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화
일단 실험 자체는 성공적이었다.
스킬 수정을 끝내고 다시 한번 더 확인해 보니 확실히 스킬은 변해 있었다.
‘당장 사냥을 할 수는 없으니. 실전에서 느껴 봐야겠지.’
“그럼, 훈련하러 가 보세요.”
“예, 예. 가, 감사했습니다!”
철곤은 정확히 무엇을 감사해야 하는지 몰랐지만, 일단은 감사하다고 했다.
아직 스킬 수정에 대해서 전혀 느낄 수 없었지만, 방출 통보를 받지 않은 것으로도 일단은 감사한 일이었다.
요한은 그런 철곤의 뒷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훗, 진정한 감사는 실전에서 느껴 본 다음에 얘기하라고.’
***
며칠 후,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H-1 리그가 휴식기를 끝내고개막했다.
전국은 흥분으로 들썩였다.
H-1 리그는 축구와 야구를 넘어선 전 세계 최고의 인기 스포츠였으니까.
대한민국도 예외는 아니었는데, 문제는 H-1 리그 내에서도 온도 차는 분명히 존재했다.
역시 가장 인기가 있는 D-리그가 가장 뜨거웠다.
하지만 비교적 인기가 부족한 F-리그는 상대적으로 온도가 낮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F-리그에 임하는 선수들은 절대 방만하지 않았다.
안 그래도 인기가 별로인 리그에서 실력마저 제대로 보여 주지 못하면 그대로 방출되어 백수가 될 수 있으니까 말이다.
H-1 리그에 뛰고 싶어하는 선수는 많았고, 그중에서 잉여 인력이 넘치는 리그가 바로 F-리그였기 때문이다.
가장 인기가 없으면서도 선수들이 가장 죽도록 뛰는 리그이기도 했다.
[자, 그러면 H-1 리그 개막전.
안산 F 레드디어 vS 대구 F 돌핀스의 경기를 시작합니다!!]
“와아아아!!”
다른 리그와 비교해서 인기가 부족한 건 사실이었지만, 그렇다고 관중석이 텅 빌 정도는 아니었다.
F-리그였지만, 나름대로 마니아층이라던가 서포터는 확실히 있었다.
그들은 지겨운 휴식기를 끝내고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렸던 개막전을 보기 위해서 싸지 않은 푯값을 내고 경기장에 들어와 연고 구단을 응원했다.
“……관객이 생각보단 많군요.”
요한은 현재 왕 사장과 VIP 라운지에 앉아서 느긋하게 경기를 관람하고 있었다.
최근 나름대로 열심히 H-1을 공부한 요한이었지만, 여전히 경기 자체엔 크게 흥미가 없었다.
‘사냥만 하면 이것보다 훨씬 더 짜릿한데. 내가 선수로 뛰는 거라면 또 모를까. 보는 건 딱히…….'
경기 자체엔 흥미가 적었지만, 구단을 키우는 것은 취미로써 재미가 있었다.
선수들이 열심히 뛰는 것만 보면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크으, 자식을 가져 본 적은 없지만. 이게 바로 자식을 바라보는 부모의 마음일까.’
요한은 이 정도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스포츠는 아무래도 짜릿한 맛에 보는 건데. 매일이 죽음의 연속인 나한테, 이런 스포츠는 딱히 짜릿함을 줄 수는 없지.’
하지만 일반인에겐 H-1 만큼 짜릿한 스포츠는 없었다.
사냥 전문 헌터는 아니었지만, 대인전을 위주로 훈련된 헌터 간의 전투는 그야말로 보는 맛이 좋았다.
화려한 스킬과 다양한 박 터지는 감독 간의 전략&전술은 수많은 덕후들을 양성해 내는 원동력이었다.
거기에다가 H-1을 방영하는 방송국의 뛰어난 해설가의 입담은 방송으로 H-1을 보는 시청자들의 오감을 만족시켜 주었다.
[아, 그러는 순간. 강철곤 선수가 방패를 들고 저돌적으로 돌진합니다. 이거 의외인데요!! 평소에 소극적인 방어를 주력으로 하는 강철곤 선수 적극적인 방패 러쉬입니다!!]
VIP 라운지엔 바깥 상황과 방송상황을 동시에 볼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었다.
다만, F-리그는 아직 VIP 라운지에 귀빈이 올 정도는 아니라 라운지엔 요한과 왕 사장 2명뿐이었다.
“흠흠, 사실 개막전이라서 이렇게 사람들이 많습니다.”
“아, 그래요?”
“예, 아무래도 푯값도 만만치 않고, 그렇다고 매주 직접 올 정도로 저희 팀이 성적이 썩 좋은 게 아닙니다.”
“흠, 그렇다면 성적만 좋아진다면, 관객이 더 늘겠군요?”
“아, 아무래도 그렇지요. 조금 재미없는 경기라도 성적이 좋고 이길수 있다는 확신이 들면 TV나 인터넷보다는 직관해야 좋다는 인식이 있습니다.”
“좋군요.”
“아, 예……."
일단 대답은 했지만, 왕 사장은 요한이 뭐가 좋다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현재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거지.'
일부 구단은 천금을 들여도 성적이 좋지 않은 경우가 있었다.
하지만 요한은 굳이 비싼 돈을 들이지 않고 능력만으로 선수들을 강화할 수가 있었다.
‘그야말로 치트키를 쓰고 게임을 하는 셈이지.’
그러니 성적에 대해선 누구보다 자신이 있었다.
그 증거가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아아아아……!! 조금 전까지 완벽히 불리했던 안산 레드디어가 강철곤 선수의 도박적인 플레이에 순식간에 역전됩니다!!]
“오오!!”
TV 속 해설자가 흥분해 소리친만큼, 요한의 옆에 있던 왕 사장도 흥분해 주먹을 꽉 쥐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40대 중년인, 안산 F 레드디어의 사장치고는 경박해 보이는 행동이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왕 사장을 향해서 경박하다고 손가락질할 수는 없었다.
왕 사장은 이곳에 있는 그 누구보다 안산 F 레드디어를 사랑하는 인물이었다.
그는 30년째 안산 F 레드디어의 가장 충실한 서포터 출신으로 자이로닉스라는 회사 대표였다.
지금도 꽤 잘나가는 중견 기업으로 그가 직접 키워 낸 그의 회사였다.
그런 좋은 기업의 대표였던 그였지만, 능력 있는 운영자가 필요했던 당시 안산 F 클럽이 사장직을 제의하자, 훨씬 더 좋은 조건도 마다하고 열악한 조건으로 안산 F 클럽 사장으로 이직했다.
그런 왕 사장의 기행에 주변 사람들 모두 미쳤다고 손가락질했다.
하지만 왕 사장은 상관없었다.
직접 일궈 낸 회사야 전문 경영인 체제로 잘 돌아가고 있었지만, 그 어떤 곳보다 사랑하는 안산 F 클럽의 어려움을 방관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사장으로 취임한 지 8년, 그의 효율적인 경영으로 비용은 절감할 수 있었지만, 안산시의 소극적인 투자로 성적은 전혀 나아질 생각이 없었다.
구단주가 바뀌고 첫 개막전이었다.
이번에도 역시 기대 아닌 기대를 하면서 경기를 관람하고 있었다.
그런데 선수는 딱히 바뀐 게 없는데 경기력이 급격히 좋아진 것이다.
“강철곤 파이팅!!”
그는 이미 의자 따윈 잊어버린지 오래였다.
VIP 라운지 아래를 내려다보며 허공에 주먹질까지 하며 고래고래 소리치며 레드디어를 응원했다.
웅성웅성.
“와, 강철곤 뭐냐?”
“갑자기 경기력이 급격하게 올라갔어.”
“설마, 약했나?”
“멍청아, 헌터한테 약 안 통하잖아."
“아, 깜빡했다. 설마, 마나뽕 한건 아니겠지?”
“에이, 그거 흔적 무조건 남는다잖아. 뽕 테스트하면 금방 잡힐 텐데 그걸 왜 해?”
“하지만, 그 짧은 시간에 저렇게 단단해졌다고!”
“하긴, 그건 인정. 설마, 휴식기에 레이드를 뛴 건가?”
“오, 그거면 가능성이 있겠다.”
좋아진 경기력의 중심엔 역시 안산 F 레드디어의 영원한 캡틴이자 ACE인 강철곤이 존재했다.
“흐아아아압!!"
그는 평소에 보여 주지 않던 엄청난 박력과 탱킹으로 적의 공격을 모조리 받아 내었다.
‘뭐야, 겨우 0.12에서 0.21로 바꾼 것만으로도 이 정도 위력을 보여 준다고?’
요한은 솔직히 놀라웠다.
물론 n도 n+1 로 바꾸긴 했지만, 그거야 별로 대단한 수치는 아니었다.
‘F-리그 수준 심각하네. 쯧쯧.’
하지만 동시에 뿌듯함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너무 수정 정도가 약한 게 아닌가 걱정했는데 효과가 생각보다 훨씬 좋으니 말이다.
‘좋아, 생각보다 훨씬 더 효과가 좋으니 다른 스킬도 수정해 주면 확실해지겠지.’
요한은 만족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개막전 경기는 안산 F 레드디어가 8:2로 압도하며 개막전 첫 승리를 거두었다.
상대가 레드디어와 함께 거론되는 최약체이다 보니 이슈가 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레드디어의 한심한 경기력만 보던 팬들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D 사이트 H-1 전문 게시판]
- 와, 어제 레드디어 경기력 봤음?
- 도저히 저번 시즌의 그 팀 같지 않더라!
- 맞음, 맞음. 특히 우리의 ACE 강철곤 선수의 그 박력 있는 탱킹이란!!
- 크흐, 철곤뽕 오지고요. 지리고요!
대체로 분위기는 좋았지만, 언제나 분란충은 있기 마련이었다.
- 미친 ㅋㅋ, 누가 보면 서울 피닉스라도 이긴 줄 ㅋㅋ.
- 그러게, 도긴개긴 한 놈들끼리 붙어서 겨우 이겨 놓고 경기력 ㅋㅋ.
- 야, 너희들 뭐야!!
- 왜, 시비야!!
- ㅋㅋ, 꼴등끼리 잘 놀아 봐라.
우리 피닉스 형님들은 우승할 테니까.
- 아오, 개빡치네!!
- 이번 시즌엔 우승은 못 하더라도 피닉스는 꼭 이겨라, 제발!!
- 퍽도!! ㅋㅋ.
서울 F 피닉스는 F-리그에서 가장 강력한 팀이었다.
리그 우승 경력도 가장 많고 늘 우승 후보로 손꼽히는 1강이었다.
그러다 보니 피닉스를 응원하는 사람들은 다른 팀을 무시하며 깔보기 일쑤였다.
- 으으, 짜증 나!
피닉스가 강팀인 것은 사실이었기에 타 팀 팬들은 언제고 이길 날을 기다리며 이를 갈 수밖에 없었다.
- 반드시 김요한 헌터가 우리 레드디어를 강팀으로 만들어 줄 거야!!
- 맞아, 유일한 S급 헌터 구단주라고!!
- 누구보다 헌터를 잘 이해하고 있는 분이니까!!
- 오오오오!!
특히 레드디어 팬들의 요한에 대한 믿음은 신앙에 가까웠다.
최초의 S급 헌터 구단주였다.
돈도 많고 헌터로서의 능력도 출중했다.
H-1이 사냥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헌터가 선수인 스포츠였다.
그러다 보니 S급 헌터인 요한에게 거는 기대가 어마어마했다.
다른 팀 팬들은 S급 헌터가 뭐 어쨌냐고 조롱하기 일쑤였다.
하지만 팬들이 알건 모르건 그의 능력이 구단을 180도 바꾸는 중이었다.
“대, 대단했습니다, 구단주님!!”
‘하아.’
요한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왜냐하면, 경기가 끝난 다음 날 아침, 요한이 구단에 출근하자마자 강철곤이 구단주실로 쳐들어와 요란을 떨었기 때문이다.
귀찮은 것과 소란스러운 것을 싫어하는 요한이기에 한숨이 나오는 건 당연했다.
“그래서 용건이 뭡니까?”
“아, 그, 그냥. 가, 감사하다는 인사드리고 싶어서.”
“감사는 우승한 다음에 듣도록 하죠. 아, 그러면 오신 김에 곧바로 연구실로 가도록 할까요.”
“예, 연구실은 왜?”
“제가 저번에 바꿔 드린 건 스킬 1개고. 아무런 문제 없으니 다른 스킬도 수정해야죠.”
“아, 예! 알겠습니다!!”
처음 수정할 때와는 180도 다른 표정으로 대답하는 강철곤이었다.
걱정과 근심에 싸였던 표정이 사라지고 기대와 환희로 가득했다.
‘뭐, 조금 귀찮긴 하지만. 유나가 좋아하는 구단이 되려면 뭐든 못할까!’
요한은 그렇게 마음을 다잡으며 강철곤과 연구실로 향했다.
21장. 스카이 포탈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