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요한이 특별히 방송사와 협의해 출현한 〈9시 뉴스 데스크〉에서 인터뷰 시간에 대형 사건을 터트려 버린 것이다.
[A 사이트 커뮤니티]
- 대박, 방금 봤음?
- 김요한 헌터가 검은 날개 길드에 길드전을 선포했어!!
- 헐, 이게 얼마만의 길드전이야.
- 대박, 대박!
- 정말 오랜만에 길드전 중개하겠네?
- 꼭 현장에서 볼래!!
길드전.
어떻게 보면 유명한 행위이며 껍데기만 남은 향수를 부르는 일이기도 했다.
아주 오래전에 협회의 주관으로 만들어진 이것은 옛날엔 꽤 많이 이행됐으나 지금은 거의 진행되지 않는 행사였다.
규칙은 간단했다.
길드 소속의 누군가가 분쟁이 있는 길드에 도전을 명시한다.
그리고 해당 길드가 도전을 받아들이면 합의서를 작성하고 공격대 간에 전투를 벌였다.
패배자는 합의서를 충실히 이행해야 했다.
한마디로 결투 시스템이란 뜻이었다.
일본은 이 결투가 스포츠 형식으로 벌어졌지만, 한국에선 갈등 해소 방식이었다.
하지만 어느새 이 길드전은 잘벌어지지 않았다.
워낙 격렬한 전투다 보니 사망자가 속출했고 길드전을 받아들이지 않는 경우가 더 많았기 때문이다.
어디까지나 이 길드전은 상호 합의에 따라서만 진행되기 때문이었다.
싸워서 얻는 득보다 실이 많아서 어느 때부터인가, 아무도 길드전을 걸지 않기 시작했고 설사 누군가 걸더라도 굳이 받아 주지 않았다.
길드전은 보통 개인의 실력은 있으나 조직 능력이 부족할 때 많이 사용하던 방식이었다.
하지만 조직 능력이 뛰어난 쪽은 개인 대결보다는 조직의 힘으로 누르는 게 더 효율적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들에게 길드전은 아무 의미가 없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길드전은 잊힌 행사가 되었다.
요한이 그 잊힌 행사를 언급한 것이다.
그것도 파격적으로 검은 날개 길드에 도전장을 내밀면서 말이다.
안 그래도 모든 이목이 검은 날개 길드로 집중되었던 차였다.
폐쇄적이고 조용히 운영하는 5대길드 특성상 굉장히 이례적인 관심이었다.
언론사와 방송사는 이번 일을 대서특필하며 집중 보도했다.
***
‘길드전이라…… 제법 머리를 잘 썼군, 김요한.’
이하응은 본인의 사무실에서 사색이 빠졌다.
이번 사건을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고민이 들었기 때문이다.
만약에 평소였다면 100% 거절했을 것이다.
길드전으로 그가 얻을 수 있는 게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무조건 거절할 수가 없었다.
‘이렇게 된 이상 받아들일 수밖에 없겠지.’
다른 사람은 몰라도 검은 날개 길드를 습격한 의문의 존재들 배후에 요한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유일한 존재가 그였다.
안 그래도 녀석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나 고민하던 중이었다.
‘무슨 생각인지는 몰라도 네놈은 실수했다.’
길드전에선 상대방을 죽여도 범죄가 성립하지 않았다.
일각에선 비인간적이라는 말도 많았다.
하지만 그건 일반인 기준이고 헌터들 사이에선 어차피 강제 사항도 아니었기에 크게 문제 삼지 않았다.
그리고 워낙 죽음과 가까이 살아가는 존재들이다 보니 죽음에 살짝 무감각해진 탓도 있었다.
물론 누구보다 죽기 싫어하는 게 헌터란 존재였지만 말이다.
‘이거, 사람을 너무 얕봤군. 먹을 수 없어도 고겠어.’
그날 검은 날개 길드는 공식적으로 요한의 길드전 신청을 받아들이기로 했다는 것을 발표했다.
당연히 분위기는 후끈 달아올랐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한 헌터와 5대 길드 중의 하나인 검은 날개 길드와의 전면전이었다.
자극적인 것을 병적으로 좋아하는 대중들이 환호하지 않을 이유가 전혀 없었다.
방송국에선 이번 길드전을 중개하기 위해서 발 벗고 나섰다.
국내 방송사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 방송사들도 한국의 길드전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역대급 대결이라고 여겨지는 게 당연했다.
물론 요한이 벌였던 사사키와의 1:1 전투와는 그 궤가 달랐다.
이번 대결은 길드전이라는 단체전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주목을 받는 것이기도 했다.
개인전보다 단체전이 볼 게 더 많았으니까.
장소도 정해졌다.
바로 과거 휴전선이 있던 비무장지대였다.
아무래도 S급 헌터가 참가하는 단체전이다 보니 실내보단 주변에 아무것도 없는 실외가 적합하다는 게 헌터 협회의 판단이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길드전의 책임자는 바로 협회였다.
길드전 자체가 협회에서 마련한 갈등 해결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날짜는 일주일 뒤, 당연히 이 시기에 입단한 길드원은 참가가 불가능했다.
긴급하게 상급 헌터를 용병으로 데리고 오는 것을 막으려는 조치였다.
어쨌든 대한민국은 이번 길드전을 중심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
씨익.
‘역시 받아들였네.’
요한은 인터넷 뉴스로 이 모든 사실을 실시간으로 확인했다.
그는 처음엔 지속적인 습격으로 검은 날개 길드를 내부에서 무너뜨리려고 했다.
하지만 검은 날개 길드가 바보도 아니고 언제까지 기습에 당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럴 바에야 차라리 합법적으로 검은 날개 길드를 뜯어낼 방법을 생각한 것이다.
‘굳이 내가 녀석을 죽일 필욘 없지. 검은 날개 길드를 5대 길드에서 내려오게 할 만큼의 타격만 줘도 난 성공이니까.’
그리고 만약에 이렇게 합법적인 방법으로 검은 날개 길드에 큰 타격을 줄 수 있다면, 역으로 그의 명성은 더 상승할 것이었다.
‘녀석들의 명성이 떨어지는 만큼, 내 명성은 상승하겠지.’
아무도 몰래 무너뜨리는 것도 좋겠지만, 실리를 취하면서 복수하는 것도 매력적이었다.
요한은 날짜가 정해진 순간부터 24시간 훈련 모드로 진입했다.
낮엔 포탈에서 사냥하고, 밤엔 각성몽에서 코딩 작업을 했다.
특히 각성몽에서 현재 그가 가장 신경 쓰고 있는 스킬은 바로 시체 제공 스킬의 리마스터였다.
‘이 스킬은 확실히 저렙 구간에선 쓸모가 많았어. 초반 언데드 수급이 어려울 때 기본적인 스켈레톤을 안정적으로 공급해 줬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딱히 시체 수납 때문에 필요가 없어졌어.’
그렇다고 이 유용한 스킬을 그냥 낭비할 수는 없었다.
아주 다행스럽게도 요한에겐 프로그램 특성으로 스킬을 원하는 방식으로 코딩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그러니 시체 제공 스킬을 리마스터하는 것도 어느 정도는 가능했다.
‘아예 새로운 스킬은 불가능하지만, 시체 제공 스킬의 틀을 유지하는 선에서는 어떻게든 할 수 있지.’
그리고 요한이 하려는 것도 이 시체 제공의 기본적인 느낌은 들고 갈 예정이었다.
‘어디 보자, 일단 시체를 다룬다는 개념은 그대로 두고. 아, 시체 수집 스킬을 통해서 여기에 넣고, 필요할 때 꺼내 쓸 수 있다면?’
지금까진 시체를 따로 넣었다 뺐다 할 수 있는 시스템은 없었다.
시체 수납은 완성된 언데드를 보관하는 것이고, 시체 수집은 단순히 시체를 흡수해 언데드를 강화하는 스킬에 불과했다.
‘그래, 스킬을 굳이 1개만이 아니라, 2개 이상의 스킬을 연계 코딩할 수 있다면?’
문득 그런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그가 서버나 특성 어플을 코딩할 때도 그랬다.
별도의 어플이나 프로그램을 교차 코딩하면서 서로의 장단점을 보완하려는 시도가 많았다.
단, 그럴 때마다 버그가 잘 터져서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하지만 스킬 트리는 지금까지 자잘한 버그도 없었잖아?’
그게 가장 중요했다.
프로그래밍할 때 가장 골치 아픈건 역시 완성해도 끊임없이 발생하는 버그였다.
하지만 그가 지금까지 스킬을 코딩하면서 단 한 번도 버그가 난 적이 없었다.
덕분에 자신 있게 스킬 코딩 작업에 착수할 수가 있었다.
그가 중점적으로 보고 있는 스킬은 ‘시체 수집’과 ‘시체 제공’이었다.
‘시체 수집으로 획득한 시체를 내가 원하는 시점에 시체 제공 스킬로 나오게 한다면?’
그렇게 되면 보유 언데드가 0이 되었을 때 공짜로 시체가 나온다는 설정은 사라질 것이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선 그 부분은 그닥 매력적인 요소가 아니었다.
‘수집한 시체를 사용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대박이지.’
구상하고 나니 정말 좋은 수정사항 같았다.
삭삭-!
그의 손이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단순 노가다 부분이 많긴 하지만, 최대한 빨리 끝내야지.’
그의 눈빛이 열정으로 활활 불타기 시작했다.
***
일주일이 지나고 길드전 당일이 되었다.
웅성웅성.
[아아, 치맥 팔아요. 치맥. 깨끗한 기름에 튀겨서 맛이 아주 좋습니다!]
(구)DMZ 지역은 정말 오랜만에 사람들로 가득 찼다.
이런 성수를 놓칠세라 다양한 노점 상인들과 푸드 트럭들도 손님맞이로 인산인해였다.
왜 아니겠는가, 적폐라고 손가락을 받을지언정 대한민국을 이루는 거대한 5개의 기둥 중 하나인 검은 날개 길드.
그리고 다른 한쪽은 최근 가장 뚜렷하고 무서운 성장세를 보이는 초신성 길드인 러셀 길드.
그 두 개의 세력이 강하게 맞부딪히는 대결이었다.
살면서 이런 구경 한 번이라도 할 수 있을지 모르는 일.
제주도, 부산 가리지 않고 다양한 사람들이 이번 행사에 참석했다.
역사에 남을 수 있는 대형 이벤트를 두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에 감사하며 말이다.
그리고 곧 양쪽 참가자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오, 온다.”
“검은 날개 길드다!!”
“와아아아!!”
평소엔 적폐라고, 기득권층이라고 욕하던 사람들도 지금만큼은 환호와 박수갈채를 보냈다.
덜컥.
차 문을 열고 나온 이들은 어디까지나 자신들을 즐겁게 해 줄 선수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잠시 뒤, 차 1대가 다른 쪽에서 다가왔다.
“응, 뭐야?”
“왜 1대뿐이야?”
길드전에 참가 가능한 1개 공격대 멤버는 최대 15명이었다.
그 이하로 꾸리는 건 괜찮지만, 15명이 넘어가면 반칙이었다.
그러니 2인승인 스포츠가 1대만 오는 건 말이 안 되었다.
“먼저 온 건가?”
“뭐, 그럴 수도 있겠네.”
역시 스포츠카에서 내린 건 요한 1명뿐이었다.
“스읍, 누가 올까?”
“크으, 러셀 길드 마스터인 엘레노아가 오면 대박인데.”
“스읍, 아. 침 나온다. 화면으로 봤을 때도 환상적인 미모였는데.
실제로 보면 얼마나 예쁠까. 흐흐흐.”
“야야, 네 주제에 무슨.”
“뭐, 꿈꾸는 것도 내 마음대로 못 하냐!”
“아니, 열심히 하라고. 흐흐.”
“흐흐흐.”
그렇게 사람들은 러셀 길드의 마스터인 엘레노아를 기대했다.
왜냐하면, 보통 5대 길드라도 S급을 마스터까지 해서 2명 보유하는 건 거의 힘든 일이었다.
왜냐하면, S급 헌터라면 대부분 길드 마스터나 하려고 하지, 누구의 밑에서 일하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요한은 정말 특이한 케이스였다.
그렇게 1길드, 1 S급이다 보니 길드의 수준은 그 밑의 A급 헌터들의 수준과 양에 따라서 정해지는 게 보통이었다.
물론 S급 헌터인 마스터의 수준도 고려하는 것이고.
그래서 러셀 길드가 초신성 소리를 듣는 것이었다.
S급 헌터가 무려 2명에 영국에서 수혈한 A급 헌터가 다수 포진해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은 폐쇄적인 국가라 타 국가의 헌터가 아무런 연고 없이 일하긴 힘들었다.
다만, 연고만 있다면 꽤 쉽게 한국에서 일할 수가 있었다.
영국의 뛰어난 A급 헌터들은 엘레노아 덕분에 쉽게 한국으로 넘어와 일할 수가 있었다.
그래서 러셀 길드 대다수는 영국에서 넘어온 헌터들이었다.
타 길드의 끈끈한 견제에도 초신성의 칭호가 부족하지 않게 성장한 원동력이 바로 그것이었다.
그리고 10분이란 시간이 흘렀다.
“뭐, 뭐야?”
“뭐지?!”
웅성웅성.
사람들은 옹성거리기 시작했다.
18장. 길드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