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화
요한은 엘레노아에게 다가가 악수를 하였다.
그리고 그녀는 옆에 서 있는 중년 여성을 가리켰다.
“이쪽이 이 클럽의 운영 담당자인, 안산 시청의 유하연 과장님.”
“반갑습니다. 김요한이라고 합니다.”
“호호, 반가워요. 유하연 과장이라고 해요. 이렇게 유명하신 두 분을 직접 뵙다니. 오늘은 운이 정말 좋네요.”
푸짐한 외모가 인상적인 여인이었다.
“호호, 제 사무실로 가셔서 자세한 사항을 나눠 볼까요?”
“뭐, 그러죠.”
엘레노아와 요한은 유하연 과장을 따라서 구단주실로 향했다.
그곳에서 커피를 대접받은 둘.
상대 쪽은 유하연 과장과 안산 F클럽 담당 법무팀장이 자리를 잡았다.
“그래서, 저희 안산 F클럽을 인수하고 싶으시다고요?”
“네, 최근에 큰돈 번 것도 있고. 취미 생활이나 좀 해 보려고요.”
“흠.”
유하연 과장은 역시 헌터들이란 눈빛이었다.
하지만 요한은 아무 생각 없이 운영하려는 게 아니었다.
‘나한텐 바로 이 스킬이 있으니까.’
믿는 것은 바로 그의 스킬이었다.
몬스터의 설명을 보여 주었던 그 마스터 프로그래밍 스킬 말이다.
아직 사람이나 헌터에게 써 본 적은 없으나 안 통할 것 같지는 않았다.
그래서 그 힘을 바탕으로 구단을 운영하면 더 쉽고도 재밌게 취미를 즐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음, 현실판 FM 같은 개념이지.’
물론 그는 취미에 너무 시간을 많이 할애할 생각은 없었다.
‘취미는 취미에서 끝내야지.’ 보통이었다면, 그냥 게임이나 했을 것이다.
하지만 써도 써도 썩어 넘칠 돈이 생겼다.
또 언제든지 얼마든지 큰돈을 벌 수 있는 그였다.
그러니 굳이 게임이 아니라 현실로 하는 것을 선택한 것뿐이었다.
‘게임은 즐기는 거지. 중독되면 여러모로 곤란하니까.’
최근 H-1 스포츠가 워낙 인기라서 그로 인한 피해 사례도 많이 보고가 되었다.
“뭐, 저희야 적당히 가격만 맞으면 F클럽 정도야 팔 의향이 있긴 합니다. 오히려 김요한 헌터 정도 되시는 분이 구단주로 취임해 주시면 부족한 F클럽의 인기가 더 올라가는 효과도 있을 테고요.”
“의외네요.”
“네?”
“보통 흥정을 할 때는 튕기는 게 정석 아닙니까?”
“호호, 어차피 얼마에 팔든 간에. 제 돈이 아니라서요. 시 운영비로 들어가겠죠. 높으신 분들 뒷구멍에도 조금 갈 테고.”
유하연 과장은 말하는 데 있어서 거침이 없었다.
“휘유~ 직설적이시네요.”
“천성이 돌려 말하는 게 어려워서요. 뭐, 덕분에 제가 동기 중에선 제일 외지에서 근무하고 있지만요.”
그녀는 후덕한 인상이지만, 굉장히 동안이었다.
겉으로 보기엔 40대였지만, 실제론 52세였다.
7급 공무원으로 입사한 그녀의 경력은 무려 30년.
사내 정치를 잘한 그녀의 친구들은 시 본청이나 정말 중요한 기관 담당자로 재직하는 중이었다.
독설적이고 직설적인 그녀만이 안산 F클럽이라는 한직으로 좌천 된 것이다.
그러니 구단을 파는 것에 적극적일 수밖에 없었다.
열심히 관리하기는 했지만, 애정이나 열정 따위는 없었기 때문.
“그래서 시에선 얼마를 요구하는 겁니까?”
“일단 시에선 여러 가지 헛소리를 하기는 했어요. 그래도 시민 구단인데 너무 헐값에 넘기면 시민들이 실망하지 않겠냐는 둥, 어쨌다는 둥. 어차피 자기들 뒷구멍에 한 푼이라도 더 처넣기 위한 술수지만요. 그래서 안산시에서 제시한 금액은 인수금 1,500억입니다.”
“흠……."
‘음, 확실히 금액이 세긴 하네.’
얼핏 보면 구단 1개 인수하는 데 1,500 정도면 저렴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다.
‘물론 그건 상위 구단으로 갔을 때 일이지.’
H-1이 세계적인 인기 스포츠이긴 했지만, 가장 수준이 낮고 인기가 없는 F-리그는 아무래도 관심이 덜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비록 적자는 아니었지만, 미미한 수익에 불과한 안산 F클럽을 팔기로 했다.
목돈도 만지고 이 사실을 널리 알려서 안산 홍보도 할 계획이었다.
“호호, 역시 요한 헌터님. 굉장히 신중한 분이시네요. 솔직히 1,500억 정도라면 최근에 1조 7천억이 넘는 수익을 올려서 큰 부담은 아닐 텐데요.”
으쓱.
“뭐, 그거랑 이거랑은 별개죠. 돈이 많은 것과 합리적 소비를 하지 않는 건 다른 일이니까요.”
“후후, 맞아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이런 제안을 할 생각이에요. 저는 요한 헌터님이란 끈을 잡고 싶어요. 저를 이곳 담당 공무원으로 추천해 주시는 조건으로 시에서 제안한 미니멈 액수인 1,150억에 거래했으면 해요.”
순식간에 350억이 줄어들었다.
요한에겐 그닥 큰 변동은 아닐지 몰라도 어쨌든 제한된 세금으로 타이트하게 운영되는 지방 정부였다.
그런 지방 정부에 350억은 상당히 큰 액수였다.
그리고 1, 150억은 합리적인 금액이었다.
“좋습니다.”
“후후, 잘 생각하셨어요, 팀장 님.”
“예.”
이곳 법무팀장은 사실 그녀와 소굽친구였다.
그러니 그녀가 이런 행동을 하더라도 굳이 뭐라고 하지 않았다.
그렇게 계약은 성립이 되었고요 한은 1,150억이란 합리적인 금액으로 H-1의 최하위 리그인 F-리그 소속 구단의 구단주가 되었다.
이 사실은 역시 순식간에 뉴스가 되어 전국적으로 알려졌다.
[한국의 기상을 널리 알린, 세계 최초의 상급 네크로맨서 김요한 헌터. 안산 F클럽의 새로운 구단주로 취임하다]
[댓글창]
- 와, 이거 뭐지?
- 정말, 개뜬금없는 뉴스 아니냐?
- 헐, 김요한 헌터가 H-1 구단의 구단주라고?
- 우와, 나 아산 사람인데. 대박. 원래는 D리그 이상만 보는데. F리그도 봐야 할 각.
- 진짜 한국인들 오버 대단하시다. 어차피 돈 많은 놈이 돈지랄하는 건데. 뭐 그리 대단한 일이라고. 님들 인생이나 걱정 OK?
ㄴ 인생 걱정은 너부터 해라.
ㄴ 즐.
대체로 여론은 긍정적인 부분 8, 부정적인 부분 2였다.
긍정적인 부분이야, 워낙 요한의 이미지가 좋다 보니 저절로 생기는 것이었다.
부정적인 부분은 H-1 골수팬들이었다.
그들은 H-1에 졸부가 끼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괜히 졸부가 취미랍시고 구단에 영향력을 끼치려다가 엉망진창이 된 사례가 꽤 있었기 때문이다.
“와, 오빠. 헐, H-1 구단을 샀다고?”
유나도 뒤늦게 인터넷 뉴스를 보고 알았다.
“후후 어떠냐. 이 오빠의 위력이?”
팔짱을 끼며 오빠의 위엄을 선보였다.
하지만 유나의 반응은 그의 예상을 비틀었다.
“……살 거면 서울 D 타이탄을 사지.”
“어, 뭐야. 유나, 너 H-1 좋아해?”
헌터에 대해서도 잘 모르던 유나의 의외의 모습에 당황했다.
“당연하지. 뭐야, 오빠는 안 좋아해?”
오히려 유나가 요한을 이상하게 쳐다보았다.
“아, 아니. 그, 그건 아니지만.”
‘하하, 별로 안 좋아했지.’
그의 취미는 어디까지 예능 프로그램이나 드라마 또는 영화를 보는 것이었다.
안 그래도 볼 시간이 없는데 H-1을 볼 리가 없었다.
“지금 우리 또래 중에서 H-1 안 보는 애 없을걸?”
“그, 그래?”
“그래! 지금 안 그래도 서울 D 타이탄 유망주들이 폭삭 망한 것 때문에 경기력 엉망이라 2부 리그를 걱정해야 하는데. 오빠가 인수해서 운영했으면 팍팍 투자했을 텐데!!”
보기 힘든 유나의 열성적인 태도였다.
그리고 어느 정도는 요한에게 상처였다.
‘오빠가 돼서 유나가 H-1을 좋아하는 것도 모르다니.’
상처고 충격이었다.
유나가 정말 한 치의 근심 걱정 없이, 서울 D 타이탄에 대해서 열정적으로 설명하는 모습이 너무 예뻤기 때문이다.
‘이거 이외의 상황에서 승부욕 돋는데?’
원래는 그냥 단순한 재미로 운영하려던 구단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동생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라도 열심히 할 수 밖에 없었다.
‘꼭 내 팀으로 유나를 열정적으로 응원하도록 만들고 싶다!!’
큰 열정이 없는 요한도 동생을 위할 때만큼은 누구보다 활활 불타올랐다.
시스콤다운 열정이었다.
***
요한은 다음 날 구단주 취임식을 위해서 안산 F클럽으로 향했다.
‘일단 이 빌어먹을 이름부터 바꾸자.'
아무리 가장 낮은 수준의 팀이라도 성의가 없는 정도가 있었다.
‘거기에다가 클럽 앞에 F가 붙으니까 마치 낙제점 같잖아.’
F 자체는 없앨 수가 없었다.
국제 H-1 연맹 규칙에 따르면 속한 리그의 알파벳 기호는 필수였기 때문이다.
미국과 라이벌이라 영어 사용을 별로 안 좋아하는 중국도 피해 갈 수 없는 규칙이었다.
이 규칙을 어기면 국제 대회 참여가 금지되니 말이다.
이 규칙을 없애기 위해서 많은 반미 국가들이 끝없이 로비했다.
하지만 연맹 총재가 바로 러셀 가문 사람이었다.
안 그래도 돈이 썩어 넘친다는 평가를 받는 러셀 가문 사람인 총재가 돈에 흔들릴 리가 없었다.
‘흠, 일단 그러면 네크로……. 아, 아니야. 이건 너무 촌스럽잖아.’
클래스가 네크로맨서라고 팀 이름에 네크로맨서를 붙이다니 최악이었다.
‘그래…… 천천히 생각해 보자.’
어차피 급할 것은 딱히 없으니까.
평일 오전이라서 안산까지 가는 일은 한산했다.
구단에 도착하자 미리 연락한 덕분에 누군가 마중을 나와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안산 F 클럽의 사장을 맡은 왕수찬이라고 합니다.”
“아, 반가워요. 저는 소개 안 해도 아시죠?”
“그럼요, 구단주님. 제가 모시겠습니다. 이쪽으로 오시죠.”
사장이라고 소개한 것치곤 수행원도 없이 단출했다.
“최근 시에서 무리하게 예산을 사용해 자금난 때문에 투자금이 많이 줄었습니다. 그래서 인력도 최소한으로 유지하고 있죠.”
“흠, 그렇군요.”
왕수찬 사장은 요한을 데리고 먼저 구단주실로 향했다.
“아뇨.”
“예?”
아니, 향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것을 요한이 막았다.
그가 궁금한 건 구단주실 따위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곧바로 선수들에게 가 보죠.”
어차피 그는 운영 자체는 전문 CEO에게 맡길 생각이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열심히 하겠다는 열정이 생기긴 해도 그의 본업은 어디까지나 헌터.
그것도 S급의 최, 최, 최상위급 헌터.
거기에다가 그는 여전히 밤마다 각성몽에 접속해 코딩 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가 구단을 위해서 할 일도 어떻게 보면 그의 스킬 성능을 테스트하기 위함이었다.
‘또 다양한 헌터의 전투를 직접 관찰하면서 내 스켈레톤이나 구울에게 유의미한 데이터를 얻을 수 있다면 완벽하지.’
코딩을 위한 작업에 데이터는 필수였으니 말이다.
“아, 네. 알겠습니다. 이쪽으로 오시죠.”
왕수찬 사장은 의외라는 눈빛을 요한에게 보냈다.
그는 요한이 여느 졸부 헌터처럼 그저 취미나 재미로 구단을 운영할 거로 생각했다.
그러다가 얼마 안 가 딱히 생각 보다 재미도 없고, 돈도 안 된다고 생각해 투자금을 줄이거나 되팔 것으로 여겼다.
하지만 요한이 선수부터 보자고 하니 살짝 생각이 달라질 수도 있겠구나, 라고 생각했다.
왕수찬이 안내한 곳은 이곳 안산 F 클럽에서 가장 비싼 장소인 훈련장이었다.
H-1 훈련장은 대부분 실내였다.
원래는 축구처럼 외부였으나 정보 싸움이 매우 중요해진 이후로 드론으로 훈련 장면을 엿보는 경우가 생겨서 실내로 바뀌었다.
“일단 몸풀기부터 한다. 100m 전력 질주 30회 시작!”
삐익-! 다다닥-!
요한이 도착했을 때는 막 몸풀기 운동을 하고 있을 때였다.
“어떻게, 훈련을 중지할까요?”
“아니요. 일단 지켜보죠.”
“예.”
왕수찬 사장은 살짝 뒤로 물러났다.
요한은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