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묵직한 본 골렘의 팔이 빠른 속도로 땅을 가격했다.
퍼걱-!
바로 밑에 있던 언데드 무리가 그대로 박살 난 건 당연했다.
거기에다가 이번 공격은 단순한 공격이 아니었다.
본 골렘의 본 크래쉬라는 스킬이었다.
타격한 그 부위를 중심으로 3m 안에 날카로운 뼈 가시가 튀어나와 주변의 언데드까지 파괴했다.
언데드라 쉽게 부서지진 않지만, 빽빽한 가시엔 어쩔 수가 없었다.
‘와, 이거 대박인데?’
본 골렘의 단점은 역시 느린 반응 속도와 정확도였다.
하지만 이 스마트폰으로 통제함으로써 그 단점을 순식간에 보완할 수가 있었다.
‘흠, 지금은 1기만 컨트롤할 수 있는 것 같지만. 그건 내가 차차보완해 보면 되겠지.’
스마트폰의 한계로 RTS처럼 세부적인 컨트롤은 아무래도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그 부분 역시 요한이 잘 알아서 해결해야 할 일이었다.
그리고 가장 핵심적인 게 있었다.
‘이거 재밌어.’
분명히 실전 전투임에도 불구하고 게임을 하는 느낌이 더 강하게 들었다.
‘아무래도 스마트폰 화면으로 상황을 인식하다 보니 어쩔 수 없는 거지.’
딱히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혹자는 그래도 생명을 앗는 전투인데 게임처럼 느끼면 생명 경시풍조가 생길 수 있다는 이상한 논리를 들이댈 수가 있었다.
‘근데, 그게 왜?’
어차피 헌터 세계는 철저한 약육강식이었다.
죽이지 못하면 내가 죽는 철저한 정글이었다.
물론 법이란 제도가 있어서 살인은 철저히 금기시되어 있었다.
하지만 포탈 내부는 그야말로 무법 지대였다.
즉, 죽이려고 생각하면 얼마든지 뒤통수를 칠 수가 있었다.
이런 철저한 약육강식 세계에서 생명 경시 풍조?
이미 만연한 지 오래였다.
일반인과 비교해서 헌터가 소수라 크게 티가 나질 않을 뿐, 사망률만 따지면 헌터는 압도적 1위 직업이었다.
다만, 그렇다고 해도 누구나 각성을 하면 헌터로 활동하려고 하는 편이다.
그만큼 헌터란 직업이 가지는 메리트는 어마어마했다.
오죽하면 헌터는 직업이 아니라, 신분이라는 말이 나올까?
쾅-!
‘크으, 쩐다.’
단 1기뿐이었지만, 요한이 직접 컨트롤한 덕분에 효과는 막대했다.
후드득.
대부분 스켈레톤이 박살이 나 버렸다.
쾅-!
[감히, 감히. 천한 인간 네크로맨서 따위가!!]
리치는 분노했다.
시체도 없는 이곳에서 애지중지해 가며 키운 스켈레톤들이 순식간에 파괴되었기 때문이다.
[꺼져라!!]
푸학- 펑!
리치가 지팡이를 앞으로 내밀자 커다란 검은 손길이 나타나 위저드를 그대로 강타했다.
강력한 어둠의 손길에 닿은 위저드는 그대로 뒤로 날아가 부서졌다.
“위저드!!”
깜짝 놀란 요한은 이를 갈았다.
으드득.
“이 빌어먹을 해골 따위가!!”
서로 인간, 해골이라고 무시하는 상황이었다.
본 골렘이 앞장서서 스켈레톤 무리를 다 박살 낸 상황.
“저 녀석을 제압해!!”
이제 여유 있는 다른 언데드를 리치에게 집중시켰다.
[감히 나에게 언데드로 승부를 보려고 하다니, 이 어리석은 놈!!]
리치도 화가 난 건 마찬가지였다.
녀석은 사용할 수 있는 모든 마법을 사용하며 어떻게든 이 상황을 타개하고자 했다.
하지만 상황은 녀석에게 점점 안좋아지고 있었다.
파각-!
“흐흐흐, 나름대로 잘 버텼지만.
여기까지야 이것들아.”
듀라한 류페이가 스켈레톤 나이트를 마지막으로 싹 다 부수는 데 성공했다.
아무리 스켈레톤 나이트가 잘 만들어진 작품이라고 해도 듀라한의상대는 아니었다.
그것도 이성을 100% 가지고 있는 언데드에겐 더더욱.
전투에 임하는 태도나 방식 자체가 달랐다.
또 스켈레톤 나이트보다 듀라한이 더 상위 언데드였기 때문이다.
[크흐, 분하다. 이곳은 나의 힘을 100% 발휘하지 못하는 곳. 내 힘을 100% 발휘할 수 있었다면, 네놈 따위는…….]
“그래서 말인데. 너 나랑 같이일 안 해 볼래?”
[뭐라?]
해골뿐인 리치의 얼굴이지만, 왠지 미친X을 보는 듯한 표정이 된 것 같은 느낌이었다.
“난 애초부터 널 죽이려고 온 게 아니야. 나를 도와서 일을 좀 해줄 네크로맨서가 필요했거든. 그렇다고 신뢰할 수 없는 인간보다는 언데드라 목줄을 채울 수 있는 유능한 네크로맨서가 필요해.”
[그게 나란 말이군.]
“맞아.”
[건방진!!]
쿠아아앙-!
리치의 몸에서 짙은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내가 이곳에 갇혀 있는 신세라곤 하지만, 겨우 네깟 X 따위에게 종속될 것 같으냐!! 내 인간의 노예가 될 바에야 차라리 소멸될 것이다!]
“정말?”
[.......]
“너는 정말 아무것도 없는 이곳에서 죽는 역할만 영원히 반복하다가 언제인지 몰라도 소멸할 날만 기다리는 삶을 살겠다고?”
[.......]
조금 전까지만 해도 심각했던 리치의 기세가 많이 누그러졌다.
당연한 일이었다.
리치도 이 무한하게 반복되는 일에 염증을 느끼고 있던 차였다.
그렇지만, 차마 인간의 노예로 들어가기엔 망설여졌다.
“그럼, 이렇게 생각하자고. 노예가 아니라, 거래.”
[거래라…….]
솔직히 말만 달라지는 거지 본질이 바뀌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라도 자기 합리화를 할 수만 있다면, 딱히 나쁠건 없었다.
“혹은 계약.”
[계약, 계약…….]
‘거의 다 넘어왔군.’
[좋다. 너와 계약하겠다. 대신, 조건이 있다.]
“조건?”
[그래, 나에게 따로 연구할 수 있는 공간을 내준다면. 너를 위해서 일하겠다.]
“오, 그건 쉽지. 그 조건, 받아들이겠어. 김요한이라고 한다.”
[……나 리치인 사무엘 알칸타라는 지금, 이 순간부터 인간 김요한과 계약을 하겠다.]
휘잉.
주변에 바람이 불더니 리치의 이마에 마법진 하나가 생겨났다.
이것이 바로 계약을 증명하는진.
보통 스킬이 아니라, 네크로맨서 고유의 패시브 같은 것이었다.
당연한 일이다 보니 스킬 창에 존재하지도 않았다.
[인사드립니다, 마스터.]
계약한 순간부터 그 사납던 리치가 매우 얌전해졌다.
천하의 리치라도 결국 언데드에 불과한 존재.
네크로맨서와 계약한 이상, 이제 요한에게 종속된 존재에 불과했다.
벅벅.
요한은 머리를 긁적였다.
‘이거, 위저드가 부서지니 리치가 들어오는군.’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애초에 그는 언데드 1기, 1기에 딱히 애정을 준 적도 없었다.
그러니 괜찮은 언데드 1기가 날아간 것은 아쉽지만, 그 이상의 감정은 없었다.
‘자, 이걸로 준비는 됐고.’
어디까지나 사무엘을 얻은 것은 검은 날개 길드를 박살 내기 위한 사전 준비에 불과했다.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다는 의미였다.
이젠 본격적으로 검은 날개 길드를 인수 분해해 줄 차례였다.
요한은 계약한 리치를 시체 수납으로 넣고 포탈을 빠져나와 집으로 향했다.
그리고 잠시 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구구구궁-!
포탈이 내부부터 떨리기 시작했다.
“어, 어, 어?!”
“포, 포탈이 왜 이래?”
“혀, 협회에 어서 연락해!!”
“예!”
포탈이 리셋되길 기다리던 공격대도 당황했다.
그날 묘지 필드의 던전 포탈 하나가 사라졌다.
협회에선 이번 사태에 난리가 났다.
재빨리 포탈을 마지막으로 사용했던 헌터를 확인해 보았다.
명단을 확인한 담당자는 미간을 찌푸렸다.
“이거 확실해?”
“아, 예. 맞습니다. 그 시간에 근무를 선 녀석들에게도 확인해 보았습니다. 김요한 헌터가 확실하답니다.”
“끄응, 하필이면 가장 상대하기 껄끄러운 존재가……."
S급 헌터라면 다 껄끄러운 존재는 맞았다.
하지만 보통의 S급 헌터라면 여러 가지 얽혀 있는 관계이다 보니 말이 잘 통했다.
하지만 독불장군식으로 활동하는 S급 헌터는 아무래도 까다로운 부분이 많았다.
굳이 요한이 아니더라도 이런 식의 S급 헌터라면 다 공통적인 특징이었다.
“어떻게 불러 볼까요?”
“그래, 설사 오지 않더라도 일단 호출해 보는 수밖에. 정 안 되면 상부에 요청해야겠지.”
“예, 알겠습니다.”
당연한 일이지만, 겨우 비상 대책팀 팀장의 부름은 깔끔하게 무시해 주는 요한이었다.
왜냐하면, 비상 대책팀에겐 누군가를 강제로 데려다가 수사할 권한이 없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상부에 보고했고, 협회에선 협회장 이름으로 요한을 불러야 했다.
털썩.
“아, 귀찮게.”
요한도 협회장 이름으로 전달된 소환장을 무조건 거부할 수는 없었다.
“하하, 죄송합니다. 그렇게 큰일은 아닌데, 그렇다고 중요하지 않은 일이 아니라서요. 협조 부탁드리겠습니다.”
“후우, 네. 무슨 일이죠?”
“아, 저. 그게, 이번에 묘지 필드가 소멸했습니다.”
“예?”
요한도 깜짝 놀랐다.
딱히 그가 이곳에 올 이유를 알지 못해서 별 시답지 않은 것으로 부른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포탈이 소멸했다고 했다.
‘아, 설마?’
짚이는 구석이 있었다.
‘……역시.’
조사관은 요한의 눈빛을 보고 확신할 수가 있었다.
‘뭔가 아는 게 있어. 분명해!’
하지만 요한의 표정은 곧 원상태로 돌아왔다.
짚이는 구석이 있다고 해도 곧이곧대로 알려 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놀랍군요. 포탈이 소멸하다니.
이제 그것을 잘 연구하면 인류에 평화가 찾아올 수도 있겠네요?”
뻔뻔하게 나가기로 했다.
아까 잠깐 아차 싶었던 표정을 짓긴 했지만, 아무런 증거도 없는 상황.
S급 헌터인 자신을 어떻게 할 수 없다는 자신도 있었기 때문이다.
“……확실히 그럴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정확한 이유를 안다면 그 평화가 더 빨리 올 수도 있지 않을까요?”
조사관도 그렇게 만만한 사람은 아니었다.
헌터 협회에서 일하는 만큼, 헌터들의 생리에 대해 빠삭했다.
그래서 곧바로 요한을 압박하거나 재촉하지 않았다.
부드러운 대화로 풀어 가고자 했다.
“뭔가, 짚이는 구석이 없습니까?”
“글쎄요. 저는 평범하게 사냥한 것밖에는 없는데?”
“흠.”
하지만 아무리 조사관이 유능해도 이번 문제는 그의 능력으론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포탈 내부에서 벌어지는 일엔 아무런 증거가 없는데다 굳이 소멸하지 않더라도 리셋되어 버리면 조사를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음......."
“뭐, 더 궁금하신 거라도?”
“……아닙니다. 조사는 여기까지 하도록 하겠습니다.”
“아쉽군요. 도움이 필요하시면 언제든지 연락 주세요.”
“알겠습니다.”
요한은 자리에서 일어나 조사관의 어깨를 두드리곤 밖으로 나갔다.
“하아. 어렵다, 어려워.”
조사관은 한숨을 크게 쉬곤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포탈 내부에서 벌어진 일은 그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었다.
저 위쪽에 있는 연구진들이 찾아 내야 할 비밀이었다.
그러니 요한에게 알아낸 게 없다고 해서 아쉬울 게 없었다.
‘어디 보자, 아차. 데이트 약속늦겠다.’
그에겐 곧 있을 여자 친구와의 데이트가 더 중요했다.
최근에 사귀기 시작한 모델 여자 친구는 정말 만날 때마다 행복한 감정을 만들어 주었다.
‘빨리 보고서 올리고 퇴근해야겠다.’
그날 9시 뉴스에 짤막하게 묘지 포탈이 사라졌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렇게 작게 보도될 문제는 아니었지만, 아무런 정보가 없기에 조용히 처리하고자 했다.
하지만 이번 일에 엄청난 연구진이 달라붙어서 원인 규명을 하고 있었다.
포탈의 소멸은 인류의 미래를 결정할 수도 있는 중대한 일이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