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화자충분하지는 않지만, 복수에 성공했다.
그리고 나름대로 충분한 성과까지 올렸다.
이번의 패배로 검은 날개 길드는 외부 활동을 일절 삼가겠다는 발표를 했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5대 길드 한 곳이 무너졌다고 표현해도 될 엄청난 사건이 아닐 수가 없었다.
정작 검은 날개 길드의 날개를 꺾어 버린 요한은 오랜만에 집에서 빈둥거리면서 편안한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예전에는 이렇게 소파에 누워 밀린 예능 프로그램이나 드라마, 영화 등을 스트리밍 사이트에서 보는 게 취미였다.
하지만 이젠 스마트폰 게임에 맛을 들인 그는 좋아하는 귤을 까먹으며 최근에 오픈한 모바일 게임을 즐기고 있었다.
‘역시 모바일 게임은 그래도 해외 게임이 최고지.’
그가 생각하는 한국산 모바일 게임은 너무 편의성에만 의존하고 있었다.
자동 사냥, 자동 전투, PTW 등등.
즉, 한국형 모바일 게임은 플레이하는 것이라기보다는 보는 것에 더 가까웠기 때문에 손이 가질 않았다.
‘역시 이런 건 미국이 잘 만든단 말이야.’
특히 요즘엔 자동 번역 프로그램같은 것이 있어서 한국어 지원이 100% 되기에 게임을 하는 데 전혀 지장이 없었다.
소파에 누워 열심히 빈둥거렸다.
“하, 귀찮아. 안산 F 레드디어도 관리해야 하고, 연구실로 가 밀린 연구도 네크로맨서 영감과 같이해야 하는데……."
할 일은 태산과도 같이 많았는데 의욕은 영 서질 않았다.
워낙 짧은 시간에 많은 일이 벌어졌기에 그의 피로도는 최악이었다.
아무리 그가 인간을 초월한 헌터라고 해도 인간으로서 가지는 정신적인 피로도엔 한계가 있었다.
“아, 몰라, 몰라. 그냥 피로가 확풀릴 때까지 그냥 쭉 쉴래. 급할게 뭐 있어!”
외계인이 지구를 침략한 것도 아니고, 지구가 파괴되는 무엇인가가 발견된 것도 아니었다.
그리고 목표로 했던 5대 길드 하나를 무너뜨렸으니 급할 게 전혀 없었다.
‘급할 것도 없지만, 급한 것도 싫지.’
매번 말하지만, 요한은 절대 성실한 편이 아니었다.
성실함이 필요할 때는 최선을 다해서 성실하게 굴지만, 굳이 성실함이 필요가 없을 때는 한없이 게을러지는 게 그의 정체였다.
***
띠리리릭-!
도어락이 열리면서 유나가 들어왔다.
“여어, 왔어?’
요한은 여전히 소파에 누운 채로 까딱 발가락을 살짝 움직여 인사했다.
“오빠! 내가 스켈레톤은 집 밖으로 내보내지 말라고 했잖아!!”
유나는 집에 들어오자마자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아, 왜. 너도 이제 스켈레톤에 익숙해졌잖아. 그리고 스켈레톤이 아니면, 누가 정원 관리하냐?”
요한이 구매한 이 집은 2명이 살기엔 매우 넓었다.
거기에다가 예쁜 정원까지 있어서 관리하기가 무척 힘든 곳이었다.
그런데도 관리인은 단 1명도 뽑지 않았다.
러셀 매니지먼트에 부탁해 고용한 외부 경호 업체가 이 집과 관련된 인원이 전부였다.
하지만 관리는 전혀 어렵지 않았다.
그렇다고 요한이 열심히 일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는 연구와 코딩만으로도 귀찮아 죽을 지경이었으니까.
처리한 방법은 아주 간단했다.
그냥 스켈레톤에 집안일 기능을 코딩으로 입혔다.
정원 관리, 청소, 빨래 등등.
요리 빼곤 스켈레톤이 전부 가능했다.
시체한테 요리를 시키는 것까진 차마 찝찝해서 요한이 직접 하는 편이었다.
그런데 그러다 보니 사소한 트러블이 조금 있었다.
“아니, 할 거면. 새벽이나 밤에 해. 이웃 사람들이 지나가다가 깜짝깜짝 놀란다고.”
“아, 어차피 나 여기 사는 거 다 알잖아. 그냥 익숙해지라고 해. 귀찮게 말이야.”
“오빠!!”
“몰라, 몰라, 몰라.”
“어휴.”
정말 흔한 남매 사이였다.
잠시 투덕거림이 있었지만, 유나는 차분하게 요한에게 다가갔다.
“오빠, 잠시 앉아 봐.”
“응, 왜?”
동생의 진지한 목소리에 장난기를 쏙 뺀 요한이 소파에서 몸을 일으켰다.
다른 작은 소파에 앉은 유나는 다소곳이 요한에게 그녀의 스마트폰을 건넸다.
“확인해 봐.”
“확인?”
"응."
그녀가 시킨 대로 스마트폰 화면을 보았다.
‘표정 보니까, 나쁜 일은 아닌 거 같은데…… 귀여운 고양이 사진이라도 찍은 건가?’
참고로 요한, 유나 남매는 둘 다 동물을 참 좋아했다.
다만, 그런데도 반려동물을 키우지 않는 이유는 요한은 개파, 유나는 고양이파였기 때문이다.
어쨌든 요한은 동생의 진지한 태도가 살짝 걸리긴 했지만, 길고양이 사진이라도 찍은 건가 싶었다.
“어?”
그런데 아니었다.
[수험번호 203316. ‘한국 대학교’합격.]
“어, 어, 어……?! 이, 이, 이, 이거?!”
정말 갑작스러운 메시지였다.
그는 잠시 뇌 정지가 온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어때, 괜찮지?”
“하, 하, 합격한 거야?”
“응, 그것도 수석으로 합격했어.”
“와아아아!!”
덥석!
“꺅.”
요한은 유나를 격하게 끌어안았다.
안 그래도 그녀의 대학 입시 결과가 궁금하던 차였다.
원체 뭐든지 알아서 잘하던 동생이라 간섭은 못 했지만, 그래도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떡하니 합격 통지서를 가져오니 요한으로선 더없이 행복할 뿐이었다.
“으아아아, 오늘 정말 좋은 날이다!!”
“오빠, 목소리 너무 커!”
“으하핫, 그게 무슨 상관이야. 오늘만큼은 다 들으라고 해. 으하핫!!”
요한은 진심으로 기뻐했다.
자신은 공부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기에 상관없었지만, 동생만큼은 마음껏 공부시키고 좋은 대학교로 진학시키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 꿈이 드디어 이루어진 것이다.
‘내가 헌터가 되기 전이였다면, 이제부터가 시작이었겠지만. 이젠 다르지!’
그가 적극적으로 사회 활동을 하는 건 아니었다.
그래서 인맥 같은 것은 전무했다.
그러나 S급 헌터가 사회적으로 가지는 위치는 일반인이 생각하고 상상하는 것 이상이었다.
당장 대기업 근처에만 가도 알아보고 초대해서 어떻게든 차라도 한 잔하기 위해서 굽실거리기 일쑤였다.
‘굳이 내가 신경 쓰지 않아도 유나의 앞길은 탄탄대로지. 거기에다가 유나의 실력은 진짜니까.’
솔직히 요한은 유나의 공부 머리가 누굴 닮은 건지 이해할 수가 없을 만큼 그녀는 똑똑했다.
뛰어난 실력과 든든한 오빠 배경까지, 그녀가 하고 싶은 것을 눈치 보지 않고 얼마든지 펼칠 수 있는 환경이었다.
“자자, 이럴 때가 아니지. 유나야, 오늘 파티다!”
“와아, 내가 먹고 싶은 거, 하고 싶은 거 해도 되지?”
“그럼, 다 해. 유나 하고 싶은 거 다 해!”
“꺄아악!”
오늘만큼은 정말 유나가 해 달라는 대로 다 해 줄 생각이었다.
원한다면 빌딩도 사 줄 생각이었다.
이번 검은 날개 길드와의 승리로 총알은 충분했으니 말이다.
남매는 외출 준비를 마치고 즐겁게 놀기 위해서 밖으로 나갔다.
남매가 제일 먼저 향한 곳은 S호텔 레스토랑 VIP 라운지였다.
“어어?!”
호텔 측은 요한이 불쑥 등장하자 비상이 걸렸다.
“뭐?!”
특히 매니저는 얼굴은 새하얗게 질려 버렸다.
“다, 다시 말해 봐. 누가 왔다고?”
“기, 기, 김요한 헌터가 지, 지금로, 로비로 들어오고 있습니다. VIP 라운지를 쓰고 싶다고 합니다.”
“아오……!! 예약 좀 하고 오지!!
지, 지금 VIP 라운지 자리 있어, 없어?”
매니저는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이곳 S호텔은 대한민국에서도 TOP 3 안에 드는 고급 호텔이었다.
그래서 상당수의 정?재계 인사들이 제집 드나들 듯이 하는 명소였다.
그도 그럴 것이 관광지로선 그다지 매력이 없는 국가라 고급 호텔의 숫자가 적은 편이었기 때문이다.
그중에서 TOP 3만이 정식 5성급을 넘어 7성급 호텔이라고 평가 받았다.
그러니 돈 좀 있는 부호들이나 정치인들이 자주 들락거리는 것이다.
그런 높으신 분들을 대하면서도 단 한 번도 당황하지 않던 매니저가 당황하기 시작했다.
“예, 다행히 캔슬 하나가 나서 막 오프라인으로 채우려고 했습니다.”
“킵해서 김요한 헌터 드려.”
“예.”
“그리고 지금 주방 상태 어때?”
“예, 완벽합니다.”
“정말이야?”
“예, 조금 전에 부족한 것들 다 들어왔다고 보고받았습니다. 준비상태는 완벽합니다.”
“후우, 좋아. 모두 긴장하라고 하고, 절대 티끌만큼의 실수도 있어선 안 돼. 알았지?”
“예!”
“아, 젠장. 왜 예약을 안 하는 거야, 왜!!”
난다 긴다 하는 정?재계 인사를 수없이 만났던 매니저도 S급 헌터인 김요한 헌터란 말에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그는 현재 대한민국 최고의 인사라고 해도 전혀 부족하지 않았다.
거기에다가 러셀 가문이라는 세계 최고의 부호 가문을 배경으로 두고 있는 남자.
절대 소홀히 대할 수가 없었다.
‘잘하면 러셀 가문에게 잘 보일수가 있어. 하지만, 못 보이면 우린다 죽어!’
러셀 배경을 다 떠나서 ‘S급 헌터’, 이 하나만으로도 이런 대우는 충분하고도 남았다.
“뭐 해, 빨리빨리 움직이지 않고!!”
“예, 예!!”
S호텔의 직원들은 빠릿빠릿하게 움직였다.
혹시라도 요한 남매의 비위를 거스르지 않게 조심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달그락.
“우와, 오빠. 이 양고기 스테이크정말 맛있다. 전~혀 비린 맛이 없고 담백한 게 이렇게 맛있는 거 처음 먹어 봐.”
“괜찮지?”
“응, 정말 좋아.”
“여기 레스토랑이 프랑스 요리를 잘한다더라고. 그래서 우리 유나, 프랑스 요리 좀 먹이려고 왔지.”
“프랑스 요리라고 하면 막 달팽이 요리 같은 것도 나와?”
“음, 시키진 않았는데. 시킬까?”
요한이 막 호출 버튼을 누르려고 했다.
“스톱, 스톱!!”
“응?”
“싫어, 싫다고. 징그럽고. 으으, 상상만 해도 싫어. 혹시 나올까 봐물어본 거야.”
“아, 그래?”
“그래.”
“뭐, 알았어. 평소라면 주문했겠지만, 오늘은 유나 너를 위한 날이니까."
“그랬다간 내 주먹이 오빨 용서 안 하겠지만.”
“어이쿠, 미래의 판사님이 폭력을?”
“오빠 때리는 건 합법이거든요.
그것도 헌터 오빠면 더더욱!”
“네이, 네이. 킥킥.”
사이좋은 남매는 서로를 보며 웃었다.
똑똑.
“네.”
문이 열리고 한 정장을 입은 중년 남성이 들어왔다.
“안녕하십니까. S호텔 사장 이학종이라고 합니다.”
“어이쿠, 사장님께서 이곳까지 무슨 일로?”
“어허허, 무슨 일이라뇨. 대한민국 최고의 헌터이신 김요한 헌터께서 친히 왕림하셨는데. 제가 어찌 모른 척할 수 있겠습니까. 안 그래도 근처에 있다가 잠시 인사차 들렀습니다.”
“그렇군요. 반갑습니다.”
둘은 가볍게 악수를 하였다.
사장은 그렇게 오래 있지 않았다.
요한이 동생과 단둘이 있고 싶은 분위기를 풀풀 내뿜었기 때문이다.
눈치 빠른 사장이 그 신호를 알아차리지 못할 리가 없었다.
이런 간단한 신호조차 알아차리지 못했다면, S호텔이란 7성급 호텔 사장의 자리를 얻을 수가 없었을 테니까.
그렇게 사장까지 떠나고 다시 둘이 된 남매는 그동안 나누지 못했던 깊은 얘기까지 나누었다.
“자, 그러면 이제 어디로 갈까.
가고 싶은 곳 있어?”
“음…… 나, 나 TV에서 봤는데. 서울 시티투어란거 해보고 싶어.”
“서울 시티투어?”
“응, 외국인 상대로 하는 투어 행사인데. 내국인도 할 수가 있데.
우리 서울에 살지만, 제대로 된 서울 여행은 한 번도 안 해봤잖아.”
“……오케이, 하자.”
“꺄악! 오빠, 최고!”
19장. 새로운 단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