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화
‘시, 십억?!’
물론 규칙까지 어겨 가며 정보를 넘기긴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게 10억의 가치가 있냐고 묻는다면 연구원은 당당히 고개를 저었을 것이다.
기밀 정보를 그런 식으로 넘겼다면, 10억은 무슨, 100억의 가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넘겨준 정보는 딱히 비밀은 아니었다.
밖에서도 조금만 시간을 투자하다 보면 어떻게든 알 수 있는 정보였다.
그런 정보를 제공한 대가로 10억은 매우 큰 금액이었다.
“아, 아니. 구, 굳이 그럴 필욘.......”
“나라를 위해서 일하시는 분들인데. 그것까지 고려해서 드리는 겁니다.”
“가, 감사합니다.”
차마 2번까지 거절할 수는 없었다.
이 10억을 기부받는다고 해도 그들의 연봉이 오르는 것은 아니었다.
이미 그들은 많은 연봉을 받고 있었다.
센터 전체 규모로 따지면 10억은 그렇게 대단한 액수는 아니었다.
하지만 이 10억으로 할 수 있는 것은 많았다.
연구 장비를 교체한다던가, 그동안 예산 부족으로 하지 못했던 복지를 늘린다던가 말이다.
그래서 굉장히 고마운 기부였다.
“그럼.”
요한은 원하던 정보를 다 얻었기에 쿨하게 연구 센터를 나왔다.
직원들이 정문까지 나와서 배웅해 주었다.
‘어디 보자, 오늘은 시간이 늦었으니 제일 가까운데 한 곳만 들러야겠다.’
다행히 그가 받은 목록 대부분이 인기가 없는 곳이었다.
뭐, 인기가 있었으면 요한의 지식에도 있었겠지만 말이다.
어쨌든 그런 곳이다 보니 예약이 안 되는 경우도 왕왕 있었다.
그 몬스터들이 필요한 요한에겐 잘된 일이었다.
‘마음껏 수집할 수 있을 테니 말이야.’
그는 목록에 있는 던전 포탈 중에서 가장 가까이 있는 포탈로 향했다.
“충성!”
포탈 입구를 지키는 군인들은 요한을 보자 경례를 했다.
“아, 수고.”
협회에 문의해 본 결과,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포탈엔 예약이 없다고 했다.
덕분에 다른 포탈로 갈 필요 없이 편하게 예약할 수가 있었다.
‘그런데 이런 곳에도 포탈이 있을 줄이야…….'
그가 도착한 곳은 폐쇄된 지하철역이었다.
혼란의 시기를 겪으며 포탈이 우후죽순으로 생성되었을 때, 당연하게도 서울의 지하 역시 개판이 되었다.
그중의 하나가 오늘 요한이 방문해야 하는 포탈이었다.
요한은 센터에서 받은 정보를 다시 확인해 보았다.
‘이곳에서 서식하는 대부분의 몬스터는 징그립고 가성비 떨어지는 끔찍한 혼종이었지만, 보스를 추종하는 혼종 추종자들은 미치긴 했지만, 확실한 이성과 지능을 가지고 있으며 독성 마법을 사용한 다라…….'
확실히 요한이 원하던 몬스터 그 자체였다.
포탈을 넘자, 주변 환경이 특이하게 변했다.
대부분의 포탈은 아예 다른 공간이 되는 게 보통이었다.
하지만 이곳은 그런 일반적인 포탈과 조금 달랐다.
이 포탈의 별명은 지하철 포탈.
구지하철 역사에 존재해서가 아니라, 포탈 내부가 바깥과 똑같은 지하철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바깥과는 완전히 별개의 공간인 것은 확실했다.
하지만 이곳은 분명히 지하철이었다.
다만, 모든 게 낡았고 부서졌으며 인간이 아닌, 끔찍한 혼종이 서식하는 공간이었다.
‘어둡고 음침한 곳이네.’
하지만 요한은 오히려 흥미로웠다.
‘내가 잘 모르는 곳이라. 모험하는 재미가 있겠는데?’
물론 여유롭게 탐험이나 하고 있을 시간은 없었다.
하지만 미지의 공간에 발을 들인 것만으로도 꽤 흥미가 돋는 건 사실이었다.
이게 다 S급 헌터가 가질 수 있는 여유 덕분이기도 했다.
또옥-! 또옥-!
사방에서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찍찍-!
그리고 불결하고 더러운 버려진 지하철이란 컨셉에 맞게 거대한 쥐까지 있었다.
“하늘.”
[으헤헷, 불렀어?]
“불 좀 밝혀.”
[에엣, 겨우 그거 시키려고 불렀어?]
“어, 안 보여.”
[칫.]
요한의 말대로 이곳 지하철 포탈은 지하라는 특성상 빛이 조금도 존재하지 않았다.
물론 모든 포탈이 이런 식은 아니었다.
다른 폐쇄 공간인 미궁이나 미로 또는 특정 건물 안의 포탈은 다 빛을 내는 오브젝트가 존재했다.
그래서 그 빛으로 사냥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곳 지하철 포탈은 그런 빛을 내는 오브젝트가 전혀 없었다.
아예 깜깜이로 사냥을 하는 헌터가 직접 빛을 챙겨 와야 했다.
‘이러니 인기가 없지.’
어둠을 두려워하는 건 인간의 본성이었다.
그게 헌터라고 해도.
무서워하지 않더라도 거부감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그러니 빛 한 줌 들어오지 않아서 빛을 따로 준비해야 하는 이곳은 인기가 없을 수밖에 없었다.
‘뭐, 그거 말고도 여러 이유로 인기가 없는 거지만.’
어쨌든 요한은 이곳에 필요한 게 있기에 그런 것과 상관없이 사냥하러 왔지만 말이다.
꾸륵꾸륵-.
어느 정도 안으로 들어오자 슬슬 이곳의 주력 몬스터인 혼종의 소리가 들려왔다.
[요한, 저기!]
“아, 나도 봤어.”
빛이 필요한데 하늘을 부른 이유는 도깨비불의 일종인 빛을 만들어 낼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막 그렇게 엄청나게 밝은 것은 아니었지만, 하늘이 데리고 있는 유령들 모두를 합치면 그래도 싸울 수는 있을 정도로 밝아졌기 때문이다.
‘나와라.’
요한은 평소대로 전투를 수행할 언데드를 부르기 시작했다.
허공이 열리면서 시체 수납 스킬로 보관되어 있던 언데드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어어어!”
딱딱.
“으싸, 이번에도 전투인가!”
그중에서 역시 류페이가 가장 활발했다.
왼팔에 달린 머리가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
전투를 갈망하는 살벌한 웃음이었다.
저 머리는 얼핏 보면 무척이나 약해 보여 약점으로 착각할 수가 있었다.
하지만 듀라한의 머리는 절대 약점이 아니었다.
오히려 반대로 강력한 도구 중 하나였다.
듀라한의 머리는 어느 부위보다도 단단해 방패의 역할은 물론이고 둔기의 역할도 가능했다.
확실히 언데드란 컨셉에 어울리는 모양새였다.
머리를 직접 휘두르며 싸우는 모습은 정말 섬뜩했다.
하지만 그건 언데드에겐 득이면 득이지 딱히 손해 볼 만한 일이 아니었다.
생명체를 무한히도 증오하며 오로지 술사에게 충성하는 언데드가 누구와 사귈 것도 아니고 말이다.
“그르륵!!”
요한과 처음으로 맞닥뜨린 혼종 4마리는 혼종이라는 이름답게 정말로 괴상하게 생긴 생명체였다.
머리부터 기괴했는데, 머리 윗부분은 인간의 뇌가 나와 있었고 눈과 코는 없었다.
오로지 날카로운 이빨이 난 옆으로 쫙 째진 입만 존재했다.
헛바닥이 길고 날렵했다.
목은 길고 몸통은 벌레처럼 얇았다.
2족 보행이 아니라 꼽등이를 연상케 하는 다리로 움직였으며 등엔 녹색 포자를 뿜어내는 혹이 자라나 있었다.
푸숙.
그 혹에선 주기적으로 독 연기로 추정되는 것이 뿜어져 나왔다.
“와, 언데드보다 더한 놈일세.”
어딜 가서 비호감 외모로 꿀릴게 전혀 없는 언데드 종족이었다.
그런 언데드마저도 옆에 있으면 기가 죽을 정도로 괴기한 생명체였다.
‘아니, 근데 생명체가 맞긴 한 거야?’
그게 의문이 들었다.
[응, 생명체는 맞아.]
요한의 의문을 3초 만에 풀어 준 하늘.
“저게…… 진짜로 생명체라고?”
[응, 그런걸. 저 녀석들을 보고 있으면 다른 생명체와 똑같이 찢어 죽이고 싶어. 이런 마음이 드는 거보면 100% 생명체 맞아.]
“아, 그래?”
[응!]
“뭐, 언데드인 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헷!]
‘거참, 왕년의 흑암 여제가 저런 일본 여자 같은 소리도 다 내고 말이야.'
물론 밴시인 그녀의 외모는 정말 귀엽고 예뻤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정말 어울리는 말투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가 흑암 여제라는 것을 아는 요한이 보기엔 살짝 소름이 돋았다.
“꺄하하하, 다 죽어!!”
스걱-!
“그르륵!!”
요한이 명령도 내리기 전에 듀라한인 류페이가 먼저 움직였다.
그녀의 롱소드가 거칠고 과격하게 혼종을 파괴했다.
“그르륵!!”
‘와, 마. 저건 어떻게 싸울 때마다 더 강해지냐.’
언데드는 어디까지나 시체였다.
살아 있는 시체라는 표현을 쓰긴 하지만, 그건 의미 없는 표현이었다.
그냥 움직이는 시체 정도면 충분했다.
그런 시체가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경험을 통해서 강해지다니.
‘이래서 이성이 존재하는 언데드가 좋다는 거겠지.’
현재 요한 휘하에 이성이 제대로 있는 언데드는 하늘, 류페이, 사무엘이 전부였다.
‘이 이성이 존재하는 언데드를 얼마나 더 늘리느냐가 중요하단 말이지.’
그러니 지금 그가 하려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죽어!!”
퍽-!
“그르륵!!”
류페이는 오른손의 검 말고도 왼손에 들린 자신의 머리도 적극적으로 휘둘렀다.
머리에 닿는 족족 피가 튀기고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혼종 4마리는 순식간에 난자되었고 피떡이 되었다.
당연한 순서였다.
그는 무려 검은 날개 길드 제1공격대를 홀로 무너트린 실력자였다.
이곳 지하철 포탈은 그정도 수준의 포탈이 아니었기에 보스도 아니고 가장 약한 편인 일반 혼종이 그의 상대가 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거기에다가 혼종은 끔찍한 모습을 가지고 더 끔찍한 언데드로 되살아났다.
‘으으, 내가 쓰려고 일으키긴 했지만. 정말 끔찍한데.’
오래 보고 있으면 속이 안 좋을 정도였다.
좀비 영화 마니아인 요한도 참 거북하기 그지없는 언데드였다.
‘참자, 참아. 어차피 혼종 추종자인가 뭔가 하는 녀석만 필요한 거니까. 다시는 이곳에 올 필요가 없어.’
딱 한 번에 깔끔하게 해결할 필요가 있었다.
척척척-!
잠시 후, 요한의 앞으로 스켈레톤 수십 기가 오와 열을 맞추고 일정한 리듬의 발걸음으로 움직이는 장관을 연출했다.
그리고 그 뒤로 기괴한 소리를 내는 좀비와 구울이 따라갔다.
“크아아악!!”
“그르르륵!!”
그나마 지능이 있는 구울이 인솔했다.
겉으로 보기엔 우수한 중간 지휘관 같은 모습이었다.
‘어디 보자, 이거 길을 모르니.’
원래 그의 성격이었다면, 포탈 내 상세 지도까지 싹 긁어 와서 외웠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 던전 포탈은 급히 들어오느라 길을 다 익히질 못했다.
거기에다가 복잡한 지하철의 내부 특성에다가 어둠 때문에 시야가 좁다는 것도 크게 작용했다.
‘에라이, 모르겠다. 일단 다 뒤져 보자.’
“속보!!”
딱딱-!
“그어어억!!”
언데드 군단의 선두는 역시 류페이였다.
평소엔 외부 탐지로 마나 농도가 아슬아슬할 때만 협회에서 길드에 의뢰를 넣어 토벌하던 지하철 포탈이었다.
의뢰를 받은 길드도 사전 조사에 따라서 최대한 짧게 보스만 토벌하고 끝을 냈다.
그만큼 지하철 포탈은 인기가 없는 곳이었다.
‘하긴, 딱 봐도 사체가 별 가치가 없잖아. 이딴 걸 어디 써?’
제대로 된 부위가 정말 한 군데도 없었다.
또 독에 절여져서 일반인이 냄새만 맡아도 중독돼 죽을 위험이 있었다.
그렇다고 독을 정화하고 쓰기엔 다른 시체와 단가가 맞지를 않았다.
즉, 여기서 얻을 수 있는 건 마석이 전부였다.
그렇다고 던전 수준이 낮은 것도 아니라 굳이 이곳에 올 필요가 없었다.
“캬아아악!!”
그때, 어디선가 묘한 소리가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