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화
요한은 엘레노아에 부탁해 가동할 수 있는 인원을 총동원하여 인근에 쫙 뿌려 달라고 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경찰이나 협회엔 전혀 알리지 않았다.
‘블랙 헌터가 혹시라도 둘 중 하나에 스파이라도 심어 뒀으면 곤란하니까. 그리고 만약에 배후가 있다면, 더 알려선 곤란하지.’
그리고 굳이 알리고 싶지도 않았다.
그가 평범한 회사원이자 평범한 일반인일 때는 복잡한 일이 생기면 공권력의 힘을 빌리는 게 최고라고 생각했다.
굳이 복잡하고 어렵게 굴 필요 없이 국가에 다 맡기면 편할 테니 말이다.
하지만 그가 헌터가 되어 강해지고 사회적 지위가 올라가다 보니 느낀 게 있었다.
‘어지간하면 공권력과는 얽히지 말 것.’
공권력으로선 일반 시민은 그냥 세금을 받고 적당히 해 달라는 대로 해 주면 되는 존재였다.
받은 세금을 넘어가는 일은 어렵다고 기다리라고 적당히 시간 끌다보면 알아서 나가떨어지기 마련이니 말이다.
하지만 권력자나 힘 있는 자들의 부탁이나 요청은 최선을 다해서 들어주었다.
왜냐하면, 힘 있는 자들의 부탁이나 요청은 단순한 부탁이나 요청이 아니라 일종의 빚이었기 때문이다.
힘 있는 자가 공권력의 도움을 받으면 언젠가 그 빚을 갚아야 했다.
그러니 공권력으로선 힘 있는 자들을 돕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요한은 그게 싫었다.
‘공권력이란 놈들은 한 번 빚을 쌓기 시작하면 끊임없이 그 빚을 요구하지.’
물론 그것도 능력껏 알아서 끊을 수는 있었다.
하지만 요한은 그런 귀찮음을 감수하고 싶지 않았다.
그냥 공권력 못지않으면서도 자신이 몸을 담고 있어서 서로 상부상조하는 관계인 러셀 가문의 도움을 받는 게 나았다.
이것 또한 빚이라면 빚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요한은 이미 러셀 매니지먼트와 러셀 길드 사람이었다.
딱히 부담 없이 충분히 요청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안산 F 레드디어 구장을 중심으로 3km 이내에 있는 지역 곳곳에 러셀 길드 소속 헌터들이 조용히 깔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멍하니 시간을 보내던 3명이 있는 방에서 수정 구슬이 울리기 시작했다.
지이잉-! 지이잉-!
“이, 이게 연락 왔다는 신호입니다.”
굳이 알려 주지 않아도 누가 봐도 연락이 온 것 같은 모양새였다.
끄덕.
요한과 엘레노아는 서로 눈빛을 교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전화 받아요.”
“예, 예!”
덜덜.
왕 사장은 떨면서 수정 구슬에 손을 올렸다.
[여, 왕 사장~.]
껄렁거리는 태도가 인상적인 목소리였다.
‘조선족?’
거기에다가 말투에서 조선족 특유의 어투가 느껴졌다.
“주, 준비는 다 됐소.”
당연하지만, 준비는 안 됐다.
그들이 요구했던 안산 F 레드디어 ACE급 3명은 현재 훈련장에서 피땀 흘리며 훈련 중이었다.
[좋아, 좋아. 그러면 지금부터 내가 시킨 대로만 해. 안 그러면.]
덜컹-.
[으아아앙, 아빠!!]
“예, 예지야!!”
구슬 너머에서 왕 사장의 딸 울음소리가 들렸다.
[네놈 딸X의 목숨은 없어. 알갔서?]
“아, 알겠소. 그, 그래서 협회와 경찰에 신고 안 했잖소.”
[그건 기본이지.]
그렇게 왕 사장이 최대한 시간을 벌고 있을 때, 요한은 본격적으로 힘을 개방했다.
지이잉-!
수정 구슬과 연결된 마나 전선을 타고 스마트폰을 통해서 수정 구슬을 해킹하기 시작했다.
샥샥-!
손가락이 빠르게 움직이며 화면을 조작하기 시작했다.
‘일종의 유동 IP군. 하지만, 다행히도 해킹당한다는 생각 자체가 없어서 전혀 보안을 신경 쓰지 않았네.’
당연한 일이었다.
이런 식으로 텔레파시 자체를 해킹한다는 건 지금까지 전혀 없던 일이었다.
아니, 애초에 해킹당할 수 있는 것인지조차 알지 못했다.
빠르게 정보를 탐색하는 요한.
‘여깄다!!’
정보의 바다에서 얻어 낸 일종의 IP 주소.
요한은 재빨리 옆에 준비해 두었던 종이에 알아낸 IP 주소를 적었다.
척-!
그리고 엘레노아에게 그 종이를 건넸다.
종이를 받은 엘레노아가 먼저 나갔다.
‘음, 잠시만. 이건?’
그렇게 해킹을 하다 보니 뭔가 이상한 걸 보았다.
‘설마, 이거?!’
스마트폰 화면에 똑똑히 잡혔다.
깜짝 놀란 요한을 뒤로하고 통화가 끊기려고 했다.
[그럼, 2시간 후에 보자고.]
“자, 잠시만! 예, 예지와 대화를 하도록 해 주시오.”
시간을 끄는 게 왕 사장의 일이긴 했다.
하지만 지금 그에겐 그런 일보다 딸의 안위가 훨씬, 훨씬 더 중요했다.
[거, 사람 귀찮게 하는 재주가 있소. 뭐, 어렵지 않지.]
목소리에 여유가 흘러나왔다.
왕 사장이 정말 신고도 안 하고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 따랐기 때문이다.
그는 왕 사장을 자신의 딸을 위해선 소속 선수마저 팔아 치우는 나쁜 놈으로 인식했다.
[아빠아아앙-!!]
“예, 예지야. 조금만 기다려라.
내가 꼭 구해 주마. 무슨 짓을 해서라도 꼭 구해 줄게. 응?”
[빨리 와아앙. 여기 무서워어엉.]
“아, 알았어. 그러니까 예지야, 조금만.”
[여기까지. 나중에 보자고, 왕 사장.]
뚝-!
그렇게 통화가 끊겼다.
‘흠…….'
통화가 끊겼음에도 요한은 스마트폰을 계속 내려다보았다.
딱딱-!
불안한 왕 사장은 계속 손톱을 물어뜯었다.
딸의 목숨이 걸린 일이었다.
거기에다가 시키는 대로 하지도 않고 있었다.
불안한 게 아주 당연했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요한은 스마트폰 화면만 빤히 내려다보는 중이었다.
'이거, 이거. 설마, 이거?'
현재 실시간 화면은 끊겼지만, 스마트폰 화면에 남은 정보만으로도 충분했다.
‘말도 안 돼. 이게 어떻게 가능하지?'
그가 놀라는 이유는 간단했다.
‘스마트폰으로 남의 스킬 셋을 코딩할 수가 있다고?!’
지금까지는 요한 본인의 스킬만 코딩할 수 있었다.
하지만 스마트폰에 뜬 이 화면엔 텔레파시 헌터의 스킬 셋이 떠올랐다.
거기에다가 코딩식도 함께.
그렇다는 것은 요한이 직접 건드릴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미친!!'
말 그대로 미치고 팔짝 될 노릇이었다.
다만, 솔로 사냥을 하는 그에게 사냥 관련으론 딱히 필요가 없는 능력이었다.
"하지만, H-1 리그용으로 사용하면 말이 180도 달라지지.’
F급 헌터들.
그런 헌터들의 스킬 셋을 수정해주면 당장이라도 리그를 호령할 수 있을 것이었다.
“구, 구단주님?”
왕 사장이 조심스럽게 요한을 불렸다.
“아, 잠시 확인할 게 있어서요.”
요한은 그제야 제정신으로 돌아왔다.
“왕 사장님.”
“아, 예.”
“예지란 아이, 제가 데려올 테니.
조금만 기다리세요.”
“아, 예. 부, 부탁드리겠습니다. 부디…… 우리 예지를......."
왕 사장은 진심을 담아서 90도로 허리를 숙였다.
요한은 기억하는 그 주소로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스마트폰으로 주소를 검색해 보니 안산 외곽의 한적한 묘지였다.
‘저런, 어떻게 숨어도 묘지에 숨냐?’
네크로맨서에게 가장 아늑하고 안정적인 공간.
그리고 네크로맨서의 힘이 절정으로 치닫는 공간.
그곳이 바로 묘지였다.
‘네크로맨서가 구단주로 있는 구단을 협박하면서 묘지에 숨다니…….'
정말 어리석은 녀석들이라고 생각했다.
콰강-!
묘지 근처에 다다르자 벌써 폭발소리가 울렸다.
‘오, 벌써 시작했나?’
“와아아아-!!”
“블랙 헌터 조직이다. 손속에 자비를 두지 말고 모두 죽여라!!”
“항복 권유는 하지 말고, 알아서 항복하는 녀석들만 살려 줘라!!”
러셀 길드의 정예가 총출동한 작전이었다.
‘어떤 블랙 헌터 조직인지는 몰라도 참 상대 고르는 눈은 없군.’
설사 그게 배후의 의뢰 때문이라고 하더라도.
“어, 어떻게 우리 위치가?!”
“싸워라!!”
“어서 막아!!”
블랙 헌터 조직원은 그렇게 많은 숫자가 아니었다.
러셀 길드도 사방으로 퍼져 있느라고 많은 숫자가 오지 않았지만 상관없었다.
척척척-!
“류페이, 사무엘.”
“흐흐흐, 명령만 내려.”
[주인이시여.]
“모두 죽여.”
“으하하핫!!”
[위대하신 주인의 뜻대로.]
류페이와 사무엘이 각자의 언데드를 이끌고 달려가기 시작했다.
“으아아아악!!”
“어, 언데드다!!”
“김요한이 나타났다!!”
“도, 도망쳐!!”
블랙 헌터도 어디까지나 인간이었다.
그들이 음지에서 활동한다고 양지의 소식을 모를 리가 없었다.
S급 네크로맨서인 요한의 존재는 그들에게도 공포의 대상이었다.
러셀 길드 상대론 어떻게든 싸워 보려던 녀석들이 요한의 언데드 군단이 뜨자마자 기겁하며 도망치기 시작했다.
“하늘.”
[꺄하하하, 나 뭐 할까?]
하늘은 피를 볼 생각에 잔뜩 기대되어 요한을 반짝이는 눈으로 쳐다보았다.
하지만 요한은 순순히 그녀의 바람을 들어줄 마음이 없었다.
“예지라는 아이 찾아.”
[에에에에에에엑!! 내가 왜 미아찾기 따위를 해야 하는 건데!!]
“내 마음이니까."
[싫어어어어어어!!]
하늘은 진심으로 싫다는 표정이었다.
그런데도 요한은 단호했다.
“명령이야.”
아무리 친하고 서로 장난을 치는 사이라도.
[제엔장, 두고 봐. 꼭 이 치욕은 10배, 100배로 갚아 줄 거니까!!]
“네이, 네이. 그러시던지요.”
[흥!!]
언데드에게 술사의 명령은 절대적인 것.
아무리 안하무인인 하늘이라도 요한의 단호한 명령에 대항할 방법따윈 존재하지 않았다.
애초에 대항할 마음도 없었지만 말이다.
하늘은 빠르게 공중제비를 돌면서 예지란 아이를 찾기 위해서 움직였다.
“음?”
“죽어라, 이 괴물아!!”
블랙 헌터 중에는 정신병자가 많았다.
그들은 약에 취해서 고통과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상태로 존재했다.
그중 1명이 요한을 향해서 몸을 날렸다.
날카로운 검이 새파란 빛을 내며 요한의 몸을 갈가리 찢기 위해서 쇄도했다.
턱-!
“헉!”
하지만 그런 블랙 헌터는 요한의 근처도 오지 못했다.
“으으으......!!”
“그르르."
2m 50cm 정도의 언데드가 블랙헌터의 목을 잡았기 때문이다.
“그거 알아?”
요한은 덤덤하게 블랙 헌터에게 말을 걸었다.
“그게 내 1호 키메라야. 처음으로 인사할 수 있는 특권을 줄게.
아아, 굳이 대답은 안 해도 돼. 그녀석이 다 알아서 할 테니까. 너는 그냥 몸만 맡기면 돼. 쉽지?”
“으으으, 주, 죽기 싫……!!”
죽음을 각오했던 블랙 헌터였다.
하지만 언데드의 살기 어린 눈빛 앞에 약의 기운도 다 소용없었다.
독기가 빠져나가고 그는 삶을 구걸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걸 기다려 줄 만큼 언데드는 자비롭지 않았다.
콰드득- 콰드득-!
블랙 헌터의 목을 잡고 있었던 키메라 언데드는 그대로 블랙 헌터의 머리를 뜯어먹었다.
아주 맛있게 냠냠.
“그르르르."
늑대 몬스터인 다이어울프의 머리를 하고 자이언트 리자드맨의 몸통, 덴버스의 팔, 그라고스의 꼬리, 루벨크의 날개.
이렇게 시체를 조각조각 붙여서 만든 키메라였다.
‘아무리 봐도 마음에 쏙 든단 말이지.'
요한은 마치 자식을 바라보는 부모의 눈빛으로 키메라를 쳐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