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자율 주차로 주차를 한 후에 요한은 곧바로 건물로 직행했다.
회전문을 통과하자 로비가 나왔다.
‘저쪽인가?’
건물 1층 로비는 일반 회사처럼 깔끔한 대리석에 출입증을 확인해야 통과할 수 있는 구조였다.
그리고 그 출입구를 지키는 건 일반인 외부 보안 업체가 아니었다.
‘E~F급 헌터가 지킨다고 했었지.
아마?’
검은 날개 길드는 굉장히 폐쇄적이고 엉덩이가 무겁기로 유명했다.
하지만 5대 길드에 대한 사람들의 궁금증은 최고였다.
5대 길드가 아무리 폐쇄적으로 운영한다고 해도 서울 한복판에 건물이 떡하니 자리 잡고 있었다.
거기에다가 외부 업체도 꽤 고용하는 편이었다.
그러다 보니 정보가 아예 없는 것은 있을 수가 없었다.
핵심 정보는 아니어도 꽤 많은 정보가 여러 루트로 방송이 되었다.
그중의 하나는 역시 G3 국가의 5대 길드답게 1층 로비를 지키는 보안 요원이 일반인이 아니라 헌터라는 점이었다.
비록 대부분이 F급이라지만, 일반인과 비용에서 차원이 달랐다.
기본급만 억대를 지급해야 하니 말이다.
요한이 그들에게 다가가자 보안요원들이 앞을 막아섰다.
“김요한 헌터님. 이곳엔 무슨 일로? 오늘 헌터님께서 약속이 있다는 지시는 받은 적이 없습니다. 약속하시고 그때 오시죠.”
이곳은 정말 보안이 최고였다.
보안 요원의 수준도 높아서 곧바로 요한을 알아보았다.
오죽하면 아무리 지위가 높은 사람이라도 약속을 하지 않으면 들여 보내질 않았다.
그게 대통령이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그러니 보안 요원들이 이렇게 요한을 막아 세우는 것은 당연했다.
그들은 그들이 할 일을 할 뿐이니까.
스윽.
그는 잠시 자신을 막아서는 보안요원을 쳐다보았다.
한차례 피식 웃고는 보안 요원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그러면, 지금 길드 마스터에 연락해. 중국 쪽 일로 보자고 말이야.
만약에 보기 싫으면 그 뒷일은 알아서 감당하라고 말이야.”
말에서 살기가 뚝뚝 흘렸다.
보안 요원이 일반인이었다면, 전혀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아니, 느끼긴 느꼈을 것이다.
살기가 아닌, 그냥 압박으로.
하지만 그는 비록 F급 헌터였지만, 헌터는 헌터였다.
살기를 구분하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
꿀꺽.
보안 요원은 지금 정확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심상치 않은 일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만은 확실히 알 것 같았다.
“……연락해 보겠습니다.”
원칙적으론 하면 안 되는 일이었다.
이런 식으로 방문객들의 연락을 일일이 넣었다간 기본적인 업무에 차질이 생기기 때문.
하지만 이곳 1층 보안 업무는 상당한 재량권이 있었다.
보안 요원 개인이 위급한 일이라고 생각되면 예외적으로 넣을 수도 있었다.
보안 요원은 잠시만 기다려 달라고 한 뒤에 사무실로가 내선 전화로 비서실에 연락을 넣었다.
[무슨 일이죠?]
“지금 1층에 김요한 헌터가 와 있습니다.”
[……약속이 없는 사람은 절대 올 수 없다는 규칙을 잊으신 겁니까?]
말을 하기 전에 나오는 의문의 텀.
보안 요원은 확실히 뭔가가 있다고 생각했다.
“아니, 아닙니다. 저도 처음엔 그렇게 말했는데. 꽤 묘한 말을 저에게 전했습니다.”
[묘한 말이요?]
“예, 중국에서 일어난 일과 관련해서 마스터와 만남을 청하고 있습니다. 거절한다면 그에 대한 뒷일은 알아서 하라고도 했습니다.”
[........]
비서실장은 잠시 말을 잃었다.
‘확실히 뭔가 있군.’
보안 요원은 F급 헌터이긴 했지만, 상당히 유능한 인물이었다.
적당히 야망도 있어서 눈치가 빨랐다.
[알겠습니다. 지금 사람을 내려보낼 테니. 김요한 헌터에게 잠시만 기다려 달라고 해 주세요.]
“예, 알겠습니다.”
뚝.
전화가 끊기고 보안 요원은 숨을 크게 쉬곤 사무실을 나섰다.
“김요한 헌터님.”
“결과는?”
“사람을 내려보내겠답니다. 잠시만 기다려 달라고 합니다.”
“그러지 뭐.”
요한은 벽에 등을 대고 느긋하게 사람을 기다렸다.
약 10분 뒤 엘리베이터가 열리면서 그곳에서 양복을 입은 사람 세명이 내려왔다.
주변에 거친 기운이 풀풀 풍기는, 딱 봐도 위험해 보이는 인물들이었다.
외모도 상당히 거칠었는데 얼굴에 흉터가 참 많았다.
“헙!”
“망나니, 아니 개노답 3형제다.”
“제기랄, 오늘은 운이 안 좋군.”
“아침부터 저 녀석들을 볼 줄이야.”
길드 대원들은 대부분 3명의 등장에 인상을 찌푸렸다.
“당신이 그 유명한 김요한 헌터야?”
“응?”
“킥킥, 맞네. 와꾸가 어디서 많이 본 것 같더라니. TV에서 꽤 봤지.”
“헌터가 무슨 TV에 다 나온데.
그건 실력은 X도 없는 것들이나 나오는 거 아니야?”
“하찮아, 하찮아.”
정말 불량한 기운이 철철 넘치는 녀석들이었다.
“너희들이 그 유명한 개노답 3형제군.”
“뭐, 이 새X가 뭐라는 거야?”
“누구보고 개노답이라고?”
“우린, 망나니 3형제야. 망나니!”
자신을 망나니라 칭하는 녀석들의 정신 상태가 매우 의문스러웠다.
“닥치고 너희 마스터에게 안내나해.”
“킁, 언제까지 그 콧대가 뻣뻣할지 지켜보겠다.”
"언젠가 그 콧대를 뭉개 주지.”
으쓱.
“가능하다면, 일본 X들에게도 말했지만. 도전은 언제나 환영이야.
단, 판돈이 좀 들겠지만 말이야.”
“쿵!”
그렇게 개노답 3형제를 따라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마스터실이 있는 꼭대기 층으로 향했다.
이곳의 보안 시스템 중 하나로 1급 대원이 아니고선 마스터실로 직행할 수가 없었다.
등급별로 갈 수 있는 층이 정해져 있었다.
정해져 있는 층 이상으로 가려면 허가가 떨어져야 했다.
그래서 트리플 A등급이라는 특이한 등급을 받은 개노답 3형제가 직접 내려온 것이었다.
길드 내에서 1급 대원이었으니 말이다.
띵.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더 복잡한 보안을 해제하고 들어가야 마스터실이 나왔다.
‘아니, 최강이라고 자부하는 놈이 뭐 이렇게 꼭꼭 숨어 있어?’
성격이 참 이상한 놈이라고 생각했다.
어쨌든 마스터실에 도착한 요한은 한 번 만났던 사이인 이하응 길드 마스터와 만날 수가 있었다.
개노답 3형제는 허리를 90도로 숙이고 마스터실을 나갔다.
마스터실엔 요한과 이하응 단둘만이 있었다.
“이거, 김요한 헌터께서 무슨 일로 이렇게 누추한 곳에 오셨을까?”
“거참, 서로 피곤하게 말 돌리지 말자고. 다 알고 왔으니까.”
당연하게도 반말이 튀어나왔다.
요한은 자신을 죽이려고 한 존재에게 말을 높일 정도로 배알이 없는 사람이 아니었다.
“크핫, 그런가. 그래서, 보통이라면 언론과 정부에 강력하게 항의해야 하는 거 아닌가. 내가 너를 죽이려고 했다고 말이야. 징징댈 차례 아닌가 말이지.”
“뭐, 보통이라면 그렇겠지.”
“호오, 보통이 아니라 이건가?”
“재미가 없잖아. 어차피 꼬리 자르기로 대충 처리할 거면서.”
“오우, 빙고!”
퉁, 또르르르.
이하응은 양주를 한 병 뜯고 얼음이 담긴 글라스에 반쯤 따랐다.
“한잔할 텐가?”
“미안하지만, 적이 주는 건 믿지 않는 성격이라서 말이야. 독이 무서운 건 아니지만, 기분이 엿 같거든.”
“큭큭, 조심스러운 성격도 마음에 들어.”
딸그락.
얼음이 든 글라스를 들자 얼음소리가 매력적으로 울렸다.
털썩.
이하응은 소파에 다리를 꼬고 앉았다.
“뭐, 앉으라고.”
요한도 이하응을 따라서 소파에 앉았다.
둘 사이엔 묘한 전운이 감돌았다.
“언론사에도 제보하지 않고, 정부에 항의도 하지 않으면 어떻게 할 생각이지?”
“그건 생각 중이야. 솔직히 이렇게 쉽게 자백할 줄은 몰랐거든.”
“이런, 미안하군. 애써 부정할 걸 그랬나?”
“딱히 상관은 없었어.”
"큭큭큭."
이하응은 기분 좋게 웃었다.
정말로 기분이 좋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떻게 보면 선전 포고라고 불러도 되겠군?”
“뭐, 그건 기대하라고.”
“기대하지. 그런데 말이야. 자네 밑에 여동생이 하나 있지 않나?”
콰지직-! 구웅!
이하응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요한의 앞에 놓여 있던 잔이 으스러지면서 살기가 뿜어 나오기 시작했다.
쿠당-!
“마스터 님!!”
그러자 개노답 3형제가 얼른 안으로 들어왔다.
슥.
이하응이 손을 들어서 괜찮다는 신호를 보냈다.
“이거 미안하구먼. 괜한 소리를 해서 자네를 화나게 했어.”
“방금 그 소리를 하지 않았으면 좋았을 텐데 말이야.”
“그런가? 크크.”
"......."
요한의 눈은 마치 사신의 그것이 연상되게 변했다.
가능하다면 당장 목을 비틀었을 눈이었다.
그렇게 요한은 이하응을 노려보다가 검은 날개 길드 건물을 나섰다.
까드득!
여전히 분노하고 있었다.
"하늘."
[꺄하, 응. 요한, 기분이 안 좋네?]
“언데드 수집이다.”
[어머, 진짜 화났나 보네?]
“박살 내고 싶은 놈이 생겼어.”
[꺄하하, 나야 언제나 좋지. 전투는 언제나 환영이야!]
***
요한은 지금까지 어지간하면 그곳엔 가지 않으려고 했다.
딱히 이유는 없었다.
그냥 본능이 그곳은 어지간하면 가지 말라고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봉인을 검은 날개 길드에서 깨부수어 주었다.
그곳은 바로 묘지 포탈이었다.
이름에도 나와 있다시피 이곳은 언데드가 주 몬스터로 나오는 포탈이었다.
거기에다가 보스 몬스터는 언데드를 총괄하는 리치였다.
아마 같은 계열이라 힘이 거부하고 있었을 수도 있었다.
아니면 매우 위험한 곳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언데드로 가득한 던전이었다.
요한의 힘이 한 단계 상승할 수 있는 무엇인가를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 검은 날개를 깨부수기 위한 준비가 필요한 지금으로선 꼭가 봐야 할 포탈이었다.
안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안나.”
[……네, 헌터님.]
어쩐지 안나의 목소리가 잠긴 것 같았다.
‘뭔가 안 좋은 일이라도 있나?’
절대 자기 때문에 기분이 안 좋다곤 생각 못 했다.
“나 지금 묘지 포탈 예약 좀 잡아 줘.”
[알겠습니다.]
하지만 충실히 대답하는 것을 보니 큰일은 아니겠거니 여겼다.
곧바로 묘지 포탈로 향했다.
인기 포탈이라면, 이 시간에 예약할 시에 공격대로 꽉 차서 출입이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묘지 포탈은 그렇게 인기가 많은 포탈이 아니었다.
나오는 몬스터의 숫자에 비해서 마석이 그리 튼실하지 않았고 사체도 가치가 떨어지기 때문.
하지만 그나마 이곳 묘지 포탈에서만 얻을 수 있는 특수한 아이템 때문에 사람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었다.
낮은 확률로 떨어지는 검은 보석을 얻기 위해서 꽤 많은 공격대가 방문하는 곳이었다.
묘지 포탈 앞에 도착한 요한은 아주 간단히 신분 확인 절차만 거치고 곧바로 묘지 포탈 안으로 들어갔다.
지잉.
여전한 멀미를 느끼며 안으로 들어가자 묘지 포탈이라는 별명이 잘 어울리는 공간이 모습을 드러냈다.
구구- 구구-.
기분 나쁜 새소리가 제일 먼저 요한을 반겨 주었다.
‘자, 그러면 본격적으로 시작해 볼까.’
17장. 특성의 진정한 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