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화
휘잉-!
[요한!!]
그때 바람을 일으키며 사라졌던 하늘이 되돌아왔다.
“찾았어?”
[응, 찾았어. 저쪽에 있는 이곳 묘지 본관 지하에 꼭꼭 숨어 있어.]
“오케이. 수고했어.”
[이제 싸워도 돼?]
“그래, 마음껏 싸워.”
[꺄하하하!!]
휘잉-!
드디어 떨어진 허락에 하늘은 자신을 따르는 유령들을 데리고 공중을 빠르게 배회하기 시작했다.
“키메라.”
“그륵?”
“나를 태우고 저쪽으로 빠르게 달려.”
“그륵!”
충실한 키메라는 요한의 명령에 그를 어깨에 얹고는 땅을 박차고 달렸다.
‘윽!’
다만, 지능이 부족한 녀석이라 탑승감은 영 좋지가 않았다.
탑승자를 배려할 만큼의 지적 능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참아야지, 장거리 뛰는 것도 아니고 말이야.’
300m 정도는 얼마든지 참을 수가 있었다.
그렇게 빠르게 달려서 하늘이 알려 준 본관 지하에 도착한 요한.
그곳은 완벽하게 막혀 있었다.
‘문을 막는 능력을 갖춘 헌터도 있었나?’
분명히 반대편에선 헌터의 기운으로 추정되는 마나가 느껴졌다.
하지만 입구가 보이질 않았다.
로비에 있던 건물 전 층 지도만 봐도 분명히 이곳에 문이 있어야 했다.
‘뭐, 상관없지.’
스윽.
요한이 가볍게 손짓으로 신호를 주자 키메라가 오른쪽 팔을 뒤로 가볍게 젖혔다가 그대로 벽을 후려쳤다.
콰앙-!
‘문을 없앨 재주는 있어도 벽을 강화하는 재주는 없나 본데.’
생각보다 허무하게 무너진 벽이었다.
“젠장!!”
벽이 무너진 여파로 먼지가 피어 올라 시야가 차단된 상태였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건너편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녀석이군.’
“일로 오라!”
“꺄아악!!”
여전한 조선족 말투.
텔레파시로 연락을 나누었던 그녀석이 분명해 보였다.
먼지가 가라앉고 요한이 벽을 넘어서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꼼짝 말라!! 한 발자국이라도 움직였다간 이 꼬마의 목숨은 없다!”
‘이젠 인질극이냐. 질린다, 질려.’
시야가 완전히 트이고 보인 인질범은 TV에서 보던 조선족 이미지와 딱 어울리는 녀석이었다.
저벅-!
“움직이지 마, 이 새캬!!”
휙-!
단검을 앞으로 내밀며 요한의 움직임을 극도로 경계하는 녀석.
그곳엔 녀석 말고도 2명의 인원이 더 있었다.
‘텔레파시 능력자와 입구를 막은 녀석이겠지.’
3:1의 상황, 하지만 그렇다고 녀석들이 요한을 위협할 만한 수준의 헌터는 아니었다.
“으아앙!!”
그저 녀석들이 잡은 인질 때문에 살짝 망설여지는 것뿐이었다.
“왜, 죽이려고?”
“내 못 죽일 거 같니?”
“뭐, 죽일 수는 있겠지. 너희 같은 인간 버러지인 블랙 헌터가 살인하는 것에 망설일 이유는 없으니까.”
“잘 알고 있네. 자, 길을 열라!!”
조선족 블랙 헌터는 이번 일을 완벽하게 실패했다고 생각했다.
일단 그는 이곳에서 살아남을 생각만 가득했다.
“미안한데, 넌 여기서 못 살아나가.”
“움직이면 이X 팔다리 다 잘라서……!”
휘잉- 스걱-!
“……크아아아악!!”
‘이런.'
바람이 살랑 불더니 그대로 녀석의 팔이 잘려나갔다.
워낙 순간적으로 발생한 일이라 팔이 잘린 조선족 블랙 헌터는 뒤늦게 비명을 질러야 했다.
“쩝, 마스터. 제가 해결하려고 했는데.”
조선족의 팔을 자른 건 러셀 길드 마스터 엘레노아였다.
S급 헌터인 그녀의 힘은 100%공개된 적은 없지만, 최근 활발한 대외 활동으로 어느 정도는 알려진 상태였다.
그녀의 별명은 ‘빛의 기사’.
빛처럼 빠르게 움직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었다.
기사란 별명도 그녀가 입은 갑옷역시 프랑스 장인이 손수 만든 유럽 전통 방식의 갑옷이라 누구보다 기사다운 외견이었기 때문이다.
엘레노아는 별말은 안 했지만, 내심 빛의 기사라는 별명이 마음에 든 듯했다.
‘와, 말은 들었지만. 진짜 빠르네.’
엘레노아와 친해진 지 꽤 됐지만, 그녀의 진짜 힘은 본 적이 없었다.
그러니 그녀의 속도에 살짝 놀랐다.
‘뭐, 나머지는 나중에 하도록 하고.’
“키메라.”
“그륵.'
팍-!
땅을 박차고 몸을 날린 키메라는 팔이 잘린 녀석 말고 다른 2명의 헌터를 그대로 제거하고 팔이 잘린 헌터의 목을 잡아챘다.
“커헉!”
안 그래도 팔이 잘려서 고통스러운 와중에 목이 잡혀서 허공에 대롱대롱 매달리는 신세가 되었다.
그런 녀석의 곁으로 다가온 요한은 여전히 떨고 있는 어린 소녀를 챙겼다.
“괜찮아?”
“으아아앙!!”
어린 소녀에게 지금까지 벌어진 일은 감당하기 너무 힘든 일이었다.
‘에휴, 어른들 싸음에 애들이 무슨 잘못이라고.’
냉정하고 차가운 성격인 요한이 그나마 좀 부드러워지는 게 아이들이 대상일 때였다.
뭐, 요즘 아이들이 싹수가 없다, 잔인하다는 말이 나오는 건 사실이었다.
요한도 그런 녀석들은 정말 싫어했다.
그가 만약에 할 수만 있다면, 아직도 폐지되지 않고 버티는 중인 소년법을 당장 폐지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아이를 다 싫어할 수는 없는 노릇.
특히 어린아이일수록 요한은 안쓰럽다고 생각했다.
아마 본인이 힘들게 자라서 더 그렇게 여기는 것일 수도 있으리라.
그런 이유로 겨우 7~8세쯤 되어 보이는 아이를 인질로 삼은 블랙헌터를 절대 용서할 수가 없었다.
“언데드로 만들어서 영원히 고통받게 만들어 주마.”
언데드는 어떻게 보면 저주와도 같았다.
영면이나 안식에 들지 못한 채로 네크로맨서의 노예가 되어서 술사가 죽을 때까지 시키는 대로 해야 하니 말이다.
요한은 이 조선족 블랙 헌터를 그렇게 만들 생각이었다.
죽고 싶다고 해도 영원히 죽지 못하도록 말이다.
“사, 살려……."
살려 달라고 하지만, 살려 줄 마음은 없었다.
“용서는 1,000년쯤 지나서 지옥에 가서나 빌어라.”
그렇게 짧은 해프닝은 간단하게 해결되었다.
‘배후는 누구려나.’
당연히 알아낼 생각이었다.
시간은 많았고 고문은 시작도 하지 않았다.
***
“수고하셨어요, 마스터.”
“아니에요. 오히려 별 탈 없이 끝나서 다행이죠.”
엘레노아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요한을 러셀 길드 휘하에 두면서 가지는 이득을 생각하면 이 정도 도움은 정말 별것 아니었다.
“후아, 어떻게 사건이 이렇게 자주 발생하는지.”
“화려하고 달콤한 꽃에 파리나 벌이 꼬이는 것처럼. 강하고 있는 자 주변엔 언제나 그 과실을 노리는 자들이 끊이질 않는 법이죠.”
“하아.”
절레절레-.
29년을 평범하게 살아온 요한으로선 이해하기 힘든 일이었다.
왜애애앵-!
그리고 곧 경찰차 소리가 요란하게 들리기 시작했다.
“일단, 자리를 벗어나죠. 저희 2명이 눈에 띄어 봤자 좋을 게 없으니까요.”
“넵, 마스터.”
***
조선족 블랙 헌터의 인질극이었던 이번 사건은 블랙 헌터끼리의 싸움으로 축소되어 보도되었다.
러셀 길드의 특별 요청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차피 여론이 필요한 일도 아니었기에 요한은 흔쾌히 동의했다.
뉴스를 본 사람들은 ‘에잉, 쯧쯧’
하는 정도로 그냥 넘어갔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그냥 대충 넘어간 사건이었지만, 왕 사장은 달랐다.
그는 이번 일에 딸의 목숨이 달려 있었다.
요한은 그런 딸의 목숨을 살려준 것이다.
이 은혜는 정말 100만 번 갚는다고 해도 부족할 정도였다.
블랙 헌터란 존재는 자비가 없는 잔악한 범죄자들.
단순히 생존을 위해서가 아니라, 쾌락을 위해서 살인도 마다하지 않는 인간쓰레기들이었다.
그런 이들의 손에서 귀엽고 사랑스러운 딸을 구해 줬으니 왕 사장으로선 충성심이 샘솟을 수밖에 없었다.
“목숨을 다 바쳐 구단에 충성하겠습니다.”
“목숨은 무슨, 시킨 일만 잘하시면 됩니다. 시킨 일만 잘하세요.”
“예, 알겠습니다!”
"......."
현재 왕 사장의 딸 예지는 병원에 입원한 상태였다.
그 나이에 납치되어 고초를 겪었으니 당연히 병원에서 여러 가지 검사를 받아야 했다.
“그, 그럼 저는 이만. 딸아이가 너무 걱정돼서.”
“아, 네. 퇴근해 보세요. 나머지는 제가 알아서 할 테니까.”
“예, 그럼!”
왕 사장은 마지막까지 90도로 허리를 숙이고 사무실을 나섰다.
꽤 큰일이 있었지만, 요한은 바로 휴식을 취하지 않았다.
별로 힘든 일도 아니었고, 휴식 보다는 그의 호기심이 더 컸기 때문이다.
그는 바로 훈련장으로 향했다.
아, 엘레노아는 이번 일과 관련해 협회와 일이 있다며 협회 간부와 어디론가 향한 뒤였다.
“오셨습니까, 구단주님!”
요한이 훈련 시설에 도착하자 한창 훈련으로 바쁜 감독 대신 수석 코치가 나와서 맞이해 주었다.
“훈련은 잘돼 갑니까?”
“아, 예. 물론입니다. 구단주님께서 투자를 아끼지 않고 해 주신 덕분에 최신식 설비를 갖추어서 선수들의 사기가 매우 높습니다.”
“잘됐군요.”
그가 알고 싶은 건 그게 아니었지만, 일단 인사치레를 했다.
“감독님한테 전해 주세요. 지금 당장 강철곤 선수와 1:1 면담을 하고 싶다고요.”
“지, 지금 당장 말입니까?”
“네, 지금 당장. 아 참, 장소는 연구실이라고 해 주세요.”
“아, 알겠습니다!”
‘하아.’
수석 코치는 감독의 불같은 성격을 잘 알고 있어서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한창 훈련 중에 선수를 빼 가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감독의 불호령이 벌써 걱정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수석 코치의 말을 들은 감독이 강철곤을 곧바로 불러 주었다.
‘뭐야, 감독님. 오늘 아침밥을 잘 못 드셨나?’
분명히 조금 전까지만 해도 온갖 불호령을 다 터트린 감독이었다.
‘흠…….'
수석 코치의 시름은 오늘도 깊어만 갔다.
***
“부르셨습니까. 구단주님.”
강철곤은 요한보다 연상이었지만, 태도는 깍듯했다.
하지만 나이는 숫자에 불과했고, 사회적 위치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
연구실로 들어온 강철곤은 깍듯하게 90도로 인사했다.
“아, 어서 와요. 여기 앉아요.”
“예.”
“마실 건?”
“괜찮습니다. 훈련 중에 다른 건 잘 안 마셔서요.”
“좋은 태도입니다. 구단의 미래가 좋아 보이는군요.”
“칭찬 감사드립니다.”
“자, 잡소리는 그만하고 용건만 간단하게 말하겠습니다. 잠시 제 실험 대상이 되어 주셔야겠습니다.”
“예?”
강철곤은 갑자기 요한이 실험 대상이라고 하자 당황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세상 어느 누가 갑자기 대뜸 실험 대상이 되어 달라고 하면 당황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H-1 리그의 백전노장이자 안산 F 레드디어의 영원한 캡틴인 강철곤은 차분하게 되물었다.
“무슨 실험 말입니까?”
“아, 그걸 먼저 설명해 드렸어야 했는데. 제가 급한 마음에 깜빡했네요. 하하하.”
요한은 가볍게 웃었다.
하지만 강철곤은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꿀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