타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새까맣게 공허 간수를 뒤덮었다.
푹푹-! 콰득!
찌르고, 베고, 물고, 내려치고 난리도 이런 생난리가 없었다.
“끄어어어!!”
쿵-!
하지만 공허 간수는 이 다크 엘프의 땅을 지배하는 몬스터답게 쉽게 쓰러지지 않았다.
‘그래, 이렇게 버텨야 싸울 맛, 그리고 내 부하로 만들 맛이 나겠지!’
현재 요한의 눈은 탐욕으로 불타오르는 중이었다.
‘거대하고 강력한 신체야. 저 녀석을 내 것으로 만들 수만 있다면!!’
모종의 이유로 보스 몬스터는 언데드가 되지 않았다.
저 녀석은 엄연히 보스 몬스터가 아니었다.
그러니 요한이 탐욕으로 활활 타오르는 것은 절대 이상한 게 아니었다.
탐욕에 불타는 요한이기에 평소보다 훨씬 더 적극적으로 전투에 임했다.
‘본 스피어!!’
촤악- 촤악-!
크고 날카로운 뼈가 쓰러진 공허간수에 쇄도했다.
푸욱-!
“크어어어억!!”
날카로운 뼈가 공허 간수의 상체를 그대로 꿰뚫었다.
하지만 여전히 녀석은 거칠게 몸부림치면서 반항 중이었다.
‘반항하는 짐승은 채찍질이 약이지.’
“사무엘!!”
[예, 주인님.]
사무엘이 양손을 뻗어서 마법을 사용하자 녀석의 양손에서 보라색채찍이 형성되었다.
촤악-! 촤악-!
“크아악!”
말 그대로 채찍질이었다.
다만, 단순한 채찍이 아니라 저주 스킬이 담긴 채찍으로 채찍질한 대당 일정 수준의 약화 마법을 중복해서 넣을 수 있는 저주 채찍이었다.
공허 간수는 더더욱 괴로움에 몸부림쳤다.
‘거참, 쓸데없이 단단한 녀석.’
이 부분은 어쩔 수가 없었다.
방어가 단단한 녀석을 한 번에 뚫을 강력한 한 방이 없었기 때문이다.
‘확실히 이건 내가 어떻게든 극복해야 할 부분이지.’
그래도 방법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르릉!”
콰직!
공허 간수가 묵직한 주먹을 휘둘러 10기가 넘는 좀비를 피떡으로 만들었다.
‘좋아, 이거나 먹어라. 시체 폭발!!'
콰가가가강-!
“크아아악!!”
요한이 사용할 수 있는 가장 위력적인 스킬이 사용되었다.
"크으으......."
공허 간수가 죽지는 않았지만, 좀비를 피떡으로 만들었던 오른손이 갈가리 찢겨 걸레가 되었다.
그걸로 끝이라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타다닥-!
첫 번째 공격에 혼비백산했다가 다시 차분하게 전열을 재정비한 엘프 밴시 엘라드가 쌍검을 들고 공허 간수의 몸에 올라탔다.
“클?”
머리에 올라탄 그녀는 쌍검을 역수로 쥐더니 그대로 양쪽 눈에 찔러 넣었다.
푹-!
“크아아악!!”
아무리 강력한 몬스터인 공허 간수라고 해도 눈이 찔리자 팔이 찢겼을 때보다 더 큰 비명을 내질렀다.
“이제 진짜 끝내 버려!!”
“트하아앗!!”
요한의 외침에 류페이는 검에 마나를 모으기 시작했다.
우우웅-!
주변의 마나를 아예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신기한 점은 그 빨아들이는 역할을 머리가 대신한다는 점이었다.
“하아아압!!”
숨을 들이켜듯이 마나를 빨아들이자 머리가 그 마나를 언데드 특유의 검은 마나로 바꾸었다.
거의 3분 가까이 마나를 모은 류페이는 검을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
“데스 블레이드!!”
촤앙-!
‘윽, 중2병.’
도저히 스킬명을 입 밖으로 내뱉는 건 익숙해지지가 않았다.
류페이가 데스 블레이드라는 스킬을 사용하며 검을 아래로 내리긋자 유형화된 오러 블레이드가 그대로 공허 간수의 머리를 세로로 그어 버렸다.
‘아, 저래서 평소엔 데스 블레이드를 잘 사용하지 않는구나.’
시전 시간도 정말 긴데다가 데스블레이드라는 오러가 날아가는 속도도 느릿느릿했다.
확실히 일반적인 상황에선 써먹기 힘든 스킬이었다.
하지만 공허 간수의 눈이 완전히 박살이 난 지금으로선 최고의 기술이었다.
촤악-!
데스 블레이드가 그대로 공허 간수의 머리를 그어 버렸다.
"......."
비명을 지르던 공허 간수의 손이 아래로 축 늘어졌다.
쿵.
무릎까지 꿇자 서서히 얼굴과 몸에 빨간 실선이 생기더니 검은 피를 뿜으며 그대로 뒤로 넘어갔다.
쿵-!
묵직한 진동이 땅을 흔들었다.
“예스!”
요한은 주먹을 쥐고 기뻐했다.
승리도 승리지만, 지금껏 획득했던 그 어떤 시체보다 훌륭한 시체를 얻었기 때문이다.
“끄응, 그런데……."
여기서 살짝 고민이 되었다.
‘지금 내가 이 시체를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은 구울이 최선인데. 아깝단 말이지.’
물론 구울이 나쁜 언데드는 절대 아니었다.
'하지만 뭔가 구울로 일으키기엔 시체가 너무 좋단 말이야.’
좋은 언데드이긴 했지만, 구울은 지능도 낮고 70%라는 스펙 저하도 있었다.
‘이 좋은 시체를 가지고 70% 스펙 저하라니. 있을 수 없는 일이야…….'
하지만 그렇다고 당장 쓸 수 있는 스킬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아쉽지만, 일단은 보관하는 수밖에 없겠어.’
당장은 힘들겠지만, 얼마나 버틸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가 없었다.
‘뭔가 획기적인 대책이 필요한데…….'
그의 고민은 그렇게 오래가지 못했다.
“인간!!”
“응? 아……."
잠시 잊고 있었던 루펜이 달려왔다.
“저, 정말 이겼구나!!”
"......."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루펜을 내려다보았다.
웅성웅성.
그리고 루펜의 뒤를 따라서 다크엘프 무리도 나타났다.
“저, 정말 저 미친 공허 간수를 이겼어.”
“어, 어떻게 인간 따위가.”
“마, 말도 안 돼.”
몇 세대 동안 지속했던 공허 간수의 지배였다.
물론 미지의 존재가 한 세뇌로 인해서 그들은 공허 몬스터에 대항할 수 없었긴 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이렇게 직접 공허 몬스터와 싸워서 이긴 사례가 없었다.
운명이라고 생각하고 포기하고 있던 상황에서 요한의 등장은 그들로썬 희망이면서 혼란이었다.
“이길 줄 알았어. 역시 대단해!!”
폴짝폴짝-!
루펜은 뭐가 그렇게 기쁜지 방방뛰면서 즐거워했다.
퍽-!
“으갹!”
머리에 묵직한 충격이 가해지자루펜은 혀를 쭉 내밀며 비명을 질렸다.
“왜, 때려!!”
“정신 사납다. 조용히 해라.”
“이익, 이 치욕은 언젠가 꼭 갚아 주겠어!!”
부들부들.
루펜은 눈물까지 글썽거리며 요한을 노려보았다.
“시끄럽고. 소개 좀 해라.”
“소개?”
갸웃.
“그래, 썩 마음엔 안 들지만. 그래도 지금부턴 전략적 동맹 관계니까.”
“알았어, 아저씨!!”
까칠하지만, 그래도 요한의 요구는 착실히 들어주는 루펜이었다.
루펜은 아저씨라 부르는 다크 엘프를 불렀다.
“……왔다.”
무표정한 다크 엘프 1명이 다가왔다.
“인사해. 이쪽은 내가 특별히 의뢰한 인간 김요한이고. 이쪽은 다크 엘프 종족에서 가장 뛰어난 장인인 루카스야.”
“반갑다.”
루카스는 무표정한 표정으로 말을 툭 던졌다.
무뚝뚝함의 극치였다.
처음엔 좋은 마음으로 인사나 나누려 했던 요한은 마음이 팍 식어버렸다.
끄덕.
무뚝뚝함을 넘어서 고개만 까딱거리며 인사를 했다.
대인배라기보다는 오히려 소인배에 가까운 요한이기에 상대가 무뚝뚝한데도 사람 좋게 웃는 성격이 아니었다.
다만, 한쪽은 조금 분위기가 달랐다.
“어머. 저 인간 꽤 매력적인데?”
“그러게, 강한 데다가 성격도 쿨해. 루카스 님보다 더 쿨한 거 봤어?”
“그러게.”
“외모는 살짝 부족하지만, 그게 중요한 건 아니니까.”
“맞아, 맞아. 우리가 남자 얼굴 뜯어먹고 살 것도 아니고 말이야.”
“그렇지.”
“그리고 네크로맨서잖아. 고독한 멋이 제대로 뿜뿜이지 않니?”
“그렇지, 그렇지!”
여성 다크 엘프들은 요한을 좋게 보았다.
그녀들이 보는 이성적인 매력은 강함과 우직한 성격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공허 간수를 홀로 쓰러트릴 만큼 강하고 루카스를 넘어선 찬바람이 쌩쌩부는 성격의 소유자였다.
인기가 없을 수가 없었다.
“……젠장.”
남성 다크 엘프들 입에서 욕지거리가 나오는 건 어찌 보면 당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