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그때 갑자기 미세하게 진동이 느껴졌다.
‘뭐지, 지진인가?’
하지만 다행히 추가적인 흔들림은 느껴지지 않았다.
‘후우, 다행이군. 착각이었던가, 다른 곳에서 발생한 진동이었나 보네.’
천만다행이었다.
‘유나가 곁에 있어. 위험한 일은 어지간하면 겪고 싶지 않다고.’
“오빠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에에, 설마 오빠. 고소 공포증있는 거야아?”
“뭔……!!”
유나의 말에 어이가 없어서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고소 공포증이라니?
그는 어렸을 때부터 원숭이라고 불렸을 정도로 높은 곳을 좋아했다.
그러다가 떨어져 다리가 부러진 적이 있음에도 높은 곳이 좋아서 또 올라가다가 부모님에게 혼난 적도 있었다.
‘그런 나한테 고소 공포즈응?!’
“말 못 하는 거 보니까, 진짜인가 보네?”
“아니거든!!”
“흐흐, 오빠도 참.”
그렇게 남매가 투덕거리는 사이에 케이블카는 해발 1,500m에 있는 유명한 관광지인 바나 힐에 도착했다.
“와아, 사람 진짜 많다!!”
바나 힐은 베트남 다낭에서도 상당히 인기가 많은 관광지 중 하나였다.
거기에다가 다낭은 포탈이 없는 안전 지역이었다.
일반적인 도시였다면, 주변에 포탈이 없다는 것은 치명적인 타격이었다.
포탈이 있어야 마석이 있고, 마석이 있어야 마석을 노리는 헌터가 존재했다.
헌터야말로 지역 발전에 가장 이로운 존재였다.
하지만 오히려 유명한 관광지는 포탈이 해악이었다.
도시 자체가 관광지라면 크게 상관없겠지만, 보통 자연환경을 관광지로 삼는 곳은 포탈의 존재는 큰 위협이었다.
구석구석 돌아다닐 곳이 많은 지역에서 혹시라도 포탈에서 새어 나온 몬스터를 1마리라도 만난다면?
일반인으로 이루어진 관광객이라면 그게 몇 명이든지 학살당할 것이다.
그러니 관광지에는 포탈이 없는 게 훨씬 안전했고 베트남 다냥은다행히도 포탈이 없는 안전지대였다.
요한과 유나는 느긋하게 바나 힐을 돌아보며 관광을 즐겼다.
프랑스 회사가 만든 지역이다 보니 고풍적인 유럽식 건물도 멋있었고 다양한 먹거리도 즐길 수 있었다.
지하엔 오락실과 작지만, 공룡전시관도 있었다.
유나의 발에 쥐가 날 정도로 걸어 다니고 나서야 대충 볼거리는다 볼 수가 있었다.
“오빠, 마지막으로 저기 한번 가보자.”
"저기?”
유나가 가리킨 곳은 프랑스 양식의 바나 힐에서 맨 꼭대기에 있는 베트남식 절이었다.
“응, 맨 꼭대기 지역이니까. 주변 시야도 탁 트이고 좋지 않을까?”
“흠, 뭐 그러자. 저기만 보고 돌아가자.”
“응!”
그렇게 노상 카페에서 자리를 털고 일어난 남매는 계단을 타고 위로 올라갔다.
중간에 거북이 모양으로 깎인 나무도 보며 터벅터벅 계단을 오르자 베트남식 고풍스러운 절이 보였다.
“조금만 더 올라가면 되겠다.”
“응, 오빠는 안 힘들어?”
"......."
요한은 유나를 이상한 표정으로 내려다보았다.
그 표정엔 ‘진심이냐?’라는 의미가 가득했다.
“아, 미안. 내가 헛소리를 했네.”
유나는 금방 자신의 실수를 인정했다.
과거 일반인이었을 때의 오빠를 생각해 버린 것이다.
키만 멀대같이 크고 속은 비실비실했던 과거의 오빠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누구나 인정하는 대한민국 최고의 헌터 중 1명이었다.
정작 유나 본인은 모든 게 실감이 나질 않았다.
그녀에게 요한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철없는 시스콤 바보 오빠였으니 말이다.
‘뭐, 예전보다는 듬직해진 것 같지만…….'
그래도 한 번 바보 오빠는 영원한 바보 오빠였다.
대앵-! 대앵-!
“응? 종소리다.”
막 올라가던 중에 절에서 종소리가 울렸다.
묵직하고 깊은 소리에 유나는 아무렇지 않게 반응했지만, 요한의 표정은 이상했다.
‘뭐지, 종소리가 왜 이러지?’
얼핏 들으면 별문제 없는 평범한 종소리였다.
하지만 마나에 예민한 요한이 듣기엔 살짝 묘했다.
“유나야, 얼른 가 보자. 종 치는 모습도 한번 봐야지.”
“그래.”
둘은 조금 더 빨리 계단을 타고 오르기 시작했다.
웅성웅성.
이곳에도 관광객들이 정말 많았다.
‘딱히 볼 건 없는데…….'
그는 여행의 파벌을 따지자면 휴양이나 힐링파였다.
이리저리 쏘다니는 것보다는 호텔이나 숙소에서 편하게 쉬면서 근처 카페나 경치 좋은 곳에서 느긋하게 쉬는 걸 더 선호했다.
그러다 보니 이렇게 관광지를 봐도 딱히 감흥은 없었다.
‘잘 찾아보면 한국에도 이 비슷한 거 있지. 예를 들면 남해안에 있는 독일 마을 같은 거. 아니, 오히려 거기가 더 좋을지도.’
물론 이런 생각은 생각으로 끝냈다.
그와는 달리 돌아다니며 여러 곳을 열심히 관광하는 것을 선호하는 유나였기 때문이다.
괜히 동생의 즐거운 기분을 망치게 할 수는 없었다.
‘뭐, 그나마 헌터가 되어서 돌아다니는 게 힘들지 않아져서 다행이지.’
예전에는 오래 걸으면 발바닥이 아프고 힘들어서 정말 짜증이 많이 났다.
숨기려고 해도 굳어 가는 표정마저 숨길 수는 없었기에 서로 눈치를 좀 보았다.
근데 지금은 전혀 아무렇지 않게 되었으니 다행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주변 풍경과 볼 것에 정신이 팔린 유나와 주변 관광객들이었지만, 별 감흥이 없는 요한은 전체적인 분위기를 느꼈다.
그런 분위기 속에 뭔가 묘하게 거슬리는 게 존재한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음…… 곤란한데.’
지금은 여동생인 유나와 함께인 상태였다.
혼자 있을 때야 아무래도 괜찮았지만, 동생이 휩쓸릴 수도 있었다.
‘절대 그럴 수는 없지. 아, 근데 이게 확신이 안 선단 말이야.’
그게 가장 큰 문제였다.
유나가 이상하게 생각한다고 하더라도 확신만 서면 그냥 바로 빠지면 되었다.
어차피 이곳은 베트남, 그가 나설 이유가 없는 지역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요한 그도 확신이 없다는 것이다.
‘이게 몬스터 때문인지, 아니면 이곳에 혹시라도 있을 수 있는 은둔 고수 헌터 때문인지……. 확신이 안 들어.’
확신도 없는데 돌아가자고 하는 것도 조금 이상했다.
‘으음…… 그래도 유나를 위험에 빠트리는 건 싫은데.’
그때 옆에서 한국인 단체 관광객들로 보이는 무리의 가이드가 뭐라고 말했다.
“아 참 여러분들 그거 아세요?”
“뭘요?”
“이곳 링폰티엔투 사원엔 며칠 전부터 아주 오래 살아오신 헌터스님이 머물고 계세요. 그분의 설법을 듣기 위해서 꽤 많은 스님이 모여들고 있다고 해요.”
“오오, 신기하네요. 몇 살이래요?”
“음, 그쪽에서 뭐라고 하지는 않아서 정확한 나이는 모르겠지만, 여러 기록이라든가 증거를 살펴면 160세 이상은 된다고 하더라고요.”
“와, 160세!”
“신기하다. 조금 오차가 있을 수 있겠지만, 그래도 160세가 기준이라는 거 아냐?”
“그러게.”
‘흠, 그런 건가.’
요한은 가이드의 말에서 지금 느끼고 있는 묘한 기운이 그 오래 산 스님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여전히 찝찝한 건 사실이었다.
그렇게 계단을 다 타고 오르자 스님 한 분이 종을 치고 있는 게 보였다.
댕-! 댕-!
“어어, 어어?”
“하늘에 저거 뭐야?”
웅성웅성.
힐링하는 마음으로 종 치는 것을 보고 있던 때였다.
갑자기 관광객들 사이에서 웅성거림이 커지더니 하늘을 향해서 손가락질을 시작했다.
아까 보았던 한국인 단체 관광객들도 섞여서 말이다.
쿠르릉!
분명히 조금 전까지만 해도 맑은 하늘이었다.
푸르른 바탕과 새하얀 구름이 매력적인 하늘이었다.
그런데 어느새 회색빛으로 바뀐하늘엔 검은색 구멍이 커다랗게 뻥 뚫려 있었다.
“오, 오빠……."
평소엔 누구보다 쾌활하고 활기찬 유나였다.
하지만 그래 봤자 20살의 평범한 일반인일 뿐이었다.
누가 봐도 이상한 현상이었기에 유나는 잔뜩 겁을 먹고 움츠러들어 요한의 곁에 찰싹 붙었다.
요한은 그런 유나를 안심시키기 위해서 그녀의 어깨를 잡아서 더 강하게 끌어안아 주었다.
“괜찮아, 괜찮을 거야. 무슨 일이 있어도 너는 내가 지켜 줄 테니까.”
“오빠……."
듬직한 오빠의 말에 유나는 겨우 정신을 차릴 수가 있었다.
“오빠, 포탈이란 게 저렇게 생겼어?”
“아니, 그래서 더 이상해. 저건 포탈이 아니야.”
그게 가장 큰 문제였다.
포탈은 보통 푸른색 계열의 일종의 문처럼 생긴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 하늘에 나타난 것은 지금까지 그가 보았던 포탈과는 차원이 달랐다.
‘저건 포탈이 아니야. 그렇다면 뭘까?’
웅성웅성.
“저, 저건 또 뭐야?!”
이곳엔 요한 남매 말고도 관광객들로 가득한 곳이었다.
하늘이 순식간에 어두워지자 모든 사람이 하늘을 보며 웅성대기 시작했다.
“서, 설마 몬스터가 나오는 건 아니겠지?”
“재수 없는 소리 하지 마!!”
그들이 이곳까지 멀리 있는 길을 온 것은 이곳 다낭이 안전지대였기 때문이다.
몬스터가 조금이라도 나올 기색이 있었다면, 외국인인 그들이 굳이 이곳까지 오지 않았을 것이다.
“이, 일단 도망치자!”
“이곳을 빠져나가야 해.”
“가, 가자!”
사람들은 서둘러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들은 곧 제자리에서 꼼짝없이 굳어야 했다.
쿠르르릉- 콰르르롱- 쾅!
검은색의 구멍에서 번개가 치더니 곧바로 바나 힐 한쪽을 강타했다.
콰가강-!
“헉!!”
“저, 저기는 케, 케이블카가 있는 곳인데?”
“꺄아아악!!”
"아, 안 돼!!”
그들은 지금 상황이 끔찍하다는 것을 인식했다.
“도, 동쪽에 케이블카 1대 더 있어. 그, 그쪽으로 가자.”
“그, 그래.’
우르르-!
관광객들은 다른 탈출구를 찾아서 떠났다.
‘글쎄다. 과연, 그곳도 안전하려나.’
케이블카가 폭발한 것은 절대 우연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 도대체…… 왜, 또 나한테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건데!!’
늘 요한의 근처에서 세계적인 사건이 벌어지기 일쑤였다.
“후우.”
“오빠, 왜 그래?”
“아니, 그냥 내 팔자가 참 기구하다고 생각 중이었어.”
요한은 거의 버림받은 강아지 같은 표정이 되었다.
귀찮은 것을 싫어하는 그에게 이런 이벤트는 딱 질색이었다.
구우우웅-!
그때 하늘의 검은 구멍이 공명하기 시작했다.
‘이제부터가 진짜인가!’
그렇게 공명하던 검은 구멍은 뭔가를 토해 내기 시작했다.
솨아악-!
“허, 헉!!”
“모, 몬스터다!!”
“몬스터가 나타났다!!”
“도, 도망쳐!!”
“으아아악!!”
난리가 났다.
혹시라도 몬스터를 뱉는 게 아닐까 싶었던 사람들은 걸음아 나 살려라, 도망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위치가 너무 좋지 않았다.
‘베트남 정부에서 이 사태를 파악하고 헌터를 파견해도 너무 오래 걸려.'
이곳 바나 힐은 지상 1,500m 위에 있는 지역이었으며 시내와 한참이나 떨어진 산악 지형이었다.
지상과 연결된 이동수단은 케이블카 2대가 유일했다.
1대는 이미 박살이 났고 나머지 2번째 케이블카마저 박살이 났다면 이곳에 있는 수천 명의 인파는 고립된 것이었다.
“오빠!!”
“허, 헌터. 헌터 없어요?!”
일반인들이 기댈 곳은 이제 헌터뿐이었다.
“젠장, 난 D급 헌터라고!!”
“헌터 분들 모여 주세요. 힘을 합쳐야 합니다!!”
“한국인이든 베트남 사람이든 어느 나라 사람이든 일단 힘부터 합칩시다!!”
헌터들은 그나마 차분하게 대응하려고 했다.
지금 상황의 심각함을 알기에 자신들끼리만 뭉치지 않고, 주변에 있는 모든 헌터가 힘을 합치고자했다.
언어가 안 통한다는 한계도 있었지만, 손짓과 발짓 몸짓 총동원해서 어떻게든 하나가 되려고 했다.
“뭉쳐요. 뭉쳐야 우리가 살아요!!”
“오오!!”
‘에휴, 귀찮아.’
정작 요한은 그저 정말, 귀찮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