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이곳의 혼란을 잠재울 수 있는 건 역시 요한뿐이었다.
“크오오오!!”
와이번들은 지상을 향해 포효하며 위협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와이번의 엄청난 박력으로 오줌을 지릴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요한이 보기엔 그저 잔뜩 겁먹은 하룻강아지가 짖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벌써, 수십 마리가 당했으니까.
하지만, 나도 썩 좋은 상황은 아니지.’
요한의 힘은 압도적인 숫자에 있었다.
하지만 메이지만으로 공격하는 지금은 운이 좋게 몇 마리를 떨구긴 했지만, 근본적으로 압도를 하고 있지는 못했다.
‘흠…… 뭔가 좀 확실하게 녀석들을 제압할 수 있는 강력한 한 방같은 게 필요할 거 같은데.’
그는 이런 식의 비행 몬스터와 본격적으로 전투를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러다 보니, 비행 몬스터에 대한 대비가 부족하긴 하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현재까지 밝혀진 포탈에는 비행몬스터가 없었으니까.
그러니 그의 고민이 깊어졌다.
당장은 이렇게 버틸 수는 있겠지만, 아직 남은 와이번 라이더가 너무 많았다.
다른 수단을 마련하지 않으면 이쪽이 먼저 말라 죽을 수가 있었다.
‘절대, 그렇게는 안 되지.’
애초에 죽을 마음도 없었지만, 지금 그의 곁에는 누구보다 사랑하는 유일한 가족이자 여동생인 유나가 있었다.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서라도 유나만큼은 절대 이 일에 휘말리게 할 수는 없었다.
‘아……!’
순간적으로 요한은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모두 방어 태세로 전환한다.”
딱딱-!
요한의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언데드 군단은 공세에서 수세로 전환하며 요한을 중심으로 똘똘 뭉치기 시작했다.
“오빠, 괜찮아?”
유나는 그런 요한을 걱정했다.
표정이 영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스윽.
요한은 그런 유나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었다.
“걱정하지 마. 절대 큰일 같은 거 안 일어나니까.”
‘절대 일어나게 만들지 않을 테니까.'
그는 언데드 군단을 이끌고 와이번 라이더들이 추락한 곳으로 향했다.
콰강-!
“쿵, 젠장!!”
그곳은 또 다른 전쟁터였다.
와이번이 추락했다고 해서 그들의 전투력이 형편없어지는 건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더 격렬해졌다는 표현이 어울렸다.
[쏴!!]
파바박-!
다크 엘프들은 와이번 위에서 싸울 때보다도 더 강력한 스킬을 선보이며 언데드 군단을 몰아붙였다.
엘프답게 화살에 마법을 걸어 발사해 강력한 화력을 내뿜는 녀석들은 후방에, 전방엔 날이 살짝 휘어진 세이버 2자루로 무장한 다크 엘프들이 근접전을 벌이고 있었다.
“류페이!”
좀 더 정확한 상황을 알기 위해서 요한은 류페이를 불렀다.
요한의 부름에 한창 열심히 전투 중이던 류페이의 머리는 인상을 찌푸렸다.
하지만 순순히 요한을 향해서 다가왔다.
그리고 대뜸 먼저 말했다.
“미안하다. 녀석들의 저항이 너무 강력해서 제대로 처리하지 못했다.”
그녀의 왼손에 들린 머리의 표정이 시무룩해졌다.
‘언데드 주제에 그런 표정 좀 짓지 마라.’
목까지 차오른 말이었지만, 차마 입 밖으로 내뱉지는 못했다.
“그러니 내가 온 거지. 지금부터 확실하게 처리하자고.”
“알았다!”
그녀는 다시 힘을 내며 검을 쥔 채로 다크 엘프들을 향해서 달려갔다.
요한은 잠시 전쟁터를 쭉 훑어보았다.
‘다크 엘프들, 꽤 잘 버티곤 있네. 하지만 그것도 여기까지다.’
와이번의 시체를 방패 삼아서 조잡하지만, 괜찮은 진지를 구축한건 칭찬해 줄 일이었다.
하지만 요한이 온 이상 그들의 선택은 그야말로 최악의 수라고 할 수가 있었다.
‘흠.......'
잠시 그들의 진형을 꼼꼼하게 살핀 요한은 마검 요룬을 들었다.
‘시체 폭발.’
그가 사용할 수 있는 가장 끔찍하고 처절하며 강력한 공격 스킬을 발동했다.
푸확- 쾅!!
‘으으, 아까워.’
전력을 다한다면 한꺼번에는 아니더라도 모든 시체를 다 터트릴 수가 있었다.
물론 그에 대한 마나 소모는 엄청났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요한은 녀석들의 전위가 가장 많이 모인 지역의 시체 딱 한 구만 터트렸다.
덕분에 폭발 반경이 좁아서 큰 피해를 주진 못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예 효과가 없는 건 아니었다.
[크윽!]
[으윽!]
적을 막는 데 가장 중요한 지역을 아예 박살 낸 것이다.
그리고 폭발 여파를 기회 삼아서 언데드 군단이 그곳으로 몰리기 시작했다.
[젠장, 어서 막아!!]
다크 엘프 쪽은 당연히 난리가 났다.
지금까지 잘 막고 있던 게 한꺼번에 우르르 무너지려고 했기 때문이다.
[다크 엘프를 위하여!!]
[하아아압!!]
하지만 다크 엘프는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몸에 상처가 나든 말든, 온몸을 바쳐서 육탄전으로 언데드 군단을 막아 세웠다.
반격할 수 있는 최대한의 시간을 벌기 위해서.
‘하지만, 거기까지다.’
요한은 오히려 저렇게 나올수록 편했다.
그는 눈을 부릅뜨고 마나를 일으켰다.
그리고 마검 요룬을 뻗어서 속으로 외쳤다.
‘콜 밴시.’
[꺄아아아악!!]
[크윽!]
[으윽, 이, 이건?!]
현재 죽은 다크 엘프는 총 6명.
그 6명이 죽고 난 후에 생기는 영혼을 모두 밴시로 깨운 것이다.
귀가 찢어질 듯한 비명이 울려 퍼졌다.
밴시는 깨어난 직후가 가장 강했기에 강인한 다크 엘프도 손으로 직접 귀를 막아야 했다.
[쿨럭!]
그렇지 않은 다크 엘프는 휘청이며 앞으로 쓰러져 피를 토해야 했다.
밴시 6기를 불러낸 것은 좋았지만, 밴시 6기로는 이 상황을 완전히 뒤엎을 수는 없었다.
다크 엘프는 좀 전까지의 격렬한 전투로 꽤 줄긴 했지만, 언데드 군단은 그보다 훨씬 더 많이 줄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한에게 특별한 대책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 대책을 막 실행하려는 참이었다.
‘과연 이게 될까?’
확신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시도할 만한 가치는 있다고 생각했다.
곧바로 스마트폰을 들어서 빠르게 밴시 코딩을 시작했다.
샥샥샥-!
손가락을 빠르게 움직여서 밴시의 고유 코드를 설정했다.
그의 손가락이 스마트폰 자판 위에서 현란하게 춤을 추기 시작했다.
‘좋아, 일단은 됐다.’
“밴시들은 각자의 몸을 되찾아라.”
[꺄아아악!!]
샤악-! 샤악-!
요한의 명령에 밴시들은 소리를 지르며 각자가 뽑혀 나온 육체로 달려들었다.
‘과연?!’
그가 밴시에 한 코딩은 자신의 육체에 한해선 시체에 빙의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듀라한이 진짜 류페이에 빙의한 것을 모티브로 구상했던 방식이었다.
하지만 아직 실험 전이었기에 성공률은 장담할 수가 없었다.
지금으로선 이 방법이 최선이었기에 위험을 감수하고 해 본 것이었다.
‘무슨 결과가 나올 것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기에 더 위험했다.
“오오오오오오!!”
"!!"
그때 자신의 육체에 빙의됐던 밴시들이 이상한 소리를 내며 깨어났다.
그들의 주변엔 검은 연기 같은 것이 피어오르며 눈은 붉게 빛나고 있었다.
갈색이었던 피부는 채도가 거의다 빠져서 창백한 연갈색이 되어 있었다.
밴시는 밴시인데 육체를 가진 밴시 6기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와, 이게 진짜 성공하다니. 대박.’
머리에서 생각만 조금 했었지, 연구는 단 한 번도 시도하지 않았던 도박 중의 도박이었다.
그런 시도가 성공하자 요한의 기세는 더욱 상승했다.
“이, 이게……."
6기의 엘프 밴시는 자신들의 양손을 내려다보며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억, 잠시만. 설마?’
두근두근.
요한의 심장 박동이 세차게 뛰기 시작했다.
‘이거 X 되는 거 아니야?’
아직 증명되지 않은 언데드 소환방식이었다.
그러니 요한의 통제에 잘 따른다는 보장이 없었다.
거기에다가 드물게 의식이 또렷한 엘프 밴시였다.
이대로 다크 엘프의 편에 서서 요한을 공격할 수도 있었다.
‘안 돼, 그러면 무조건 도망쳐야 해.’
안 그래도 지금 살짝 전력이 부족한 형편이었다.
아직 그는 S급이면서도 충분히 강해졌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의 궁극적인 목표는 S급 못지 않게 강력한 언데드를 만드는 것이었다.
보통 네크로맨서들의 진정한 목표가 불사의 육체를 만드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노선이었다.
샤아악-!
그들은 공중에 뜬 채로 날아와 요한의 앞에 착지했다.
꿀꺽.
그녀들의 살벌한 기세에 요한은 마른침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기세와는 달리 그녀들은 고개를 숙였다.
“죽음의 군주이신 네크로맨서님을 뵙습니다.”
그들의 태도는 공손했다.
하지만 살벌한 기세가 어디 가는 것은 아니었다.
‘예스!!’
완벽한 성공이었다.
요한은 주먹을 꽉 쥐어 보이며 속으로 미친 듯이 좋아했다.
절대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다.
“너희들에게 명령을 내린다.”
“명령을!!”
“나의 적이자 생명체인 저들을 모두 말살하라!!”
“따릅니다!!”
오오오오오-!!
특이한 소리는 그들의 목소리가 아니라, 기운이 뿜어져 나오는 소리였다.
검은 연기를 뿜어내며 공중에 떠오른 채 옛 동료였던 무리에게 달려들었다.
[이 더러운 네크로맨서가!!]
다크 엘프들은 동료의 언데드화에 크게 분노했다.
하지만 다른 차원의 존재의 언어를 요한이 이해할 리는 없었다.
엘프 밴시의 합류는 전황을 순식간에 바꿔 놓았다.
오오오오-!!
육체를 가진 엘프 밴시는 일반적인 밴시와는 차원이 다른 힘을 발휘했다.
무기는 기본적으로 생전에 사용하던 활과 화살이었다.
하지만 그것만 고집하진 않았다.
엘프 밴시가 되면서 얻은 힘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였는데, 순간적으로 몸을 유체화 시켜 적에게 타격을 입히는 능력이었다.
[정신 차려, 너희는 긍지 높은 다크 엘프 전사들이다!!]
[카누!!]
모습이 조금 변하긴 했지만, 언데드라고 하기엔 완벽하게 생전과 비슷한 형태의 엘프 밴시였다.
그러다 보니 차마 곧바로 공격할 수가 없었다.
“우리는 언데드다!!”
하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엘프 밴시는 동료이고 뭐고, 주인인 네크로맨서의 명령을 이행하기 위해서, 생명체에 대한 증오를 풀기 위해서 생전의 동료들을 마구잡이로 공격하기 시작했다.
[젠장, 반격해!!]
[녀석들은 그저 저주스러운 언데드에 불과하다!!]
곧 정신 차리고 반격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망설인 것은 아주 잠깐.
하지만 전쟁터에서 그 잠깐은 목숨과도 바꿀 수 있는 시간이었다.
쾅-!
[헉!]
[젠장, 방어선이 뚫렸다!]
[공중 지원!!]
엘프 밴시를 필두로 하여 그 뒤를 거대한 언데드인 본 골렘이 따르며 다크 엘프의 방어선을 마구잡이로 뚫어 버린 것이었다.
[막아!!]
[크아아아아!!]
다크 엘프들은 정말 최선을 다해서 막아 보았다.
팔, 다리 중 하나가 잘리더라도 뒤로 물러서지 않고 버텨도 보았다.
하지만 이미 뚫린 방어선은 처참하게 부서졌다.
스와아앙-!
[헉!]
다크 엘프 1명이 엘프 밴시의 손에 숨을 거두었다.
‘이때다. 콜 밴시. 너의 육체를 되찾아라!’
오오오오오-!!
[꺄아아아아아!!]
하나, 둘 엘프 밴시의 숫자는 늘어나기 시작했다.
다크 엘프로선 그야말로 지옥의 시작이나 마찬가지였다.
그 지옥의 끝이 무척이나 괴롭겠지만, 피할 수 없는 시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