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러셀 길드 쪽에선 아무도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황한 길드전 관리자는 요한에게 다가갔다.
“저…… 김요한 헌터님, 러셀 길드 쪽에선 사람이 더 안 오는 겁니까?”
“네, 저 혼자인데요. 길드전 시작안 합니까. 기다린 지 꽤 오래된 거 같은데.”
“아, 저, 그, 그게……."
관리자는 당황했다.
길드전이 시작하지 않은 것은 어디까지나 요한의 나머지 공격대 대원들을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히려 역으로 왜 시작을 안 하냐고 물은 것이다.
“저, 정말 혼자십니까?”
“네, 러셀 길드 2팀의 멤버는 저 밖에 없습니다.”
1팀은 엘레노아가 마스터 겸 팀장으로 있었고, 그가 2팀의 팀장을 맡고 있었다.
그러니 다른 공격대라고 할 수 있는 그녀가 이번 길드전에 참가할 이유는 없었다.
물론 엘레노아는 깊은 우려를 표했다.
원한다면, 본인의 공격대를 전부 빌려줄 수도 있다고 했다.
하지만 요한이 거절했다.
‘좀 더 확실하고 처절하게 복수를 하려면 나 혼자 싸우는 게 좋지. 나도 그게 편하고.'
솔직히 처절하게 복수는 부차적인 문제였다.
워낙 혼자만 싸우다 보니 오히려 팀원이라고 하면 더 거추장스럽게 느끼는 요한이었다.
마음 편히 확실히 싸우기 위해선 오히려 팀보단 개인이 더 낫다는 판단에 당당히 혼자 나온 것이다.
“그, 그렇군요.”
관리자는 몇 번이고 더 물었지만, 대답은 바뀌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임시로 설치된 방송실로 가서 이 사실을 알렸다.
“뭐, 뭐라고?!”
“미친?!”
“지금 김요한 저 X끼, 제정신이야?!”
“내가 이 판에 얼마를 걸었는데!!”
“으아아악, 취소해 줘. 취소해 줘!!”
사람들은 난리가 났다.
이번 길드전엔 당연한 듯이 꽤 큰 내기가 걸려 있었다.
보기 드문 일에 도박사는 물론이고 일반 시민들까지 대거 참여해 러셀 vS 검은 길드에 걸었다.
그런데 요한이 혼자만 달랑 나타나자 요한에게 걸었던 사람들은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 버렸다.
다행히 길드전 배팅 규칙에 따르면 대결이 시작하기 전까진 취소 및 변경을 할 수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대거 몰려가 배팅을 바꾸려고 했다.
까딱.
요한은 그런 사람들의 모습을 보곤 턱을 까딱거렸다.
“저러는데. 조금 더 있다가 시작하죠?”
“끄응, 알겠습니다.”
어쩔 수가 없었다.
지금 시작해 봤자, 혼란만 더 부추기는 꼴이 될 테니 말이다.
어쩔 수 없이 협회 측에선 한 시간 30분 후에 길드전을 시작하겠다고 알렸다.
검은 날개 길드 측은 어이가 없었지만, 참기로 했다.
“이, 이때다. 어서 베팅을 바꿔야 해!!”
정말 많은 사람이 이번 길드전베팅을 러셀 길드에서 검은 날개 길드로 변경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공격대 VS 공격대였다면 러셀의 이름에 기대를 걸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 길드전은 공격대 VS 공격대가 아니라 김요한 VS 공격대였다.
그것도 대한민국 5대 길드라 불리는 검은 날개 길드의 최정예들을 상대로.
"흠흠."
그런 소란스러운 반응에도 요한은 그저 근처 바위에 기댄 채 가로로 눕힌 스마트폰만 흥얼거리며 만졌다.
"......."
이하응은 그런 요한을 조용히 노려보았다.
약 1시간 30분이 지나자 순식간에 배당률이 1.5:2.6에서 1.1:128.3이 되었다.
검은 날개 길드가 이긴다고 해도 딱히 이득 볼 게 없었다.
하지만 요한이 이긴다면 무려 128.3배의 돈을 손에 쥘 수가 있었다.
요한에게 건 사람들은 역배당만 하는 일명 역배꾼들이 대다수였다.
"......."
그리고 아무도 몰래 이번 길드전을 관람하러 온 엘레노아도 요한에게 건 상태였다.
그녀는 모자를 푹 눌러쓰고 선글라스에 마스크까지 끼고 있어서 아무도 그녀를 알아보지 못했다.
그냥 웬 몸매 좋은 외국인 여성이라고 인식할 뿐이었다.
그렇게 준비까지 다 끝나자 본격적으로 길드전을 시작할 수가 있었다.
관리자는 요한에게 다시 한번 물었다.
“정말로 혼자십니까. 더 오실 분은 없습니까?”
“네, 없습니다.”
단호한 대답.
웅성웅성.
“미친 거 아니야?”
이미 알고 배팅까지 바꾼 사람들이었지만, 요한의 태도에 말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상대가 어중이떠중이 길드도 아고 무려 5대 길드 중 하나인 검은 날개 길드였다.
그것도 S급 헌터이자 마스터인 이하응이 직접 이끄는 공격대를 상대로 혼자 싸우려고 들다니.
사람들은 진지하게 요한이 미친게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어떻게 검은 날개 길드를 상대로 저렇게 나올 수가 있지?”
“하아, 정말 오랜만에 볼만한 이벤트가 발생했다 싶었더니 그냥 미친X의 활극이었군.”
김이 빠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의 반응에 아랑곳하지 않고 길드전은 진행되었다.
“양쪽 길드원분들은 중앙으로 집결해 주시길 바랍니다.”
“흥, 마스터. 빨리 끝냅시다. 겨우 혼자 아니오. 순식간에 끝내고 녀석에게 우리의 노예가 되라고 해줍시다.”
검은 날개 길드가 길드전에 건 조건은 아주 간단했다.
향후 10년 동안 검은 날개 길드에서 무급으로 노예 생활을 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인심 쓰듯이 숙식은 제공하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알다시피 그건 절대 인심을 쓰는 게 아니었다.
어쨌든 검은 날개 길드의 조건은 이것이었고, 요한의 조건 역시 간단했다.
10년을 무급으로 노예 생활을 하라고 했으니 그 10년 치 연봉에 해당하는 4조 원과 정식 사과였다.
아무리 검은 날개 길드가 5대 길드라고 해도 4조 원의 현금을 마련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또 그것을 누군가에게 공짜로 주게 된다면, 길드에 막대한 피해가 생길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5대 길드원이라는 자긍심으로 똘똘 뭉쳐 있는 그들은 패배를 걱정하지 않았었다.
그래도 경계했던 혹시나 엘레노아가 나올 수도 있다는 우려가 사라진 지금.
그것도 공격대도 아니고 요한 단 1명이었다.
걱정하는 게 더 문제가 있는 일이었다.
우드득.
“마스터, 빨리 처리하고 갑시다.
배고파요.”
“저도요.”
“흐흐흐흐.”
검은 날개 길드원들은 그야말로 여유가 철철 넘쳤다.
“자, 그러면 지금부터 길드전을 시작하겠습니다. 규칙은 간단합니다. 죽거나 항복하면 패배합니다.
이의 있으십니까?”
“없습니다.”
“없습니다.”
요한과 이하응이 동시에 대답했다.
“그럼 서로 100m 정도 떨어진 부분에서 경기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종이 울리면 시작입니다.”
끄덕.
고개를 끄덕이고 서로 살짝 노려보곤 멀어졌다.
그렇게 100m의 간격을 두고 서로 마주 보았다.
“내가 녀석의 먹을 따 버리겠어.”
후웅.
커다란 배틀 엑스를 들고 있는 남성이 말했다.
참고로 검은 날개 길드 이하응직속 공격대의 대원들은 100% A급 헌터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야말로 정예 중의 정예였다.
S급 헌터만큼은 아니더라도 A급 헌터는 어디 가서 결코, 꿀릴 입장이 아니었다.
소규모 길드에선 마스터를 할 정도로 귀한 인력이었다.
그래서 보통 길드에선 A급보단 B급 헌터가 주 전력이었다.
그런 귀한 인력을 15명 공격대로 꽉꽉 채운 게 바로 검은 날개 길드제1 공격대였다.
물론 제2 공격대로 넘어가면 A급보단 B급이 주력이 된다.
하지만 그들도 다 뛰어난 헌터였다.
휘이이잉.
두 팀 사이엔 바람이 불었고, 긴장은 고조되었다.
먼저 움직인 것은 요한이었다.
스윽그는 팔을 들었다.
그리고 속으로 스킬을 사용했다.
‘나와라, 리치.’
쿠릉.
살짝, 대기가 떨리면서 요한의 주변으로 검은 연기가 뿜어졌다.
그리고 허공에서 로브를 입은 해골인 리치가 모습을 드러냈다.
“저, 저건?”
“잠시만, 설마?!”
콰당!
귀빈석 의자 몇 개가 넘어졌다.
리치의 모습이 드러나자마자 검은 날개 길드원들은 물론이고 협회관계자들도 깜짝 놀라고 말았다.
다만, 일반인들과 하급 헌터들은 얼떨떨했다.
주변 유명한 헌터들이 놀라는 이유를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저, 저, 저, 저게 어, 어, 어떻게?!”
리치를 알아본 모두의 공통된 반응이었다.
“어떻게 저 리치가 저기에 있어!!”
흥분한 협회 간부 몇 명은 거의 발작하듯이 소리쳤다.
길드전 뉴스가 터지기 직전까지만 해도 역시 가장 큰 이슈는 뭐니 뭐니 해도 묘지 포탈의 소멸이었다.
기존의 미세 포탈을 제외하면 포탈이 파괴된 경우는 정말 오래된 기록을 제외하면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멀쩡하던 포탈이 하루아침에 소멸한 것은 정말 큰 이슈가 아닐 수 없었다.
지금 전 세계가 연구하고 여전히 인터넷에선 그 관련 토론이 적극적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소멸된 묘지 포탈의 보스 몬스터였던 리치가 일개헌터의 소환체로 등장했다.
헌터 짬 좀 먹었다는 양반들이 이 사태를 이해하지 못하면 상급 헌터로서 자격 자체가 없는 것이었다.
“진정하시오. 길드전이 막 시작했을 뿐. 이번 길드전이 끝나면 물어봅시다.”
“만약에, 만약에. 저자가 죽으면 어찌합니까?”
"......."
물론 길드전에서 살상은 비도덕적인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살인이 불법이냐?
그건 또 아니었다.
길드전은 어디까지나 목숨을 걸고 하는 길드끼리의 자존심이 걸린 일이었다.
물론 그 때문에 이제 거의 유명무실해졌지만 말이다.
어쨌든 요한이 적절할 때 항복을 한다면 살 수 있을지 몰라도 조금만 고집을 부리면 죽을 수도 있었다.
“제기랄!!”
그들은 100% 요한의 패배를 확실시하고 있었다.
요한의 스킬은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여기 있습니다. 나의 주인이시여.]
기존에 위저드가 하던 일은 리치가 대신했다.
리치는 공손하게 요한에게 마검요룬을 건넸다.
그리고 스태프는 본인이 사용했다.
원래라면 리치도 요한이 최초로 받은, 위저드가 사용하던 스태프를 써야 했다.
하지만 안타깝게 그 스태프는 위저드와 함께 파괴됐다.
여기서 아무리 헌터라도 연봉이 높아도 가난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드러났다.
헌터 장비는 정말, 정말, 정말 매우 비쌌다.
그런데 그 장비는 반쯤 소모품이었다.
중간중간에 수리를 꾸준히 해 준다면 더 오래 쓸 수가 있다.
하지만 수리비도 장난이 아닌데다가, 문제는 수리를 잘하더라도 전투 중에 과도한 충격으로 파괴되는 것은 어떻게 막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여유가 있는 헌터는 보통 예비용 무기를 가지고 다녔다.
어쨌든 위저드가 가지고 있던 스태프가 부서지는 바람에 요한은 스태프를 리치에게 주고 마검 요룬만 착용했다.
근접전을 하지 않는 요한이 검을 들고 있다니.
어쨌든 장비도 들었겠다, 본격적으로 스킬을 사용했다.
‘모습을 드러내라, 나의 언데드들이여.’
지잉- 지잉-!
딱딱!
“그어어어억!!”
지금까지 획득한 수준 높은 언데드들만 추리고 추려서 보관한 녀석들이었다.
특히 맨 앞에서 딜탱 역할을 하는 오거 구울이 가장 위력적이었다.
‘보스 몬스터인 트윈 헤드 오거를 구울로 못 만든 게 한이긴 했지.’
누군가의 장난인지 보스 몬스터를 함부로 언데드화 시키지 못하도록 만들어 두었다.
‘역시, 이런 것만 봐도 포탈은 확실히 누군가의 농간이야. 그게 신이든, 절대자이든 말이야.’
이번 일로 뭔가 포탈에 관한 비밀로 한 발자국 나아간 기분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