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화
요한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뭐, 5기뿐이지만. F급 헌터 10명을 상대하는 데 그리 어렵진 않을 거야. 어때, 너희들의 상대는 바로 이 5기의 스켈레톤이다.”
“이익!!”
헌터 선수들은 발끈했다.
자신들이 F급 헌터인 것에 대한 자각은 있었다.
하지만 이곳은 포탈이나 결투장이 아니었다.
엄연히 그들의 구역이라고 할 수 있는 H-1 필드였다.
헌터가 된 이후로 쭉 이쪽 일만해 온 그들은 엄연히 프로였다.
그저 단순히 싸우는 것도 아니고, 팀전으로 규칙대로 싸우는 것이라면 자신 있었다.
아니, 이건 자존심 문제였다.
절대 질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10:5의 전투가 시작되었다.
규칙은 국제 룰을 따르고 착용한 장비와 이어진 마나 탱크의 마나가 0이 되거나 본진이라고 할 수 있는 CP가 파괴되면 패배였다.
다만, 이번 모의 전투는 이들의 전투 능력을 확인하기 위해서 벌이는 테스트 같은 것.
그러니 규칙은 마나 탱크가 0이 되면 패배로 단일화되었다.
그렇게 다른 사람들은 뒤로 물러나고 10:5의 전투가 시작되었다.
띠띠띠- 띠!!
[경기 시작!!]
국제 룰대로 시작 안내음이 크게 울렸다.
“모두 진형을 갖춰!!”
샤삭-!
안산 F 클, 아니 이젠 안산 F 레드디어 소속 헌터 선수들은 역시 프로답게 기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각자의 맡은 포지션에 따라서 훈련받은 대로 각자의 임무를 성실히 수행했다.
“CC기 걸어! 이니쉬, 이니쉬. 딜 제대로 넣으란 말이야!!”
초반엔 레드디어 선수들이 우세했다.
‘흠, 확실히 일반적인 전투와는 조금 방식이 다르네. 스켈레톤들이 어색해하고 있어.’
현재 요한의 스켈레톤들은 방어구와 무기는 H-1 전용으로 바꿔착용한 상태였다.
거기에다가 병종도 워리어로 단일 병종.
다양한 기술이 사용되는 적 팀의 공격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요한은 그런 스켈레톤 워리어들에게 명령했다.
“일단 방어만 해. 그리고 녀석들의 움직임과 전투를 관찰해.”
딱딱.
그가 다루는 스켈레톤 워리어들의 지능은 결코 일반적인 언데드가 아니었다.
오히려 굉장히 영악한 녀석들이었다.
밀리는 척, 방어만 하는 척하면서 적들의 약점을 파악하고 그 약점을 지독할 정도로 파고든다.
그게 바로 요한의 2번째 특성인 A.I에서 나오는 효과였다.
‘그야말로 소환 계열 헌터에겐 기적과도 같은 조합 특성이지.’
로또를 연속으로 10번 정도 당첨될 확률이랄까?
어쨌든 스켈레톤 워리어 5기는 방패를 들어서 마나가 깎이는 것도 감수하고 방어에만 전념했다.
아무리 잘 막는다고 해도 이건 스포츠였다.
최첨단 장비 덕분에 실제 전투와 유사한 형태가 만들어졌다.
그러니 마나 감소를 100% 막을 수는 없었다.
“좋았어!!”
“우리가 이기고 있어!!”
“별거 없어. 밀어붙여!!”
사기가 오를 때는 그것을 100% 활용해야 하는 법이었다.
레드디어 선수들은 정말 열심히 공격을 퍼부었다.
하지만 유일하게 1명의 표정은 그렇게 좋지가 않았다.
바로 팀의 주장이자 에이스인 강철곤이었다.
‘이상해, 분명히 우리가 압도적으로 이기고 있어. 그런데 어째서 쫓기는 기분인 거지?’
특히 방패 사이로 보이는 스켈레톤 워리어들의 눈빛이 여전히 흉흉했다.
전혀 밀리고 있는 쪽의 눈빛이 아니었다.
‘아니, 그럴 리가 없어. 저 녀석들은 그저 생명이 없는 언데드일 뿐이야. 그래서 그런 거야.’
그렇게 스스로를 위안했다.
하지만 역사가 그렇듯이 늘 사람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대로만 듣는 법.
스켈레톤 워리어 쪽의 마나 탱크의 마나 잔량이 약 35%쯤 됐을 때였다.
“이제 익숙해졌지?”
끄덕.
“그럼 싸워.”
딱딱-! 쿵-!
“크윽!”
“뭐, 뭐야?!”
드디어 스켈레톤 워리어들이 방어 상태를 풀고 나서기 시작했다.
“막아!!”
“우측, 우측!!”
사실 스켈레톤 워리어들은 단일병종이라는 점을 뺀다면 절대 레드디어 선수들에게 밀릴 이유가 없었다.
그들이 오랜 훈련으로 팀워크를 맞추었다면, 스켈레톤 워리어는 굳이 팀워크를 맞출 필요가 없었다.
왜냐하면, 애초에 요한이 스켈레톤 자체를 코딩할 때 여러 개체지만, 서로가 연결된 존재로 설정 했기 때문이다.
즉, 어차피 그들은 여러 개체이자 하나였기에 굳이 팀워크 자체를 언급할 필요가 없었다.
쿵- 쾅!
“크악!!”
“상철아!!”
“우측이 완전히 뚫렸어!!”
스켈레톤 워리어들은 몇 번의 공격을 방어해 보고 느낀 대로 가장 방어가 취약한 곳을 집중적으로 공격했다.
오른쪽 라인을 담당하는 유상철헌터가 바로 취약한 지점이었다.
퍽-!
“크악!”
“얼른 이니쉬를 걸어서 시간을 벌어!!”
“속박!!”
촤악!
넝쿨 같은 것들이 땅에서 솟아나 스켈레톤 워리어 1기를 묶었다.
‘흠.......'
스켈레톤 워리어에게 별다른 명령을 내리지 않은 요한은 그저 흥미로운 표정으로 전투를 지켜보았다.
그가 적극적으로 지휘를 했다면, 솔직히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스켈레톤 워리어가 얼마나 강한지를 알아보려는 게 아니었다.
레드디어의 수준과 요한의 데이터 축척을 위한 것.
최대한 오래 전투를 벌이는 게 좋았다.
하지만 상대의 패턴 분석이 끝난 워리어는 그럴 생각이 없었다.
파직!
“꺄악!”
속박한 넝쿨을 힘으로 찢어 버린 스켈레톤 워리어.
그 반작용으로 시전자인 헌터가 비명을 질렀다.
쿵쿵쿵- 촤악-!
“크악!!”
비록 특수 장비로 싸우는 것이라 한쪽이 죽지는 않았다.
하지만 고통이 안 느껴지는 건 절대 아니었다.
스켈레톤 워리어가 특수 검을 휘두르자 한 선수가 비명을 질렀다.
그것을 시작으로 스켈레톤 워리어들은 강하게 치고 나왔다.
쿵-!
“크윽!”
‘호오?’
그나마 강철곤은 스켈레톤 워리어를 상대로 어느 정도 버텨 내었다.
탱커라는 이유도 있지만, 정신력이 꽤 훌륭했다.
‘특성 효과인가?’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강철곤도 2기를 상대론 버틸 수가 없었다.
퍽-!
“크악!”
강철곤이 무너지자 레드디어 팀은 와르르 무너졌고 마나 탱크의 숫자는 0이 되었다.
삐빅-!
[스켈레톤팀 승리!]
“하악! 하악!”
"크으으으......."
“으으, 죽겠다.”
경기가 끝나고 레드디어 선수들은 기진맥진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경기에 사용되는 마나 탱크의 마나는 경기를 뛰는 헌터들이 보유하고 있는 총 마나 양이었기 때문이다.
그냥 평범하게 체력을 소모하는 경기였다면, 이들이 1경기 뛰었다고 지칠 리가 없었다.
마나를 소모하는 스포츠이기에 체력, 마나 관리가 참 중요했다.
그래서 엔트리를 25명으로 유지하는 것도 중요했다.
이런 식의 마나 소모는 확실히 체력을 많이 갉아먹어서 매주 경기를 뛸 수는 없었다.
꼭 로테이션을 해 줘야 했고, 여기서 또 다양한 수 싸움이 발생했다.
점점 다양한 방식의 전투로 진화하기에 보는 맛이 좋아서 H-1은 헌터 전용 스포츠 중에서 유일하게 메이저로 살아남은 것이다.
“다들 수고가 많았다. 생각보다 유의미한 데이터를 얻을 수 있는 경기였다. 구단주 권한으로 오늘 훈련은 여기까지만 하고. 자유 시간을 가질 수 있게 해 주겠다.”
“와아아아!!”
“구단주님, 짱!!”
“오오, 찬양합니다!!”
살짝 어색해질 수도 있던 분위기였다.
하지만 요한이 살짝 월권을 행사함으로써 분위기는 순식간에 활기차졌다.
선수들은 오히려 홀가분한 표정이었다.
그리고 패배가 창피한 건 아니었다.
‘이게 S급 헌터의 수준.’
‘겨우 소환물로도 우리를 이렇게 압도하다니. 역시, S급 위에 S급!’
특히 요한의 명성이 크게 작용했다.
그는 엄연히 S급을 이긴 S급 헌터였으니 말이다.
소환물이라 이길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던 건 야무진 착각이란 것도 깨달았다.
“저희는 구단주님께 충성하겠습니다!”
“오옷!!”
“오버하기는.”
피식.
요한은 재밌게 구는 선수들이 귀엽기만 했다.
그 이후 요한은 정말 적극적으로 안산 F 레드디어에 투자했다.
이게 첫 바람이 정말 무섭다고, 해 보면 해 볼수록 구단 운영이란게 참 재밌다고 생각했다.
‘현실 FM, 현실 FM 하는 이유가 있구먼.’
시간 가는 줄 모르겠고, 일하는 것 자체가 재밌었다.
그는 운영비 2,000억은 물론이고 시설 확충과 스태프 보충, 그리고 경기장 증축 등으로 총 3,700억을 안산 F 레드디어에 투자했다.
‘와, 이게 돈 쓰는 재미인가?’
헌터가 되기 전엔 누구보다 짠돌이였던 그였다.
하지만 이번 취미는 돈을 쓰는 게 정말 재밌고 즐거웠다.
그래서 그는 어디 더 쓸데없나 찾아보았다.
***
[흘흘, 오랜만이네. 그동안 왜 이렇게 뜸했나. 지루해 죽는 줄 알았어.]
“흠흠, 그,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어, 영감.”
오랜만에 연구실에 들른 요한은 유령이면서 다 죽어 가는 노인 네크로맨서의 영혼을 만났다.
그는 고스트나 스펙터 같은 언데드가 아니었다.
그냥 평범한 영체였기에 물리력이 전혀 없었다.
요한이 없다면 그저 이곳을 둥둥 떠다니는 존재에 불과했다.
[그래서, 무슨 일로 찾아왔나.]
“당연히 네크로맨서 수업을 듣기 위해서지.”
[흘흘, 그렇군. 저번에 어디까지 했더라…….]
“ 『시체학 개론』 3장까지 했었다.”
[아하, 그랬군. 늙으면 기억력도 안 좋아지니 말이야. 흘흘.]
그렇게 노인 네크로맨서의 수업이 시작되었다.
상당히 지루한 시간이었다.
학문 기반이 아니라, 스킬 기반인 요한에게 그닥 도움이 되는지도 알 수 없는 짓이었다.
하지만 참고 또 참았다.
‘기초란 게 원래 그래. 도움이 안 되는 것 같으면서도 결국엔 언젠가 도움이 되지. 그리고 거목이 되기 위해선 뿌리가 깊어야 하는 법이니까.’
지루하고 따분하고, 졸리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그런 것을 참는 이유는 역시 먼 미래를 위해서였다.
***
요한이 취미를 확실히 정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본업을 게을리하는 건 아니었다.
“요한 씨.”
“아, 네.”
“별일이네요. 딴생각을 다 하시고.”
“하하, 요즘 취미에 꽤 제대로 맛을 들여서 말이죠.”
“흠, 그게 그렇게 재밌나요?”
분명히 안산 F 레드디어는 그녀가 다리를 놓아 준 게 맞았다.
하지만 엘레노아는 H-1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것은 그녀가 귀족이나 재벌가문의 막내딸인 것과는 아무 관계가 없었다.
그저 별로 관심이 없는 것뿐이었다.
“이게 생각보다 돈 쓰는 재미가 있네요. 하하.”
“흠.”
‘나도 한번 해 볼까?’
안 그래도 가끔 가문 모임 장소로 영국 H-1 경기장으로 잡힐 때가 있었다.
그때마다 그녀는 시끄럽다는 이유로 출석을 거부했었다.
하지만 요한이 이렇게 재밌어하니 흥미가 일기 시작했다.
“그런데, 마스터. 무슨 일이에요?”
“아, 새로운 의뢰가 들어왔어요.”
“새로운 의뢰요?”
“네.”
“흠, 뭔데요?”
“그런데 조금 이상한 부분이 있어요."
“이상한 부분이요?”
“네, 의뢰가 들어온 곳이 바로 중국이에요.”
“중국요?!”
끄덕.
깜짝 놀라는 요한.
엘레노아는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