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
처음 보스 몬스터를 언데드화 시키는 데 실패했을 때는 우연인 줄 알았다.
하지만 그 후에도 몇 번이고 보스 몬스터를 일으키는 데 실패한 요한은 뭔가 방해 요소가 있다는 것을 확신할 수가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결국, 보스 몬스터 1기를 손에 넣는 데 성공했지만 말이야.’
그게 바로 리치 사무엘이었다.
언데드 군단이 슬슬 모습을 드러내자, 검은 날개 길드 쪽에서도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잠시 리치의 등장에 깜짝 놀라긴 했지만, 그들은 정예 헌터였다.
강력한 정신력으로 굳건히 무장한 그들이 쉽게 넋을 놓을 리가 없었다.
“킁, 네놈에 대한 조사는 다 끝났다. 이 아무것도 없는 벌판에선 언데드가 더는 나올 수가 없지.”
“흐흐흐, 네놈은 끝이다.”
사실 어떻게 보면 이번 길드전의 조건만 보면 검은 날개 길드가 밑지는 장사였다.
서로 건 조건을 잘 보면 검은 날개 길드는 요한을 요구했다.
즉, 요한이 죽으면 아무것도 얻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요한은 돈과 사과를 요구했다.
이번에 참여한 공격대대원 전부를 죽여도 검은 날개 길드는 존재하기에 4조 원의 현금과 사과를 뜯어낼 수가 있었다.
이하응은 아무래도 좋았다.
기본적으로 요한을 제압하지만, 여의치 않을 때는 제거해도 된다는 명령을 내려놓은 상태였다.
‘얻을 수 있으면 얻고, 얻을 수 없다면 죽이는 것도 나쁘진 않지.’
현재 국민 영웅으로 추앙받는 요한이라, 죽였을 때 여파는 좀 있겠지만, 어차피 그들은 아무것도 안해도 욕먹는 기득권층이었다.
굳이 여론을 생각하며 움직일 필요까지는 없었다.
그러니 밑지는 장사여도 요한을 죽이는 것만으로도 나쁜 장사는 아니었다.
“누가 이게 끝이래?”
하지만 요한은 여전히 여유로운 태도였다.
그리고 입가를 올리며 비릿하게 웃었다.
“뭐?”
검은 날개 소속 거한은 요한의 태도에 미간을 찌푸렸다.
지금 웃어야 할 쪽은 이쪽인데 오히려 요한이 여유 만만하니 어이가 없었다.
“이 자식이 죽고 싶나."
“아직, 경기 시작 전이라고. 그리고 다시 묻지만, 누가 끝이라고?”
“뭐?”
척!
요한이 손을 들었다.
"음?"
댕-! 댕-! 댕-!
그때 경기를 알리는 종소리가 울렸다.
그와 동시에 검은 날개 길드 대원들이 움직이려고 했다.
구르르릉-!
“뭐, 뭐야?”
하지만 갑자기 그들 주변에서 지진이 발생했다.
“지, 지진?!”
“지금, 이때?”
“아, 아니야. 이건 지진이 아니야. 땅 밑!!”
콰강-!
“으엇!”
땅속에서 팔이 쑥 올라왔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검은 날개 길드 대원들도 깜짝 놀랐다.
“어, 언데드다!!”
“왜, 갑자기 땅속에서!!”
“이런, 젠장!!”
그야말로 허를 찌르는 기습이라고 할 만했다.
“오오!!”
“저거 뭐야?!”
“갑자기 언데드가 땅에서 올라왔어!”
관객들은 보기 드문 광경에 놀라워했다.
대부분 검은 날개 길드에게 돈을 건 사람들이었지만, 이 정도 기습으론 혼란은 주더라도 이길 수 없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저 압도적인 언데드의 등장에 놀라워할 뿐이었다.
“언데드를 처리해!”
“예!”
이하응의 간단한 명령에 대원들은 빠르게 무기를 휘둘렀다.
콰강-!
거한이 휘두르는 배틀 엑스 한방에 스켈레톤 수 기가 동시에 박살 났다.
‘흠, 확실히 강하네.’
요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여전히 여유 만만한 태도였다.
이 정도는 이미 예상했기 때문이다.
‘어차피 이번엔 기습과 전력 탐색 정도니까.’
시체는 여전히 많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지난 일주일간 평소처럼 혼자 다니지 않았다.
솔로 사냥 이후 처음으로 짐꾼회사를 고용했다.
엄청난 규모의 고용이었다.
그리고 몬스터 사체를 주기적으로 밖으로 날라서 이 근처에 파묻었다.
하지만 그 정보는 조금도 새어 나가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가 고용한 짐꾼 회사는 바로 한국에 진출한 영국계 회사였기 때문이다.
회사 이름은 ‘러셀 서포트 컴퍼니’ 줄여서 RSC였다.
이름에도 나와 있다시피 러셀 가문의 회사로 그들이 굳이 한국 협회에 보고할 이유도, 정보가 샐 이유도 없었다.
요한이 특별히 엘레노아에게 부탁해 영국인들로만 추려서 작업한 것이었다.
덕분에 이 필드엔 몬스터 시체로 가득했다.
언데드를 끊임없이 생산해 낼 수가 있었다.
“술사를 노려라. 언데드를 상대하는 건 시간 낭비다.”
“예!!”
“가자!!”
파박-!
‘어딜. 시체 폭발!!’
콰앙-!
“크아아악!!”
“제기랄, 성가셔 죽겠군!!”
시체 폭발 스킬은 정말 예측이 불가능한 공격 스킬이었다.
보통의 공격 스킬처럼 궤도를 그리며 날아오는 게 아니라, 근처에 널려 있는 시체를 폭발시키는 것이었다.
시체가 제한적이라면 모를까, 이렇게 주변에 널려 있을 때는 어느 시체가 폭발할지 알기란 불가능했다.
하지만 상대 헌터도 상급 헌터들.
시체 폭발에 당하긴 했지만, 크게 다치지는 않았다.
“회복!”
그리고 이쪽은 밸런스가 좋은 공격대였다.
귀한 몸이긴 했지만, 검은 날개 길드엔 힐러가 많았다.
그중에 가장 실력 좋은 힐러가 1팀에 포함되어 있었다.
“크아, 아파라. 어이, 혹시 턴 언데드 같은 스킬 없냐?”
“없다. 그건 성기사나 성직자 클래스나 있는 거야. 난 힐 특화라고.”
“예이, 예이. 혹시나 해서 물어봤다.”
검은 날개 길드 쪽도 여전히 여유가 있었다.
요한의 스킬들은 매서웠지만, 아직 치명적이진 않았기 때문이다.
‘자, 그러면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해 볼까.’
지금까진 환영 인사 겸 몸풀기였다.
이젠 정말 본격적으로 나설 차례였다.
“사무엘.”
[예, 나의 주인이시여.]
그의 새로운 최강 전력인 사무엘.
사무엘은 순수 네크로맨서가 아니었다.
물론 네크로맨서는 네크로맨서이나 요한처럼 언데드에 특화된 클래스가 아니었다.
언데드보단 시체술과 저주, 그리고 공격 마법에 더 특화된 마법사계통이었다.
[모든 생명체엔 한기가 돌 것이다. 아이스 포그!]
촤아아악-!
사무엘의 손끝에서 시작해 엄청난 안개가 주변으로 깔리기 시작했다.
“뭐, 뭐야?!”
“이, 이러면 안 보이잖아!!”
웅성웅성.
특히 관객들이 가장 피해가 컸다.
즐거운 시간을 위해서 온 것인데 안개로 시야가 꽉 막혀 버린 것이다.
“흥, 이딴 잔재주를!”
“이예지!”
“네, 네. 알겠다고요. 거참, 열심히 일하는 사람한테 왜 성질이야.”
검은 날개 길드 공격대에 유일한 마법사인 이예지는 주문을 외웠다.
“나의 시야를 탁 틔워 주오. 원드 스윙!”
안개를 걷으려 강력한 돌풍 마법인 윈드 스윙을 사용했다.
휘이이잉-!
“꺄아아악!!”
“바, 바람이 너무 세!!”
이번에도 관객들이 난리였다.
지금까지 벌어졌던 어떤 길드전보다 강력한 전력이 투입된 길드전이었다.
조금 떨어져 있긴 했지만, 그렇게 많이 떨어져 있지는 않아서 광범위한 스킬엔 곧바로 영향권 안에 들어왔다.
치명적인 마법이나 스킬은 방어전문 헌터들이 막아 줄 것이다.
하지만 이런 별 피해 없는 스킬까진 막아 주지 않았다.
“어, 어?”
“안개가 걷히질 않아!!”
“뭐, 뭐야?!”
“젠장!!”
“아무것도 안 보이는 안개 속에서 언데드와 난전을 벌여야 한다니!”
시야가 협소하니 요한을 중점으로 노리는 계획에도 차질이 생길수밖에 없었다.
“모두 진정하고, 기운을 느껴라.”
“예.”
하지만 이하응이 나서서 독려하자 금방 진정이 되었다.
S급 헌터인 이하응은 능력도 능력이지만, 그의 굳건한 태도는 다른 헌터들에게 신뢰를 주기 충분했다.
그저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도 사기가 치솟았다.
대원들이 차분하게 대처하기 시작하자 분위기는 금방 가라앉았다.
딱딱딱.
“그어어어!”
그러면서도 언데드 군단의 공격은 계속되었다.
“이 빌어먹을 시체 따위가!!”
죽여도 죽여도 계속 밀어붙이는 언데드 파도에 화가 난 거한이 도끼를 크게 휘둘렀다.
캉-!
“어, 어?”
하지만 그의 도끼가 갑자기 막히고 말았다.
“흐흐흐. 내가 왔다, 이것들아.”
“너, 넌 뭐야?!”
거한의 도끼를 막은 것은 바로 듀라한 류페이였다.
그녀의 검이 거한의 도끼를 막아세웠다.
빠직!
그는 도끼질만큼은 대한민국 최고를 자부했다.
물론 S급 헌터 중에서 도끼질하는 헌터가 없어서 근거 있는 자신감이긴 했다.
“뭐야, 듀라한 처음 보냐. 어?!”
여전히 거친 언행의 류페이였다.
“이 빌어먹을 언데드 따위가!”
후웅!
도끼가 막혀 화가 잔뜩 난 거한이 더 강력하게 도끼를 휘둘렀다.
“흥, 어딜!”
캉캉-!
둘의 검과 도끼가 얽혀 들어갔다.
“흐흐, 괜찮은 실력을 갖추고 있구나. 무식하게 생겨선.”
“뭐, 뭐야?!”
“으하하핫!!”
“거기 서!!”
듀라한이 웃으며 옆으로 빠지자 화가 난 거한이 듀라한을 따라갔다.
“자리를 지켜, 어딜 가!!”
급히 주변 헌터 몇 명이 거한을 말리기 위해서 움직이려고 했다.
콰가강-!
“크악!”
“으윽!”
하지만 주변의 시체가 폭발하고 땅속에서 언데드가 추가로 올라오며 그들의 움직임을 막았다.
[으헤헤헷, 먹잇감들이다.]
[육체를 차지하고 싶어!]
“큭, 저것들은 또 뭐야!”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하늘에선 고스트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들이 내지르는 소리엔 정신 착란을 일으키는 음파가 실려 있었다.
“윽!”
“머, 머리가.”
당장은 정신이 붕괴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들은 베테랑 A급 헌터로 레벨도 높아서 지혜와 지능 스탯이 높았다.
이런 음파 공격에 저항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다만, 이게 지속이 된다면 어떻게 될지 장담할 수가 없었다.
순식간에 요한이 원하는 판으로 만들어지고 있었다.
‘전쟁터 한복판에서 네크로맨서가 있으면 얼마나 무서운지 제대로 보여 주지.’
이 함정을 파기 위해서 그는 무려 100억 가까이 투자했다.
물론 소모가 아니라 투자였다.
이 투자가 성공한다면 무려 4조원이라는 엄청난 거금을 손에 넣을테니 말이다.
‘자, 그러면 2단계 가 보실까. 물론 그 전에 녀석이 움직이겠지만.’
“사무엘!”
[예, 주인이시여.]
“움직여.”
[예, 알겠습니다.]
리치 사무엘은 요한의 명령이 떨어지자 양팔을 좌우로 벌려서 마법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당했군.’
이하응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그저 일주일간 사냥이나 열심히 다닌 것과 달리, 요한은 철저하게 길드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설마, 미리 시체를 파묻었을 것이라곤 조금도 추측하지 못했다.
"그으으."
촤악-!
‘하지만, 이런 잔재주가 나에게 통할까?’
그러나 여전히 그는 자신이 진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잔재주는 잔재주에 불과하지.’
스르릉-.
그의 손과 팔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드디어 본격적으로 움직일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