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이번 묘지 포탈 소멸 사건은 뉴스에 작게 보도되었지만, 헌터 커뮤니티 자체에선 진지하게 다루어지고 있었다.
[D 커뮤니티]
- 님들, 이번에 묘지 포탈이 사라졌다는 소식 들었음?
- 완전, 대박. 나 묘지 포탈 근처에 사는데 이번 소식에 땅값이 휘청거렸음. 혹시 다른 포탈도 사라지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과 기대심리 때문이라고 함.
- 정말 최근에 이런저런 일이 많이 벌어지네요. 진짜, 세상이 망하려나.
- 아니, 님. 몬스터로 위험한 포탈이 사라졌는데 세상이 망한다니요.
- 위에 님, 생각 좀 해 보세요.
지금 인류가 무슨 에너지로 살아가고 있는지. 만약에 하루아침에 아무런 대비도 없이 포탈이 사라진다고 생각해 봐요. 이건 석유 고갈보다 심각한 얘기임.
- 맞음, 생각해 보셈. 지금 모든 에너지가 마석에서 나오고 있는데.
하루아침에 마석이 사라진다면?
- 지금 정부에서 매년 일정량의 마석을 비축하고 있다지만, 연구에 따르면 마석의 수명은 10년이라고 함. 10년 뒤엔 뭐 먹고 살거임?
- 와, 그렇게 보면 이번 사건, 진짜 심각한 거네. 유전 하나가 사라진 거나 마찬가지잖아?
- ㅇㅇ, 그런 거임.
- 하지만, 포탈 주변은 늘 몬스터 걱정으로 힘든데…….
- 이 세상이 그런 걸, 뭐 어쩌겠습니까.
인터넷에서 새삼스레 포탈에 관한 논쟁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포탈은 인류의 가장 큰 적이자 가장 큰 자원이었기에 이 논쟁은 끝이 날 수가 없었다.
***
그 시각 검은 날개 길드에선 비상 대책 회의가 열리고 있었다.
쾅-!
“이걸 보고라고 하는 거야!!”
촤르륵-!
“죄, 죄송합니다!!”
길드의 상징이자 최강의 무력인 마스터보단 실무에선 부마스터가 책임자였다.
그래서 이번 사태도 부마스터가 책임지고 처리하려고 했다.
하지만 사태는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었다.
“……벌써 다섯 곳이 당했다는 게 말이 돼?!”
“죄, 죄송합니다!”
처음 검은 날개 소속 공격대가 공격받았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만 해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대한민국 5대 길드 중 하나인 만큼 그만큼 적도 많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조사 결과 나머지 4대 길드의 움직임은 전혀 없었다.
그렇다는 것은 5대 길드를 시기하는 한심한 조직의 소행이란 뜻이었다.
딱히 문제 될 게 없었다.
그런 녀석들이야 정예 공격대 하나만 출격시켜도 겁을 먹고 항복할테니 말이다.
정체만 파악되면 끝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벌써 첫 습격이 발생한 지 일주일이 지났음에도 이번 일의 배후를 밝혀낼 수가 없었다.
“아니, 어떻게 일주일째 배후를 알아내지 못할 수가 있어. 그 녀석은 단 1명도 죽이지 않았다며!!”
더 놀라운 점은 습격자는 누구도 죽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검은 날개 길드에 좋은 것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죽이진 않았지만, 모든 장비를 뺏어서 암시장에 팔아 치웠기 때문이다.
일부 장비는 되찾았긴 했지만, 100% 찾진 못했고 그러는 과정에서 소모한 자금도 어마어마했다.
특히 이번 일로 일반 길드원들이 동요하기 시작했다는 게 컸다.
5대 길드를 최고로 유지하는 것은 자신이 최고의 길드에 소속해 있다는 자부심이었다.
하지만 이번 기습을 효율적으로 막지도 못하고 끌려 다니기 일쑤에, 장비까지 100% 회수를 못 하니 신뢰가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지금 당장은 괜찮을지 몰라도 내부에서부터 서서히 무너지는 것은 치명적이었다.
단순히 외부의 적이라면 오히려 똘똘 뭉칠 수라도 있겠지만, 이런 식은 아니었다.
쾅-!
“제기랄, 이렇게 한가하게 있을 시간에 빨리 흉수를 알아내란 말이야!!”
“예, 예!!”
후다닥.
길드 간부들은 혹시라도 불똥이 튈까 봐 얼른 회의실을 도망치듯이 나섰다.
“한심한 녀석들.”
검은 날개는 늘 최고의 길드였다.
그런 최고의 길드가 내부에서부터 흔들리고 있었다.
굳건한 성은 외부에선 결코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하지만 내부에서부터의 붕괴는 허무할 정도로 쉽게 벌어질 수도 있었다.
‘안 돼, 절대 안 돼.’
그는 이 자리에 있으면서 오로지 검은 날개 길드의 이익을 위해서만 움직였다.
그 과정에서 꽤 많은 피를 손에 묻혀야 했다.
덕분에 그를 노리는 하이에나 같은 녀석들이 많았다.
만약에 검은 날개라는 울타리가 사라지면 더는 하이에나 무리를 막을 방법이 없었다.
거기에다가 5대 길드 부마스터로 있으면서 이룩한 부와 권력을 절대 포기할 수는 없었다.
‘안 되겠다. 이번 일은 마스터께 보고 드려야겠어.’
그가 실무자라고 하지만, 절대 권력은 오로지 마스터인 이하응 헌터에서 나왔다.
보통 기업처럼 실무에 있으면서 지분을 야금야금 가져오는 방식은 길드 체제에선 절대 할 수가 없었다.
S급 헌터의 권위는 절대적이었으니까.
마스터실로 향한 부마스터는 노크 후 마스터실로 들어가 허리를 숙였다.
“최근 길드에 일이 벌어지고 있다지?”
정식 보고는 이번이 처음이었지만, 마스터인 이하응이 이 시끄러운 일을 모를 리가 없었다.
“죄송합니다. 제 선에서 처리하려고 했지만, 도저히…… 크윽."
부마스터는 치욕에 부들부들 떨어야 했다.
보통 이런 일은 그가 알아서 처리하는 게 맞았다.
그렇지 못했다는 것은 무능을 자수하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흐음.”
검은 날개 길드의 마스터인 이하응의 눈빛이 이상했다.
‘이것을 뜻하는 거였나?’
아무래도 그는 이번 일을 벌인 흉수를 알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부마스터는 허리를 숙이고 있느라 표정을 보지 못했다.
“철저히 조사해 보도록. 나는 나대로 한번 알아보지.”
“아, 예. 아, 알겠습니다.”
부마스터는 큰 질책을 걱정했는 데, 별다른 말이 없자 밝은 표정으로 몇 번이고 허리를 굽히곤 사무실을 나갔다.
끼릭.
부마스터가 나가자 그는 의자를 돌려 앉았다.
‘꽤 유치한 짓을 하는군, 김요한.’
아무런 증거를 남기지 않은 완전 범죄였다.
하지만 이하응은 최근 자신을 찾아와 호기롭게 협박했던 요한의 눈빛을 기억하고 있었다.
아마도 이번 일의 선전 포고를 하려고 온 듯했다.
‘하지만 네놈은 상대를 잘못 골랐다. 검은 날개 길드는 나로 시작 해 나로 끝나는 법.’
그의 눈빛이 살기로 번뜩였다.
***
‘흐음, 이거 생각보다 더 재밌는데?’
짐작하다시피 이번 검은 날개 길드 습격 사건의 흉수는 요한이었다.
검은 날개 길드가 제대로 흉수를 찾지 못하는 이유는 아주 간단했다.
그는 지금까지 열 번이 넘는 습격에서 단 한 번도 직접 나선 적이 없었다.
‘그냥 테스트만 해 본 거였는데.
이렇게까지 가능하다니…….'
본 골렘을 원격에서 조종한 것에 아이디어를 얻어서 그는 리치를 중심으로 자신의 언데드 군단을 맡겼다.
변장도 철저히 했다.
모든 언데드에 갑옷과 로브를 입혀서 언데드인 것을 모르게 한 것이다.
당하는 처지로선 블랙 헌터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건 요한의 원격 언데드군단 조종에 기반한 습격이었다.
‘검은 날개, 너희들은 처음부터 사람 잘못 건드렸어.’
실제론 검은 날개 길드 전체가 아니라, 마스터인 이하응의 독단이었다.
하지만 그건 요한이 알 바가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검은 날개 길드가 암살 의뢰를 했다는 것이다.
‘철저하게 박살 내주마.’
조직의 힘이 부족한 지금으로선이 방법이 최선이었다.
그리고 그 효과는 꽤 괜찮은 편이었다.
‘이미 내부에서 말이 많다고 했지.’
물론 이번 습격 사건은 공식적으론 비밀이었다.
하지만 검은 날개 길드는 대규모 길드였고 길드원도 무척 많았다.
모두의 입을 100% 막을 수는 없었다.
‘검은 날개라고 언급 안 하고, 우리 길드라고만 언급한 다음에 이번 일을 설명한 게시글이 꽤 됐어. 그 글에 의하면 이미 내부적으로 혼란이 심하다고 했지.’
모르는 사람이 보면 그러려니 할 내용이었지만, 당사자인 요한이 보기엔 중요한 내부 정보였다.
‘조금만 더 밀어붙이면 얼마 못버티겠지. 그렇게 되면 이하응 네놈이 나서야 할 거다.’
그가 노리는 것은 어디까지나 이하응 길드 마스터였다.
설사 이번 암살 의뢰가 소수의 잘못이라고 해도 그 흉수의 끝은 이하응일 수밖에 없었다.
무려 1조가 넘는 금액을 집행하려면 마스터의 허락이 필수였기 때문이다.
‘난 은혜는 잊어도 원수는 절대로 안 잊어.’
힘이 없을 때는 잊는 게 아니라 참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힘이 있을 때는 절대 참지 않았다.
콰앙-!
잠시 딴생각을 하는 사이에 스마트폰 액정에서 격렬한 전투가 벌어지는 것을 잠시 놓쳤다.
[크흐흐. 아쉽구나, 아쉬워. 마음같아선 네놈들을 모조리 죽이고 싶지만, 주인께서 살려 두라고 했으니 말이야.]
요한을 대신해서 검은 날개 길드를 공격하는 선봉에 서고 있는 리치 사무엘이었다.
누구보다 죽음과 가까운 리치인 그는 살생 금지 명령이 정말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주인의 명령을 어길 수는 없는 노릇.
최대한 검은 날개 길드원들을 괴롭히는 것으로 참아야 했다.
[모두 처리해라, 나의 군단들아!!]
이번엔 요한의 지시에 따라서 언데드 군단은 소리를 내는 것을 최대한 절제했다.
물론 그들의 의지는 아니었고 코딩을 통해서 소리를 내는 부분을 삭제했기에 가능했다.
‘언데드 특유의 공포심은 줄 수가 없지만, 지금은 정체를 숨기는 게 먼저니까.’
이런 철두철미한 기습으로 검은 날개 길드는 이번에도 또 당해야만 했다.
모든 장비를 뺏기고 포탈에 꼼짝없이 갇혔다가 나중에 이 사실을 알아차리고 길드원들을 구해 주는 방식이었다.
“끄아아악, 제기랄!!”
부마스터는 분명히 철저히 준비했음에도 매번 당하는 상황에 진심으로 분노했다.
“네놈이 누군지 몰라도 반드시 죽일 거다. 으아아아!!”
***
아무리 검은 날개 길드가 비밀을 유지하려고 해도 소문이 날 수밖에 없었다.
[D 사이트 커뮤니티]
- 이번에 그 소식 들었어?
- 아, 검은 날개 길드가 공격당하고 있다는 거?
- 범인이 누군지도 모른다는데?
- 이미 꽤 많은 공격대가 공격당하고 아이템도 엄청나게 뺏겼데.
- 몇 명은 모든 장비를 뺏겼음에도 제대로 보상을 해 주지 않은 길드에 지쳐서 탈퇴했다는데?
- 아, 그거 내가 아는 사람임.
탈퇴하고 C.A.R 길드에 들어갔음.
- 대박이네…… 천하의 검은 날개 길드가 이렇게 허무하게 당하고만 있다니?
- 같은 5대 길드 소행인가?
- 그럴 리가. 만약에 같은 5대길드 소행이었다면, 범인을 금방 찾았겠지. 자기들끼리 엄청나게 감시할 거 아니야?
- 아니, 애초에 이렇게 정체를 들키지 않고 이런 짓을 할 수 있는 게 말이 돼?
- 안 돼.
- 뭐가, 뭔지…….
네티즌들은 이번 사태에 무척이나 혼란스러워하고 있었다.
검은 날개 길드가 공격당하는 것은 재밌는 일이나, 국가를 지키는 5대 길드 하나가 무너지면 어쩌나 싶은 걱정도 있었다.
지금 시대의 국력은 곧 헌터의 능력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G3를 구축하는 5대 길드 중 하나가 무너지면 자칫 국가 순위가 위험했다.
거기에다가 만약에 범인이 외국이면?
자칫 외국에만 좋은 일을 해 줄 수가 있었다.
그래서 다들 일단 지켜보자는 여론이 강했다.
***
그리고 그날 저녁 시간 무렵.
대한민국을 넘어서 전 세계가 놀랄 대형 사건이 터졌다.
[검은 날개 길드에 길드전을 신청한다.]
“대, 대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