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으앗!!”
요한은 갑자기 자신의 몸에 빛이 쏘아지고 몸이 붕 뜨는 느낌에 깜짝 놀랐다.
그리고 시야가 획 바뀌더니 순간, 그의 몸은 이상한 곳에 도착한 뒤였다.
“허억!”
갑작스러운 공간 전이의 여파인지 요한의 호흡이 거칠어졌다.
“후우, 후우, 젠장.”
입에서 저절로 욕지거리가 튀어 나왔다.
이런 감각은 처음 느껴 보는 것이라 더 당황스러웠다.
“우웩!”
헛구역질을 몇 번 더 하고 나서야 겨우 진정할 수가 있었다.
“캭, 퉤!”
침을 뱉고 주변을 찬찬히 둘러보았다.
“축하합니다, 플레이어.”
"!!"
요한은 느끼지도 못한 사이에 가까이서 들리는 목소리에 또 깜짝놀라야 했다.
이번엔 비명은 지르지 않고 재빨리 몸을 옆으로 움직여 피했다.
분명히 방금까진 아무것도 없던 옆엔 초냉미녀가 공중에 떠 있었다.
요한은 왠지 누군지 알 것 같았다.
“안내인 씨?”
“축하합니다. 김요한 플레이어.
당신은 페이즈 1을 통과하고 페이즈 2에 도달했습니다.”
“페이즈 2?”
“예, 모든 차원이 겪는 일입니다.”
“자, 잠깐만. 난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거든?”
갑작스러운 그녀의 말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페이즈 1, 페이즈 2? 도대체 뭔 소리를 하는 거야. 그리고 안내인은 왜 실체화가 된 거야?’
“궁금한 게 정말 많은 표정이군요.”
“당연하지!! 으으.”
그는 머리를 감싸며 괴로워했다.
그렇게 약 30분 동안 고민하던 요한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래서, 요점이 뭐야?”
“요점이라…… 늘 생각하지만, 플레이어 당신은 참 특이합니다.”
“내가 특이하……. 하긴, 나도 그렇게 생각해.”
그는 부모님이 살아 계셨던 아주 어렸을 때부터 참 특이하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처음엔 부정했지만, 나이를 먹을수록 스스로가 조금 특이하다는 것을 인지할 수가 있었다.
“뭐, 지금 그건 중요한 게 아니고. 지금부터 뭘 하면 돼?”
“저도 정확한 건 모릅니다. 제 관리자 코드가 업데이트되어서 페이즈 2가 된 것까지는 확인했지만.
그 이후의 정보는 아직 한정적입니다.”
“잠깐만, 관리자 코드라고?”
“예, 참고로 저는 페이즈 2, 일명 스카이 포탈 안에서만 실체화할 수가 있습니다.”
‘코드, 코드, 코드…….'
안내인의 말에 좀 더 집중해 생각해 보았지만, 아직은 정보가 부족했다.
“안내인 씨.”
“네, 플레이어.”
“정보가 한정적이라고 했으니까.
알고 있는 것도 있을 거 아니야.
혹시 다 말해 줄 수 있어?”
“네, 물론입니다. 페이즈 2는 지구라는 차원이 한 단계 발전할 것인가, 아니면 이대로 쇠락할 것인가를 결정짓는 키가 될 것입니다.”
“키?”
“네, 지금부터 지구 전체에 있는 포탈은 전보다 훨씬 더 자주 포탈 브레이크가 발생할 겁니다.”
“뭐?”
그건 정말 끔찍한 일이었다.
현재 인류는 간헐적으로 포탈의 위협을 받고는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굉장히 안정적인 상황이었다.
헌터는 매년 0.1% 사망하고 있었지만, 더 많은 숫자가 태어나고 헌터로 각성했다.
대혼란의 시기 이후 급감했던 인구가 다시 회복세에 접어든 것이다.
하지만 그런 회복세에 접어들기 무섭게 다시 포탈이 폭주하려고 했다.
‘이거, 왠지 인류가 복구되길 원하지 않는 누군가의 농간 같은 건 내 착각일까.’
어쨌든 지금 요한이 할 수 있는 일은 아주 제한적이었다.
“여기서 나갈 수는 있어?”
“원할 때 얼마든지 나갈 수 있습니다.”
“다시 들어오는 건?”
“그것도 마찬가지고요.”
“후우, 그건 다행이네.”
혹시라도 던전 포탈처럼 보스를 죽이지 않으면 빠져나가지 못할까봐 걱정했었다.
“스카이 포탈은 일반적인 포탈이 아닙니다.”
“일반적인 포탈이 아니라고?”
“예, 철저하게 설계된 존재 하면서도 존재하지 않는 진실한 세계.
차원의 존립이 걸린 세계기도 하지요. 여기까지가 제가 알고 있는 정보입니다.”
“그런데, 안내인 씨.”
“예, 플레이어.”
“나한테 왜 이렇게 자세한 정보를 알려 주는 거야. 내가 알기론안내인 씨 같은 존재는 담당 헌터에게 많은 정보를 주지 않는 것으로 아는데.”
요한은 이게 늘 의문이었다.
헌터 정보 커뮤니티에 따르면 일종의 NPC라고 할 수 있는 의문의 존재들은 늘 헌터에게 제한된 정보만 소량 제공했다.
그리고 굉장히 불친절했다.
하지만 안내인은 요한에게 최대한 많은 정보를 알려 주려고 노력했다.
물어보는 족족 대답하고 정보량이 적으면 오히려 미안해했다.
그가 아는 NPC는 이런 존재가 아니었다.
그러니 의문이 들 수밖에 없었다.
"......."
안내인은 잠시 입을 다물고 요한을 빤히 쳐다보았다.
“특별한 이유는 없습니다. 그저, 전 제가 하고 싶은 대로 할 뿐입니다.”
‘아닌 거 같은데…….'
요한이 보기엔 거짓말이었다.
하지만 숨기고 싶어 하는 일을 굳이 들추는 건 그의 성격이 아니었다.
“뭐, 그렇다고 치자고. 그런데…… 이미 들어온 건데. 뭐라도 건져 가야겠는데.”
요한은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분위기는 좀 묘했지만, 스카이 포탈 내부는 평범했다.
식생은 조금 다르긴 했는데, 일반적인 나무보다 훨씬 큰 나무로 이루어진 일종의 숲이었다.
‘잠깐만. 숲? 그렇다면, 이곳 스카이 포탈 안엔 내가 상대했던 다크 엘프 무리가?’
부스럭-!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근처 수풀에서 부스럭대는 소리가 났다.
“하늘.”
요한은 재빨리 밴시 하늘을 불렀다.
지잉-!
[으힛, 맡겨 줘.]
공간을 가르며 나타난 하늘이 빠르게 날아가 수풀 속으로 들어갔다.
[잡았다, 요놈!!]
“으앗!”
수풀 너머에서 비명이 들리더니 뽀시래기 하나가 툭 튀어나왔다.
'응.'
비교적 장신인 요한의 허리에 머리끝이 겨우 닿을 것 같은 귀여운 소년 다크 엘프였다.
그리고 녀석은 자신만 한 무엇인가를 보자기로 감싼 채 안고 있었다.
‘갑자기 이런 타이밍에 꼬마 다크 엘프라고?’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동시에 무엇인가 강력한 운명인 듯 느껴지기도 했다.
‘아무리 봐도 단순한 우연은 아니야. 뭔가, 뭔가 있어.’
그렇게 생각한 요한은 어린 다크엘프 앞으로 다가갔다.
“히이익! 오, 오지 마. 이, 이 괴물!!”
어린 소년 다크 엘프는 요한의 접근에 기겁하며 앉은 채로 엉덩이 걸음으로 도망치려고 했다.
[에에, 어디 가려고?]
“으아아악!!”
하지만 곧 수풀에 있던 하늘을 보고 기겁하며 정신을 잃어버렸다.
“거참.”
요한은 콩트와도 같은 상황에 어이가 없었다.
“에휴.”
한숨을 쉬면서도 그의 머리는 빠르게 돌아가고 있었다.
‘분명히 방금 녀석의 말이 똑똑히 들렸어. 와이번 라이더와 싸울 때, 그리고 스카이 포탈에 진입하기 전까지만 해도 녀석들은 뜻을 알 수 없는 언어로 말했어. 그런데 지금은 똑똑히 녀석들의 말이 들린단 말이지.’
때문에, 요한은 다크 엘프 소년과 대화를 할 필요성을 느꼈다.
‘이 스카이 포탈의 내부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알 테니까 말이야.’
“어이!”
요한은 스켈레톤 워리어 몇 기를 불러냈다.
척-!
그들은 등장하자마자 무릎을 꿇으며 네크로맨서에 대한 충성심을 보였다.
“근처에 마른 나뭇가지나 장작같은 것을 구해서 불 좀 피워.”
딱딱.
보통 네크로맨서는 이런 잡다한 일을 스켈레톤에 잘 맡기지 않는다.
왜냐하면, 멍청한 스켈레톤은 이런 섬세한 작업을 잘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키우는 강아지가 2족 보행을 한다고 해서 장작을 구해 와서 불을 피우라고 하면 할 수 있겠는가?
절대 불가능했다.
스켈레톤은 아무리 강해져도 전투 외의 지능은 동물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요한의 스켈레톤은 그의 고유 특성인 코딩 작업이 된 고지능 스켈레톤이었다.
그리고 꾸준한 업데이트로 다양한 작업이 가능했다.
5기의 스켈레톤은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
“으음……."
시간이 조금 흐르고 난 뒤, 기절했었던 소년 다크 엘프는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잠시 주변을 둘러보다 요한을 보더니.
“헉!”
기겁하며 자리에서 재빨리 일어나 앉은 채로 뒤로 기어갔다.
“적당히 좀 하지, 언제까지 이 빌어먹을 패턴을 반복할 셈이야?”
“다, 당신은 누, 누구야?”
“하아, 뭔 개소리야. 아까는 괴물이라며?”
“아, 맞다. 괴, 괴물!!”
다크 엘프 소년은 손가락질까지했다.
“에휴, 아. 내가 왜 쟤랑 말씨름이나 하고 있냐. 야, 스켈레톤. 그거 내놔.”
딱딱.
요한은 배낭을 메고 보급을 담당하는 스켈레톤 워리어에게 손을 뻗었다.
그러자 스켈레톤 워리어는 재빨리 배낭에서 진공 포장한 도시락을 하나 꺼내서 건넸다.
그가 건네받은 도시락은 하나에 10만 원이 넘는 아주 비싼 도시락이었다.
금가루를 뿌려서 만든 건 아니었다.
이 도시락은 최첨단 기술로 만든 진공 포장 도시락으로 버튼을 누르면 진공 상태가 풀리며 음식을 갓 만든 것 같은 상태로 변했다.
최첨단 기술이 접목돼 있다 보니 개당 10만 원이 넘는 것이었다.
딸깍-!
버튼을 누르자 진동 상태가 풀리며 도시락이 따뜻해졌다.
적당한 온도가 맞춰지자 뚜껑을 열었다.
그러자 맛있는 냄새가 주변으로 퍼져 나갔다.
“크으, 역시 도시락은 스팸마요가 최고지. 올드한 맛이지만, 클래식이 최고여.”
옛날부터 유행했던 스팸마요 도시락.
요한이 현재 가장 좋아하는 종류이기도 했다.
‘자, 어디 맛 좀 볼까.’
그렇게 숟가락으로 막 밥을 푸려던 참이었다.
꼬르륵-!
‘응?’
흔히 TV 같은 데서 꼬르륵 소리는 크게 표현하지만, 실제 소리는 듣기 힘들었다.
하지만 방금 요한의 귀엔 거의 천둥?번개급의 꼬르륵 소리가 들렸다.
“으으.......”
그곳엔 얼굴을 붉게 붉힌 채로 어쩔 줄 모르는 소년 다크 엘프가 있었다.
씨익-!
요한의 입꼬리가 올라가며 비릿한 웃음을 지었다.
“히, 히익!!”
“뭐야, 배고팠어?”
“아, 아냐!”
“아니긴, 뭐가 아니야. 자, 이거 너 먹어.”
“괴, 괴물이 주, 주는 음식 따위!!”
“에헤이, 방금까지 내가 먹으려고 했던 건데. 진짜 안 먹을 거야?”
요한은 몇 번이고 놀리듯이 다크엘프 소년 앞에서 도시락을 흔들어 보였다.
처음엔 완강히 거부하던 다크 엘프 소년은 결국, 배고픔을 이기지 못하고 유혹에 패배해야 했다.
첩첩첩첩-!
철저히 거부하던 소년은 사라지고 배고픔에 몸을 맡긴 어린 소년만이 존재했다.
“천천히 먹어라, 체하겠다.”
물까지 친절하게 건네주었다.
턱-!
다크 엘프 소년은 거칠게 물통을 뺏어 가 들이켰다.
‘이런, 싸가지!’
요한은 욕이 튀어나오는 것을 겨우 막았다.
‘후우, 일단 참자. 내가 필요한건 녀석의 머릿속에 있는 정보니까.’
그러면서 힐끔, 소년이 밥을 먹으면서도 애지중지하는 보따리에 눈이 갔다.
‘뭘까, 뭔데 저렇게 애지중지 품에 안고 있는 걸까.’
그의 눈이 위험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헌터가 된 이후에 막대한 재산을 가지게 된 그였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의 돈이나 보물에 대한 욕심이 줄어든 것은 절대 아니었다.
어렸을 때 하도 어렵게 살다 보니 돈과 보물이라면 얼마를 가져도 부족하지 않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