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최순환이 뒤늦게 정신을 차렸을 때는 화룡 길드 사람들은 거의 다 죽고 단 1명만이 남아 있었다.
살아남은 것은 부마스터이자 A급 헌터인 장진 1명이 전부였다.
그는 현재 스켈레톤 워리어에 잡혀서 무릎이 꿇린 채였다.
“어이.”
“아, 예, 예!”
“통역 좀 해 줬으면 하는데.”
“예, 아, 알겠습니다.”
원래는 다 죽였어야 했지만, 부마스터 1명만 살려 둔 것은 정보를 캐내기 위해서였다.
덜덜.
최순환은 떨리는 몸을 최대한 가다듬고 요한의 앞으로 다가갔다.
“이 녀석한테 물어봐. 고통 없이 죽여 주고 언데드로 만들지 않을 테니까. 나를 죽이라고 의뢰한 한국 길드 이름만 불라고 해.”
“아, 아, 아. 알겠습니다.”
그야말로 살벌한 질문에 최순환은 살짝 순화해서 하려고 했다.
“아 참, 내 말 순화 같은 거 하지 말고. 그대로 전해.”
“네, 네!”
하지만 마치 속을 훤히 보고 있는 것처럼 내뱉는 요한의 말에 찔끔한 그는 그대로 통역해 주었다.
“……후우, 언데드로 만들지 않겠다는 약속만큼은 꼭 지켜 달라고 전해라.”
“아, 네.”
최순환이 그 말을 통역했고 요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이미 A급 헌터 시체는 충분히 구했다.
굳이 약속까지 어겨 가며 A급 헌터를 더 구할 이유는 없었기에 쿨하게 약속해 주었다.
"......."
잠시 망설이는 부마스터.
하지만 곧 체념한 듯 그의 입이 열렸다.
“검은 날개 길드가 내게 직접 의뢰했다. 너를 죽이는 데 성공하면 1조를 주겠다고 했지.”
“그, 그런……."
이 말을 직접 들은 순환이 먼저 충격을 받았다.
그도 엄연히 평범한 대한민국 국민이고 헌터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었다.
검은 날개 길드가 어떤 곳인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억울하게 중국에서 노예로 살고 있었지만, 그렇게 오래된 일은 아니었다.
“저, 김요한 헌터님.”
“왜, 누군데?”
"그게......."
잠시 뜸을 들인 최순환이었지만, 차마 거짓말을 할 수는 없었다.
“검은 날개 길드에서 이자에게 직접 의뢰한 것이라고 합니다.”
“검은 날개?”
“예.”
“……쯧, 하여튼 빌어먹을 조선X들 진짜 음흉한 속내는 중국 못 지않다니까.”
같은 한국인이지만, 욕이 저절로 나왔다.
검은 날개 길드라면 그도 안면이 있는 사이였다.
마스터가 직접 온 곳에서 영입제의를 거절하고 한 차례 대화도 나누지 않았었던가.
앞에선 웃는 얼굴로 대해 놓고 뒤에서는 이런 음흉한 계획을 세운 것이다.
그것도 무려 1조라는 엄청난 금액을 걸어서 말이다.
‘빌어먹을 녀석들. 아니, 나는 사이좋게 좀 지내보려고 하는데 왜 이렇게 나서서 나를 열 받게 하는 거야?'
한국으로 돌아가면 처리해야 할 일이 늘어 버렸다.
당연히 가만히 있을 생각은 없었다.
그리고 이걸 공론화할 생각도 없었다.
‘시끄럽게 만들어서 처리하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만. 내가 원하는 만큼의 처벌을 할 수는 없겠지.’
현재 기본적인 여론은 그의 편이었다.
그러니 5대 길드 자체의 힘으로 아무리 여론전을 펼치려고 해도 요한이 무조건 밀리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정당한 방법으로 녀석들을 상대하면 결말이 사이다가 아니었다.
‘그런 식으로 공론화하더라도 꼬리 자르기 식으로 대충 중간 간부 1명 감옥으로 보내고 끝내겠지. 길드 소속 일반인에게 큰 금전적 이득을 주고 처리할 수도 있고.’
물론 정상적인 상황이었다면, 조금 억울하더라도 법적인 방법으로 처리하는 게 맞았다.
하지만 그것도 상대에 따라서 다른 법이었다.
‘5대 길드라면 법 위에 노는 녀석들이야. 정상적인 방법으론 절대 상대할 수가 없지.’
그리고 녀석들은 요한을 죽이려고 한 상대들이었다.
단순히 방해 따위가 아니었다.
‘죽이려는 녀석들에게 신사적으로 나가는 것 자체가 바보짓이지.’
그는 생각을 정리하고 장진을 내려다보았다.
“의뢰한 자의 이름은 알고 있나?”
“모른다. 처음 보는 녀석이었다. 헌터였다는 것만 기억하고 있을 뿐."
“하긴.”
얼굴을 안다고 해도 딱히 큰 의미는 없었다.
어차피 심부름꾼일 테니 말이다.
“다른 특별한 정보는?”
“없다. 너도 알다시피 이번 의뢰는 마스터에게 알리지 않고 나 혼자 처리했지.”
“그래 보여. 중국 내에서도 유명한 화룡 길드가 이렇게 허술할 리가 없지. 길드 자체적으로 나섰다면 굳이 현상금 헌터 같은 어정쩡한 녀석들도 고용하지 않았을 테고 말이야.”
“큭큭, 잘 알고 있군. 맞아. 그러니 비밀리에 일을 처리하기 위해서 많은 것을 알아보지 않고 일을 벌였다. 만약에 네놈에 대해서 조금만 더 알아보았다면, 이 일을 내가 혼자 처리하려고 하지 않았겠지.”
으쓱.
“잘 아네.”
“그만 죽여라.”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었어. 위저드.”
딱딱.
요한의 명령이 떨어지자 위저드가 워리어에게 지시를 내렸다.
퍽-!
결국, 화룡 길드의 부마스터이자 제1 공격대 팀장이었던 장진은 워리어가 휘두른 철퇴에 머리를 가격당해 목숨을 잃었다.
“위저드, 저 녀석은 그냥 묻어버려.”
딱딱.
그렇게 마지막 1명까지 처리하는데 성공했다.
화룡 길드 전체가 나서지 않았지만, 이곳에서 길드의 1/3이 갈려 나가는 큰 피해를 보아야 했다.
화통 길드 마스터인 샤오팽이 중요한 포탈 레이드로 자리를 비웠을 때 발생한 일이었다.
“후아, 어쨌든 끝은 났네.”
우드득-!
양팔을 머리 위로 올려서 기지개를 켰다.
전투는 언제 치러도, 직접 싸우지 않아도 피곤한 일이었다.
사람을 죽이고 피 냄새를 맡는다는 건 상상외로 스트레스가 심했다.
“사, 살려 주셔서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최순환은 허리를 90도로 숙여서 감사하는 마음을 전했다.
“뭘, 원래는 안 믿었을 텐데. 네 옆에 여전히 꼭 붙어 있는 부인의 맑고 깨끗한 영혼을 보곤 믿지 않을 수가 없었으니까.”
"......."
다시 한번 아내의 죽음을 확인시켜 주는 잔인한 그의 말에 순환은 말을 잃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죽은 사람의 흔적을 찾아다니는 것은 참 못 할 짓이지.’
그리고 여성의 영혼은 요한에게 간절한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네 아내의 영혼이 제발 널 좀 말려 달라잖아. 뭐라고?”
[죽임을 당하고 곧바로 화장됐어요. 어디서 죽었는지도 잘 몰라요. 그러니, 제발. 제 남편이 저를 찾느라 시간을 낭비하지 않게 도와주세요.]
맑고 순수한 영혼의 외침을 차마 거부하기가 힘들었다.
“그렇다네?”
"여보......."
순환은 다시 눈에 눈물이 차올랐다.
믿고 싶지 않았지만, 믿을 수밖에 없었다.
그 밖에 여러 가지 말을 해 주며 둘이 아니고서야 알 수 없는 얘기까지 나왔기 때문이다.
“알겠습니다. 아내를 찾는 건 포기할게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여성 영혼은 기쁜 얼굴로 요한에게 인사했다.
***
요한은 혹시라도 중국에서 문제가 생길까, 정말 재빨리 한국으로 귀국했다.
다행히 이번 일은 화룡 길드 부마스터가 비밀리에 진행한 일이다 보니 조용히 한국으로 떠날 수가 있었다.
또 요한 혼자서 조심히 움직이다 보니 누구도 시끄럽게 굴지를 않았다.
그게 개인적으로 정말 마음에 들었다.
그는 곧바로 러셀 길드 본부로 향했다.
“어, 팀장님. 이 시간에 무슨 일이세요?”
우연히 로비에서 만난 안나였다.
그녀의 정식 직함은 2팀장 전속비서였다.
하지만 요한이 워낙 본부에 출근하지 않다 보니 그녀의 위치는 살짝 애매했다.
그래서 그녀는 꽤 높은 직급에도 불구하고 다른 부서의 잡무를 도와주며 시간을 보냈다.
아무것도 안 하고 눈치 보는 것보단 차라리 이렇게라도 일을 하는 게 마음이 편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제 장기 출장 건으로 신고한 요한이 로비에서 보였다.
깜짝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럴 일이 좀 있었어. 마스터있지?”
“아, 네. 지금 마스터실에 계세요.”
“회의나 그런 건 없지?”
“아, 네.”
“그럼 수고해.”
쿨하게 인사를 하고 엘리베이터로 향하는 요한.
“아, 네……가 아니잖아!”
그대로 쿨하게 가 버리는 요한의 태도에 안나는 어이가 없었다.
그녀는 엄연히 요한의 비서였다.
그러니 이런 중요한 일도 모르다니 직업 정신이 투철한 그녀에겐 자존심의 상처였다.
“아악, 이 빌어먹을 팀장!!”
그녀는 처음으로 요한을 때리고 싶어졌다.
안나가 분통을 터트리는 동안 요한은 마스터실에서 엘레노아와 독대를 하고 있었다.
“흐음, 그렇군요. 죄송해요. 제가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그런 임무를......."
요한은 이번 사건을 꽤 축소해서 보고했다.
화룡 길드 부마스터인 장진의 단독 행동이었다고.
당연히 검은 날개 길드의 의뢰였다는 것도 비밀로 했다.
‘이번 일은 내가 알아서 해야지.
괜히 러셀 길드가 움직이면 눈에 띈단 말이야.’
이번 일은 조용하고 은밀하게 처리할 생각이었다.
“아니에요. 저쪽에서 비밀로 해달라고 했으니 어쩔 수 없죠. 그리고 누가 이런 의뢰로 배신한다고 생각하겠어요?”
“어쨌든 죄송해요. 그리고 수고 했어요. 나머지 일은 길드 차원에서 해결할게요.”
“뭐, 그래 주시면 감사하죠.”
누가 잘못을 했든 사람이 죽었다.
그러니 사후 처리 문제가 복잡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복잡한 것을 대신해 준다고 하니 감사한 게 당연했다.
“……조심하세요.”
엘레노아는 뜬금없이 말을 꺼냈다.
“아, 네. 뭐, 조심해야죠.”
요한은 별로 대수롭지 않게 그 말을 받았다.
조심은 늘 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럼, 이만.”
더 할 말도 없기에 인사 후에 회사를 나갔다.
나중에 안나가 요한을 찾았지만, 이미 퇴근했다는 소식에 또 분노한 것은 비밀.
집으로 돌아온 요한은 본격적으로 검은 날개 길드를 어떻게 조져야 할지 고민했다.
‘지금까진 딱히 나한테 피해 준건 없지만. 이대로 당하기만 하면 그야말로 호구 잡히는 거지.’
검은 날개 길드가 왜 굳이 자신을 노렸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음, 그러면 일단 이유부터 한번 조사해 볼까?’
그게 우선인 것 같았다.
요한은 다음 날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곧바로 강남에서도 땅값이 비싸기로 유명한 압구정동으로 향했다.
그곳에 검은 날개 길드의 총본부가 있었기 때문이다.
끼익!
“어떻게 오셨습니까?”
“여기 길드 마스터 만나러 왔습니다.”
얼굴은 웃고 있었지만, 말투는 살짝 비꼬는 형태였다.
“아, 김요한 헌터님?”
“호오, 저를 아시네요.”
“그럼요. 저 김요한 헌터님 팬입니다. 팬카페도 가입했는걸요?”
“아, 그래요?”
"예!"
이곳 주차장을 지키는 안전 요원은 외부 용역으로 고용된 경비 업체였다.
그러자 요한의 표정은 살짝 풀렸다.
“그렇군요. 이하응 씨 계시나요?”
“아, 네. 아까 출근하시긴 하셨습니다만……."
길드 마스터를 이렇게 대놓고 이름으로 부르자 보안 요원은 살짝 당황했다.
“그렇군요. 있다는 말이죠?”
“네…. 네?”
보안 요원은 왠지 찜찜한 느낌이었다.
덜컹.
요한이 차 문을 열어서 나갔다.
그러자 그가 타고 왔던 차량은 알아서 스스로 주차를 했다.
아직 자율 주행 차량은 실용화되진 않았지만, 자율 주차 기능만큼은 100% 가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