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화
깔끔한 승리를 쟁취한 요한은 일단 먼저 가장 필요했던 혼종 추종자의 영혼과 시체를 회수했다.
[호오오오온……조오오옹.]
[으어어어, 조오오옹.]
“하, 이놈들은 죽어서도 혼종 타령이네.”
어이가 없어진 그는 고개를 저었다.
‘뭐, 딱히 상관없지만.’
어차피 언데드로 만들 녀석들이었다.
혼종이든 뭐든 언데드가 되면 똑같이 충실한 개가 될 테니 말이다.
그렇게 혼종 추종자를 처리하고 요한은 나머지 일반 혼종은 언데드에게 처리하게 시키고 보스 몬스터인 혼종의 시체로 다가갔다.
‘자, 뭐가 있으려나?’
벌써 햇수로 2년째 보스 몬스터의 시체를 보고 있지만, 그때마다 가슴이 뛰었다.
익숙해질 만한데도 보스 몬스터사냥 후의 혹시라도 있을 보상을 생각하면 어쩔 수 없이 입꼬리가 올라갔다.
하지만 실망할 때가 더 많다는 진실도 있었다.
어쨌든 이번에도 잔뜩 기대에 부풀어 혼종의 시체를 뒤적거려 보았다.
휘잉-!
[요한. 여기, 여기!]
그때 공중에서 날아다니며 무엇인가를 열심히 구경하던 하늘이 다급하게 요한을 불렀다.
“오!! 뭐, 뭐가 있어?!”
요한은 눈을 반짝이며 하늘에게 다가갔다.
하지만…….
[아니, 벌레 개징그러!]
〈훼이크다, 이 병X들아!〉어디선가 들려오는 아련한 음성.
“야, 이 #C(*##&u#.”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거친 욕세례가 뿜어져 나왔다.
[꺄하하하, 요한을 놀리는 게 제일 재밌어!]
하늘은 공중에 뜬 채로 배를 움켜잡으며 깔깔거리며 웃어 댔다.
평소엔 잘 안 속지만, 이렇게 뭔가 다른 곳에 집중할 때는 속아 버리는 요한.
오히려 가끔 속으니 속였을 때 더 즐거움을 느낀 탓에 하늘은 요한을 속이는 것을 끊지 못하고 있었다.
“후우, 저 빌어먹을 녀석의 볼기 짝을 언젠간 거덜 내고 만다!”
[으흐흐흐, 그래 보시던가요. 난 육체가 생겨도 영혼 상태로 있을 거지롱. 에베베베!]
부글부글-.
요한의 얼굴이 시뻘게졌지만, 더 싸웠다간 자신만 화가 나는 상황이라 애써 무시하고 넘어갔다.
“응, 어이 여기 좀 봐!”
그때 류페이가 요한을 불렀다.
“왜?”
“여기에 이상한 책 한 권이 놓여 있는데. 그쪽이 찾던 거 아니야?”
“책?!”
파박-!
육체를 사용하는 건 병적으로 싫어하는 요한답지 않게 번개와도 같은 몸놀림으로 류페이를 향해서 달려갔다.
일반인이었다면, 육체를 쓰지 않으니 운동 부족으로 살이 찌고 체력이 약해졌을 것이다.
하지만 요한은 일반인이 아니라 헌터였다.
레벨이 오르면서 조금씩이지만, 스탯이 상승했다.
그 덕분에 체력과 힘, 민첩함은 나날이 상승하고 있었다.
꾸준히 사냥하는 헌터에겐 운동부족이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다만, 사냥을 하지 않는 헌터는 스탯 하락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레벨링으로 올린 것을 깎는 형태라 일정 이하로 떨어지면 더는 떨어지지 않았다.
그렇게 답지 않게 재빠른 몸놀림으로 류페이의 곁으로 다가갔다.
“자, 여기.”
“오오!”
요한은 표지가 없는 일반 녹색 똥 같은 양장본 책 한 권을 류페이에게서 건네받았다.
“이거 괜찮은 거야?”
“음, 일단은 몰라.”
“그런데 왜 이렇게 좋아해. 때려 주고 싶게.”
“쯧, 마음씨하고는.”
“언데드한테 좋은 마음씨 바라세요, 지금?”
“됐다, 됐어.”
휙휙-!
요한은 손을 휘휘 저으며 류페이를 귀찮은 파리 쫓듯이 내쫓았다.
“흥!”
류페이는 콧바람을 내며 한쪽으로 물러났다.
츤츤거리는 녀석이었지만, 언데드답게 말은 착실히 잘 들었다.
하지만 그건 지금의 요한에게는 딱히 상관이 없었다.
‘보스 몬스터를 죽인 보상으로 나온 거란 말이지. 결코, 나쁘진 않을 거야.’
좋든 나쁘든, 비싼 가격에 팔면 그만이었다.
‘일단 확인부터 해 봐야지.’
보통은 이런 아이템은 연구소로 가져가 보아야 진짜 성능을 알 수가 있었다.
아이템을 분석할 수 있는 헌터가 그곳에서 일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과학 장비로도 충분히 가능했지만, 그 장비 유지비보다 감정전문가를 고용하는 비용이 적게 들었다.
하지만 요한은 아니었다.
그에겐 감정 전문가보다 더 뛰어난 정밀 분석 프로그램이란 스킬이 있었다.
현장에서 곧바로 확인하는 게 가능했다.
‘어디 보자…….'
『키메라 제조술』.
‘이거다!!’
그가 혼종 무리를 처음 봤을 때부터 원하던 스킬이었다.
원하던 것이 무조건 나온다는 보장이 없었기에 걱정하던 차였다.
하지만 너무나 다행스럽게도 이번의 스킬북은 요한이 원하던 그 스킬북이었다.
‘후우, 다행이다. 안 나오면 몇 번이고 더 돌아야 하는 건가 싶었는데…….'
이 기분 나쁘고 냄새나는 곳을 더 오지 않아도 되었다.
‘좋아, 좋아.’
망설일 이유도 없었기에, 곧바로 스킬북을 사용했다.
사용한 스킬북이 하얗게 빛나더니 가루가 되어 요한의 몸으로 흡수되었다.
‘스탯창을 확인해 볼까.’
[김요한]
[레벨: 301]
[직업: 네크로맨서]
[특성: (프로그램) / (A.I) / (희생 성장) ]
[스탯]
힘: 28.99. 민첩: 27.11. 체력: 30.03. 지능: 60.88. 지혜: 70.01.
[스킬]
네크로맨시 Lv.70저주 Lv.53시체 마스터리 Lv.57본 아이덴티티 Lv.65정밀 분석 프로그램 Lv.3소울 마스터리 Lv.55강령술 Lv.8키메라 제조술 Lv.1
‘캬하, 끝내주네.’
요한의 상태창.
희생 성장의 효과는 예전만큼은 못했지만, 그래도 아직은 일반 헌터들보단 훨씬 좋은 편이었다.
늘 보는 것이지만, 볼 때마다 짜릿하고 새로웠다.
‘아차차, 스탯 말고 스킬을 봐야지.’
황홀한 스탯에 잠시 눈을 뺏긴 탓에 잠시 잊었다.
[키메라 제조술 Lv.1]
스킬 설명: 키메라 제조술은 네크로맨서들 사이에서도 논란이 많은 기술 겸 스킬이다. 일부 원리 주의자들은 키메라 제조술은 네크로맨서 본류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진보적이고 다변화를 꿈꾸는 네크로맨서들은 키메라 제조술 또한 네크로맨서의 스킬이라고 주장했다. 상황이야 어쨌든 키메라 제조술은 시체나 생명체를 이리저리 조립해 새로운 인공 생명체를 탄생시키는 능력이다. 생명체를 조립하면 생명체가, 시체를 조립하면 낯선 언데드가 탄생했다.
▶ 키메라 언데드 제조: 시체를 적절히 조립하여 새로운 언데드를 만들 수 있다. (레벨당 1기)
▶ 키메라 제조(봉인): 네크로맨서가 익힐 수 없는 스킬
▶ 키메라 대백과 사전: 사냥한 몬스터의 정보를 저장하여 조건이 만족되면 만들 수 있는 키메라의 정보를 알려 주는 스킬
‘캬하, 역시 좋구먼. 스킬 하나가 봉인된 건 조금 아깝지만, 그건 네크로맨서의 특성상 어쩔 수 없는 거지., 딱히 미련 따위는 없었다.
‘좋아, 좋아. 안 그래도 새로운 언데드 연구 중이었는데. 이 대백과 사전 스킬이 도움이 좀 되겠어.’
새로운 언데드라면 언제든지 환영이었다.
언데드 소환에 레벨 제한이 걸려있기에 새로운 언데드 소환 스킬이 생기면 그만큼 더 많은 언데드를 부를 수 있다는 소리니까 말이다.
‘음, 그런데 듀라한이나 데스나이트 같은 건 언제쯤 일으킬 수 있으려나.’
워낙 강력한 스킬인 것은 알고 있지만, 빨리 그런 스킬을 배우고 싶었다.
‘뭐, 내가 좀 더 분발해야겠지.’
이번 『키메라 제조술』 획득처럼.
‘흠…….'
기쁘면서도 한편으론 생각도 많아지는 날이었다.
***
요한은 지하철 던전을 시작으로 하루하루를 연구실과 던전을 오가면서 시간을 보냈다.
엄청 나쁜 나날이었지만, 그만큼 실적도 많이 쌓을 수가 있었다.
“으아아아, 피곤해!”
[흘흘흘, 그래도 덕분에 많은 실험 재료가 생겼지.]
“그래도 피곤한 건 피곤한 거야."
[흘흘흘흘.]
이렇게 투덜대는 요한이었지만, 그래도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영감의 말대로 연구의 성과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자네의 그 특성이란 것 말이야.
아무리 봐도 좀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들어.]
“응?”
요한은 뭔 헛소리를 하냐는 표정으로 네크로맨서 영감 영혼을 바라보았다.
굉장히 뜬금없는 타이밍의 말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평생을 노력하고 연구하고 연습했지만, 자네 수준의 반의반에 반도 따라가지 못했어. 하지만 자네는 1년 남짓한 시간에 내가 평생을 노력해서 원했던 수준마저 아득히 뛰어넘어 버렸지. 자네의 순수한 재능은 별로지만, 그 특성은 정말 신의 섭리와도 같은 능력이라고 생각하네.]
빠직-!
“영감, 그거 시비지?”
얼핏 들으면 감탄하는 것 같지만, 자세히 뜯어보면 재능이 없는 주제에 운이 좋아서 강해졌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다.
[흘흘흘,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
“헛소리 집어치우고 연구나 계속해. 확 원래 세계로 돌려보내기 전에.”
[흘흘흘, 알았네, 알았어.]
영감은 다시 연구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으으으으, 혼종이시여.]
[우! 위 우! 우!]
연구실 한쪽에 마련된 별도의 공간엔 실험체로 쓰인 영혼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개판이구먼.’
쭛쭛.
요한은 혀를 찼다.
아무리 실험을 위해서라지만, 정신이 없을 정도로 시끄러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연구는 어느 단계까지 다다른 거야?”
[흘흘흘, 너무 그렇게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게. 때는 다 맞춰지니까 말이야. 어느 정도 성과는 있었네, 역시 내 생각이 맞았어.]
“오, 그래?”
긍정적인 표현에 요한은 반색했다.
[그래, 녀석들의 상태를 보니 확실히 이성이 뚜렷하고 마법 능력이 뛰어난 녀석일수록 언데드로 변했을 때의 이성이 많이 남아 있네.
좀 더 괜찮은 재료를 구해준다면 더 확실하게 알 수 있을 텐데 말이야.]
“아씨, 또?”
[흘흘흘, 진정한 네크로맨서의 길은 멀고도 험한 법이네.]
네크로맨서 영감이 평생을 바쳐서 연구한 진정한 네크로맨서의 길.
본인은 마나에 대한 재능 부족으로 포기했지만, 인도자라면 할 수도 있을 거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쳇.”
지금까진 뭐든지 팍팍 진도가 나갔던 요한이었다.
하지만 이번 일은 시간을 확실히 투자해야 할 것 같았다.
삐리리링-! 삐리리링-!
그때 요한의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이 울렸다.
‘이 시간에 누구지?’
지금 시간은 무려 새벽 3시 30분이었다.
이런 이른 시간에 전화하다니?
요한이 헌터가 된 이후로 처음 있는 일이었다.
헌터가 되기 전엔 회사에서 언제든 호출되기 일쑤라 익숙한 일이었지만 말이다.
[안산 F 레드디어 사장]
‘이 사람이 왜?’
개인적인 친분이 있는 자도 아니었다.
[아, 깨어 있으셨군요. 늦은 시간에 정말 죄송합니다. 혹시 통화하셔도 괜찮으십니까?]
“네.”
[아, 그, 그게 다름이 아니라. 급히 구, 구단주님의 도움이 필요한 일이 생겨서 실례를 무릅쓰고 전화를 드렸습니다.]
“제 도움이요?”
[예, 예…….]
‘무슨 일이지?’
20장. 어려운 취미 생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