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화
[……저, 사실 최근 블랙 헌터 조직에 협박을 받고 있습니다.]
기운이 아예 느껴지지 않는 목소리였다.
죽음과 가까운 사이인 요한이 듣기에 죽음과 한없이 가까운 목소리로 느껴졌다.
“블랙 헌터한테 협박이요?”
‘겨우 협박 좀 받았다고 이럴 리는 없어.’
아무리 무법자인 블랙 헌터라도 양지에서 함부로 움직일 수는 없다.
[……사실, 제 딸아이가 녀석들에게 납치됐습니다.]
“예?!”
‘아니, 어떤 미친X들아 내가 관리하는 사업장 대표의 딸을 납치해?!’
그야말로 간이 배 밖으로 나왔다고밖에 할 수가 없었다.
일반인도 아니고, 물론 일반인의 자식도 납치는 하면 안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이건 되고, 안 되고의 문제가 아니라 위험성의 문제였다.
‘설마, 겨우 취미 생활 일부라서 내가 안 나설 거로 생각한 건가?’
만약에 그렇다면 정말 생각이 부족한 녀석들일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뭐 하는 놈들이지?’
“그래서, 어떻게 대처하고 있습니까?”
[경찰이나 협회에 신고하는 즉시 제 딸아이를 죽이고 숨어 버리겠다고 으름장을 놓은 탓에 신고는 하지 않았습니다.]
“그건 잘하셨어요. 일반 납치범이라면 그렇게 못 하겠지만, 블랙헌터라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녀석들이죠. 녀석들이 원하는 게 뭡니까?”
일단 원하는 것을 파악하는 게 중요했다.
요즘 납치범들은 돈이 아니라 다른 무엇인가를 원하는 경우가 많았다.
현금은 추적할 수 없다는 건 옛말이 되었기 때문이다.
요즘엔 현금도 카드처럼 일련번호로 일일이 다 추적이 가능해졌다.
덕분에 오히려 요즘엔 마나석을 몸값으로 많이 요구하는 편이었다.
마나석은 마나를 품고 있다는 점만 빼면 평범한 광석에 불과했다.
그러니 일련번호를 입력하고 추적하는 게 불가능했으며 현금 대용으로 쓰일 만큼 화폐 못지않은 가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 그게…….]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하는 왕수찬사장.
“그게?”
요한은 왕 사장을 재촉하지 않았다.
차분하게 그의 입이 열리기만을 기다렸다.
[후우, 강철곤을 비롯한 저희 팀 ACE 3명을 넘기라는 조건이었습니다.]
“뭐, 이런 미친X들이!!”
요한은 그답지 않게 진심으로 화를 내었다.
아니, 이건 화라기보다는 어이가 없다는 것에 더 가까운 감정이었다.
[.......]
왕 사장도 똑같은 마음이었기에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후우, 얼마나 됐습니까?”
이젠 요한이 한숨을 쉬었다.
[이틀 되었습니다.]
“그렇군요……."
다행히도 그렇게 시간이 많이 지난 건 아니었다.
“제가 직접 그쪽으로 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는 무슨, 제가 인수한 구단을 망치려는 놈들인데요.”
최근 요한이 안산 F 레드디어에 소홀했던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예 흥미가 식은 건 절대 아니었다.
그의 유일한 혈육이자 사랑인 여동생이 H-1을 좋아하는 것을 알게 된 이상 그가 안산 F 레드디어를 포기할 일은 절대 없을 것이었다.
물론 그의 수익이 여전하다는 전제하에서는.
안산 F 레드디어를 건드렸다는 것은 유나를 건드린 것과 다를 게 없었다.
유나를 건드렸다는 것은 요한의 심기를 최대로 건드렸다는 의미였고.
고오오오-!
진득하면서도 사악한 그의 살기가 주변을 가득 메웠다.
[흘흘흘, 피바람이 한차례 불겠구먼. 네크로맨서에게 그 피는 영양분이지만 말이야. 흘흘흘.]
네크로맨서 영감은 벌써 코끝에서 피 냄새가 느껴지는 것 같았다.
“영감, 나 나갔다 온다.”
[천천히 다녀오게. 흘흘흘.]
요한은 외투를 챙기고 연구실을 빠져나갔다.
운전하는 요한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이건 블랙 헌터 단독 행동이 아니야.’
100%, 아니 완벽하게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블랙 헌터는 오히려 생존에 있어서 전문가들이야. 그들은 꾸준히 협회의 눈도 피해 다니며 최대한 안전하게 생존하는 것엔 도가 튼녀석들인데. 아무 이유나 맥락 없이 내가 관리하는 업장 사장의 딸을 납치해서 몸값으로 돈이나 마나석이 아니라, 사람을 내놓으라고?
누군가 블랙 헌터에 사주한 게 분명해.’
정말 그렇게밖에 생각할 수가 없었다.
요한은 스마트폰에다가 말했다.
“안내인 씨.”
요한은 오랜만에 안내인을 불렀다.
[예, 플레이어.]
최근 요한이 직접 조작한 탓에 안내인을 부를 일이 별로 없었기에 오랜만에 목소리가 등장했다.
“엘레노아로 등록된 번호로 전화를 걸어 줘.”
[……전 각성몽의 안내자이지. 스마트폰 A.I가 아닙니다만?]
안내인의 음성에서 어이없음 폭탄이 느껴졌다.
물론 스마트폰과 연결된 안내인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각성몽의 NPC 역할을 하는 그녀가 굳이 스마트폰 비서역할을 한다는 건 자존심이 퍽 상하는 일이었다.
“부탁해. 그 음성 인식 A.I 봇은 시간이 그렇게 지났는데도 아직 음성을 100% 완벽하게 인식 못 한다고. 그리고 A.I에도 한계가 있고 말이야,
[……알겠습니다. 그리고 A.I가 마음에 안 들면 직접 만드시면 될 일입니다.]
“알았어, 알았어.”
[엘레노아와 전화 연결됩니다.]
뚜루투루루-!
그렇게 약 3회 정도 통화음이 울렸다.
[여보세요.]
“마스터?”
[요한 씨, 이 시간에 전화라니.
무슨 일 있나요?]
꼭두새벽에 전화했음에도 엘레노아의 목소리는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그야말로 미친 자기 관리거나 깨어 있었다는 얘기였다.
“부탁이 있어요.”
[부탁이요?]
"네."
[일단 들어 볼게요.]
“그게……."
요한은 이번 납치 사건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
안산 F 레드디어 사장실엔 총 3명의 인물이 모였다.
굳은 표정으로 팔짱을 끼고 있는 요한, 식은땀을 줄줄 흘리며 어쩔 줄 모르는 왕 사장, 그리고 요한의 연락을 받고 급히 달려온 엘레노아까지.
“마스터는 굳이 안 오셔도 됐는데.”
“제가 직접 투자한 구단이에요.
구단에 무슨 일이 생기면 저도 곤란하니 직접 나서야죠.”
엘레노아의 목소리엔 마치 서리한이 서려 있는 것처럼 찬바람이 풀풀 풍겼다.
요한으로선 엘레노아가 이렇게까지 화를 내는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고맙긴 했지만, 자기 일도 아닌데 마치 자기 일처럼 화내 주는 게 냉정하고 이성적인 요한의 성격상 잘 이해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떻게 처리할 생각인가요. 요한 씨.”
엘레노아가 묻자 왕 사장이 먼저 입을 열었다.
“사실 이게 어렵습니다. 저도 사방팔방으로 알아보았는데. 블랙 헌터들의 숨는 실력은 최고입니다. 이번 납치 사건만 봐도 녀석들은 일반적인 연락 수단이 아니라……."
“특정 헌터의 능력으로 연락하겠지.”
요한이 끼어들며 말했다.
“예를 들어서 텔레파시 같은 건가요?”
엘레노아가 미간을 찌푸리며 되물었다.
“아, 예. 맞습니다.”
“근데 텔레파시 능력이라고 하더라도 먼 거리에서 아무와 연락을 할 수 있는 건 상급 능력자만 가능한데요?”
텔레파시 능력이 생각처럼 막 쓸 수 있는 것이라면 길드마다 꼭 1명씩은 고용했을 것이다.
감청당하지 않을 최고의 연락 수단일 테니 말이다.
하지만 이 텔레파시 능력은 제약도, 한계도 많았다.
그러다 보니 그냥 돈을 더 써서 안전 채널을 운용하는 편이었다.
왕 사장은 잠시 고민하더니 그의 책상 서랍을 열어서 검은 봉투를 꺼내 왔다.
턱-.
“이겁니다.”
“이건?”
왕 사장이 꺼낸 물건은 주먹만한 투명한 구슬이었다.
흔히 점을 볼 때 사용하는 구슬과 똑같이 생긴 수정 구슬이었다.
“어느 날 발신인이 없는 택배로 이게 배달 왔습니다. 오배송인 줄 알았는데. 이것으로 연락을 취해 왔습니다.”
“흐음, 물건을 매개체로 연락을 취할 수 있는 텔레파시 능력자군.”
헌터와 관련된 지식이 풍부한 요한이 말했다.
“그런 것 같네요.”
엘리트 교육을 받으며 다양한 지식을 습득한 엘레노아도 이 구슬에 대해서 잘 알고 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 동시에 표정도 안 좋아졌다.
“그런 식이라면 우리가 먼저 잡을 방법이 없어요.”
사용하기 가장 까다로운 능력임과 동시에 추적할 방법이 없는 능력이기도 했다.
일단 얻을 수 있는 힌트는 물건을 매개체로 하는 텔레파시는 사방 3km 이내에서만 가능하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3km 이내의 모든 곳을 뒤져 볼 시간이나 여유 따윈 없어.
또 불가능하고.’
“흐음.”
“으음……."
잠시 묘한 소리만 내는 3명.
그때 요한의 머릿속에서 뭔가 찌릿, 하고 지나갔다.
‘잠깐만, 나는 프로그래머야. 그리고 내 특성은 프로그램이지. 프로그래머와 해커는 종이 1장 차이야. 물건을 매개체로 하는 텔레파시는 일종의 통신. 그렇다는 것은 그 통신을 내가 프로그램 특성으로 해킹한다면?’
가능성은 충분할 것 같았다.
설사 안 되더라도 해 볼 가치는 있었다.
턱-!
요한은 얼른 수정 구슬을 자신의 앞으로 가져와 스마트폰을 꺼냈다.
"?"
“구, 구단주님?”
엘레노아는 의문과 동시에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요한을 보았고, 왕 사장은 당황해 그를 불렀다.
하지만 엘레노아가 곧 조용히 하라고 눈치를 주자, 입이 쏙 들어갔다.
여기에서 가장 급한 건 역시 왕사장이었지만, 상대가 상대이다 보니 함부로 경거망동할 수가 없었다.
요한은 스마트폰과 수정 구슬을 잠시 바라보았다.
‘이게 진짜 컴퓨터는 아니야.
USB 잭이 있을 리가 없어.’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역시 이럴 때는 마나밖에 믿을 게 없어.’
마나가 모든 세상의 에너지가 된 이후로 생긴 속담에 이런 말이 있었다.
‘애매할 때는 무조건 마나다.’
물론 100%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그만큼 마나가 중요하단 의미였다.
지금 상황에선 딱 알맞은 속담이지만 말이다.
지이잉-!
요한은 마나를 전선처럼 뽑아내스마트폰과 수정 구슬을 연결했다.
딩동-!
‘오, 됐다!!’
긴가민가했던 방법이었지만, 멋지게 성공했다.
‘좋아, 좋아. 그렇다면……!!’
스마트폰 화면에 수정 구슬과 연관 있는 아이콘이 떠올랐고 그것을 클릭하자, 기계어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화면이 좌르륵 떠올랐다.
‘이거지!!’
이것 또한 그의 스킬이나 언데드코딩처럼 특수한 문자로 이루어져 있었다.
‘나만 읽을 수 있는 정체를 알수 없는 문자.’
스마트폰 화면엔 수정 구슬에 대한 메커니즘과 정보가 가득했다.
‘확실히 내 것이 아니라 수정할 수 있는 코딩은 안 돼. 어, 잠시만 이건?’
요한은 손가락으로 화면을 문지르며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다가 한가지 눈치챌 수가 있었다.
‘이거 IP 주소 같은데?’
물론 지금은 비활성화된 상태였다.
하지만 연결이 된다면 활성화될 것이었다.
‘이걸 추적하면 녀석들의 꼬리를 잡을 수 있겠군.’
드디어 실마리를 얻을 수가 있었다.
“마스터.”
“네, 요한 씨.”
“러셀 길드의 힘 좀 빌리겠습니다.”
“얼마든지요. 요한 씨는 우리 러셀 길드의 2팀장인걸요.”
“고마워요.”
요한은 엘레노아를 향해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사냥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